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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복 (엡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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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복
본문 / 엡1:3-6
 
  3절의 말씀은 “찬송하리로다” 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하는 이유를 신령한 복으로 복 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는 복의 근원이십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셨으며 또 어떤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무엇입니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3절에 보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되....” 라고 말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은 세상의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복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 속한 것이고 물질적인 것이며 현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것 보다 우선 신령한 것을 복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복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구원받은 복입니다.
  본문에서 “택하사...”. “예정하사....” “거저 주시는 ...”.  “은혜.....”  이런 단어들은 인간의 구원론을 말할 때 주로 등장하는 신학적 용어들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믿음을 갖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몇 년전에 새소망 교회 이형만 목사님의 사모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저의 학교 동기이며 친구이고 사모님은 우리 집사람의 선배언니입니다. 우리가 먼저 결혼하고 그 두사람을 중매해서 결혼하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려서 수술을 했지만 5년이 거의 다될무렵 재발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사모님이 주님의 부름을 받기전 일주일전 병문안을 가서 만나고 왔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약 한달 밖에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본인이 들어서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없이 그렇게 태연하고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편안함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 사모님은 암 진단을 받았을 처음에도 그랬지만 사모님의 태도는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무엇이 그런 힘을 주었겠습니까?
  그것은 신앙입니다. 구원받았기에 죽어도 주님 품안에 다시 깨어난다는 신앙 천국에 대한 확신이 현실에서 시시 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그를 이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셨지만 나머지 자신의 병든 몸을 이 땅에 자신과 같은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빨리 고침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을 의학 해부용으로 기증하는 유언을 하였고 두 개의 안구는 실명한 두 사람에게 한 각각 이식되어 밝음을 주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받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은 복중에 복입니다.
  확신이 없어서 구원받았으면서도 두려워 떨고 때로는 의심하기도 하고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놀라운 복음 받았습니다. 구원받음과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은 복중에 복입니다.

  둘째는 성령 충만한 복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신령한 복을 원한다면 그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 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금년 한해를 살면서 가장 관심을 기우리고 사모하여야 할 복이 있다면 바로 성령 충만의 복입니다.
  세례 요한은 모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 충만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 눅 1:15)
  예수님은 요 20:22절에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라고 하셨고 바울 사도는 엡 5: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연예인들은 무대에서 환영받고 무대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감정이나 마음이 언제라도 무대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언제나 최상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약에 쉽게 유혹을 당한다고 합니다.
  마약이 아니라도 술을 먹지 않더라도 그것들은 사람을 망하게 하지만 인생 무대에서 항상 최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기 때문에 24시간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복중에 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현장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시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감성적 충만 / 마음이 열리고 말씀이 깨달아지며 뜨거워짐
  감성적 성령 충만의 특징은 마음이 열리고 말씀이 깨달아지며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눅 24:45절에 보면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행 16:14 절에 보면 바울이 복음 전할 때 루디아의 마음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성령은 마음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은혜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완악하고 굳은 마음들이 성령 충만 받아 부드러운 마음으로 열려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라고 외쳤습니다.

  은사적 충만 / 성령의 각종 신령한 은사를 체험함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아홉 가지 은사를 행하는 신비한 충만을 의미합니다.

  아홉가지 열매란 갈 5:22-23절에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고 아홉 가지 은사는 고전 12:7-11절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인격적 충만 / 성령께서 인격 속에 들어와 인격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함
  즉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바울 사도는 빌 2:5-8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마음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 됨으로 여기지 아니하신 마음입니다. 즉 자신을 낮추시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마 11: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확실하고 명확하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즉 성령충만한 사람은 마음이 예수님을 닮아서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남을 결코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남을 오히려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신보다 약한자라도 존중하고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셋째는 위로받는 복입니다.
  세 번째로 성도가 받을 신령한 복은 위로 받는 복입니다. 성도가 받는 위로의 복에 대하여 고린도 후서 1:3-6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위로라는 단어가 9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중에 위로받는 복이 있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특히 고후 1:3절에 보면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시오 위로의 하나님” 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자비가 한량없이 크셔서 환난 받는 성도들을 능히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난과 역속에서도 때에 따라 적절하게 위로받을 수만 있다면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복입니다. 
 
  사도행전 9:29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열심히 주예수의 복음을 전했을 때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힘썼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도 성령의 위로가 있었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 교회는 더욱 부흥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9:31절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즉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성령의 위로는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했으며 교회를 평안하게 하고 부흥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성령은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고후 1:4절에 보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아버지라고 고후 1:3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위로받는 복이 큰 복이라면 하나님이 언제 위로해 주실까요?

  ① 기도할 때 위로해주십니다.
  기도는 마음의 통하는 것입니다. 한나가 자신의 원통한 심정을 통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간절하게 울면서 통성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여호와 앞에 심정을 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한나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아들을 주심으로 위로해 주신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위로받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시 142:1-2)
  마음이 슬프고 원통할 때 기도하십시오. 힘들고 지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될 때 그때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만 받으면 마음이 평안이 임하고 용기가 생깁니다.

  ② 찬송할 때 위로해주십니다. 
  찬송은 흔히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합니다. 곡조를 붙힌 기도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과 영적으로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19장 2-3절을 불러 봅시다.
  환난 중의 성도들을 구원하여 주셨네 노하심은 더디하고 인자하심 넘치니 내 영혼아 찬양하라 은혜로신 하나님
  우리 약함 아시는 주 항상 지켜 주시고 인자하신 그 손으로 보호하여 주시니 내 영혼아 찬양하라 자비하신 하나님

  317장을 불러볼까요
  1.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2.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3.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이런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은 완악했던 마음을 녹이고 성령의 은혜를 허락하시며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것입니다.

  ③ 때로는 사람을 통해 위로해 주시기도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 7:5-7 절에서 마게도냐에서 온갖 어려움을 격고 환난속에서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속에 있을때 하나님께서 디도를 보내서 위로하여 기쁨을 얻었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여러분은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여준 사람 말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주를 위해 갖은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당신을 아주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심으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동역자를 얻고 협력자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금년에 우리 성도들에게 그런 동역자와 믿음의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위로 받음이 복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로 받는 것은 신령한 복입니다.
  위로 받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위로가 없어서 절망하고 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금년에는 성령의 위로가 여러분의 가정에 인생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금년에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게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확신하는 복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복입니다. 또한 위로해주시는 복입니다. 이 세 가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여러분 가정에 주님 오실 때 까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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