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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는 비결(2) (신 2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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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는 비결 (2)
본문 / 신28:12-14

  지난 주일에 하늘에 있는 보물 창고의 문을 여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하늘의 보고가 열리고 둘째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셋째로 베풀고 나누는 삶을 통해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고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넷째 목회자와의 관계가 하늘 문을 여는 비결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목회자는 주님께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세우신 주님의 일군입니다.
  요 21: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동일하게 세 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그리고 내양을 먹이라 라고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이 주님의 목회명령입니다. 목사는 이 명령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와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서 주님의 양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활이 달라지고 그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주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양을 먹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회자 또는 목자라고 합니다.
  말씀 사역을 감당하는 주의 사역자가 하늘 문을 여는 키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역자를 신뢰하지 못할 때 하늘 문이 닫히고 반대로 말씀 사역자들을 신뢰할 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경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흔히 말하는 주의 사자를 의미합니다.  주의 사자는 하나님의 권위로 일컬어지고 그 권위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교인과 목회자와의 관계는 교회 부흥이나 교인 개인의 영적생활에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목사와 어떤 관계인가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목사는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목사가 나의 목자일 수는 없습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목자가 있고 목사에게는 하나님이 붙여주신 양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주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먹이고 인도하고 기르기 위해 세우신 직분입니다. 즉 주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담임목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교인이 담임 목사와의 관계가 깨어져서 서먹 서먹 해지면 성도 개인의 커다란 영적 손실이 아닐 수 없고 하나님의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말할 수 없는 장애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대하 20:20절 하반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히 13:17절에서도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목회자와의 관계가 서먹해지면 그 사람에게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갈4:14-15절에 보면 바울에게는 사람들에게 보일때 목사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을 오히려 예수님 처럼 영접하고 환영하는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갈라디아 교인들을 보면서 바울은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너희가 할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니라” (갈4:15) 라고 묻고 있습니다. 눈이라도 빼어주겠다는 정도의 좋은 관계성 그것에 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보물 창고가 열리려면 주의 사역자들과 나쁜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합니다. 불편한 관계, 어색한 관계, 원수관계를 맺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고 따르는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1.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① 영적 양식이 그를 통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요 21:15절에서 “내 양을 먹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는 말씀 사역자입니다. 즉 성도들에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 양식을 공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양들에게 먹일 영적 양식을 그의 세우신 목자를 통해 공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목회자의 설교나 권면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목사 개인의 말로 들려지면 그것은 목자와 양의 관계는 아닙니다.
  목사가 말씀을 전할 때 또는 목회적인 권면이나 치리를 행사할 때는 목사 자신의 인간적 권위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위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회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목사와의 관계가 깨어지면 아무리 하나님의 권위로 행하는 목회적 행위라 해도 인간적으로만 보여지기 때문에 본인에게 영적인 면에서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전2:13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자신의 전하는 말씀에 대하여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으로 그 말씀이 그들 속에서 살아 역사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내게 필요한 영적 양식이 공급되는 목사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만이 하늘의 보물창고가 열리는 비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축복권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맨 처음하신 일이 복을 주신 일입니다.
(창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로 심판하신 후 새로워진 세상에서 남겨진 노아의 식구들에게 첫 번째로 하신 일이 복 주신 일입니다. 
  (창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인생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받으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축복에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온갖 불행과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행복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복에서 떠나간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은 그의 대리자를 세워 끊임없이 복을 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민6:27절에 보면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할 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에게 주었던 축복권을 신약 시대에는 목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양떼들을 향하여 언제나 축복권을 행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권을 가지고 주님의 양떼들을 위해 복을 빌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③ 중보 기도의 책임이 목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자신에게 맡겨주신 양떼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목회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말씀을 전하여 영적 양식을 먹이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사역합니다. 히브리서 13:17절에 보면 목사는 양들을 위해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처럼 한다고 하였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성도 하나가 잘못되면 자신이 잘못하여 그러한 줄로 알고 아파하는 것이 목사의 심정입니다.
  이것은 목사가 가진 양들을 위한 중보 기도권입니다. 창세기 19장 29절을 보면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소돔성을 멸하시는 중에서도 그를 생각하여 롯을 구원하신 것처럼 목회자가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목회자의 가슴에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어떻게 하면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까요?

  ① 주의 사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목사가 못났어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못난 사람을 보낼 수도 있으니까요. 자기의 기준으로 이러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하는 식은 하나님 중심이 생각이 아닙니다. 목회자를 예수처럼 보아야 합니다.
  왜냐면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이 직접 여러분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이나 감화는 직접주시지만 대부분 세우신 사역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교회를 가꾸어가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약점이 있는 바울을 천사처럼 예수처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이라도 빼어줄 만큼 사랑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적 사랑이 아닙니다. 주의 종이기에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예수님처럼 보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목사는 주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마땅히 그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목사가 목회를 위해 일할 때 만이 아니라 쉬고 움직이고 사는 것 자체가 주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4:1절에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비밀을 맡았기에 주의 사자입니다. 주의 사자로 인정해야 관계가 좋아집니다.
 
  ②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왜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느냐 하면 “자신의 영혼을 인도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자” 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17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참된 목자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양을 대합니다. 그가 목회의 걸림돌이 되고 가시가 된다 해도 그를 가슴에 안고 아픔을 견디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양은 목사에 대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목회자는 기쁨으로 목회합니다.
 
  ③ 약점을 이해하고 감싸주는데 있습니다.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하늘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라면 목회자의 약점과 부족한 부분을 감쌀 때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고 유지됩니다. 목사직은 고상한 인격과 품위 그리고 윤리가 요구되는 직분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실수하고 넘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고의적인 것이 아닌 이상 목회자의 실수나 부족한 부분을 덮어주는 태도는 목사의 연약함을 돕는 귀한 태도입니다.
  갈라디아서 14:13절에 보면 바울은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었으나 너희가 나를 없신여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았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주의 사역자 바울에게도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약점으로 인해 그를 무시하거나 없수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의 종의 약점을 보충하고 감싸므로 그의 사역을 협력하였습니다.
 
  ④ 부족함을 채울 때입니다. 
  목회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고후 1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바울이 고린도에서 목회할 때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용도가 부족했다고 했습니다. 용도란 물질적 필요를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것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부족한 부분을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채워주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목회하는데 왜 마게도냐 교인들이 바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합니까?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고전 1:11-13절에 보면 교인들의 마음이 서로 갈라져서 서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담임목사의 부족한 용도를 다른 교회 교인들이 채우게 하는 것은 결코 복된 일이 아닙니다. 결국 그들의 신앙은 복된 신앙이 될 수 없고 하늘의 보고가 닫혀버리고 맙니다. 
  성경에서 주의 종의 부족을 채우는 성도에게 언제나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양식으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아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하나님을 공괘한 것으로 보고 하늘 보고를 열어서 복을 주셨습니다.
  주의 종은 늘 부족합니다. 부족한 시간, 부족한 일군, 부족한 물질, 부족한 휴식, 부족한 실력 채워주는 성도가 하늘 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면 그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⑤ 좋은 것을 함께해야 합니다. 
  갈 6:6-7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좋은 것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고 사랑하기 위해 좋은 것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⑥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18절을 보면 바울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라고 하였고 19절에서도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라는 요청이 있습니다. 목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지치고 상처받아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랑하는 양들의 눈물어린 기도는 샘솟는 힘을 줍니다.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와의 신뢰의 관계가 곧 하늘의 보고를 여는 또 하나의 열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가끔 우리 교회 성도들 한 사람씩을 떠올리며 그분에게 목사인 나는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목사를 바라보고 대할 때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의 신앙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역자 또는 대리자로 여깁니다. 그래서 주의 종 또는 주의 사자라고 호칭합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일하는 사람이기에 목사 자신도 그렇게 불려지는 것에 대하여 좋게 생각합니다.

  옛날 제사장과 선지자가 그랬듯이 하나님의 권위를 힘입어 일하기를 원합니다.
  목사도 다른 이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연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 때문에 구별되어 주의 종(從) 즉 하나님께 붙잡힌 자가 되었기에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구속(拘束) 상태에 놓인 것입니다. 때로는 성도들의 과분한 대접과 환영을 받으면서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주인 되신 주님이 받으실 그것을 내가 받는 것 같아서 가시 방석에 앉은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맡겨주신 양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잃을까봐 항상 두렵고, 주인이신 그분이 부여하신 권한 밖의 월권을 행할까봐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너무 조심하고 몸 사리다가 게으르고 나태한 종이라고 책망 받는 것은 아닌지...!!! 

  교인들에게 「설교꾼」으로만이 아닌 목자이기를 원합니다. 목사는 많고 교인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남자가 많아도 내 아버지는 하나이듯 목사가 많아도 양에게 목자는 하나입니다. 목사를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으로 알거든 그와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시고 그로 하여금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게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고 형통하게 되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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