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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마을, 예수촌에 대한 환상을 가지십시오! (겔 3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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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에스겔 37장 1절~14절
제  목 : 생명마을, 예수촌에 대한 환상을 가지십시오! 

1. 꿈과 그것을 구체화한 환상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농촌과 농촌의 가난이 싫었지만, 그래도 고향의 변화와 이 땅의 농민들이 잘 사는 날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럽의 덴마크를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덴마크가 농촌의 부흥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소년의 꿈은 자연스럽게 덴마크로 유학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벽마다 하나님께 ‘덴마크, 덴마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유학을 위해 영어로 편지로 썼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그 편지를 보내야 할지를 몰라 무턱대고 봉투에다가 ‘프레데릭 9세 국왕, 코펜하겐, 덴마크’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40일 후, 덴마크 국왕 보좌관과 외무부로부터 현지 대학 입학 허가장과 왕복 비행기 티켓이 날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덴마크와 이스라엘에서 공부하고 귀국해서 건국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우리나라 농촌운동의 선구자 류태영 박사입니다.

한 사람이 머리와 가슴에 꿈을 품고, 그 꿈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만든 환상을 가지고 산다는 것, 이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의 믿음 자체가 꿈과 그것을 구체화하여 간직하는 환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꿈꾸고 있으며, 그 꿈을 구체화한 것으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가져야할 꿈과, 그 꿈을 구체화한 환상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꾸어야 할 꿈은 무엇이며, 여러분이 가져야할 환상은 무엇입니까?

2. ‘생명 마을’에 대한 환상

1) 회복에 관한 예언의 말씀

에스겔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을 때에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에스겔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먼저 1장부터 3장은 에스겔이 선지자로 부름받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장부터 24장은 남쪽 나라 유다의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고 그 심판의 성격 및 범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25장부터 32장은 유다의 멸망 때에 원수들에 대해 협조, 동조, 침묵, 방관, 혹은 박수를 쳤던 주변 민족과 국가들,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애굽 등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거나 그들을 망하게 하거나 심지어 그들의 불행을 구경하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3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될 미래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 예언의 말씀을 한 마디로 하면 “회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회복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회복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날 것, 그의 인도를 받아 잃었던 땅으로 돌아가 그것을 회복할 것, 그 땅에 다시 성전이 세워지고 성읍이 재건될 것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 ‘설사 된다고 해도 언제 되겠냐?’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자포자기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포로 생활을 하면서 회복에 대한 소망도 없이 절망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2)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환상 중에 여호와의 영은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는 수많은 마른 뼈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골짜기”와 “거기 뼈가 가득”한 것은 현재 이스라엘의 형편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사실 골짜기에 있다는 것 하나만 해도 절망적인 상황은 충분히 설명되어 집니다. 시편 23편에 나오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즉 ‘산 사이에 깊이 난 협곡, 대낮에도 빛 하나 들어오지 아니하는 어둠의 골짜기’라는 표현처럼, “골짜기”라는 것 하나만으로 포로 중인 이스라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됩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고 간 그들은 뭉쳐놓으면 반역을 모의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갈까봐 뿔뿔이 흩어 놓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에스더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통치자나 혹은 높은 관료가 마음만 먹으면 몇 일 만에 한 민족이 멸절될 수도 있는 서글픈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다가 마른 뼈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 하다는 것은 이곳에서 아주 오래 전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고, 그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간 곳이거나, 아니면 전염병이나 어떤 재앙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어 그냥 이 골짜기에 갖다버렸고, 그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캄보디아의 “killing field" 처럼 되었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현재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뼈들은 아주 말라 있었습니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포로 된 이스라엘은 아주 말라버린 무기력한 백성이었습니다. 아무런 변화와 진보와 발전이 없고 소망도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서 추하고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온 것만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는 것과 같은데, 이 골짜기에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빨리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 않고, 말씀을 구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으며, 회복에 대한 소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기에, 그것을 죽은 시신보다 더한 ‘마른뼈’와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망, 그 이상의 상태, 아니 절망이라는 것조차도 느낄 수 없는 말라비틀어진 뼈들의 상태가 당시 이스라엘의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러한 골짜기와 마른 뼈의 모습이 에스겔 당시 포로된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비참한 장면은 우리 시대, 우리 지역, 우리 이웃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그들은 사탄의 지배를 당하고 있으며, 세속화된 정신과 이념에 매여 종노릇 하고 있으며, 땅의 것만 바라보면서 그 이상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현실이요, 그들이 바로 마른 뼈들이요, 그들이 사는 곳이 바로 골짜기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골짜기에 볕이 들게 하는 방법, 어두운 골짜기가 밝아지고, 골짜기가 매워져 평지가 되는 길은 없습니까? 마른 뼈와 같이 절망이라는 말조차도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3) 살게 하는 주님의 말씀

골짜기에 가득 찬 마른 뼈들을 보고 있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그 뼈들을 향해 대언하여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외칠 때에 거기에 상상치 못할 일, 즉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역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4,5).”

이 말씀을 들은 에스겔은 그대로 마른 뼈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 뼈 저 뼈가 서로 연결되면서 사람의 골격을 갖추고, 거기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피부가 덮이더니 사람의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을 향하여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9)”고 외치자, 그들이 산 사람이 되었고 극히 큰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중요합니다. 골짜기가 밝고 환한 은혜의 땅, 축복의 평지가 되는 비결, 마른 뼈들이 살아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있다는 것이며, 거기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군대로 거듭날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붙잡을 때에 가능합니다.

박효진 장로의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에는 “구로동에서 발생했던 끔찍한 살인 사건의 주범,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예수의 청년 태호”라는 글이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님의 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겠습니다”라는 소장의 무거운 말에, 청년은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여 인사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고운 얼굴이었습니다. 미리 자신의 임종예배를 드린 후, 마지막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로 이렇게 유언을 말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범죄 세계에 뛰어들어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어버리겠다고 마음먹었는데 …. 서울 구치소에 와서 사형이 확정되고 난 후 저는 너무나 소중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때부터 저는 남몰래 참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손에 억울하게 죽은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왔는데, 이제 하늘나라에 가면 그분들의 유족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 저의 마지막 유언은 … 구치소에 있는 모든 형제와 자매들이 다 제가 만난 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중에 천국에서 다시 한 번 저와 꼭 만나자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살인자 태호가 아니라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여러분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흰색 두건이 얼굴을 덮었고, 밧줄이 목에 감기자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죽은 사람을 살게 합니다. 어두운 곳, 죽어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면, 그 내면이 밝아지고, 얼굴이 변하며, 삶이 달라지고, 가정이 달라집니다.

나아가서 오늘 이 말씀은 한 지역과 도시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은 더 이상 죽음의 땅이 아니라 산 땅, 생기가 넘치는 땅, 살기 좋은 땅, 21세기의 새로운 산업부흥이 일어나는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당시 거대 도시인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에베소는 우상숭배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주님의 말씀이 전해지자,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마술을 행하던 자들이 책들을 모아 가지고 불사르는 등 주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변화의 역사를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지난주에 중국 기독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신문 보도를 보셨을 것입니다. 기독교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섰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젊은이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영적인 변화가 중국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재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지역에도 엄청난 부흥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타에 5천명 넘게 모이는 교회가 있고, 카자흐스탄 가라간다에도 2천명 넘게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키르기즈스탄의 비쉬켁에는 7천명 모이는 교회가 있고,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에는 4천명이 모이는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조금 더 서쪽으로 우크라이나 키예프에는 2만 명 모이는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물론 중앙아시아의 다른 나라의 도시와 성읍들에도 수도 없이 많은 작은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복음은 지역과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킵니다!

4) 이 환상을 품으십시오.

에스겔의 환상을 여러분이 가져야 하고, 도시와 나라의 변화를 여러분이 경험해야 합니다. 11절부터 14절은,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후에 그 환상의 의미를 가르쳐 주신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한 또 다른 하나님의 설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환상을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지역, 마산에서 가져야 하고, 그것을 체험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영국의 버킹검 궁 앞에는 요란스러운 교통정리가 있었습니다. 하얀 장갑을 낀 교통경찰이 모든 차량을 전부 스톱시켰습니다. 통행하는 사람들도 전부 멈춰 서게 했습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사람들까지도 멈춰서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다들 ‘틀림없이 영국 여왕의 행렬일 것’이라며, 여왕과 그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멈춰선 차량과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행렬을 본 사람들은 놀라고 황당해 했습니다. 그 행렬은 어미 오리가 열 마리의 새끼 오리를 데리고 아장아장 거리며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오리들이 지나가도록, 마치 왕의 행렬처럼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차와 사람들이 멈춰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와 같이 생명에 대한 존중과 그들을 살리려고 하는 마음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물인 오리들도 위험을 당하지 않도록 교통경찰과 시민들이 그렇게 보호했다면, 이 땅과 여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주님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영적으로 죽어 말라비틀어진 마른 뼈와 같은 사람들을 얼마나 귀히 여기며 아끼실까요? 그들이 참 생명을 얻어 진정한 사람답게 살기를 얼마나 바라실까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바로 이 마음을 품으셔야 합니다. 죽은 사람들과 도시가 다시 살아나는 꿈을 꾸고, 그 환상을 가지고,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3. 생명마을, 예수촌을 꿈꾸며

지난주 목요일 새벽에 마산 기독실업인회 조찬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모임의 사회자가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계속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마산을 회복시키는 길은 마산의 복음화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산을 살리는 길, 마산 사람들을 살맛나게 만드는 길은 복음화뿐입니다.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환상을 본 에스겔은 당시로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좌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것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꿈을 꾸고, 그것을 구체적인 그림 즉 환상으로 간직하고서, 그대로 믿고, 행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마산을 생명의 도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복음 뿐이라는 것을 믿고 말씀을 전한다면, 여러분의 환상 역시 그대로 될 것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 마을, 예수 촌의 환상을 가집시다. 마산과 이 땅이 생명이 넘치는 땅이 되고,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예수촌이 되는 환상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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