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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래성 (마 7: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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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4월 8일! 여러분, 이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시겠죠.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르신들은 아마 “아, 그거!”하고 기억이 나실 겁니다. 서울시에서 전시효과를 위해 잘 지었다고 한껏 자랑했던 와우아파트! 그런데 어이없이 폭삭 주저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33명이 죽고, 39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이름 때문에 그래! ‘와우’(臥牛)가 뭐야? 누운 소 아냐?”라며 미신 같은 소리를 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불도저’라 불리던 당시 K 시장이 사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후 와우아파트는 부실공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생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인생은 집짓기”라고 비유할 때,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지는 집과 같은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마다 인생의 집을 잘 지어보려고 애를 씁니다. 집을 짓는 사람 중에 무너지라고 짓는 바보 천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부실공사가 되어서 집이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딴에는 인생의 집을 잘 지어보겠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보면 부실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정말 낭패죠. 여러분, 우리 인생은 단 한번 아닙니까?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인생,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 그런데 그 인생의 집이 와르르 무너져버린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아마 저나 여러분이나,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인생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너지는 인생의 집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튼튼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이 그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부디 이 말씀을 통해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산상설교, 마5:~7:) 결론 부분에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우리 인생을 집짓는 것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1] 두 종류의 집 : 바위성과 모래성

  우리가 짓는 인생의 집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누구든지, 본인이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않든지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에 해당됩니다. 그 중간이나 제3의 형태는 없습니다. 

  ① 반석 위에 지은 집(바위성) :
  24절(하). “ ...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 이것은 단단한 바위 위에 지은 집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② 모래 위에 지은 집(모래성)
26절(하). “ ...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 ” 이것은 그냥 모래 흙  위에다 지은 집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위치한 팔레스틴 지방은 집을 육중하게 짓는 게 아니므로 이런 형태의 집이 흔히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모래는 아마 ‘와디(wadi)’가 아닌가 짐작됩니다. 와디는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모래 바닥인데, 사실은 강바닥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우기가 되면 갑자기 물이 흐르게 됩니다. 평소에는 평평하고 집을 짓기에 편리하지만, 비가 많이 오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잘못 지은 집이죠.

  이 두 종류의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겉보기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기초의 차이입니다. 하나는 기초 공사를 착실하게 해서 지은 집이고, 다른 하나는 기초 공사를 하지 않은 채 대충 지은 집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어떤 집입니까? 눅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 잘 지은 연고로 ... ” 정식으로 깊이 땅을 파고 견고한 바위에 기초를 놓고 지은 집입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튼튼하게 잘 지은 ‘바위성’과 같은 집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또 어떤 집입니까? 눅6:49 “ ...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 ” 기초도 없이 지반이 약한 모래 위에 세운 ‘모래성’과 같은 집입니다.

  이런 차이가 평소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단 비, 창수(홍수), 바람이 닥쳐오면 실상이 드러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어떻습니까? 무너지지 않습니다. 25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어떻게 됩니까? 무너집니다. 27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겉보기에 멀쩡하지만 부실공사였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일단 폭풍우가 몰아치면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단 한번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재벌이라고 인생을 두 번씩 삽니까? 권력자라고 인생을 서너 번씩 삽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인생은 단 한번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집은 지을 때 잘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단 인생의 폭풍우가 몰아치면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인생의 폭풍우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반드시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 공사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 그럴 줄 몰랐다고 아무리 사정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의 비, 창수(홍수), 바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일까요? 갖가지 시련입니다. 질병, 고통, 환란, 실패 등 ... 그리고 죽음과 심판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에 닥쳐옵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오는 게 아닙니다.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특정한 때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고 없이 홀연히 찾아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대비하는 것뿐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찾아와도 승리합니다. 반면에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작은 시련이 와도 넘어지고 쓰러지고 망하게 됩니다. 

[2] 모래성을 쌓는 사람 : 언젠가 후회하는 어리석은 인생

  이렇게 엄연한 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6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영구한 도성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세상은 일시적이요 장차 망할 ‘장망성’(將亡城)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누이 강조합니다. 세상은 금세 사라지는 것이므로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고! 고전7:31 “ ...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지나가다=pass away)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지나가다=pass away)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에 속한 것들은 육신의 정욕(향락), 안목의 정욕(재물, 소유 등), 이생의 자랑(권세, 명예) 등입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 인생을 유혹합니다. 아주 좋아 보입니다. 또 그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것들에 미혹되어 따라다닙니다. 그것들을 의지합니다. 집착합니다. 그것이 자기 인생을 든든하게 지탱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비바람이 닥치고, 홍수가 나면 그런 것들이 인생의 진정한 기초가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다행히 아직 만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지내고 실세 중의 실세로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불법자금 문제로 법정 구속되어 영어의 몸이 되자 권력 무상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탄식하며 중얼거린 말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었더라면 ... ”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개발붐으로 토지보상금을 받아서 갑자기 부자가 된 마을의 이야기인데 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거액의 보상금으로 갑자기 부자가 된 것입니다. 주민들이 희희낙락하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 팔자가 확 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수 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서 그 마을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습니다. 한 동네에서 여러 가정이 불화 끝에 파탄이 나고, 도박에 순을 댔다 돈을 잃고 방황하다 자살한 사람도 여럿이라고 합니다. 돈을 선용하면 좋지만, 돈을 지나치게 우상시해서 인생의 기초로 삼으면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돈이 편리하지만 그 한계를 보여주는 말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편안한 잠은 살 수가 없고,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지만 지식은 살 수 없고,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살 수 있지만 식욕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예쁜 옷과 장신구는 살 수 있지만 참된 아름다움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좋은 집은 살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고,돈으로 향락을 누릴 수 있지만 만족은 누릴 수가 없고, 돈으로 종교생활은 할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은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인생의 집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세상 것들을 인생의 기초로 삼는다면 반드시 후회할 때가 옵니다. 결코 그런 어리석은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3] 바위성을 쌓는 사람 : 영원히 후회하지 않는 지혜로운 인생

  예수님은 모래성을 쌓는 사람과 달리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복된 인생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인생은 어떤 것입니까? 바위성을 쌓는 사람입니다.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여기서 반석, 기초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고전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오직 예수님만이 인생의 기초일 수 있습니다. 이 기초 위에 집을 세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를 포함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① 예수님에 대한 신앙 :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어떤 인생의 비바람과 홍수가 닥쳐와도 아무 걱정 없습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②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
  아무리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그 신앙이 거짓일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런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그 믿음의 진정성은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로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구절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말씀 순종이 없으면 그 신앙은 헛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100% 완전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수는 없죠.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되었어도 여전히 연약하고 죄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일관성 있는 태도’가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 신앙은 참된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약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인생은 영원히 후회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영원히 후회하지 않는 승리자가 됩니다!

-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냅니다.
잠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 죽음이 닥쳐와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후에 영생과 부활의 천국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잠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 심판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예수 그리스도)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하나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오히려 심판대 앞에 서서 받을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기뻐합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 ”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살다가 이런 극한 시련이 찾아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인생의 기초가 되면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와 협력하는 한국불어권선교회 소속 고 허태준 선교사 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작년 2월 1일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서 선교 정탐 중 교통사고로 순직한 선교사입니다. 당시 나이는 37세였습니다. 정말 유능한 선교사였습니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아프리카 불어권 선교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도 받았습니다. 열정이 넘치고 영성도 풍부한 분이었습니다. 한참 일할 나이 였습니다. 선교지에 들어간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나님의 뜻이 뭔지 모를 정도로 슬프고 고통스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조금씩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떠난 이후 현지인들이 자청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의 이름을 딴 기념 교회(태준 교회)가 설립되고 ... 하나하나 열매가 맺어가고 있습니다. 1주기 추모예배에 참예했는데, 모든 순서가 마쳐진 후 사모님의 인사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 살 된 딸과 유복자로 7개월 된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차분하고 또박 또박 말씀을 잘 하시는지!

그 말씀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허 선교사가 남긴 선교의 비전을 위해 준비하고 성취하겠습니다.”인사말씀이 끝나지 보통 추모예배 분위기에서는 감히 그럴 수 없을 텐데 누간가 한 분이 박수를 쳤습니다. 너도 나도 여러 사람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담임목사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박수치려면 우리 힘차게 박수칩시다!”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박수를 쳤습니다. 여러분, 이런 감동의 힘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그 인생의 기초가 예수님이기에,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순종의 삶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위에, 그리고 그 말씀의 기초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위대한 승리자가 됩니다. 그러기에 그런 사람을 가리켜 예수님은 뭐라고 지칭하셨습니까? 24절 보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지혜로운 인생 건축자! 여기서 ‘지혜로운’이란 단어는 성경 원어 헬라어로 ‘프로니모스’(φρονιμο? 헬)입니다. 그 단어는 ‘분별력 있는’ ‘신중한’(prudent)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 단어는 ‘프로네오’(φρωεω 헬)라는 동사(골몰하다, 깊이 생각하다)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깊이 생각합니다. 인생 멀리 보면서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세상 즐거움만 보고 잘못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로댕(F. A. Rodin 1840∼1917 프랑스의 조각가)의「생각하는 사람」잘 아시죠? 이것은 로댕이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소재로 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지옥문 위에서 그 아래 세상에서 고통 중에 있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시인 단테의 모습을 담은 조상(彫像)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옥문에 당도해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때는 이미 늦습니다!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당장!

  부디 저와 여러분은 모래성을 쌓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래성은 잠시 번듯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래성을 쌓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바위성을 세우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음으로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비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영원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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