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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랍고 좋은 계획 (렘 2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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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1년 52주를 시작하는 첫 예배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인생에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악의 세력과의 싸움이고, 둘째는 자연과의 싸움이고, 셋째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쉬운 싸움은 없습니다. 악의 세력과 싸우는 것도 그렇고, 자연과의 싸움도 그렇고, 자신과의 싸움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 선생은 로마서 8:37절을 통해 말하기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쉬운 싸움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편에 서 계심으로 우리는 이 모든 싸움에서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에 넉넉히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히 승리하세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알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할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우선 하나님은 나를 회복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에 보면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선지자의 말을 개가 짖는 소리보다 못하게 들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얼마나 핍박하고 못살게 굴었는지 자유롭게 하나님의 성전에도 올라가 예배를 드리지도 못하게 몽둥이로 때리고 감금시키기까지 했습니다. 때문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룩이라는 서기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자신을 대신하여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글을 낭독하여 듣게 할 정도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의 유대 나라의 왕은 여호야김이라는 왕이었습니다. 여호와김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그 두루마기 성경을 가져와 여후디라는 서기관을 통해 왕 앞에서 읽도록 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철이 겨울이었기에 왕 앞에는 뜨겁게 타오르는 화로가 놓여있었습니다. 서기관인 여후디가 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그 말씀을 들은 여호야김 왕은 서기관들이 쓰는 아주 날카로운 칼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그 두루마리를 그 자리에서 바로 칼로 잘라냈습니다. 그리고는 잘라낸 두루마리를 그는 화롯불에 던져 넣어 태워 버렸습니다(렘36:20-26). 이 얼마나 교만한 사람입니까?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옷을 찢고 마음을 찢으며 통회하고 자복하면서 회개해야할 여호야김 왕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잘게 잘라 불에 집어넣어 태워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줄 모르는 완악한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레미야서 29:17-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 보낸 열방 중에서 저줏거리와 놀램과 치소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참으로 엄청난 저주의 말씀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칼의 고통, 배고픔과 기근의 고통, 염병과 같은 질병의 고통, 그리고, 열방 중에 흩어져 학대 받는 고통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며 저주거리와 놀림거리와 웃음거리와 모욕과 수치를 받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완악하고 저주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역시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멸망 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을 통해 그들을 새롭게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들의 실수로 인해 혹은 무지함으로 인해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고 큰 은혜를 이러한 고난 뒤에는 언제나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선으로 모든 것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10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회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고통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나름대로 고난의 언덕을 지나왔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믿음이 시험드는 일도 있었고, 가정의 불화로 인해 상처받은 일도 있었고, 직장에서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사람들과 부딪치며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언덕을 넘어서 2007년에서 2006년을 돌아보면 영원한 고난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때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엄하게 말할 때도 있고, 때로는 회초리로 징벌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역시 아버지입니다. 그분은 성령께서 우리를 시기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을 때가 되면 반드시 회복하시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사회와 정치 그리고 종교의 타락으로 엄청난 고난과 고통을 받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가 슬픔 중에 기록한 애가서 3:32-33절 말씀을 보면 “그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이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그분의 자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따라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회복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회복시키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에 평안과 희망을 주시려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는 11절을 통해 이 사실을 더욱 확증할 수 있습니다.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교회에 오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좋은 뜻을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고난도 없고, 고통도 없어야 하는데 삶이 너무나도 피곤하고 지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시기를 잘 넘어가야 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40년 이상 믿어 보니 꼭 배워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에게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병으로 고통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병이 왔다고 해서 그곳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없겠습니까? 제가 대학 다닐 때에 아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CCC 간사였습니다. 그분의 기도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믿음 없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예수 믿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던 어느 날 그분의 몸에 뜻하지 않은 이상이 왔습니다. 병에 가보니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1차 수술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병은 더욱 악화되었고, 2차 수술도 실패했습니다. 결국, 얼마나 살이 빠졌는지 뼈만 남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1차 수술에 실패하게 하신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2차 수술도 실패하게 하신 것일까요? 3차 수술이 마쳤을 때 그 자매는 자신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형제와 부모가 진실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형제와 자매들이 방문했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가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하여 병과 싸우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말하기를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시편 22편에서는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할 정도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요, 골리앗을 이긴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년 동안 그는 도망자였습니다. 동굴에 거하며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방랑자요 떠돌이요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고난 중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고, 그 장래와 미래에 희망을 주시려는 계획을 시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노예였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죄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노예나 죄수로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예요 죄수였던 요셉을 이집트의 통치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과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가톨릭교도들인 프랑스인들의 노예로 3년 동안 배 밑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프랑스인들로부터 엄청난 채찍을 맞으면서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가 프랑스의 무역선에서 탈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향한 놀라운 계획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위스에서 프랑스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종교개혁자 캘빈의 뛰어난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려 13년 동안 무명으로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그리고 다소에서 아무런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조용히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도 않으셨고, 잊지도 않으셨습니다. 만일 99세가 된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기 직전에 자녀 낳는 것을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미래에 복을 주시고, 우리의 장래에 평안을 주시며 안식을 주시려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내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어도, 세상에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 내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고 있어도 아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오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미래에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따라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미래에 대한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은 나의 장래에 반드시 평안을 주신다.”

  3.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만나시려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들의 부르짖음과 기도 속에서 우리를 만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과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계획입니까? 기도할 수 있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기도하면 우리를 만나시는 하나님. 참으로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선고 받았을 때 그는 벽을 향하여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반응하셨습니다. 열왕기하 20장 5절에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사가 죽을 병이라고 해도 절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죽을 병이라고 말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부르짖고 하나님께 매달렸더니 하나님조차 그 뜻을 돌이키셨다고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능력과 힘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고난 중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55:17)고 했습니다. 시편 18:6절에는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일을 행하는 여호와,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 히브리서에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고 했습니다.

주님을 향해 부르짖었던 맹인 바디매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가까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소리쳐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부르짖음을 시끄럽다고 해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주님을 불러 세워야 합니다. 기도는 주님을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하며, 내 문제는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너를 만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사도들처럼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지날 때에 갑자기 폭풍이 몰아쳐 왔고, 주님은 주무셨습니다. 주님이 그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살 길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주님을 깨울 때는 미안한 마음으로  깨울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죽게 생겼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깨워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은 부르짖음과 기도를 통해 우리를 만나시고 응답하시며 문제를 해결하시려는 것입니다.

  시편 102:1-2절에는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풍랑이 잔잔해지고 불안과 괴로움과 상처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시편 22:5절에는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문제 만난 사람들은 부르짖어야 합니다. 잠잠하지 말고 소리 쳐야 합니다. 지금은 침묵할 때가 아닙니다. 조용히 기도할 때가 아닙니다. 기도의 영이 임하여 부르짖는 자들에게 응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 2007년 이 첫 주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오늘부터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은혜를 체험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미래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을 믿고, 앞으로 전진해 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일을 위해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 응답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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