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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뜻은 단순합니다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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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님의 뜻은 단순합니다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

우리나라는 참 좋습니다. 새해가 두 번 있습니다. 양력 1월 1일이 있고, 음력 1월 1일이 있습니다. 한 해가 바뀌는 때는 양력으로 기준을 삼고, 나이를 먹는 기준은 음력으로 삼습니다. 음력 설은 정신적 성장의 첫 출발을 의미한다 할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 설날입니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한 살 더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고 올 한 해가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나 모든 분들이 올 한 해 오늘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우리는 인생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 합니다. 시험을 앞둔 사람은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어느 길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궁금해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아주 단순하게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의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나 그 일에서 어떤 훌륭한 업적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느냐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서 실패할 수 있고 부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그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실패한 만큼 우리 인격이 더 연단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은 성공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지위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느 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고 묻지만 주님은 우리 안에 얼마만큼의 사랑이 있나, 얼마만큼의 기쁨이 있나, 얼마나 감사했나, 얼마나 기도했나 하고 묻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격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이 인격을 가지고 살지 일이나 물질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것은 우리가 행한 일들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일이나 물질은 천국에 들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은 우리 인격과 마음은 어느 곳으로건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 일이나 그 일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분입니다. 그분이 무엇이 부족하다고 물질을 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물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받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드릴 때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우리가 드리는 수많은 물질보다 말씀을 지켜 공의를 따라 살려하는 모습,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쉽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건 상관없습니다. 그 일에서 성공하건 실패하건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 모든 일중에서 기쁨이 있느냐, 기도가 있느냐, 감사가 있느냐 하고 물으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체 장애자로 태어나 평생을 침상에 누워 생활한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 침상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에 대해 감사하고, 하나님을 인해 기뻐할 때, 또 다른 이웃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두 다리를 가지고도 그 마음에 항상 불평과 원망, 슬픔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난장이가 있었습니다. 이 난장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이 난장이의 아픔은 자기가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난장이가 잘 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것은 두 발로 공을 굴리고 손으로 접시를 돌리는 재주였습니다. 그래서 이 난장이는 밤마다 주의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공을 굴리고 접시를 돌립니다. 이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그 교회 신부님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난장이의 곁에서 난장이의 땀을 닦아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마음을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을 받으십니다.

제 경우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지금 개척교회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이 개척교회를 부흥시켜 대형교회를 만드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제 자신이 작은 교회건 큰 교회건 그 일을 기쁨으로 섬기며, 감사함으로 받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 자체를 기뻐하시며 이것이 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이나 어떤 업적에 굶주리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굶주리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의 사랑입니다.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이 관계를 기뻐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일로 하나님의 사랑을 채우려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항상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염려하고 낙담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무어냐 하면 기쁨입니다. 기쁨이 없다면 신앙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갑자기 부자가 된다거나 갑자기 우리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바로 바뀌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기쁨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의 얼굴이 믿지 않는 사람과 다릅니다. 그 속 안에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있기에 얼굴이 빛이 나고 윤기가 있습니다.

기뻐하라는 것은 명령이지만 이것은 율법은 아닙니다. 내가 싫은데도 억지로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엄청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값없이 우리의 모든 죄와 인생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허물 많은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기쁨을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가지고 있는 자의 기쁨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어떤 농부가 밭을 갈다가 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항아리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담겨 있습니다. 이 보물을 발견한 농부가 자기 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사람들이 알까봐 그 보물을 당장 꺼내지는 못하지만 이 농부의 입가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가 미쳤나 할 것입니다. 허름한 집에 돌멩이 투성이인 밭을 가지고 뭐 그리 기뻐하나? 할 것입니다. 그러나 농부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 몰래 숨겨 놓은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만일 기쁨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내 안에 숨겨진 예수라는 보물의 가치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회복하는 길은 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찮은 미물에 지나지 않은 나를 위해, 또 엄청난 죄의 짐을 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 하여금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이 놀라운 사랑을 다시 기억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라는 것은 명령이지만 또한 이것은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내 힘으로 하지 않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우리 의지를 동원해서 억지로라도 기뻐하려고 노력하면 우리 속에서부터 기쁨의 샘이 솟습니다. 옛날에 보면 손잡이가 작두형태로 된 물펌프가 있습니다. 이 물 펌프에서 물을 뽑아 쓸려고 하면 먼저 물 한 바가지 물을 부어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지하에 있던 시원한 물이 콸콸 솟아오릅니다. 이 때 처음 붓는 물 한 바가지를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다른 물들을 마중하러 가는 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물 없이는 많은 물을 뽑아 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 의지로 하는 기뻐하는 기쁨이 바로 이 마중물과 같은 한 바가지 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렇게 주님의 명령을 좇아 기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 기쁨의 샘을 터뜨리십니다. 도무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우리로 기뻐하게 만드십니다.

어떤 분이 귀가 이상이 생겨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남 성모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병명을 알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못 듣게 되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이분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한밤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귀가 열리고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이런 체험을 하고 나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분의 고백이 자기는 길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보아도 눈물이 날 정도라고 합니다. 길가에 떨어진 꽃을 보고 기뻐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휴지를 보고도 눈물이 날 정도라는 것은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이만큼 그 인생이 기쁨이 넘치는 인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쁨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기쁨으로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기쁨은 모든 것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사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일에 감사로 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기쁨이 없다면 그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교회의 봉사건 세상의 어떤 일이건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이 없다면 그 일을 내려놓고 다른 무엇보다 기쁨이 생기도록 먼저 기도하십시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자주 기도하라는 뜻이고, 모든 일에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주님께서는 일 잘하고 성공하길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에든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일에 열심히 기도했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입니다. 어떤 일에 성공은 했는데 전혀 기도하지 않고 이룬 성공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적으로 보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사귐을 갖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주시고 사건을 주시고 가끔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되는 때는 잘 나갈 때가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 때,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회를 타 우리가 사귀길 원하시고, 우리 또한 이 때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됩니다. 우리의 행복이라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사람 사이나 부부 간에 정이 드는 때는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같이 할 때나 어려움을 당할 때 입니다. 그 고난에 맞서 함께 싸우다 보면 어느새 정이 듭니다. 저와 제 집사람과의 정이 더 깊어진 때가 바로 지금 이 개척교회를 하는 순간입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항상 같이 하다보니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정도 바로 이때 생깁니다. 내가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일이든 우리는 이미 성공했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사귐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에 됐다 싶으면 그때 기도가 응답이 되면서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염려할 시간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제일 빠른 길입니다. 우리 신앙은 이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기도하고 이룬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계획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힘든 것은 그 결과나 책임마저 우리 어깨로 지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연약한 어깨로 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주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겠다”(요14:13)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순간 이 약속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제 그 책임은 하나님 것이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일의 성취나 성공의 부담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할 뿐이고 기도하면 성공한 것입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는 인생이 되길 원하십니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범사라는 것은 모든 일을 말합니다. 모든 일에는 좋은 일뿐만 아니라 궂은 일도 포함됩니다. 잘되고 좋은 일에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진짜 감사는 궂은 일이나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감사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에도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분의 인도에 자기를 맡겨드린다는 것이 바로 감사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천국은 다른 곳이 아니라 감사하는 자의 심령 가운데 임합니다. 주어진 현실이 어렵더라도 그것을 감사로 받는 순간 그 곳이 천국으로 바뀝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불평만 가득하다면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제가 잘 드는 비유가 장미꽃과 가시의 비유입니다. 어느 날 장미꽃이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왜 저에게 가시를 주셔서 제 인생을 어렵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가시를 준 적이 없다. 가시나무인 너에게 장미꽃을 선사했을 뿐이다.”

똑 같은 인생을 살지만 가시 때문에 불평하는 사람은 지옥을 사는 것이요, 자기처럼 가시 같은 인생에 장미꽃을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감사입니다. ‘로빈스 크루소’를 썼던 다니엘 디포우는 주인공을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무인도에 홀로 남은 사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감사의 조건을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이다”고 교훈합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을 정의하기를 “감사할 줄 모르는 두발 달린 동물” 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없는 것만 바라보기 때문에 불평이 나옵니다. 먼저는 우리가 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 감사입니다. 생명을 갖되 다른 짐승의 생명이 아니고 인간의 생명을 갖게 된 것이 감사입니다. 때가 되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된 것도 감사입니다. 현재 자신의 일이 있고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 또한 감사입니다. 만약 건강한 두 다리와 육신을 가지고 있다면 역시 귀한 감사제목입니다.

귀가 멀고, 말을 못하고, 눈이 먼 3중고를 겪었던 헬렌 켈러가 『내가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이라는 책에서 말했던 소원은 다른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사들이었습니다. 그녀를 가르쳐주었던 애너 슐리반 선생과 친구들을 보는 것, 바람에 나불거리는 아름다운 나무 잎사귀들과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을 보는 것,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과 이른 새벽의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을 보는 것,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과 큰 길가에 서서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을 보는 것, 네온싸인이 반짝거리는 거리와 쇼윈도우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는 것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눈으로 지금 보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여러분이 살고 숨쉬고 있는 오늘 하루는 어제 죽었던 사람이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내일이었다고요.

여러분이 서서 제대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감사입니다. 정범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 교포인데 교통사고로 평생을 전신마비로 살아야 되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브루클린 검찰청의 부장검사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쓴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단 하루만 걸을 수 있다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앞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는 것이다.” 그는 전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데 2시간동안 사투를 벌일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행복은 감사에 있습니다. 물질을 아무리 쌓아두어도 감사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적은 물질을 가지고도 감사하면 행복은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촛불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등불을 주시고, 등불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태양 빛을 주시고, 태양 빛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천국의 광명을 주십니다(스펄전). 감사가 많을수록 더 큰 감사로 채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뜻은 단순합니다. 그 뜻은 지금이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아니 우리의 평생이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순종하는 인생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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