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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1) (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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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아홉가지 열매(1)    [갈5:22-23] 
 
  오늘부터 몇 주간에 걸쳐 올바른 신앙의 척도가 되는 성령의 9가지 열매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신앙의 척도가 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 그리고 사랑장
  본문 갈라디아서 5:22-23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데 있어서 척도가 되는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영으로 들어왔고 어느 정도의 믿음의 분량에 이르렀는지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거나 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안다고 해서 믿음이 큰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러한 영적인 열매들이 얼마나 맺혀 있는가를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신앙의 척도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토록 사모하는 새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최종 목표에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 그리고 사랑장의 열매가 맺혀 있다면 적어도 믿음의 4단계에는 들어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천국가는 길에 있어서 큰 정거장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우리가 어떤 곳에 가려면 목표 지점을 알고 가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서울에서 전라남도 무안에 간다고 하면 중간에 수원, 대전, 광주 등 큰 도시는 물론, 작은 읍, 면 단위의 마을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적어도 큰 도시정도만 알고 있다면 '아, 내가 지금 어디쯤 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목표를 분명히 알고 그 목표를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도시나 마을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도착할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지요. 이 세상에서는 어떤 장소를 찾아가려면 설령 전혀 길을 모른다 해도 길을 아는 사람만 따라가면 갈 수 있겠지만 천국으로 가는 길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천국은 옆 사람을 따라간다고 해서 함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믿음으로 구원받아 가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천국에 가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 안에 다 들어 있는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성경 66권의 말씀을 다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목표하는 천국, 그 중에서도 새예루살렘에 바로 가기 위해서는 설령 하나님의 말씀 66권을 다 알지는 못한다 해도 꼭 기억해야 할 말씀들이 있지요. 바로 무안에 가는데 있어서 제대로 가기 위해서 적어도 큰 도시들은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성경에도 이처럼 큰 도시의 역할, 즉 목표점을 가는 중간 중간에 큰 정거장과 같은 역할을 해 주는 말씀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 그리고 사랑장의 말씀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 자신이 얼마큼 성결되어 새예루살렘에 가까워졌는지 또 신랑되신 우리 주님을 얼마나 닮았는지 분별하여 더욱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3.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 나가야
  본문 갈라디아서 5:22-23을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했는데 그러면 먼저 성령의 열매란 무엇일까요? 열매란 씨를 뿌렸을 때에 그 씨가 싹이 나고 자라 꽃을 피우면서 맺게 되는 것처럼 성령의 열매 역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심으로 이제까지 죽어 있던 영이 살아나고 그 영이 점차 성장함으로 맺게 되는 열매이지요.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우쳐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주관해서 우리가 죄와 불법 등의 육을 버리고 변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가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령은 육적으로 비유하면 하나의 발전기와 같습니다. 발전기가 돌아감으로 전기가 발생하고 이 전기가 전구에 공급되어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는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하심으로 육에 속한 어두움들이 물러가고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맺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발전기가 있다고 해서 전기가 생기고 빛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요. 이 발전기를 가동해야 하는데 이 발전기를 가동하려면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열매가 맺혀 빛을 발하게 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불같이 기도하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을 바로 성령의 소욕이라고 하는데 이 성령의 소욕을 좇아 열심히 행해 나갈 때 신속히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령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소욕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아직까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비진리의 마음을 좇아 갖가지 죄와 불의와 불법들을 행하고자 하지요. 그래서 육체의 소욕을 좇다 보면 성령께서 탄식하심으로 마음에 곤고함이 찾아오고 점점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감으로 성령의 소욕을 좇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은 서로가 상반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합니다(갈 5:16-17). 그래서 성령의 소욕은 우리를 빛인 천국으로 이끌고자 하지만 육체의 소욕은 우리를 어두움인 지옥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가야 합니다.

  만일 비진리의 마음을 좇아 행하고자 하는 육체의 소욕을 좇는다면 그 열매는 죄와 불법인 육체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체의 일이라는 열매를 내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갈 5:19-21). 결국 육을 좇아 행하면 그 결과는 썩어질 사망이요, 성령을 좇아 행하면 그 결과는 영생을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갈 6:8).
 
  4. 성령의 열매 중 첫 번째 열매인 사랑에 대해
  요한일서 4:7-8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사랑을 말하는데 하나님은 근본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도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을 안다 할 수 있는 것이며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라고 해도 다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사랑과 세상에 속한 육적인 사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첫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에 주셨던 사랑은 영적인 사랑이었지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가 들어와 영이 죽고 난 후부터는 사랑 역시 육적인 사랑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되고 마는 육적인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참된 사랑인 줄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간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결혼 전에는 서로가 당신 없으면 못 산다고 하며 그 사랑이 변치 않을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이 점차 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생각에 맞지 않고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상대를 힘들게 하며 쉽게 이혼까지 해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이밖에도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은 물론 형제간이나 친구간의 사랑 역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기적인 사랑이 많으며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혹자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로부터 받으려고만 하는데 대부분은 내가 사랑을 준 만큼 상대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내가 충만할 때는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는 경우도 있으니 결국 이것도 받기 위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든 것이 육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진리에 속한 영적인 사랑은 고린도전서 13:4 이하에 잘 나와 있는데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보다도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으로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랑은 자기적인 것이 전혀 없는 온전한 사랑으로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도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그냥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이러한 사랑을 주셨으니 우리 역시 이러한 사랑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축복 주시지 않고 어렵게 놔두셔도, 가진 모든 것을 가져 가셔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요구하거나 나에게 잘 해 준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나 대가 없이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줄 수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지요.

  이러한 사랑은 성결되어진 만큼 임하는 것이므로 모세나 사도 바울은 설령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할지라도 자신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출 32:32, 롬 9:3). 또한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행 7:60).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온전한 사랑을 보이셨던 것처럼 주님을 닮은 사람들 역시 생명까지 주시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의 사랑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사랑에 대해 깨달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새예루살렘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나누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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