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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는 나의 능력이시다! (시 118: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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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능력이시다!
시편 118:14-21

사람은 만족하고 살아갈 때에는 그 상황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합니다.  때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변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이나 고난이 삶의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해 줍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듯이 고통과 고난은 변화의 계기가 됩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강한 자극을 받을 때에 최선을 다합니다.  자극을 받지 않고는 절대로 자기 변화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통이나 고난을 당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는 다 똑같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통이나 고난을 당하면 그 사건 자체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그 환경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원망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통이나 고난을 또 다른 삶에로의 성숙과 변화의 기회로 생각하고 분연히 일어납니다.  내 삶을 힘들게 하는 그 환경의 장벽을 떨치고 일어납니다.  내 마음을 낙심하게 하는 그 사건의 무대를 걷어버리고 하늘의 능력을 의지해서 일어납니다.  이들이 바로 하늘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고난과 역경, 장애와 난관의 장벽을 뛰어넘는 하늘의 능력을 탐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사망이나 천사들이라도 결코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는 하늘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시면 우리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넉넉히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어떤 인생에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한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내 인생에도 기적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기억하십니까?  죽어서도 땅에 묻히지 못한 불쌍하고도 비참한 존재들, 생명의 근원을 상실한 채 내버려진 버림받은 죽음의 존재들, 모든 존재의 희망을 상실한 음침한 절망의 골짜기.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뼈들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되었더니 이리 저리 흩어져 있던 뼈들이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그 뼈들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어떤 사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나 나라가 하나가 되는 것은 어떤 철학이나 이념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땅에 사상이 없어서 사분오열 분열되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 우리 민족에게 철학이나 이념이 없어서 반목과 불신이 넘쳐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상과 철학과 이념이 이 땅을 갈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사상과 철학으로는 결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하나되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대립과 갈등과 분열만 제공할 뿐입니다.  결국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나라와 공동체를 치유하고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기근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배고픔과 목마름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고픔과 목마름은 먹을 양식이나 물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다고 했듯이 지금은 말씀의 홍수 시대입니다.  인터넷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서 쉽게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 중심에 사로잡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막고 있습니다.  물질 중심의 사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로 예수님께 왔다가 근심하며 떠나갔던 부자 청년 관원의 모습은  바로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말씀의 기갈 시대입니다.  이 때에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바로 들어야 합니다.  겸손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시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나를 살리고 내 가정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땅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강하게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나에게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내 가정을 하나가 되게 하고, 우리의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고, 이 민족을 하나가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붙잡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뼈들을 보십시오.  그 뼈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흩어진 뼈들이 하나가 되고 힘줄이 오르고 살이 찼습니다.  그러나 그 뼈들에게는 생기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뼈들은 생기가 없는 무미건조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뼈들을 향하여 생기의 바람이 불어왔을 그때에 그 뼈들은 살아나서 여호와의 큰 군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생기는 성령을 말씀합니다.  생기를 원어에 보면 루아흐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성령으로 번역되면서 동시에 생기, 혹은 호홉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생기요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영혼이나 죽은 공동체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말씀과 함께 성령이 임하실 때에 죽은 자들이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십시오.  오늘 이 땅에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처럼 무미건조한 존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 희망의 돛을 접은 사람들, 사랑의 돛을 접은 사람들, 그래서 우울증과 불면증에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사람들, 그래서 삶의 생기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이 땅에 여호와의 생기의 바람이 불어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여호와의 생기의 바람입니다.  지금 우리 가정을 살리고, 이 땅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성령의 생기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생기의 바람은 천지 창조 이래로 한 순간도 멈춘 때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하나님의 생기의 바람은 지금도 수없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이 생기의 바람을 맞을 수 있는 돛을 올리십시오.  희망의 돛을 올리십시오.  기도의 돛을 올리십시오.  사랑의 돛을 올리십시오.  믿음의 돛을 올리십시오.  더 높이 올리십시오.

혼자서 힘이 드십니까?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한 겁니다.  함께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생기의 바람을 맞을 수 있도록 돛을 올리십시오.  믿음이 약한 자를 비난하고 멸시하지 말고 서로 밀고 세워주십시오.  가족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와 협력의 대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언양 영신교회가 믿음의 공동체, 소망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의 생기의 바람이 일어나는 바람의 진원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들을 향하여 생기의 바람을 일으켜주십니다.  그 바람을 맞고 아니 맞고는 우리 인간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생기의 바람을 맞는 자는 일어나 희망을 노래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령의 바람을 맞는 자는 황무한 그의 심령이 옥토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 영혼이 일어나 여호와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가정이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늘의 생기의 바람을 맞으십시오.  여호와의 신으로 권능의 채움을 받으십시오.  거룩한 하늘의 힘에 붙잡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황홀한 사명자로서의 꿈을 꾸십시오.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자기 선언을 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땅의 교회 안에는 에스겔 골짜기에 불어왔던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던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가 중심이 되어 이 땅을 휩쓸었던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에 이 땅에는 다시 한번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무너져가던 가정이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사분 오열되어 갈라진 이 땅이 하나로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저마다 살아남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분열과 미움은 사라지고 화평과 사랑과 하나됨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매우 일관성 있게 전도하는 사람들이 말씀과 함께 성령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함께 할 때에 말씀은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우선 순위는 성령의 능력을 받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시편의 말씀을 영국의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께서 무척 사랑했던 말씀입니다.  그가 50세 되던 해, 즉 희년을 기념하여 교회에서 쥬빌리 하우스라는 기념관을 세워드렸는데, 그 건물의 머릿돌 위에다 스펄젼 목사님이 이 본문 말씀을 새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본문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세기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위대한 설교자라면 어떤 면에서 굉장히 화려한 목회를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말씀을 그렇게 좋아했던 이유는 그에게도 정말로 어려운 위기가 자주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죽을 고비도 있었고, 힘이 빠져서 주저앉고 싶은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본문을 그토록 마음으로 사랑하고 좋아했으며 나중에는 돌비에다 새겨 놓을 정도로 그 말씀의 은혜에서 멀어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이요, 은혜인지 아십니까?  아마 모르실 겁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백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왜 대단합니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힘이요, 나의 구원이 되신다.'라고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우주를 보존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거룩함과 전지전능하신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신다. 그 하나님이야말로 나에게 구원이 되신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리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우리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얼마나 대단한 존재입니까?  이것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의인이 됩니다.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는 의인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 사는 가정은 의인의 장막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의인이 된 사람에게와 의인의 가정이 된 집안에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되십니다.  구원이 되십니다.  찬송이 되십니다.

믿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 그 사람은 의인이요, 그 가정은 의인의 장막입니다.  세상에 어디 그런 가정이 있습니까?  세상에 어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나 하나님을 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자기 가정을 의인의 장막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실제로 그 가정이 의인의 장막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셔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고 의인이 되었고, 우리 가정은 의인의 장막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요, 나의 찬송이요, 나의 구원이 되셨다고 마음놓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았습니까?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고백하신다면 옆 사람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눌까요?
"그런 엄청난 복을 받고서 시치미를 떼십니까??"
"한 턱 내시지요?"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라고 소리쳤습니다.  나의 힘이라고 소리쳤습니다.  15절, 16절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5절과 1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여기에서 권능을 베푼다는 말은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눈을 감고 제가 하는 말을 그림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이 우리 집 위에 덥고 계신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오른손을 높이 드시고 능력을 주신다.  내가 지켜줄 수 없고, 보호할 수 없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오른손이 내 자녀들의 머리 위에 덮고 계신다.  밤낮 없이 하나님이 오른손을 들고 능력을 주고 계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사실을 말씀을 통해 확인하고 믿으면 어지간한 힘든 일을 만나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주저 앉았다가도 다시 힘을 얻고 일어섭니다.  왜냐하면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면 필요한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쓰러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배운 것도 별로 없을지 모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을 못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하게 살지 못하는 초라한 집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눈에 여러분은 엄청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른손을 들고 보호하고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에게는 초라하게 보여도 우리는 절대로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죽는 것 같아도 절대 죽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오른손이 우리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손을 붙잡고 일어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시위하십시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앞에 태산같은 폭풍이 밀려와도 이 한 가지 사실만은 잊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나를 붙들고 계신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이 사실을 더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 되셨다'고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는 바 다윗은 얼마나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까?

시편 118편에 나오는 배경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전세계 모든 사람이 다 자기의 적이 되어서 자기를 포위한 것처럼 느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위기입니까?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의인입니다.  다윗의 가정은 하나님이 지키시는 의인의 장막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가정을 위기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7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너희들이 보기에 내가 죽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1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이 잘못한 것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다윗도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매를 드시기는 했어도, 절대로 그를 죽음에는 붙이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가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루하루를 기적같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기적같이 산다는 말을 할 때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서 사고를 당하여 다치거나 죽습니까?  그런데 내가 이렇게 멀쩡한 것이 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입니까?  내가 운전을 잘해서 그렇습니까?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상대편에서 갖다 박는데야 어쩌겠습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만 가지 병균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고 있는데, 그래도 내가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살고 있는 것이 내가 건강 관리를 잘해서 그런 것 같습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내 몸 안에 수 많은 세포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세포도 내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능력도 힘도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길에서 구원해 주시고, 모든 병마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나 잘났다' 하면서 세상을 살다가 하루 아침에 집안이 폭삭 망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삼십 세, 사십 세, 오십 세, 육십 세 될 때까지 이만큼 우리 가정이 화목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구원이 되셨기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주님께 예배 드리고 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 되셨기에 간혹 내가 잘못할 때라도 하나님께서 경책 하시기는 하지만, 나를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습니다.  위기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망하는 데서 나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병이 들었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서 공포에 떨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쉽게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때문에 죽는 것이지 우리는 병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요, 나의 구원이 되시는데 어떻게 내 입에서 찬송이 안 나오겠습니까?  다윗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다오.  내가 하나님 앞에 가 그리로 들어가서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 입에서도 이런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 나와서 앉았을 때는 굉장히 경건한 것처럼 찬송도 잘 하고 하나님께 감사도 많이 하는 것 같아도, 집에 가면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불평 불만이 많으면 안 됩니다.

과거에 몹시 어려움을 당하던 시절에 살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서 얼마나 팔자가 늘어졌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불평합니까?  남편에 대해서 왜 불평합니까?  왜 아내에 대해서 불만입니까?  나를 위해 하나님이 이 아내를 주셨다고 생각하면 날마다 엎드려 절은 못할지언정 감사는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자녀들을 놓고 한 번 보십시오.  자녀들로 인해서 고통 당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래도 이만큼 잘 자라 주고, 이만큼 순종하는 자녀를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동을 보아도 감사하고, 서를 보아도 감사하고, 그저 감사할 것뿐인데, 왜 집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차 얼굴이 찌그러지고 기쁨이 없습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가정에 구원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것을 모르고, 내가 잘나서 사는 줄 알기 때문에 불평 불만이 터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만한 삶을 살면 안됩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됩니다.  외출을 하고 들어와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나를 지켜 주셨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집에 돌아 왔습니다." 하고 생각하면 감사가 있습니다.

병원에 가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상에서 고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내 폐를 지켜 주시고, 간을 지켜 주시고, 내 혈압을 지켜 주시니, 그래도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라고 하면 무슨 불평이 있습니까?  열 평짜리 아파트면 어떻고, 백 평짜리 아파트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의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의의 문을 내게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우리가 이와 같은 능력 있는 삶을 사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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