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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 견고한 언약을 붙들고 (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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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견고한 언약을 붙들고"

  제가 지난 주일에 느헤미야를 강해하면서 진정한 회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먼저는 심령의 자복하는 역사가 우선되어야 하며 다음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방향전환 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고 말씀드렸고 그다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단계로 발걸음을 옮겨야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이며 아울러 이런 회개운동이 가정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민족가운데로 번져 대각성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외에 오늘 말씀에 나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하나님 말씀을 배반하고 징계 받은 것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견고한 말씀을 붙들겠다고 서원하며 기도하는 것을 문서로 남기게 되는데 이것 또한 진정한 회개의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에 대한 결단이 문서에 기록되었습니다.  본문 38절에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인을 쳤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말씀에 동의 한다는 결심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 10장에 서명한 84명의 명단이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가운데 한 말씀을 붙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는 성경말씀 한 구절 가지고 오만명을 먹인 사람입니다.
  시편 68편 5절에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이 말씀 붙들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 말씀의 응답을 오만번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붙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없습니다.
  저도 신학교 들어가기전에 사도행전 20장 24절을 붙들고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왜 말씀을 붙들어야 하는지 이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말씀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은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9장 7절에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라고 한 것 처럼 말씀대로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원시언약이라고 하는 창세기 15장 17절에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언약을 꼭 지키신다는것입니다.  언약은 ‘cut’ 로 하나님이 ‘자르다’, ‘쪼개다’ 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제물을 쪼개고 그 사이로 지나가시고 그 언약을 꼭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횃불언약이라고도 합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서 11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했고,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란 하나님의 입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이기에 하나님이 다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언약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서 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한 말씀은 인간이 보기에 더딘것 처럼 생각되더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4절에서 15절에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주고 복준다고 하십니다. 거듭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는 하나님의 약속을 강조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로마서 4장 23절에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라고 한 이 말씀이 저는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이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는 복을 받고 그가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며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복을 아브라함에게만 아니라 저에게도 주신 줄 믿습니다.  저와 제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나라가 축복의 통로가 되기 바랍니다.

  두 번째, 나의신앙의 견고함을 위해서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10장 30절에 “우리 딸은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 이 말씀은 자녀의 결혼에 있어서 잡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자기 가정에 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데려오면 이방이 섬기는 우상 신이 함께 오기 때문에 이런 결단을 한 것입니다.

  요즘을 포스트 모더니즘시대라고 하는데 이것의 특징은 모든 것이 괜찮다고 하는 허용입니다. 모든 종교를 통해서 결국에 좋은 곳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것인데 절대가치가 없습니다.  구원 얻는 길은 다른 길은 없으며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는 것을 뒤엎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자기 갈 길로 가며 갖가지 중독에 빠지는 것이 죄악입니다. 길과 진리 되시는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거기에만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교회가 부활신앙이 약했기 때문에 신앙이 흔들렸습니다. 우리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마지막으로 이 말씀 앞에 순종하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느헤미야 9장 29절에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이 떨어져도 듣지 않고 그 말씀을 등 뒤로 돌렸습니다.
느헤미야 9장 26절에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 교만해서 말씀을 등 뒤에 두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백성에게 서약하고 지키게 했습니다.
  순종하며 지킬 것을 말하면서 특별히 두 가지를 말합니다. 안식일을 지킬 것과 십일조입니다.
  느헤미야 10장 31절에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 칠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 라고 한 이 말씀을 우리가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에서 안식을 지키지 못했고 돌아와서도 성전재건과 성벽재건으로 바빴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식일을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앞으로 철저히 지킬 것을 서원하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일주일에 첫날입니다. 첫날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나머지 엿새도 하나님께 속해 있음에 대한 고백인 것입니다.  내 삶의 영역에 남은 엿새 동안을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오늘날 주 5일 근무제로 도입하면서 성수주일 개념이 희박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르바 던은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 안식일이 우리 인생길을 지켜준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 생명을 우리 건강을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안식일이 없는 가정과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 축복이 되는 삶입니다.

느헤미야 10장 37절에서 38절에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에 두고 또 우리 물산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물산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하나가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 곧 곳간에 두되” 라고 했습니다.
  모든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 정신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신앙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국의 켐벨 몰간 “헌금은 단순히 물질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헌신 없는 헌금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헌금 없이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은 드리기 힘들겠지만 과부의 두 렙돈을 귀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실어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많이 벌어서 많이 드리기 바랍니다.

  시편 119편 11절에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디모데후서 1장 13절에서 14절에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우리 자녀에게 안식일 지키는 것과 십일조 드리는 것을 철저히 가르치기 바랍니다.
이 두가지만 잘 지키면 하나님이 성공의 열매를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축복의 반열에 다 서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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