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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새 하늘과 새 땅 (벧후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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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
벧후 3:8~13 
 
2007년 새해가 시작되고 여러 날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그 사이에 송구영신예배에서 시작해서 여러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예배는 이 예배가 새해 첫 예배입니다.
다시 한 번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의 복이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차고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요즘 우리는 관상기도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관상기도는 완성된 그림을 조용하게 바라보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가지고 기도할 때 시작 부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실제로 계시는데 나의 안, 깊은 곳에 계시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자각하면서 일치감을 갖게 되는 것이 관상기도입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나 중보기도 같은 다른 기도들은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에 비교가 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3절,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가 관상기도식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다면 “새 하늘과 새 땅” 이 말씀을 읽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마음속에 환하게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합니다.

저에게 그와 비슷한 체험이 있습니다.

몇 번 이 체험을 말씀드렸는데 창세기 1장 3절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 말씀을 읽는데 실제로 창밖의 어둠도 물러가고 마음 안에도 밝은 빛이 비쳐 한동안 황홀한 가운데 있었던 일이 있습니다.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과 저의 새 하늘과 새 땅이 마음에 찬송가 261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인 찬송가 2절의 가사처럼  환하게 펼쳐지기 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곳을 말합니까?

베드로 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여기 10절의 “주의 날” 12절의 “하나님의 날” 중간에 나오는 “그 날” 모두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그밖에도 다른 뜻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 세계, 이것이 큰 새 하늘과 새 땅, 절대적 큰 새 하늘과 새 땅이라면 작은 새 하늘과 새 땅, 상대적 의미의 새 하늘과 새 땅들이 있습니다.

독립선언서에도 이 말이 나옵니다.
독립선언서 가운데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하도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삼일운동 60주년이 되는 1979년에 우리 교회 원로목사님인 김찬국 목사님과 김동길 교수님이 중심이 되어 독립선언서를 한글로 바꾸었습니다.
거기에는 이 대목이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 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독립입니다.

지금 대학입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수험생들에게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취업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직장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어느 기업에서 IMF 때 형편이 어려워서 수백 명의 직원들을 정리 해고했습니다.
그 때 그 기업에서 ‘회사의 형편이 좋아지면 여러분을 꼭 다시 모시겠습니다.’ 했습니다.
몇 해 뒤 회사의 형편이 좋아졌을 때 회사가 약속을 지켰습니다.
여러 해 만에 다시 출근하면서 그 가운데 한 분이 소감을 말하는데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와 같이 좋은 곳,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 곳을 말합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첫째,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에게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13절을 다시 보세요.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그의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더딘 것 같지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8절의 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절의 말씀,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말씀들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이 이사야서 66장 22절에도 나오는데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 앞에는 항상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있습니다.
적당한 때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틀림없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큰 새 하늘과 새 땅, 예수님의 재림, 반드시 있습니다.
작은 새 하늘들, 우리가 원하는 것, 좋은 것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이 성전을 지을 때는 완공된 새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의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
보세요, 주님께서 이루어주시지 않았습니까?

통일을 바라는 분들에게는 통일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믾은 사람들이 머잖은 장래에 통일이 되어 북한에 마음껏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한걸음 더 나가서 생전에 통일이 되어 예전에 북한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의 자취를 마음대로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까 예수님의 재림은 큰 새 하늘과 새 땅이고 그밖에 작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고 했는데 이 일이 가능해진다면 그것은 저에게는 ‘중간 새 하늘과 새 땅’ 쯤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주님께서 주님이 예정하신 때, 주님이 적합하다고 여기시는 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 점검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재림을 믿으면서, 동시에 내가 원하는 것도 이루어주실 줄로 믿으시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의가 있는 곳에 살기에 합당한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분이 셋 있습니다.
이사야, 베드로, 사도 요한입니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좋은 곳이다’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사야는 이사야서 65장 7절에서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하고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장수하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에서는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은 성도들의 궁극적인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의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는 말씀은 사도 요한의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무엇을 강조합니까?

13절을 다시 봅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의가 있는 곳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의는 먼저 정의를 말합니다.
「표준 새번역성경」은 베드로후서 3장 13절을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도 이와 거의 비슷하게 번역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정의가 있는 곳,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악이 멸절되고 구원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사야서 60장 21절,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요한계시록 21장 27절의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 의는 한걸음 더 나가서 믿음의 완성을 말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할 때의 그 의를 말합니다.

로마서 4장 3절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할 때의 그 의를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정의, 그리고 믿음의 완성인 의가 넘치는 곳입니다.
이런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기에 합당한 백성으로 바르게, 의롭게 살기에 힘쓰고 믿음을 더하기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합니다.
13절을 다시 봅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하였는데 12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바라본다는 말은 올해 우리 교회 표어에도 나옵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희년을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바라보라는 것은 멍하니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초점을 맞추고 뚫어져라 보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로는 “프로스도카오(προσδοκѿμεν)”인데  ‘마음이 그리로 향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 하늘과 새 땅에 향해 있어야합니다.
“간절히 기다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바라보듯 바라보아야 합니다.
야구 선수들은 공이 날아올 때 온 몸의 신경을 동원해서 그 공을 봅니다.
그렇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격 선수나 양궁 선수들은 과녁을 바라보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한참 바라보면 그 과녁이 축구공만큼 커 보인다고 합니다.

예전에 어떤 무사는 활쏘기 수련을 하는데 스승이 저 멀리에 바늘을 매달아놓고 앉아서 그것을 바라보는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 바늘이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 무슨 무익한 일인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닌가? 그만 두어버릴까 보다.’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한참 그렇게 하니까 바늘이 점점 커보이더랍니다.
나중에는 황소만큼 커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시위를 당겨 활을 쏠 때마다 백발백중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마음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희미하게 보일 것입니다.
점점 분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나중에는 내가 그 안에 있는 것도 보게 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 그곳에 들어갈 것을 대비해서 경건생활을 지속하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갑니다.
14절의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심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님이 재림한 세계를 말하면서 동시에 좋은 곳,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곳을 말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마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져 있기 바랍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에게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정의, 믿음의 완성인 의, 의가 있는 곳인데 의가 있는 곳에서 살기에 합당한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07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믿음의 행진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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