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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대와 소망 (엡 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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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우리 교회에서 손에 성경 들고 고백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따라하는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카드를 견본으로 보내 달라는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대와 소망

오늘 우리가 숨쉬고 있는 것, 이 자리에 있는 것 감사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한 야망(ambition)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내다보는 비전(vision)의 사람으로 살게 되었으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일하기 위해 먹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다 밥 먹자고 하는 일이지, 먹자고 하는 일 아니야?’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여러분 먹기 위해 일하십니까?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은 기름을 태워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위함입니다.
자동차가 단지 기름을 넣기 위해 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밥 먹기 위해 일한다는 사람은
‘기름을 넣기 위해 차가 달린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 보통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는다고 말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단지 자기 살자고 먹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위해 밥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 … 건강해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배우는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냥 열심히’가 아니라 “열정”(熱情, 더울 열, 탈 열 / 뜻 정)으로 해야 합니다.
펄펄 끓고 타는 열정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송구영신예배 때 2007년을 열정으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런 다짐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에 환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게도냐 첫 성인 빌립보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루디아」란 여성도의 도움을 받았고,
매를 맞고 투옥을 당했을 때 만난 간수가 예수 믿게 되어(행16장)
설립된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재정적으로 바울의 선교를 많이 도왔습니다(빌4:16).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또 선교헌금을 보냈습니다.
그 헌금에 대한 감사의 내용과 함께 전해진 것이 오늘 본문(빌1:20~21)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대와 소망”이란 말이 나옵니다.
영어로 기대는 “Expecting”이고 소망은 “Hoping”입니다.
- 기대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출발하는 바램, 소원을 말하는 것이고
- 소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라보는 미래적 표현입니다.
- 기대는 행여나/혹시나 하는 마음의 바램입니다.
-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여
믿는 사람이 확신하는 미래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어떤 기대와 소망을 가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의 기대와 소망이
출감하는 것이나/빵 한 조각이나/옷 한 벌이 아니고,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어디엔가 소속되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온통 소속입니다. 가족의 일원으로 주민등록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학교에 소속되어 다니는가?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가?
어느 직장에 다니는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가?’하는 모두가 다 소속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교회에 적을 두고 생활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교회에 등록하지 않고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이처럼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목자 없는 양입니다. 목자 있는 양/우리안의 양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가족이 되어야 목자의 돌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적을 두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는
일본/미국/중국/베트남 … 등의 국적을 가지신 분들이 출석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의 국적을 가졌든지 자기가 태어난 나라, 자기의 조국에 대해서 만족해하고,
체념한 사람,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십니까?
내 가정, 부모, 형제,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다니는 직장, 내가 다니는 교회,
내가 태어난 나라/내가 사는 나라 …
거기에서 만족을 얻고 긍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있어 좋은 집안이 되고, 내가 다녀 명문학교가 되고,
내가 다녀 좋은 직장이 되고, 내가 다녀 좋은 교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 좋은 나라이고, 좋은 나라가 되게 해야 합니다.
이미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부끄럼 없기 위해 노력 하지는 않고
온통 불평과 불만만 찾는다면 더 좋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젼 목사님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문제없는 교회를 찾아 주십시오.
교회마다 돌아 다녀 보면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때 스펄젼 목사님이 “젊은이, 그런 교회를 한번 찾아보시오.
그리고 찾게 되면 내게 꼭 연락 해주시오.
그러면 나도 그 교회에 가서 목사로서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절대로 그 문제없는 교회에 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이 가는 순간 그 교회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라고 대답했답니다.

2주 전에 만난 어떤 분과 아침에 식사를 했습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분이 “한국엔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그 분 말씀을 듣고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미국에 살다가 돌아와 영주권을 반납하고 사는 저는 바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런가요? 왜 한국에 희망이 없나요?’ 여쭈었습니다.
대통령이 틀렸고, 정치가들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대통령이 말을 잘해서 싫고 …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싫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하자고 했다는데 …
저는 그분이 조용히 살다 임기를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분을 몸부림치며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줄 아는데 …
저는 이제 그분이 얼마 안 남은 임기동안 조용히 있다가 물러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라면서 부르기 시작한 애국가의 가사에도 “동해물과 백두산이~”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가지 자료로도 보면 ‘동해(East Sea)’입니다.
애국가에도 나오는 것을 국가의 대표자가 다른 사람의 구미에 맞춰 바꾸자니 말이 됩니까!

세계에 한국을 바로 알리기 위한 [VANK]라는 사이버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회원이 15,000명이나 되는데
우리나라에 대해 잘못 기록된 외국 서적을 찾아서 바르게 수정하라고 하고,
홈페이지 같은 곳에도 잘못된 표현을 바로 잡는 일을 하는 단체입니다.
한국을 바로 알리고, 한국에 대해 바로 알게 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만주 벌판에 지금 드라마에 현장이 되고 있는 지역이
우리나라였었다는 것을 알리는데 애쓰고 있는데
대통령이 엉뚱한 말을 하니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2007. 1. 16(화) 조선일보 기사 참조>

또 어느 나라에 가서는 ‘이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배를 많이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고맙긴 한데 우리는 이 나라에서 사 줄 것이 아무것도 없네요.’ 라고 했답니다.
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지 …. <2007. 1. 17(수) 인터넷, 포항뉴시스 기사 참조>

여러분, 우리 교회에도 군대가 있는 젊은이들이 7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대간 젊은이들의 자긍심을 상실케 하며
“젊은이들은 군대가서 몇 년 씩 썩히지 말고 … ” 라고 말했다는데
<2006. 12. 21. 인터넷뉴스 참조>
6 · 25 전에 군대에 들어가 전쟁 중에 부상당한 상이용사로 사는 아버지,
그 아들 해병대에서 썩었고, 아버지 따라 해병대 갔다 온 손자 …
우리 집안은 대통령의 표현대로라면 3대가 군대 가서 썩은 것입니다.
한국에 희망이 없다던 그분은 "이런 대통령 때문에 창피하다고 열을 내며
이런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자기 자녀들에게 한국에 돌라오지 말라"고 했답니다.

여러분, 그래도 이 나라에 희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나(我, 나 아)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한국이 왜 희망이 없습니까?
믿음으로 살려고/바르게 살려고 눈물로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 젊은이들만 봐도 힘이 솟습니다.
바르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 틈만 나면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
장래를 꿈꾸는 사람 … 등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의 기준이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에/이 땅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 있는 나라의 희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두려움 없이/자유롭게/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엡3:12).
우리는 세상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만사에 부끄럼을 당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쉽지 않기 때문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자기 자신 앞에 떳떳해야 합니다.
자기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감동케 하는 순간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 …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순간 순간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 깨달아지는 성경 말씀,
생각나는 설교 말씀 … 앞에서 순종할 때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막8:38)
-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며 사는
성도이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 우리의 주일성수/예배드림, 십일조나 각종 헌금과 봉사, 섬김에 … 있어서도
하나님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 과부의 헌금은 사람에게는 부끄러워 할만한 일이었으나
예수님께는 칭찬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눅 21:2)

하나님께서는 부자의 많은 것 중에 일부, 성의 없는 것,
액수가 많은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과부의 두 렙돈은 그의 삶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주어진 사명에도 부끄러움 없이 충성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노라”(딤후2:15)
교회에서 교사를 하든지, 찬양대를 하든지 모든 것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오래도록 변치 않고 잘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사람에게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행24:16)
믿는 도리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여러분, 성경을 들고 집에 가는 것이 부끄럽습니까.
여러분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습니까.
복음 전파에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니라”(롬1:16)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기를 권하는 일에 부끄럽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의 물질거래, 신용에도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약속 지키고, 제때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부득이한 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해결 하겠다는 결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신용카드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어로 ‘credit’은‘신용’입니다.
10만원을 썼으면 갚아야 하는데 돈도 없으면서 썼다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무력해진 원인 가운데 하나가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너무 많이 저질러 놓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이 깨끗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연말이 되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담임목사추천서를 받으러 옵니다.
그리고 어떤 대학은 세례증명서가 있어야 입학 할 수 있기 때문에 세례를 많이 받습니다.
수년 전에 어떤 학생이 엄마와 함께 제게 찾아와서
‘목사님, 세례 받았다는 증명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받았다는 것을 가짜로 만들어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못해주겠다고 했더니 세례 받은 것처럼 해 주시고
나중에 세례를 받으면 안되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안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분들 마음이 상했습니다. 한동안 교회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그 엄마에게서
‘딸이 결혼하려는데 주례를 해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중에 들려오는 말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진짜 목사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음이 안타까워서 거짓말로 해 줬으면 지금 무슨 말을 듣겠습니까.

여러분, 잘 들으세요. 때로 마음에 섭섭함이 있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지금 그분은 우리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십니다.

외모만 거룩하지 말고(보기에만 멋쟁이 신자가 되지 말고)
내적으로도 진실하고(거짓 없이 믿을 만 하고 성실하고),
거룩해야(구별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두 번째 기대와 소망은 담대한 삶이었습니다.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바울은 부끄러움 없이 살았기에 언제/어디서나/누구에게나 담대했습니다.
옥중에서도 담대하여 찬송과 기도를 하며 전도했습니다.(행16:16~34)
베스도나 아그립바 앞에서도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행24:~26:)
풍랑을 만나도 담대하였고(행27:), 뱀(독사)에게 물리어도 담대했습니다.(행28:)

사실 예수 믿는 데 용기가 없어 주님을 기쁘시게 못 할 때가 많습니다.
- 주일을 잘 지켜야 되는 줄은 아는데 … 유혹을 물리칠 용기가 없어 문제입니다.
-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 용기가 없습니다.
-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구별해 드려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
시작하는 용기가 문제입니다.
- 전도해야 하는데 … 말을 꺼내는 용기/담대함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담대함이 없으면 세상 삶에도 사람대접 받지 못합니다.
요즘에는 군대에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1974년도에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그때 용무가 있어 중대장실에 들어가려면
입구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도 좋습니까?”하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올 때도 큰 소리로 인사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때는 왜 소리 소리 지르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당함, 자신감을 가르쳐 준 것 같습니다.

저는 어디에 전화를 해도 제 신분을 먼저 밝히고 전화 받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고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용무 때문에 전화 했다고 하면서 물으면 자세히 알려주고
그때 바로 알 수 없는 것은 확인하여 제게 전화를 걸어 알려 줍니다.
이렇게 당당해야 합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어느 때 강하고 담대해야 할까요?
빈곤과 실망 앞에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은 가진 것이 없으면 맥이 빠지고
열등의식이 생기고 공포심이 생기고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럴수록 더욱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가난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빌4:12)
많이 가졌든 못 가졌든 하나님 앞에도 당당히 나아가는 사람은
세상 앞에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힘든 시련에서도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시련도 이기는 승리를 배워야 합니다.
제 책상에는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이 지은 아주 작은 책이 늘 놓여 있습니다.
그 책은 [Unto the Hills]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When we come to the end of ourselves,
we come to the beginning of God.”- Billy Graham -
“우리가 우리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작점에 도착한 것이다.”- 빌리 그래함

성경에 보면 “두려워 말라”는 말이 365번 나온다고 합니다.
날짜를 맞추어 보면 하루에 한번씩/매일 매일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련 속에서도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박해와 정의감에 대해서도 담대해야 합니다.

3 성도는 박해를 받아 질 듯하나 이기고,
약해질 것 같으나 강해지는 사람입니다(고후6:3~10).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3~10)
- 홍해 앞에서도 담대했던 모세의 용기와 담대함을 보십시오.
- 골리앗 앞에 만군의 여호와를 믿고 나아갔던 다윗의 용기/담대함을 보십시오.
- 죽음 앞에서도 담대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사드락/메삭/아벳느고)의 용기를 보십시오.

이런 담대함이 사도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소원도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하는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낮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면, 주님을 높이면 주님께서 우리를 높이 들어 쓰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 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했고,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후5:13) 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함께 읽습니다.

“ …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
이 말은 죽어서 유익하다면 죽는 것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 앞에서/짐승 앞에서 …
담대하게 찬송하며 죽어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용기와 담력의 근거가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에서 존귀하게 되는 것을 열망했던 이유는
죽어도 그에게 득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찢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피흘림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기에 천국을 보장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부끄럼 당치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큰 용기를 가지고 살도록 애쓰며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높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의 편이시고 그런 자를 들어 쓰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결심하고 살아도 …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삼키려는 것들은
우리를 향해 우는 사자처럼 계속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를 보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심장의 사람,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
말씀과 기도로 무장된 사람 … 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나 때문에”우리 집안이 명문가가 되고,
“나 때문에” 내가 졸업한 학교가 명문학교가 되고,
“나 때문에” 내가 다니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고,
“내가 살기 때문에” 내가 사는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가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는 일에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욕심을 이루려는 야망(ambition)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비전(vision)으로 살면
훗날“잘 했다. 멋지다” 칭찬하는 자리의 주인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바울이 가졌던 기대와 소망,
그 기대와 소망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가는 자가 아니라
우리가 그 기대와 소망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세상에 살며 얻은 소득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성도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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