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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께 인정받는 인생(눅 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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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인정받는 인생
눅 18:9-14


1)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주인공은 세리입니다. 세리는 세상적으로 실패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싫어합니다. 미움합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찌보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는 성공한 인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듣고, 인정받으면 무엇 합니까?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믿으시기 바립니다. 그것에 대해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찬양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사람들이 몰라준다 해도 하나님만 인정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입니다.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가있는 것,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에만 관심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을 주님께 가야 합니다. 그래서 인정함을 받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왕인 웃시야 왕과 무척 친했습니다. 얼마나 친했냐면 맘대로 왕궁을 드나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일컬어 왕궁선지자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웃시야 왕이 죽습니다. 별안간 일어난 일입니다. 이사야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럴 때일수록 신앙의 중심을 주님께 가져갑니다. '이때가 기도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찾습니다. 기도합니다.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리고 낙심이 회복되고,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을 주님께 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남으로써, 주님께 인정받음으로써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11하-14상)

먼저 주를 찾아야 할 것이지만, 이제 주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11절~ 14절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바리새인은 온통 자기 자랑뿐입니다. 자신은 적어도 세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세리와 자신을 비교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이겠습니까?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는 것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착순으로 몇 명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래서 남을 딪고 넘어가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바리새인이 착각을 해서 한참했습니다. 그런 착각이 있었기에 겨우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께 간구는 하지 않고, 온통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것에 자신의 모든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온 것 아닙니다. 대신에 엄밀히 말하면 그는 세리 옆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온통 세리와 자신 간의 비교만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기도할 적에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이 뭐라고 기도하나, 남이 무슨 비난받을 문제를 지녔는가를 검토할 시간이 없습니다. 바리새인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내 구원도 얻지 못하고서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만 감놔라 대추놔라만 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대신 그는 심한 말로 세리에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니 온통 세리에 대한 이야기와 그와 비교해서 자신이 얼마나 낳은가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은밀한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남이 뭐라고 하는지에 관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세리는 자신의 가슴을 친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자신의 가슴이 아닌 세리의 가슴을 칩니다. 왜 남의 가슴을 칩니까? 우리도 그럴 적 있잖습니까? 기도인 척 하지만 사실은 기도가 아닌 힐란과 비난... 그것은 바리새인의 기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가슴을 치지 마십시오. "이번 기회에 며느리가 녹아지고 거꾸러지게 해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 가슴을 치지 마십시오.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기 싫다고 상대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제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신통한지 모릅니다.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래 네가 의롭다"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주 앞에 나왔으면 변화되어 돌아가야 합니다. 그 변화는 내가 훈련을 받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분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지은 모습 그대로 나오십시오. 창피하면 창피한데로 나오십시오.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받으시는 예수님입니다.


3) 겸손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14하)

본문 14절 하반절을 보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교만한 자를 말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겸손한 자를 의미하며 겸손한 자는 높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이처럼 높이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데 누가 정죄를 합니까? 이렇게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고 인정받습니다. 절대로 신앙에 교만하지 마십시오. 가졌다고 교만, 배웠다고 교만, 자리가 좀 높다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즉 망할 자리의 맨 앞에 가져다 놓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망하고 싶으면 교만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잠 3:34). 겸손한 자를 붙들어 주십니다(시 147:6).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시 10:17). 이것이 원칙입니다.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십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이것 역시 원칙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웃 교회에 시무하는 후배 전도사님으로부터 자기 교회의 주일 밤 예배에 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기로 약속을 하고 날짜가 거의 되갈 무렵이었습니다. 이웃 교회의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주보에 실기 위해 설교제목과 성경본문을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본문은 시편 23편 1절부터 6절까지." 그러자 전도사님은 "그러면 제목은요?" 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전도사님이 이를 받아 적으면서 "그 다음에는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마 그 뒤에 뭐가 더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약속한 주일 밤 저녁 예배에 그 이웃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안내를 받아 강단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아 주보를 펼쳐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밤 예배 설교제목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기가 콱 막혔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란 제목에 핀잔처럼 전도사에게 한 말이 제목으로 가 붙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찬송을 하면서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면서도 제목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설교를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목사님은 "그래, 제목대로 설교를 하자!"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준비한 설교의 원고를 덮고 전혀 새로운 각도로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목을 바꾸니 성경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내가 그 분의 양이 되니 참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렇게 외치자 온 교회 성도들이 "아멘, 아멘~"하며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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