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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역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라 (느 3:1-3, 롬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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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라 (느 3:1-3, 롬 16:1-5) 

  요즘 방송이나 매체에서 ‘시너지’라는 말을 하면 유식하다고 합니다.  제가 쓴 책 제목이 ‘시너지 목회’입니다.  제목 자체가 딱딱해서 잘 안 읽은 분들도 몇 분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통독했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와서 한목사님과 3년 동안 동사목회하면서 쓴 것이 시너지목회인데 시너지라는 말은 사실 과학적 용어로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란 '하나의 기능이 다중(多重)으로 이용될 때 생성되는 효과'를 말하며 상승효과(相乘效果)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시너지 목회’는 이 말을 목회에 적용해서 쓴 책입니다.

  한 목사님이 40년 동안 목회하시면서 이룬 사역과 사랑과 목회적인 다양한 경험들이 있으셔서 그에 대한 강점이 있고 저는 좀 젊어서 큰 비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회에서도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그 이상의 효과를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사역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라는 것입니다. 이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성경에 여러 번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를 거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할 때 장정만 60만이었으니 모두 다 합하면 200만이었는데 모세가 그 많은 사람들을 홀로 재판하며 힘겨워 할 때 그 장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 지적하면서 장로들을 세울 것을 권면했습니다.

  출애굽기 18장 17절에서 27절에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실찌로다 그대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 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재덕이 겸전한 자를 빼서 그들로 백성의 두목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베풀고 쉬운 일은 자단하더라 모세가 그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니라”고 한 것입니다.

  모세 혼자가 아니라 진실한 하나님의 일군을 세워서 이들로 하여금 일을 돕게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쉽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협동의 원리입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갈멜산에서 승리한 후 완전 탈진 상태에 있었는데 열왕기상 19장 4절에서 8절에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고 한 말씀에서 보면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추격한다는 말에 쓰러져 있는 초라한 모습의 엘리야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먹을 것을 주시며 다시 힘을 낼 것을 권고 합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으며 안식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저도 성도 여러분을 다 돌아보지 못하지만 부교역자 분들과 장로님들이 아론과 훌이 되어서 저를 도와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너지원리입니다.

  빌립보서 1장 15절에서 18절에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 때문에 갇혀있는데 저 사람처럼 복음을 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고 시기심이 나서, 혹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는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으므로 전처럼 활동을 잘할 수 없으니 어떤 사람은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전하는 것 까지도 바울은 기뻐했습니다.

  시너지 효과는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열심히 전도하고, 더 열심히 역사에 참여하겠다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 있어야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두 군데 읽었는데 공통적 특징이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서로 도와가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에는 성전재건역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로마서에도 수많은 바울의 동역자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사역에 임해야 하느냐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의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가 다 망해갈 때 리 아이어코카라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이 사람이 이 회사를 살려놓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을 가리켜 경영에 귀재라 했습니다.
  어떤 기자가 인터뷰하면서 어떻게 무너져 가는 사업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가 원리(principal)중심의 리더십, 실천(practice)의 원리, 일관성(persistence)의 원리, 즉 3P로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원리를 찾아보면,
  첫째, 협동의 원리입니다.

  1절에 ‘함께 일어나’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2절부터 보면 ‘그 다음은’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성벽건축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다음은 누구고 그 다음은 하면서 열거할 정도로 함께 일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원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개인기는 좋다고 하는데 협동심이 약하다고 합니다.  요즘 TV에 등장한 하인스 워드 도 성공한 이유가 협동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몸의 지체원리로서 협동의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2절에서 27절에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체의 원리입니다.  한 사람이 아프면 모든 지체가 다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즐거워하면 모든 지체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16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몸의 원리이고 지체의 원리입니다.  혼자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도 독불장군으로 일하면 안됩니다.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도 한 권사님은 혼자서 안내도 하고 식당봉사도 하고 꽃꽂이도 하고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는 본인도 피곤하고 다른사람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은사의 원리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서 11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사람들은 각각 은사가 다 다릅니다.  느헤미야에 보니까 3장 1절에 양문건축이 나옵니다.  양문은 양이 들어다니는 문을 말합니다.  그 다음은 3절에 어문이 나오는데 물고기 문을 말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자기집 앞은 자기가 건축하고 보수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를 건축하고 왔는데 각기 있는 곳에서 있는대로 콘크리트면 콘크리트, 목수면 목수일, 각자 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은사는 내가 먼저 그 일을 좋아해야 하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음악은 좋아하지만 지휘할 줄은 모르는데 음악을 좋아한다고 지휘자더러 뒤에 가만 있으라고 하고 내가 나서서 지휘한다면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은사대로 감당하면 됩니다.

  세 번째는 희생의 원리입니다.

  로마서 16장 3절에서 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1절에는 뵈뵈를 천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을 위해 목이라도 내 놓을 정도로 일하고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위해서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건축하다가 자금이 없어 중단되자 담임 교역자가 눈이라도 팔려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를 안 교인들이 다 같이 달려가 합심하여 헌금키로 하고 그 교역자를 도로 모시고 왔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이런분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희생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후배목사가 자기 것은 하나도 희생하지 않고 남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을 보고 제가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자기는 희생하는 것 하나 없이 당신은 희생에 대해 설교 말라’.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교회가 설 수 없습니다.

  넷째는 명예의 원리입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인격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사람이 백여명 명단이 나옵니다.  느헤미야에 70여명 로마서에 30여명 나옵니다.    제가 장례식장 가면 그 이름을 보고 갑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조문객들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안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많이해서 좋은 명예로서 이름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제가 20일부터 몇주 선교지 방문합니다.  주보에 광고된바와 같이 미얀마, 방글라데시, 필리핀을 다녀 옵니다.  기도와 물질로 협력 바랍니다.
  미얀마는 체육신학교를 다 지어서 준공예배에 참여차 다녀오겠으며,  방글라데시에 는 교회 건축을 위해 다녀 오겠습니다.  500만원이면 교회를 하나 지을 수 있는데 어느 한 개인이 헌금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태국 선교사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미나를 개최해주며 필리핀에 가서는 PTS 건축 진행을 점검하고 이사회를 가지며 장학금을 전달하는일을 하고 올 것입니다.  필리핀 신학생 한 사람의 등록금은 20만원입니다.  한 가정이나 구역, 기관, 소그룹에서 한 학생 돕기 운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산 것이 자기를 위해 산 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두 가지 이름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존귀한 이름을 남기는 사람, 불명예스런 이름을 남기는 사람.  어느 쪽에 속하든지 자신이 선택할 일인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귀족들은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5절에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라고 했고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1장 27절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한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이름이 하나님께 상급받을 만한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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