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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과 함께 기적을 기대하라!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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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전혀 문제를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저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다"  "저 집은 분명히 아무 문제가 없는 집일 거야!"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그 가정에도, 그 사람에게도 말못할 가슴 아픈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예외일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 교회는 정말로 문제가 없는 은혜로운 교회일 것이다"  아닙니다.  교회도 부족한 인간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마다 나름대로의 문제는 다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땅에 완벽한 인간, 완벽한 가정,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를 위기로 볼 것인가, 아니면 내 믿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로 볼 것인가?  이 선택의 능력이 믿음의 기준이 됩니다.  선택을 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믿음의 길이입니다.  믿음의 넓이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길이만큼, 믿음의 넓이만큼 주 앞에서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똑같은 문제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 문제 앞에서 불평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망하고 주저앉아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원망과 절망은 언제나 지옥을 만듭니다.  지옥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문제만 보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희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곳 천국에 오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간 좌우를 돌아보면서 "정말로 잘 오셨습니다"라고 축복의 인사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제 옆에 앉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한번 더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 모든 일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다 있습니다.  아무리 잘사는 사람일지라도, 매우 다복해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65억 인구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나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나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고통이 몇 배로 커집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고통이 덜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문제 앞에서 절망적인 감정의 포로가 되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문제를 보는 나의 시각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갖는 내 감정입니다.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짐승처럼 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사처럼 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문제 속에 파묻혀서 감정과 기분과 혈기로 자신을 파멸시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일관되게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제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명자가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 속에서 믿음의 주인공이 납니다.  문제가 있어야 능력도 있고, 문제가 있어야 은혜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야 기도도 있고, 문제가 있어야 하나님도 의지하게 됩니다.  문제가 있어야 사람이 사람다워집니다.

그의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는 아주 게으른 사람이 되던가, 아니면 아주 교만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아 실현의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에 직면했을 때 결코 감정과 기분의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언제나 낙심하고 낭패를 봅니다.  문제를 분석해 보면 실망하고 또 실망합니다.  사람을 보아도 언제나 실망합니다.  "내가 그를 얼마나 믿었는데…"  그러나 여러분, 어느 누구도 믿지 마십시오.  성경은 사람을 사랑할 대상으로 말씀하고 있지 믿어야 할 대상으로 말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을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믿으려고 하니까 자꾸만 요구하게 됩니다.  불평하게 됩니다.  비난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끝없이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대하게 되면 부족한 것도 사랑하게 됩니다.  모자라는 것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부분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시오.  그 이상을 요구하게 되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을 절대로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기 있는 저도 믿지 마십시오.  저도 부족함이 많고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께 붙잡혀서 최선을 다해서 사명을 감당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일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여러분이 아주 많이 사랑해주셔야 할 한없이 부족한 목사입니다.

문제를 위기로 본다거나 문제로 보면 우리는 절망합니다.  다수의 부정적인 의견들만 모여집니다.  위기감만 고조됩니다.  논쟁만 격화되고 서로간의 결함들만을 들추어냅니다.  거기에는 믿음도 없고, 은혜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하나님도 없고 오직 흥분한 자신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문제가 얼마나 크든지, 그 문제가 얼마나 꼬였든지 하나님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오직 구속한 주님만 나타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라고 하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축복의 기회이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문제로 자꾸 보면 목적도 없어집니다.  "내가 왜 사업을 하는지, 내가 왜 직장에 다녀야 하는지, 내가 왜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어야 하는지,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되는지,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문제를 문제로 자꾸 보면 집안에서 살기 싫어집니다.  꿈도 없어집니다.  미래도 없어지고 삶의 의미도 없어집니다.  고생한 보람도 없어집니다.  이제껏 나를 나되게 했던 모든 근원들이 다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을 바꾸십시오.  마음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은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어떠한 역사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면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모든 문제는 변화를 위한 하나님이 주시는 위대한 축복의 기회라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문제의 한 가운데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동편에 가셔서 예수님께서 안식도 취하시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넓은 바다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칩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물이 배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제자들은 겁에 질려서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이들이 무서워했다고 했습니다.  이 무서움은 그저 단순히 무서움을 느꼈다는 것이 아닙니다.  노도처럼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쉴새없이 차고 들어오는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무서웠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신비가 흐르는 바다입니다.  언제 어디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 바다에는 일기예보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인생 여정 아닌가요?  인생의 바다에는 일기예보가 없습니다.  항해를 하면서 풍랑을 만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풍랑은 결코 예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에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곤혹을 치루고 있는 것은 배를 젖고 있는 그들이 초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같은 제자들은 누구보다도 갈릴리 바다의 지형과 특성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이 갈릴리 바다에서 업을 삼고 살았던 어부 출신들입니다.  그러니까 인생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풍랑은 인생 항해가 서툰 사람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건강하던 사람도 질병으로 쓰러집니다.  노련한 경영가들도 사업에 실패를 겪을 수가 있습니다.  능숙한 신앙인들도 시험을 만나고 유혹에 부딪힐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의 제자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풍랑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요나처럼 불순종하여 도망하다가 만난 풍랑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심에 따라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음대로 순종하며 살던 사람들에게도 인생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시련과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풍랑은 믿음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는 불신자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믿음의 사람과 불신자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풍랑 속에서 반응하는 자세입니다.  불신자들은 풍랑을 위기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풍랑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시위하는 기회로 받아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시간에 예수님은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겁에 질려서 당황하면서 예수님을 깨웁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시면서 바람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때 제자들의 반응이 마지막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제자들은 바람을 꾸짖어 잔잔케 하시는 예수를 보고 놀랐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마가가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정말로 놀라야 될 일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주제 파악이 잘못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 광풍 속에서 고요히 주무시는 예수님의 인격!  엄청난 비바람 가운데에서도 편히 쉬시고 주무시는 예수님의 평안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놀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기적은 풍랑을 잔잔케 하신 사건이 아닙니다.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풍랑을 잔잔케 하든 더욱 거센 풍랑을 일으키시든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은 풍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잔잔케 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산을 세우기도 하시고, 산을 무너뜨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풍랑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할 때 평안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결코 평안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길지 않는 인생이지만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엔가 절실하게 깨닫는 것은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사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모든 것이 잘 준비되고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안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정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고, 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는데 거기서 결정적인 승리와 축복을 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사건이 손바닥 뒤집히듯이 너무나 쉽게 역전이 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그분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풍랑을 일으킬 수도 있는 분이시며, 풍랑을 잔잔케 할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환경을 잠잠케 해 주시옵소서.  풍랑을 꾸짖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여, 어떤 환경에서도 안식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어떤 풍랑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나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메리큐스 마네라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은 사업에 부도를 내고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살림을 다 잃어버리고 알거지가 되어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가 문방구에서 연필 하나를 훔치다가 들켰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깨끗이 죽자!  아이들을 재우고 가스를 켰습니다.  가스가 스며 나오는데 정신이 몽롱해져 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그래, 내가 죽을 생각을 하면서 왜 기도할 생각은 못했는가?'
아이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가스를 잠궜습니다.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데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 빈 집 하나를 얻어 새 삶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훗날 자녀들은 모두 멋지게 성공을 합니다.  그의 자서전적인 글 "근심이여 안녕"이라는 책 마지막 결론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이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용기로 바꾸어 보십시오!  백 번의 탄식보다 한 번의 기도가 당신에게 기적을 가져다 줄 것이요.  백 번의 절망보다 한 번의 믿음이 당신의 운명을 바꾸어 줄 것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고난 한 가운데 서 있을 때마다, '왜 내가 이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이유를 캐묻고 다닙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왜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서 그와 같은 고생을 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대신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그 시련, 그 풍랑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함께 동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시련을 당할 때에, 고독한 인생 길을 걸어 갈 때에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혼자 두지 않습니다.  늘 동행하신다.  언제나 우리 인생 항로에 동행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고난의 배 위에 동승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내 인생의 선장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여행을 하는 인생 바다라면 우리는 평안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에 배가 뒤집혀 죽으면 제자들만 죽습니까?  예수님이 그 안에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우리 예수님이 선장 되십니다.

어떤 한 소설가가 여객선을 타고 여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섭게 바람이 몰아쳐 옵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갑판위로 뛰어 올라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 하나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갑판 위에서 깡총깡총 뛰어 놀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손을 꼭 붙들고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무섭지 않니?  얘야, 너는 저 풍랑이 무섭지 않니?"
이 꼬마가 대답하기를
"아저씨, 제가 지금 선장실에서 나오는 길이예요.  우리 아빠가 선장이예요.  그런데 우리 아빠의 얼굴을 보니 아빠의 얼굴이 편안했어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우십니까?  불안하십니까?  예수님의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바라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과 불안이 내 마음을 엄습해 올 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얼굴이 평안하시거든 여러분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아무 일 없다고 말씀하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큰 광풍"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great windstorm"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크다고 할 때, '빅(Big)'이라고 하는 단어를 씁니다.  좀 더 클 때, 영어로 '그레이트(Great)'라고 하는 단어를 씁니다.  "큰 광풍"  그런데 예수님께서 풍랑을 꾸짖으셨더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다고 했습니다.  "아주 잔잔하여졌다"  영어 성경에서는 "great calm"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great windstorm",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사 "great calm"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심히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보십시오.  그레이트 광풍을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그레이트 고요가 흘렀고 그 엄청난 사건을 보고 제자들은 그레이트 감격, 그레이트급 경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광풍이 클수록 고요도 클 것입니다.  고난이 클수록 위로도 클 것입니다.  아픔이 클수록 더욱 큰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난소암으로 투병하는 소녀에게 아빠가 문안을 왔습니다.  딸아이의 손에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를 꼭 쥐어 주었는데, 아빠의 글씨로 그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딸아! 예수님과 함께 기적을 기대하자!"  사랑하는 딸아, 예수님과 함께 기적을 기대하자!  매일 아침 그 돌맹이를 붙들고 기도하는 소녀를 바라보고 약을 투약하러 왔던 간호사가 말합니다.  "기적은 매일같이 일어난단다.  오늘도 기적은 일어난단다."  용기를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던 이 소녀는 결국 투병생활에서 승리하고 퇴원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이 불리해 보입니까?  여러분이 타고 있는 배에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예수와 함께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기적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믿음에는 이적과 기사가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믿고 구한 것은 이미 얻은 줄로 믿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와 함께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이미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살아가십시오.

본문의 엄청난 기적 앞에 제자들의 마지막 물음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그분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이 당신과 함께 동행하십니다.  마지막 결론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아십니까?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한 생명이 예수를 만나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 바로 진정한 기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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