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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제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 (사 58:6-11, 행 9:36-42, 행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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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 “종 되신 왕의 섬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This is our God, the Servant King” “종 되신 왕 우리 하나님”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종이 되신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깊은 감동과 충격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섬기려고 종으로 오신 예수님은 의식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가난한 삶을 사셨을 뿐 아니라 멸시와 천대를 받는 밑바닥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는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셨다"(고후8:9)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극도로 세속화되고 극도로 물질화되고 극도로 정치화된 오늘을 사는 상당수의 신자들은 옛날 베드로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도 싫어하고 섬기는 것도 싫어하고 종 되는 것도 싫어하고 가난하게 되는 것도 싫어합니다. 부자 되어서 잘 사는 것만 좋아합니다. 심지어 지난 주 월요일 어느 목사님은 어느 큰 교회에 가서 “가난은 저주”라고 설교하면서 예수님은 가난하지 않았고 부유했다고 말하는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예수님과 요셉이 만들었던 가구가 많이 팔렸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았고 예수님은 치유 사역을 해서 감사 헌금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았다는 실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돈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이런 설교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서글프고 불행한 일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섬김’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섬김의 한 표현이고 모습인 ‘구제’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섬기라’는 말씀과 ‘구제하라’는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지 말고 열린 마음과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잘 들으시면 여러분들에게 은혜가 되고 복이 될 것입니다.

  첫째, 성경은 구제를 많이 강조합니다.

  성경은 믿음과 은혜만을 강조하지 않고 구제와 선행을 강조합니다. 구제와 선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경 말씀 몇 곳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1서3:17,18).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2:44,45).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1-4).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15:25,26).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갈2:10).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15:7-11). 신15장 말씀은 구제를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너는 반드시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구제는 하나님의 뜻이고 분부이고 명령입니다.

  둘째, 구제는 우리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모두 행복을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복해지는 비결 중의 하나는 구제를 하는 것입니다. 영락교회의 최창근 장로님은 한경직 목사님을 따라서 평생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하신 분인데 어제도 전화 통화를 했지만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사십니다. 항상 웃으시고 항상 감사하시고 항상 겸손하시고 항상 즐겁게 사십니다. 구제와 선행이 그의 몸과 얼굴과 말에서 행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제는 우리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구제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기 때문이고, 둘째로 구제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고, 셋째로 구제를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구제를 하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고 웃으시면서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제하는 우리를 보시고 웃으시면서 좋아하시면 우리들은 자연히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시고 웃으시면서 좋아하시는데 슬퍼지고 불행해질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겉옷과 속옷을 나누어주면서 구제하는 도르가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웃으시면서 좋아하셨을 때 도르가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살았을 때에도 죽었다가 일어났을 때에도 행복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와서 죽어서 다락에 뉘여 놓았던 자기의 시체를 일으켜 주었을 때 도르가는 그 당시 가장 기쁘고 가장 즐겁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구제를 하면 구제를 받는 사람들과 그 주변의 사람들이 웃으면서 좋아합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구제하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좋아하는데 슬퍼지고 불행해질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겉옷과 속옷을 나누어주면서 구제하는 도르가를 욥바 지역의 과부들과 그 주변 사람들이 보고 웃으면서 좋아했을 때 도르가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살았을 때에도 죽었다가 일어났을 때에도 행복했습니다. 자기가 죽었다가 일어났을 때 많은 과부들이 자기 가까이에 와서 울며 슬퍼하다가 웃으면서 기뻐하는 것을 보았을 때 도르가는 그 당시 가장 기쁘고 가장 즐겁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구제를 하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살과 피와 뼈와 세포가 웃으면서 좋아합니다. 우리의 몸은 본래 서로 도우면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서로 돕는 배필로, 자연 만물은 돌보는 관리자로 그리고 어려운 부분들을 돕고 보충하는 조력자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목적이었습니다. 도르가가 겉옷과 속옷을 지어주면서 구제를 했을 때 도르가의 피와 살과 뼈와 세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했을 것입니다. 겉옷과 속옷을 만드는 그 시간들과 겉옷과 속옷을 나누어주는 그 시간들은 도르가의 피와 살과 뼈와 세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도르가는 가장 기쁘고 가장 즐겁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넬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로, 구제를 많이 하는 고넬료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웃으시면서 좋아하셨을 때 천사까지 보내서 칭찬했을 때 고넬료는 이미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구제를 많이 하는 고넬료를 그의 하인들과 주변 사람들이 보고 웃으면서 좋아했을 때 고넬료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의 하인들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행10:22). 하인들과 타 민족의 사람들의 칭찬을 듣는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셋째로 고넬료가 구제를 많이 했을 때 그의 피와 살과 뼈와 세포가 웃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인색하고 무정한 삶을 살면 그 사람의 살과 피와 세포가 슬프고 짜증나고 불행하게 느낄 것이고 그래서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세 번째 말은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말이고 영적으로는 너무나 타당한 말입니다. 구제는 우리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셋째, 구제는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구제는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과 몸과 삶에 풍요로움과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약속을 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우리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최창근 장로님의 삶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구제가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과 몸과 삶의 풍요로움과 축복을 가져다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두 가지만 인용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4,25).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5:10). 구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부와 풍족함과 윤택함과 범사의 복을 주시 마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사야 58장은 구제하는 자가 받을 풍요로운 복을 다음과 같이 길게 나열을 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6-11). 여기 구제하는 사람들에게 주시 마 약속된 축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 빛이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어두움 대신 빛이 비취고 하나님의 영광이 호위하고 병이 치료함을 받고 기도의 응답이 속하고 영혼도 뼈도 몸도 건강하게 되고 너는 물 댄 동산 같은 부족함이 없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모든 축복이 구제와 선행의 손길을 펴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한가지 귀한 축복은 구제하므로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르가의 구제 때문에 온 욥바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구제를 하지 않는 극도로 인색하고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 이것보다 더 심한 말씀을 한 마디를 인용합니다. 구제를 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아 영영한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1-46). 구제는 우리로 하여금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구제는 우리로 하여금 마음과 영혼과 몸과 삶의 풍요로움과 축복을 누리게 합니다. 구제는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게 합니다. 구제가 우리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신의주제이교회에서나 영락교회에서 목회할 때 교회의 3대 목표 중 하나를 봉사와 구제로 삼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1945년 10월 월남 후 12월 2일 영락교회를 세웠는데 처음에는 영락교회라고 하지 않고 베다니교회라고 했습니다. 봉사와 구제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라는 의미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창립 1주년을 맞은 1946년 12월 1일 주일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민중들을 인도하고 돌보는 봉사와 구제임을 밝혔습니다. "교회야말로 거친 세해, 죄악의 파도에 빠져 죽어가는 인생들의 구원선이며, 피곤한 자의 안식처이며, 수난자의 피난처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이미 그 해(1946년) 3월 16일 주일 "상부상조의 정신" 이란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가난한 자, 병든 자, 나그네 등을 돕는 상부상조임을 강조하며 호소했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오늘 우리 신자들은 이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정신이 교회 안에서 언제든지 흐르고 있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구제의 대상은 과부와 고아, 무산자, 병자, 나그네, 죄수, 핍박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대하여 그들은 사랑으로써 상부상조의 정신을 발휘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리배여, 이 진리를 아십니까? 피난민을 위하여 돈을 쓰는 것은 의무입니다. 자선이 아닙니다. 의무라는 것은 아니하면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나 병든 자를 섬김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교회의 첫 일곱 집사는 봉사를 위하여 선택되었던 것이요, 교회에서 하는 헌금은 본래 구제 목적으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와 제직의 근본 사명도 전도와 봉사와 구제였습니다. 오, 대한 교회여! 초대교회로 돌아갑시다. 초대교회의 상부상조의 정신은 지금 어찌 되었습니까? 오늘날 같이 나그네, 가난한 자, 핍박을 당하여 부모 처자를 잃은 불쌍한 자가 많이 생길 때가 어디 있으며 오늘 날 같이 그리스도의 순애의 발로인 상부상조의 정신이 요구되는 때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베다니 교회 교우들이 초대교회로 다시 돌아가 깨끗한 생명수를 마시고 상부상조의 생활을 하지 않으렵니까? 물론 우리도 다 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어떻게 하든지 먼저 온 이들이 뒤에 오는 이들을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때에 기독신자들이 돈만 많이 모아서 무얼 하시렵니까? 서로 돕고 서로 붙들면 다 살고, 나 혼자만 살려고 하면 다 죽고 맙니다. 즐거워 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슬픈 자와 함께 슬퍼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랑이 강제적인 어떤 사상보다 낫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십시다.”

  예수님은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병든 자들을 어루만지시며 병을 치료해주셨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소망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나 쓸어져 죽어가는 불쌍한 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기름과 포도주로 그의 상처를 싸 매어주고 자기가 타고 가던 짐승에 그를 태우고 주막에까지 데리고 가서 그를 돌아보아주고 그 다음 날에는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그 사람을 돌아보아달라고 부탁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도 그와 같은 선행과 구제와 봉사의 일을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구제는 주님의 삶이었고 주님의 뜻이었고 주님의 분부와 명령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지난 주일 봉사에 대한 설교도 그랬지만 오늘 아침 구제에 대한 설교도 여러분들에게 부담이 되는 설교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한 것은 여러분들에게 부담을 드리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스스로 간절하게 바라는 소원을 고백한 설교이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정말 행복한 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설교이고 그리고 제가 믿기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명령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한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와 여러분들이 앞으로 구제의 손길을 많이 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모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마음과 영혼과 몸과 삶에 풍요로움과 축복이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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