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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 인도해야 할 다른 양 (요 10: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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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대한민국 방송가요 대상을 받은 김상희라는 가수의 ‘대머리 총각’이라는 노래가 유명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우리 침례교 역사에도 대머리였지만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유명한 선교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암 캐리입니다.

윌리암 캐리는 1761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장티푸스를 앓아 머리가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되었던 캐리는 18살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중생하자마자 설교자로서의 은사를 드러낸 캐리는 구두수선을 생업으로 하면서 침례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 캐리는 외국의 풍물과 지리를 소개하는 그 당시 유명한 책이었던 ‘쿡 선장의 항해기’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윌리엄 캐리는 해외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성경을 계속 공부하고 설교를 하면서 캐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중요한 사명이 해외선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두수선을 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을 읽고, 지리책과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해외선교의 비전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개신교도들 사이에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사도시대에만 국한된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상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이러한 사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동료 목사들에게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이 명령이 사도들에게만 주신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이 명령은 모든 세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명령이 아닙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캐리의 주장은 번번이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한 번은 침례교 지방회에 나가서 설교하는 윌리엄 캐리에게 한 연로한 목사님께서 “젊은이! 앉지(young man! sit down).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킬 때가 되면 자네나 나의 도움이 없이도 다 이루실걸세”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반대가 심해도 젊은 윌리엄 캐리 목사는 자신의 의문을 계속해서 책으로 펴냈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31살이 되던 1792년에는 「이방인을 개종시키기 위해서는 전도라는 수단을 사용할 의무가 있는가에 대한 질의서」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간단하게 줄여서 「질의서(inquiry)」라고 부르는 이 책은,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다면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전도나 선교라는 수단을 사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과 답을 기록한 책이었습니다.

결국 1792년에 윌리엄 캐리는 자신과 생각을 같이 하던 침례교 목사인 앤드류 풀러와 함께 침례교 선교협회를 구성했습니다. 이 선교협회를 통해서 윌리엄 캐리는 인도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캐리의 이런 결심에 대해 가족들은 많은 반대를 표명했습니다. 캐리가 인도의 선교사로 헌신했을 때, 캐리의 아버지는 “내 아들이 미쳤습니까?(Is my son mad?)”라고 소리쳤고, 그의 아내는 인도에 너무 가기 싫어했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처제를 동행시키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아내는 10년 동안 정신이상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인도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캐리는 32살부터 40년 동안 인도에서만 성공적인 사역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36개의 인도 방언으로 번역했고, 인도 언어 문법책과 사전을 편찬했습니다. 또한 인도에 있었던 모든 악한 습관들을 폐지시켰습니다.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여자를 불로 태워 죽이는 ‘사띠’라는 전통과 못생긴 아이가 태어나면 그냥 죽여 버리는 ‘영아살해’(infanticide)와 같은 악한 습관을 없앴습니다. 또한 농업을 연구해서 농업 기술을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든 업적을 이룬 윌리엄 캐리를 역사가들은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근대선교가 시작된 지는 불과 200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역사 전반으로 볼 때, 해외 선교는 이제 초창기며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이라는 윌리엄 캐리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를 따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근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엄 캐리와 윌리엄 캐리를 도와서 물질로 후원한 앤드류 풀러는 모두 침례교 목사라는 점입니다. 이들을 통해 침례교는 해외선교의 사역을 선구자적으로 이끌어 간 선교지향적인 교단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두 사람은 개신교 종교개혁의 신학인 개혁주의, 칼빈주의 신학과 같은 건전한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교는 이처럼 바른 신학을 기본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단이 선교를 열심히 하면 그것은 재앙입니다. 우리가 윌리엄 캐리와 앤드류 풀러를 존경하는 이유는 근대선교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바른 신학을 선교에 접목시킨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10장의 말씀을 통해서 선교를 위한 바른 신학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선교를 실천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한복음 10장에 나타난 여섯 가지 진리

요한복음 10장은 대단히 중요한 장입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예수님은 목자이시며, 우리는 양이라는 정도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은 해외선교의 근간이 되는 위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는 중요한 여섯 가지 진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시라는 진리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14절).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는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불러내고, 인도하며, 먹이고 보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이끌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망의 골짜기 다음에는 쉴만한 물가를 만나게 됩니다. 혹시라도 지금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왜 이렇게 인생이 어려운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목자 되신 예수님을 날마다 의지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자기 양’을 가지고 있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예수님의 양이 있습니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3-4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1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양인 사람도 있고 예수님의 양이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4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라고 질문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10:25-26). 이처럼 인류 가운데는 예수님의 양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공존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게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양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라는 진리입니다. 29절을 통해 예수께서는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진리는 요한복음 17장 6절에 가면 더욱 확실해 집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6) 이처럼 예수님께서 나의 양이라고 말씀하신 사람들은 모두 성부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백성들을 창세전에 이미 선택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습니다. 이것이 칼빈주의, 개혁주의의 선택의 교리요, 예정의 교리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의 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의 양으로서 성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복음을 듣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 순서가 헷갈리는 사람은 복음을 혼동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기초가 무엇인지 새로 배워야합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서 각각 인도하여 내시고,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2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을 불러내시는데 이를 소명이라 합니다. 요한복음 8장 29-30절에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시는가, 어떻게 소명을 주시는가에 대한 위대한 계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 즉 영원 전부터 사랑하신 자들을 미리 정하시고,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며,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 순서는 바뀌거나 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미리 사랑하시고 예정하신 사람들을 자기 양으로 삼으시고 부르십니다. 집단으로, 혹은 한꺼번에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세상의 정욕과 죄악 가운데 방황하던 우리를 각각 불러 이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예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성자 예수님의 불러내신 소명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로 목자 되신 예수님은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양의 죄 값을 갚기 위해서 대신 목숨을 버리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15절)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양을 구원하기 위해서 대신 목숨을 버리셨다는 대속적인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많은 설교자들이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설교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말은 듣기에는 기분 좋은 이야기일 줄 몰라도 진리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자기 양으로 삼으신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개신교의 개혁주의, 칼빈주의 신학입니다. 저는 우리 침례교회가 칼빈주의 신학을 근거로 존재하는 교단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이 진리를 믿고 가르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에 대해 기분 나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왜 그 분들이 성경과 싸우려고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대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진리를 따라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양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에게 주신 영생을 빼앗아 갈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7-28). 예수님은 자기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양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유명한 종교 개혁가인 칼빈이 이 여섯 가지 진리를 정리하였기 때문에 이 신학사상을 칼빈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윌리엄 캐리 시대의 목회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칼빈주의 선택의 교리에는 한 가지 위험성이 있습니다. 잘못된 영적 엘리트 의식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구나. 나는 구원받아 지옥 가기는 다 틀렸고 천국에 갈 것이니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잘못된 생각은 선교를 등한시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신학사상을 ‘고등칼빈주의’라고 부릅니다. 좋은 칼빈주의 신학에 악령이 달라붙으면 고등
칼빈주의가 됩니다. 우리는 개혁주의 칼빈신학을 따르되, 고등칼빈주의로 나아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성을 감지 하셨기 때문에 본문 16절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양이 오직 유대인들 가운데만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십니다. 예수님께는 유대인이라고 하는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유대인 가운데도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일본, 중국, 불교 국가, 이슬람 국가의 백성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선교의 빚을 졌기 때문에 선교사를 파송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6절은 해외선교의 위대한 근거구절이 됩니다.

2. 선교실천의 네 가지 확신

본문 16절 말씀을 통해 선교를 실천할 때에 우리는 네 가지를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선택의 교리, 예정의 교리는 선교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선교를 가능하게 하는 진리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혁주의적 칼빈주의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선택한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확신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집니다. “목사님. 선택한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전도하면 되지 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으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텐데 목사님은 왜 전도를 하십니까?” 이 같은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선택하셨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사람들이 선택받았는지는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선교단체인 IVF의 총재였던 존 알렉산더라는 선교사님은 한 선교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선교사 초기에 예정과 선택의 교리를 믿지 않았다. 만약에 예정과 선택이 진리라면 선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교사로 사역하며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내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영혼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선교사로서 열매를 맺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정하고 선택한 영혼을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주셨기 때문에 선교를 통해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정과 선택을 믿는 칼빈주의 교리는 선교를 위한 위대한 근거요, 용기를 주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고 고린도를 떠나려고 할 때, 꿈을 통해 하나님의 격려를 받았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9-10). 많은 사람들이 강남에는 유흥업소도 많고, 흥청망청 돈을 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죄가 많은 곳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과연 어떤 동네가 의로운 동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디든 의로운 동네는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죄가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주실 뿐입니다. 고린도도 아주 부패한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린도를 향하여서도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니라”고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바울은 다시금 힘을 얻고 일어나서 사역을 수행하여 선교를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정하고 선택하셨다는 교리는 선교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선교를 돕고 유익하게 하는 진리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양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전 세계를 모두 포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상명령을 통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흩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흩어져서 전 세계 방방곡곡에 복음 십자가를 세워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장 52절 말씀도 이 진리를 선포합니다. “또 그 민족만 위할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처럼 선교는 전 세계의 모든 족속을 향해야 합니다.

셋째로 선교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절). 예수님께서 양들을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교는 예수님께서 하시므로 우리는 선교할 필요 없이 민중해방이나 약자를 구제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WCC가 20세기에 제안한 ‘Missio Dei’라는 사상이 바로 그렇습니다. ‘Missio Dei’는 ‘Mission of God’, 즉 ‘하나님의 선교’라는 의미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만 보면 좋은 이야기 같지만 그 내용은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할 필요 없이 정치적인 해방운동이나 약자들을 위한 투쟁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위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라고 부르는 사상들입니다. 이런 사상들이 우리나라에도 만연했었고, 지금까지도 그 사상의 열매를 우리가 목도하고 있습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예수님은 홀로 선교를 수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선교의 주체이시지만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선교를 행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교의 주체가 되시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셔서 선교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넷째로 선교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입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절). 예수님의 양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선교가 실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기만 하면 예수님의 양들은 반드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 론

침례교인들은 윌리엄 캐리와 앤드류 풀러의 영적인 후손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교는 선교에 가장 앞장서는 교단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전 세계에 만 명에 가까운 선교사를 파송했고 지금도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침례교는 선교의 일등 교단입니다. 해외선교는 교회의 최고 사명입니다. 침례교인들은 해외선교를 목숨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가는 사람이 나와야 하고, 가지 못하면 보내고 후원하기라도 해야 합니다. 선교는 실패할 수 없는 비즈니스이자, 하나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본 교회에 부임한 첫 해에 우리 교회는 50명의 선교사와 50개의 국내교회를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100&100의 비전을 세웠습니다. 100명의 선교사와 국내교회 100개를 지원하자는 비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87명의 해외선교사와 94개의 국내교회를 돕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침례교회 중에서 해외선교와 국내선교를 합쳐서 세 번째로 많은 선교지원을 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교에서만큼은 일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침례교단의 진정한 장자교회로서 위상을 높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이 내는 헌금으로 수많은 해외선교사와 국내 교회 개척을 지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쏟아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사업을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사업하십시오. 우리가 사업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돈을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돈을 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업이 형통하고 복 받기 위해서라도 다른 무엇보다 선교를 후원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의 얼굴빛이 우리 교회를 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년에는 100&100의 비전도 달성하여 더욱 새로운 비전을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선교의 명령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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