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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라 (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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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디언 추장이 나이가 들어 후계자를 물색했습니다. 추장은 부족들 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덕망이 높은 세 명의 용사를 불렀습니다.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표적이 될 만한 것을 하나씩 가져오너라. 그러면 너희들 중 한 사람에게 추장직을 물려주겠다."
  용사들은 전력을 다해 정상에 올랐습니다. 첫 번째 용사는 아름다운 꽃을 추장에게 바쳤습니다. 두 번째 용사는 기암괴석을 표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추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용사는 빈손으로 내려와 추장에게 말했습니다.
  "추장님, 산꼭대기에 올라보니 건너편에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지금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추장은 세 번째 용사에게 추장직을 물려주며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의 명예만 바라보며 산에 올랐으나 이 용사는 우리의 미래와 행복을 생각했다."
  '나'가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어느 누구도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피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고난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쉽고 적당히 하면 고난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과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그때그때 달라진다면 고난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믿고 살고 봉사하게 된다면 그만큼 고난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고난은 유익이고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인간은 고난 없이 겸손, 기도, 성숙, 영적으로 충만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의 불충분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성도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유기적인 관계에서 오는 고난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섬기고 고난을 받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며 기쁨이며 가치입니다. 부족한 우리들을 써 주시고 사용해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기술이나 지식이 부족하고 나이도 많아서 써 주는데도 없는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꼭 필요하다고 불러주시고 사용해 주시는 은혜가 너무 큽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최고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교회를 위하여

  본문 24-25절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앞으로도 기꺼이 고난을 감당할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이미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으며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난을 통해 복음이 선포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부흥됨을 기뻐하였습니다. 교회의 일군이 받는 고난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교회 때문에 받는 고난은 어떤 고난이든 간에 달게 받아야 합니다. 고난을 피하려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상급도 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교회를 위하여 고난 받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핍박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 때문에 눈물 흘리고 고난 받는 성도들 때문에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교회를 어렵게 하는 방해꾼이나 사기꾼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며 일하는 일군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 진을 치자 발락과 그가 다스리던 모압 족속과 미디안 족속은 근심에 싸였습니다. 백성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겠다"(출23:27)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네를 막는 모든 민족을 정복하고 최강대국인 애굽을 섬멸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발락 왕은 예언자 발람에게 사자를 보내 도움을 청했습니다. 발람은 영적인 정확성과 통찰력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왕은 그간 발람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알았습니다. 발람이 축복하는 이들은 복을 받고 저주하는 이들은 화를 입었습니다. 발락의 사자들이 두 차례나 다녀간 후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할 생각으로 발락에게 승낙했습니다. 왕이 제시한 돈과 명예에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이튿날 그들은 바알의 신당에 올랐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았습니다. 그는 왕에게 단을 일곱 개 쌓고 단마다 제사를 준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으나 엉뚱하게 축복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왕은 노했습니다.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민23:11)

  그러자 발람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발락이 원하는 대로 저주를 할 수 있을까 해서였습니다. 지대가 더 높으면 저주가 더 강력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단을 일곱 개 쌓고 다시 제사를 드렸습니다. 발람은 사술의 저주를 하려고 다시 입을 열었으나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저주를 하려고 할 때마다 발람의 입에서는 축복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람의 두 번째 예언에 의미심장한 표현이 나옵니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민23:23)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할 수 있는 사술이나 복술이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정말 감격스럽고 강력한 선포입니다. 이 진리를 현대에 적용하여 이렇게 풀어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할 사술이 없고, 그분의 교회를 해칠 복술이 없도다!"
  우리는 이 약속에 힘을 얻어야 합니다. 무당과 점쟁이가 소리지르고, 지껄이고,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마법을 걸고, 주문을 외우고, 저주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자녀는 한 사람도 해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이길 수 없습니다. 잠언 26장 2절은 그 진리를 강조합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오늘 우리 교회가 있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들이 기도와 봉사와 물질과 몸으로 교회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방해하는 어리석고 저주받은 사람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그리스도를 위하여

  본문 27절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본절은 복음의 비밀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풍성함'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깊이 참으심의 풍성함, 영광의 풍성함, 지혜의 풍성함, 은혜의 풍성함을 즐겨 썼습니다. 바울은 '놀라운 만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풍성함'을 사용했습니다.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옴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최고의 영광이고 소망입니다. 이방인인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 즉 골로새 교인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것, 이것이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성취된 것을 말해줌과 동시에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누어 가질 소망의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며 생명입니다. 누구에게나 소망이며 풍성함입니다.

  사람이 겪는 난관과 질병과 문제와 고생의 원인이 반드시 불순종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순종하며 살면서도 고난 당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윗사람인 사울의 진노를 살만큼 거역한 일도, 잘못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쫓겨다니며 동굴과 사막과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집도 잃고 고국도 잃었습니다. 오랜 시간 갖은 고생을 하며 유랑했습니다. 다윗이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은 하나님의 손이 새로운 왕을 빚고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삶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지혜를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요셉, 한나, 다니엘, 예레미야, 욥 등 순종하면서도 고생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의 고생과 사술에 빠진 사람의 고생의 차이는, 순종하는 이는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질없이 벽에 머리를 찧고 있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산을 빙빙 돌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맙시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가 되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삽시다. 그 분께 몸, 마음, 삶, 젊음, 시간, 인생, 최고를 드립시다. 이것이 영원한 재산이고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행위입니다. 결코 손해를 보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의 영원한 영광이며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곳은 어둠이며 절망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바로 그 곳은 최고의 영광이며 소망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함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사명을 위하여

  본문 28-29절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사도의 전도에 의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사도의 가르침을 듣고 따라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설 수 있도록 신앙의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수행하는 직무는 궁극적으로 성도의 성장과 성숙과 완전함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그리스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사도의 수동성 즉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진가를 드러내는 것은 바울 자신의 사도적 소명 의식의 철저성과 전적 헌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이방선교를 수행하면서 괴로움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교회를 위하여 헌신한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주심과 바울의 사도적 충성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갖추고 있는 사도 바울도 '힘을 다하여 수고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계급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우리는 다만 '충성'할 뿐입니다. 사명을 위하여 생명을 드려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위해 부름 받았고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왕이 길 한가운데 큰 돌을 굴려다 놓고 누가 그 돌을 치우는가 숨어 지켜보았습니다. 한 상인이 지나가며 "어 쓸모 없는 돌이 굴러 나왔어"하고는 자기의 유익이 없으니까 그냥 가 버렸습니다. 한 관리가 지나가며 "도대체 누가 이 돌을 여기에 버린 거야"라고 불평하며 지나갔습니다. 왕은 이 나라의 도덕 수준을 탄식했습니다. 그때 한 농부가 채소를 싣고 시장에 가다가 그 돌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 돌을 들어서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이 있던 곳에 주머니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많은 돈과 한 통의 편지가 들어 있는데 '이 돈은 누구든지 이 돌을 치우는 사람의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장애물이 길을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장애물 뒤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거역하거나 잊어버리지 맙시다. 게으르거나 핑계하지 맙시다. 사명은 은혜이고 축복의 기회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의 사명을 잘 감당합시다. 충성하면 건강, 물질, 능력, 기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순절 기간이며 부흥회가 열립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박수와 갈채를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교회와 그리스도와 사명을 위하여 충성함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자랑스러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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