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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갈 사건 (수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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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광야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제 요단강을 극적으로 건넜습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다된 줄 알았는데 웬걸,
      금성철벽 여리고성이 버티고 서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바로 축복의 땅에 들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축복의 땅에 들어 왔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축복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된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오늘 본문말씀이 말하는 길갈사건에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5:1절 말씀은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의 종식을 고하는 요단강을 건넌 후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경 당시 가나안 족속들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5:1절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1절)
1절 [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합니다.
여기에 요단 서편 아모리 사람, 해변의 가나안 사람은
    가나안 족속의 대표하여 지칭하는 말입니다.
본래 그들이 졸장부가 아닙니다.
    도리어 정탐군들의 보고는 아낙 자손 대장부요 우리는 메뚜기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문을 듣고는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더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때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앞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교회 앞에 어려움이 닥쳤으니 당장 긴급 당회를 열었을 것입니다.
아마 장로님 가운데는
목사님! 제가 출발하자고 했을 때 출발했으면 요단강이 범람하지 않았을텐데
      왜 하필 요단 강물이 이렇게 넘쳐서 홍수가 났을 때 입니까?
      이제 어떻게 하시렵니까?
      목사님이 책임지세요.
그러나 좀 교양이 있는 장로님 같으면                   
    장로님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지금 책임추궁 할 때가 아닙니다.
    목사님! 제 조카가
    지난번 아테네 올림픽 수영 자유형 200m 금메달리스트인데
    그 애 시켜서 얼마나 걸리는가? 얼마나 깊은가 자료를 수집하여
    전략을 잘 세워서 건너가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아마 이런 회의 장면을 하나님이 보시고 계신다면
    무어라고 말씀하실까요?
여기에 마음이 녹았다는 말은 촛물이 불에 녹듯이 흘러내린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는 말은  ‘호흡을 멈추다’ ‘호흡을 빼앗기다’입니다.
    그러니까 기절해서 죽기 일보직전이다 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싱긋이 웃으며
    야~! 내가 다 손 봐났는데
    너희들 제발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축복된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우리 주님이 이미 이기셨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자꾸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은
      우리가 자꾸 사탄 쪽으로 머리를 들여 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적인 싸움에서 대부분의 패배는
      우리가 포기하거나, 아예 지기로 결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하필 가장 범람한 때에 이스라엘을 요단 강가로 인도하셨나?
그 답은 4;12절부터 나오는
요단 강가에 세운 기념비에서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 강 복판에 돌 열두 개를 취하여
        강 언덕에 기념비로 세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그러니 하나님께서 범람하는 요단강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을 나타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때를 잘 맞추어 요단강을 바지 걷고 쉽게 건넜다고 하면
지금 버티고 서 있는 여리고 성 사람들에게
              떼죽음을 당했거나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단 강물이 범람할 때                       
    여리고 성 사람들이 어떻게 할지 가만히 지켜보니
강물이 절벽 같이 멈춰 서면서 사해로 흘러가는 물은 완전히 끊겨집니다.
그러니깐 저들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적의 마음을 녹이고 정신을 잃게 하시려고
        범람하는 요단강으로 막아서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니
    여리고성 사람들이 완전히 기절초풍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여리고를 향하여 돌격 앞으로 하지 않고
    스톱! 하고는 길갈에 몇 날을 머물게 합니다.
그것은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 위해서는
    길갈의 사건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 언덕 길갈에서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참조/4:19절이하)
그럼 길갈의 사건이 무엇이냐?
1. 먼저 4:19절 이하에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길갈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러니 길갈은 요단강 갈라진 사건의 기념비를 세운 곳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기념비를 세워라 했습니까?
21절 [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
22절-24절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홍해를 말리시고 건너게 하심같이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건너게 하였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고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을 나타내 보이므로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위하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부흥의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 열 두 돌 볼 때 - 무얼 생각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흥의 신앙에 눈이 뜨여졌을 것입니다.
길갈의 열 두돌 기념비는 바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기념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나타내는 기념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가나안 땅 사람들이 이렇게 겁을 먹고 있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쳐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상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3. 여리고 성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서 행한 할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2-9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 정복을 앞두고 무어라고 합니까?
2. 2절에 할례를 행하라고 합니다.                     
2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절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할례가 무엇이냐? 남자의 양피를 베는 것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여기에 <그 때에> 하는 말은                         
요단강을 건넌 후 이지만 또한 여리고 성 앞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지금 여리고 성 점령이라는 전쟁을 앞두고 남자들이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이것은 도무지 병법은 말할 것도 없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말입니다.
아마 이스라엘은 다 기억할 것입니다.
창34:에 딸 디나의 사건 후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 사람들에게
  할례 받으면 동생 디나를 주겠다고 해 놓고
  제일 고통스러운 3일째 세겜 성 남자들을 다 죽여 버렸던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할례를 받는 다는 것은 도무지 상식에도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대로 순종을 합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할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남자들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출애굽할 때 나온 20세 이상 남자들은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다가 다 죽었습니다.
이제 광야에서 태어난 새 세대는
    광야생활 노중에는 할례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 주인공인 새 세대에게 할례를 베풀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리고 성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때에 할례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1) 본래 할례는 하나님 백성의 표식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백성만이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행하므로 하나님 백성임을 확신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입니다.
    어디 가더라도 하나님 백성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 라도 하나님 백성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표식이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 앞 길갈에서 할례는 하나님 백성의 표식의 차원을 넘어
2)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6절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장정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않았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7절에 새 세대는 광야의 노중에서는 할례를 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할례 없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례 없는 자가 무엇입니까?
물론 여기에서는 단순히 환경 상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지만
성경에 할례 없는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할례의 의미는 구약에서도
신10:16절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롬2:29절에
[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하느니라 ] 고 합니다.
그러므로 할례의 신령적 의미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고 나니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고 합니다.
8-9절에 [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한 장소를 길갈이라고 불렀습니다.
길갈은 <굴러 버렸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는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고 합니다.
애굽의 수치가 뭡니까?
    말로는 하나님 백성이지만
    삶 속에서 애굽의 노예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치라는 말은 송곳으로 아픈 곳을 지른다는 말인데
          바로 우리의 약점을 말합니다.
광야생활의 이스라엘의 약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이스라엘 백성 보세요.                           
출애굽 하고도 광야생활 가운데 여차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 !
그곳에서는 생선 부추 마늘 등을 실컷 먹을 수 있었는데 하면서
        아~ 옛날이여 하는 습성들을 말합니다.
이것이 애굽의 습성이요 이스라엘의 수치요 약점인 것입니다.
아무리 가나안 땅에 들어와도 애굽의 습성
  즉 육신적이고 세속적 근성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으면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내일 교우 여러분 !                               
앞으로 비전 30년이 내 앞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나의 고질적이고 못된 습성 즉 애굽의 수치를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엡4:25절 이하에 보면
이 우리가 베어 버려야할 양피는 
  어떤 이에게는 거짓이 될 수가 있습니다. 혈기가 될 수 있습니다.
  도적질이 될 수 있습니다. 더러운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고집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 가지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나를 육신적으로 이끌고 갑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의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앉은 이 자리가  바로 나의 길갈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고질적인 육신적인 습성과 고집들이 굴러 가버릴 때
    나를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성이 하나님의 역사로 무너질 줄 믿습니다.

할례를 행하기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음 한 일이 무엇입니까?
4.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킨 것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입니까?(10-12절)
3) 10절에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진입하자마자 두 가지 의식을 행합니다.
한 가지는 할례의식이고 
또 한 가지는 유월절 절기를 지킨 것입니다.
둘 다 그때에 상황으로 봐가지고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언제 기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
    이런 축제행위는 무모한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1)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송축하는 절기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구원의 은혜의 감격을 말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앞에 여리고 성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대책이 없습니다.
    대책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라 합니다.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의 저력은 바로 구원의 감격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는 이상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이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문제 앞에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머리를 짜내는 것보다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입니다.
앞날이 내게 축복의 가나안 땅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은혜 받아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저께 오래간만에 선교사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 김 목사 세월이 빨리 가는 것이 놀랍지?” 라고 했더니
이 친구가 하는 말이
“ 세월이 빨리 가는 것도 놀랍지만, 하나님게서 베푸신 은혜가 더 놀랍네 ”
사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주일 예배 때마다 유월절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주석에 보면
요단 강 도하로 말미암아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여리고 성 사람들이 볼 때
그 기세를 완전히 꺾어 버리는 역설적인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금성철벽 여리고 성 앞에서도
  잠잠하기는커녕 축제 분위기 속에 절기를 지키니
      야~! 뭔가 굉장한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러니 더 문을 꽁꽁 닫고 떨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축제의 사람, 감격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귀와 세상이 가장 우리를 두려워 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백성이 바로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갈 때입니다.
사탄은 똑똑한 사람, 돈 많은 사람, 외모가 출중하다고 겁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 두려워합니다.
이스라엘은 일 년에 한 차례씩 유월절 절기를 지켰지마는
오늘 우리는 때마다 일마다 십자가의 예수가 내 마음에 주인이 되어
    구원의 감격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살아갈 때
    문제와 대적을 당해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가까이 왔을 때 누구를 만납니까?
5. 여리고 성 정복에 있어서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누구이며 이 사건의 영적의미가 무엇입니까?(13-15절)
길갈에서 할례를 시행하고 유월절 절기를 지킨 후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여리고 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마주 서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고 물으니   
[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
그러니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며
[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하니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합니다.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했습니다.
[ 네 발에 신을 벗어라 ]
이렇게 여리고 성 정복은 수1:3절에 약속한 발바닥 사건의 현장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준비되기만 하면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특히 당신의 힘을 필요로 하는 백성들에게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사43:2절에 물 가운데 지날 때도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도록
      불 가운데로 행할 때도 타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심지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 던져졌을 때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당신의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케 하십니다.
단 우리가 그분 앞에 신을 벗는다면
  어떤 곤경 가운데서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 주십니다.
  어떤 대적의 화살 가운데서도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 앞에선 여호수아의 이 장면은                 
모세가 시내산 불붙는 가시떨기 가운데서 소명을 받을 때 장면과 같습니다.
이때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님이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는 말씀은
    종의 자세 즉 복종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 대장이고 너는 졸병이 되어라 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승리의 비결 즉 능력 있는 삶의 비결은
    바로 예수님 대장 삼고 나는 졸병이 되어 따라가면 됩니다.
내 인생의 행복과 승리의 비결은 바로 내가 예수님의 졸병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는 `로또`입니다.
인터넷에서도 검색 1위가 ‘로또’입니다.
물론 로또에 1등 당첨이 되는 사람에게 그것은 말할 수 없이 큰 행운일 것입니다.
특히 1등이 자기 혼자 밖에 없을 때 그 상금액은
        일반인들은 평생 만져볼 수 없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행운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잔디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왜 네 잎 클로버를 찾습니까?
사람들이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것은 그것이 ‘행운’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서 뽑았다가
그냥 내버린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행복’입니다.
행복이 내려놓는데 있답니다.
즉 하나님 앞에 신을 벗는데 있습니다. 종이 되는데 있습니다.

항상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자면 비결은 한가지입니다.
모든 것 내려놓고 예수님 앞세우고 우리는 뒤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알고 경험 있다고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말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왕이요 대장이요 주인입니다.
    거기에는 여리고 성이 무너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항복할 때 그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항상 주님 앞에 복종의 자세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대장 삼고 나는 그 분의 졸병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여리고 성은 무너질 줄 믿습니다. 

우리는 문제 앞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전에
눈을 들어 군대장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장벽 앞에서 장벽을 바라보기 전에
눈을 들어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앞으로 비전 30년은 우리 교회 앞날에 약속된 축복의 시기입니다.
우리의 앞날을 좌우하는 긴장감이 도는 순간들입니다.
우리가 비전 30년이라 선포한다고 새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 날과 새 역사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신앙의 삶에 길갈의 사건이 있기를 바랍니다.
1. 부흥의 신앙에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2. 마음에 할례를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 고질적인 애굽의 수치를 굴러버리세요
2. 유월절 -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세요. 
3. 예수님 대장 삼고 나는 졸병이 되는 복종의 자세로 서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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