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 5:1-3)

  • 잡초 잡초
  • 240
  • 0

첨부 1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복이라는 것과 큰 것 (대) 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큰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일상생활 가운데서 대 라는 것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또 한국인은 복을 무척 좋아한다. 어디를 보아도 복이라는 글자가 많이 들어간다.
성경에서도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의 개념과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복의 개념은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난다. 무명 장수하고 돈이 많고 자식들이 잘 되고, 출세하고 남부러운 것이 없어야 복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것들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도 자칫 이러한 것들을 받아야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 산상수훈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산상수훈은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만 해당된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천국의 새 법이 해당되지 않는다. 산상수훈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된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땅의 사람들이 아닌 하늘나라의 자녀로 일컬어 진 사람이다.
이 말씀은 물질만능주의 와 물량주의로 흐르는 현대 사회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참된 복이 무엇인가 ? 하는 것을 명쾌히 밝혀 준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이 말씀 가운데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첫 번째 복은 심령의 가난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은 물질적 가난이 아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장 먹고 살 물질이 없어서 가난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이다. 세상의 것에 대해 욕심을 버리고 영적인 것에 대하여 가난을 느끼는 것이다. 영적인 굶주림을 말씀하신 것이다. 영적인 것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다.. 시 42편에 나오는 목마른 사슴같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심령을 의미한다.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애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영적인 해갈은 사람이 하나님과 만났을 때 이루어진다.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메마른 영혼의 단비를 경험하였다.

이사야서 6장에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난다. 이사야는 성전 안에서 영광 중에 거하시는 주를 뵙었다. 이사야는 “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니라” 영광을 주를 본 사람의 심령에서 울려나는 탄식이다.
다니엘도 하나님을 만나고 “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했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정결함, 거룩함, 의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고백하게 된다. 크고 높고 거룩하신 그 분 앞에 섰을 때 인간은 한 없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자신의 내면세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누추함을 알게 된다.
높으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한 없이 죄악 스럽고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무엇보다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죄악으로 물들어 있는 영혼의 상태에 대해 절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겸허히 왕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심령의 가난은 겸손함을 말한다.

두 번째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내면적인 것이다. 하나님께 가치 있는 어떤 것을 드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도무지 의를 가지지 못하였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다. 오직 그분의 긍휼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만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자신과 자기 의존이 사라지는 것이다. 심령의 가난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이다. 심령의 가난은 바로 자신의 철저한 무능을 인식하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내 재주나 내 실력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을 철저히 낮추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자세를 갖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 심령의 가난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입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우리는 눅 18장에서 마음을 비운 사람을 만난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 한사람은 세리이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 하는 자들과 같지 않습니다. 특히 여기 세리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여 자신은 의롭다고 한다. 마음이 자신의 잘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도 잘합니다. 라고 기도한다. 바리새인은 온통 자기 자랑, 자기 사랑에 가득 차 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자기가 잘한 것, 남 들 앞에 뽐내고 자랑하고 . 인정받고 싶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세리는 멀리 서서 (성전에 들어오지도 못하면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철저히 자신의 의를 부정한다. 마음을 비우고 온전히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한다. 하나님 면전에 섰을 때 한 없이 불결하고 누추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면서 통탄하는 모습이다.
심령 깊은 곳에서 세리와 같은 고백이 터져 나오는 이런 사람이 바로 마음을 비운 사람이다. 마음 가운데 세상의 찌기를 담고 있어서는 하늘의 빛을 받을 수 없다. 세상의 의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그릇은 하늘의 은혜를 담을 수 없다.

사도요한은 말한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없다고 한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마음 가득히 채워져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을 수가 있겠는가? 이세상도 , 그 정욕도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만이 영원하다.
사도 “베드로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다“ 라고 말한다.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의 세계에 무익하고 해로운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것은 영원한 것이다. 세상의 것들은 잠시 잠깐이면 없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세토록 영원무궁한 것이다.
성도의 마음은 하늘의 소망을 품어야 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있다. 하늘의 비밀을 맡은 자 답 게 ,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부름 받은 군사답게 살아야 한다.
세상을 향해 거룩한 진리의 빛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믿는 자의 마음에는 하늘의 은혜와 영광을 담아야 흡족한 것이다. 참된 만족을 누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누가복음에서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의 가난은 물질적 가난을 의미한다. 누가는 복의 개념을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말하였다. 오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사회 경제적으로 못살아야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여 위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셨다. 가난한 자. 사로잡힌 자. 눈이 먼 자. 억압받는 자들 또 귀신 들린 자. 각종 병으로 고생 하는 자. 멸시와 천대를 받는 세리와 죄인들 이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이 증거 하는 복음을 환영하였고 구원의 기쁨을 안게 되었다.
세상의 기준을 보면 부요한자. 배부른 자. 지금 웃는 자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자들이 복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님의 축복관은 이러한 사람들이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불행이라는 것 때문에, 그 고통으로 인해, 처한 환경으로 인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을 환영하고 구원을 받고 천국의 시민이 되기 때문이다.

눅 7장에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식탁교제를 나눈 시몬이 복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았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죄용서를 받고 감격에 차서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발을 자신의 머리털로 닦을 여인이 더 복이 있다.
눅12장에 여러 해 풍년이 들어 곡식을 저장할 곡간이 없어서 걱정했던 어리석은 부자보다 세상적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영혼에 부요한자 하나님께 대해 풍요로운 자가 복되다.
눅16장 평생 잔치를 벌여 놓고 먹고 마신 홍포 입은 부자보다 거지 나사로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눅18장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슬픈 기색으로 돌아가 부자 청년 관원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이 더 복되다는 것이다.
세상적인 복의 가치관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의 가치가 확연히 다르다. 정작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복, 세속적인 복보다 영적인 복이 더 귀중하다는 것이다. 더 큰 가치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는가 이다. 세상과 결탁하여 부하게 되어 예수님이 없는 것보다. 세상과 결별하여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사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대해서 고무줄 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잘 되면 하나님께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세상의 복을 받지 못하면 마치 큰 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 사도 바울을 통해 진짜 축복된 믿음의 삶을 알아보자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감옥 안에 갇혀서 하는 말은 이것이다.
빌1:18절 “어떤 경우이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면 나는 기쁘다”. “
빌1:21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갈 2장20절 “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갈 6장14절 “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런 것이다. 세상적인 물질이나. 풍요를 쫓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세상 적으로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움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고 더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진리 가운데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복을 받은 사람이다.

결론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은 천국이 저희 것이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영생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인생의 배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하게 된다. 날마다 주님과 만난다. 그와 더불어 먹으며 그는 나로 더불어 먹게 되는 은총을 입게 된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요 라고 한다. 천국이 너희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복은 모두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천국 자체는 미래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면 이미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여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라를 소유하였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롬 14장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고 말씀한다.
현재의 천국을 경험하고 사는 것이다. 현재 내가 서 있는 그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며 천국의 맛을 보면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말씀 하셨다.
“네가 선 곳이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라고 하셨다.
오늘나라 내가 서 있는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통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나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복의 전달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로 말미암아 진리의 빛이 어둔 이 땅을 비추게 되시길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십시요. 그러면 천국의 향취를 내 뿜는 영혼이 될 것입니다. 천국이 그 안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의 은혜가 적용되시길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