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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익한 참여 (빌 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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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빌 4:14)

  오늘날 우리 시대는 목회자에 대한 아름다운 섬김의 삶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권위를 세워주지 못하고 목회자를 돌보는 일에  잘못된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신앙의 삶은 목회자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가르침과 기도, 목양의 역사 안에서 은혜로운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목회자에 대해서, 그 목회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때는 우리의 영적 삶이 병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삶에서 목회자에 대한 존경과 은혜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를 도전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목회자와 다투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실리의 이해관계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목회자를 찾아와 보험을 들라고 하고, 물건을 팔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돈을 꿔달라고 하고, 선거 운동을 해 달라고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이해관계가 잘 풀리지 않으면 돌아서서 비난하고 욕을 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를 한 이성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를 이런 대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택하여 세워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목양의 역사를 위해 세워진 전문가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권위를 지켜주어야 하고 존경해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 안에서 목회사역은 많은 성도들의 희생과 함께 이루어져 왔습니다. 예수님도 그를 따르는 여인들과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희생의 헌신과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비량으로 선교하였지만 많은 성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을 가장 크게 도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큰 기쁨을 가졌습니다.

  빌립보 교회와 사도 바울의 관계는 목회자와 교회와의 바른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빌립보 교회의 도움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동역 자가 되어 복음 사역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목회자를 향한 아름다운 믿음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을 듣게 됩니다.

“나를 생각하던 것이 다시 싹이 남이니”(10절)에서입니다.
  이 표현은 “너희의 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새롭게 생겨났다”는 뜻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늘 바울을 도울 구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그를 도우려는 빌립보 교인들의 열심이 구체적으로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바울을 위로하도록 하고, 그 편에 정성껏 모금한 후원금을 보내 주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도와줄 기회를 찾고 기다리는 교회였습니다. 돕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사랑과 배려가 앞서가는 교회였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믿어주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을 신뢰하고 바울의 복음사역을 존 귀히 여겨주는 교회였습니다. 그 당시 바울에 대한 오해와 비난도 적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바울이 돈에 대한 탐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살전 2:5)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이 자신을 위한 기금을 모으려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돈을 얻어내고 있으며 그 일을 위해 디도를 이용한다는 비난도 있었습니다.(고후 12:16-18) 이러한 오해와 비난 속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보수를 받지 않고 손수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만큼은 바울을 신뢰하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존 귀히 여길 뿐 아니라, 바울을 돕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나면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 4:15)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 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빌립보 교회와 같이 목회사역을 돕기 위하여 기회를 기다리며 돕기를 즐거워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는 사역자들을 기쁘게 하고 부족함 없이 계속해서 도우려는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입니다. 복음사역과 목회사역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려고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비판하고 의심하기 이전에 믿음과 신뢰의 모습이 내게 먼저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14절)에서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복음전파 사역에 따르는 많은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괴로움을 함께 하는 교제를 나누었다는 의미에서 ‘참예하였으니’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진실 되게 도움을 주었던 빌립보 교회야말로 바울의 괴로움에 함께 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사역의 삶의 모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이 말씀 중에 ‘궁핍’과 ‘비천함’과 ‘배고픔’ 이란 표현들은 복음사역에 있어 바울의 괴로운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 중에 항상 빌립보 교회는 동역자로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자족하며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빌 4:13) 그럼에도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은 부담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본문 중에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 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는 바울의 표현 중에서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사용한 것과 ‘잘하였도다’고 말한 것을 볼 때에, 주저함 없이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지속적인 도움도 기대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호주 캔버라 이민교회에서 목회할 때 큰 위로와 도움을 주었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가족과 헤어져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었던 이석주 집사님이십니다. 어려웠던 목회 시절에 그 집사님은 교회를 위해 힘이 되어 주셨고, 늘 함께 동역해 주며 그 어려움을 자신의 몫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분은 마치 돕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필요할 때마다 빠짐없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습니다. 유학생들을 픽업하는 일이나, 새로운 이민자들을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나섰고, 자주 고장 나는 저의 자동차를 밤새워 고쳐 주었습니다. 그분의 도움이 저의 해외목회를 잘 감당하도록 했다고 봅니다. 마치 바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괴로움에 함께 한 오네시모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사역자들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고, 그 괴로움을 함께 나누는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며 성숙한 교회입니다. 함께 하는 수고를 즐거워하는 것이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바울의 복음사역을 돕고 그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한 빌립보 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은혜로운 모습입니다.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18절)에서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도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을 향한 지원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복음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으로 존 귀히 여기며 바울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여기는 데서 나온 것이었기에 향기로운 제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을 향한 지원과 도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헌금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목회자를 향한 도움과 지원은 헌금과 같은 것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믿음의 고백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로서, 헌금과 같은 믿음에서, 목회사역을 지원하는 것이 될 때, 그 드리는 자의 복됨과 하나님께서 쓸 것을 채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돕는 것은 오히려 돕는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이 최고로 가치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선물이 주의 종을 도와 주님의 나라를 더욱 더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위해 희생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그들의 쓸 것이 넘치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바울은 빌립보 교회들에게 복음을 위한 선한 사업에 계속적으로 전력투구할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을 위한 협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전 9:11-14)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그 교회는 건축후 빚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어려운 때에 자립하지 못하는 100교회를 선정하여 목회자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일에 나섰습니다. 또한 원로 목사님들이 기거하는 원로원의 건축과 생활을 책임졌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의 재정은 부족하지 않았고, 오히려 교회의 재정규모는 더욱 커갔습니다. 교회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교회 빚을 갚는 것은 물론 능력 있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 교회의 특징은 어려울 때일수록 돕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사랑의 집이란 무의탁 양로원을 세웠고, 교회건축이 어려운 곳에 교회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럴수록 그 교회는 더욱 크게 성장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역자들을 위한 희생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 나는 제물과 같습니다. 목회사역자들을 향한 희생이 은혜로운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목회사역자와 즐거운 관계의 믿음의 삶이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의 삶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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