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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문 앞 광장에서 (느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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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위기의 나라 대한민국

18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은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저서를 통해 세계를 호령한 대제국 로마가 멸망한 원인 다섯 가지를 꼽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혼율 급증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 둘째는 과중한 세금과 세금의 남용, 셋째는 비정상적인 쾌락과 유흥의 추구, 넷째는 무분별한 군비 확장과 인구의 감소, 다섯째는 종교의 타락입니다. 놀랍게도 이 다섯 가지 원인들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이혼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수많은 가정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세금은 날로 치솟고 사회는 쾌락이 만연하여 방탕하고 타락했으며, 정부는 끊임없이 군비를 증강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온갖 미신과 우상숭배와 이단이 판을 치고 특히 교회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와 종교지도자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부쩍 "못 살겠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과거에도 우리나라에 위기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역사 이래로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당해왔고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보릿고개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국가 전체가 부도가 날 번한 IMF 외환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예전에도 어려운 시절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힘든 때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적으로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혼란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사회의 윤리와 도덕이 붕괴되고 가치관도 혼란해졌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한 것인지, 그래서 어디서부터 이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 지 아무도 모르는 혼란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총체적 위기 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 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여러분, 제가 너무 상황을 비관적으로 말씀 드렸습니까? 그 정도는 아닌데 너무 심각하게 말한 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사회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이런 말들을 합니다. "뭔가 바뀌어야 해!" 맞습니다. 뭔가 바뀌어야 합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바꾸면 되겠습니까? 무엇을 바꾸면 나라와 사회가 변하겠습니까? 올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은 대통령이 바뀌면 나라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못 살겠다 바꿔보자"고 해서 바꾸었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통령 바꾸고 여당도 바꾸었더니 나아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목회자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해서 가급적 정치적인 발언을 안 합니다만 제 견해가 아니라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도자 몇 사람이 바뀐다고 나라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또한 "제도와 법이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는 것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읽은 느헤미야서 말씀을 통해 나라와 민족과 사회를 바꾸는 방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바꾼다'는 말은 사람 몇 명 바꾸거나 겉모습 조금 바꾸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예 송두리째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요즈음 기업이나 공공기관마다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만 이 '리노베이션'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새롭게 하다,' '혁신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뒤집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바꾸려면 제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도, 공공기관도, 그리고 사회와 국가조차도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이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을 뼈저리게 느낀 것입니다. 옛날같이 대충 겉모습만 바꾸어서는 망할 수밖에 없으니 아예 혁명적으로 뒤바꾸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기업이나 공공기관들 대단합니다. 근본적인 사고와 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 혁신적 리노베이션에 성공하면 살아남지만 이것을 못하면 사라지고 맙니다. 1920년대 말 미국에서 비슷한 두 회사가 창립됩니다. 하나는 제니스(Zenith)라는 회사고 또 하나는 모토롤라라는 회사입니다. 두 회사 모두 TV와 라디오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는데 1950년대 말 두 회사를 창립한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2대 회장이 취임하고 난 후 이 두 회사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지고 맙니다. 모토롤라는 삐삐라고 부르는 비퍼와 핸드폰 등 최첨단 통신장비를 생산하면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 한 데 반해, 제니스는 여전히 TV와 라디오만 고집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기업 뿐 아닙니다. 국민들로부터 '철밥통'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던 공무원들도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와 울산시를 비롯해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일 안 하는 공무원을 퇴출시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들을 교통량 조사나 체납 지방세 납부독려, 담배꽁초 줍기 등에 투입하고 6개월 뒤 재심사를 통해 복직 여부를 결정하며 끝까지 업무능력이 개선되지 않는 직원을 직위해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업도 변하고 공무원도 변하는데 정작 가장 안 변하는 곳이 국가라는 말입니다. 너도 나도 위기의식은 있는데 그 위기를 이겨낼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큰일 났다"고 말하고 심지어 "이민이나 가야겠다."고 한탄하면서도 나라와 사회를 바꿀 의지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업을 보아도 어떤 단체를 보아도 시대의 흐름을 앞서나가기 위해 체질과 기본을 송두리째 혁신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데 정작 이 나라와 민족을 송두리째 바꾸어 보겠다고 그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있기는 있습니다. 대통령 바꾸면 된다고, 국회의원 바꾸면 된다고 말합니다. 사학법을 개정하면 사학비리가 척결되고 주택법을 바뀌면 부동산 광풍이 잠재워진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조금은 바뀌겠지요. 하지만 완전히 바뀔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나라와 민족을, 이 사회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혁명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본문으로 들어가지요.

이스라엘 민족의 총체적 위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도 민족 전체가 망할 지도 모르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주전 587년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후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망하도록 믿고 의지하던 여호와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와 이역만리 원수의 땅에서 살아야 하는 3중, 4중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약 50년 후인 주전 539년 바사 임금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인 바사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고레스는 이전의 바벨론 임금들과 달리 정복한 나라들에 대해 포용정책을 쓴 사람이기 때문에 포로로 사로잡혀 온 유대인들에게 귀향할 것을 허락하고, 예루살렘에 파괴된 성전을 다시 세우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까지도 허락해줍니다. 그리하여 주전 538년에 첫 번째 유대인의 귀환이 이루어지고 그들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천신만고 끝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 후 약 80년이 지나 두 번째 예루살렘 귀환이 이루어지는데 이 때 학사 에스라가 돌아옵니다. 또 에스라가 돌아온 뒤 13년이 지나서 바사 임금의 술 맡은 관원(고위관료)이었던 느헤미야가 돌아와 유대의 총독이 되고 드디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이 정도 되면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성전도 재건되고 성전 예배도 다시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성을 지켜줄 수 있는 성벽까지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 정도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 새로워졌는지 모르지만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이 새로워지지 못했습니다. 포로생활과 귀환 이후 더럽혀지고 오염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마음이 아직 깨끗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삶조차도 갱신되지 못하여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구태의연한 습관과 삶의 방식을 더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안식일(13:15 이하)과 초막절(8:13 이하)처럼 예전에 지키던 이스라엘의 경건한 절기들도 다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방사람들과 여전히 교제하며 이방인의 딸을 취해 며느리를 삼고, 이방인의 아들을 취해 사위를 삼아 이스라엘의 혈통이 뒤섞이게 되었습니다(13:23 이하). 심지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아다의 아들 하나가 이방인인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습니다(13:28). 거룩하게 구별된 레위인과 제사장 가문조차도 이방인과 잡혼을 했던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애써 재건한 성전에 제사장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도비야가 큰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13:4). 이 방은 본디 소제물과 유향과 제사에 필요한 그릇과 레위인들에게 주는 십일조와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보관하는 장소였습니다. 거룩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방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엘리아십이 이방인 도비야와 가깝게 지내면서 성전의 방 하나를 그의 귀중품을 보관할 창고로  마음대로 쓰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성전의 거룩한 방이 이방인의 물건을 물건창고로 전락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영적생활의 중심인 성전, 그 중심의 큰 방에 이방인의 가증스러운 물건이 놓이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니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상태가 얼마 나 한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민족과 국가의 총체적 위기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볼 때 경제적으로 못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성벽을 튼튼히 세워 외적의 침입을 막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성전을 재건해 성전 예배를 다시 시작한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먹고 살만해지면 뭐합니까?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튼튼히 세우면 뭐합니까? 백성들의 영이 혼탁하고 정신이 썩었는데 말입니다. 바로 이 영적 상태를 혁신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애써 재건한 이스라엘 공동체 모두가 몰락하고 나라와 민족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릴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문(水門) 앞 광장으로 소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정치도 엉망이고 윤리도 땅에 떨어지고 북한에 대한 안보의식도 해이해졌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령 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어 먹고 살만 해지고, 정치도 안정되고, 안보문제도 다 해결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 민족의 살 길이 열립니까?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의 영혼이 갱신되고 정신이 바뀌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이라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수문 앞 광장에 모입니다. 모여서 뭘 합니까? 이들이 실천한 다섯 가지 방법이 바로 총체적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하고 구해낼 방법인 것입니다.

첫째, 말씀으로 새로워집니다. 학사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새벽부터 오정까지 낭독합니다(3절). 그랬더니 백성들이 그 말씀을 깨달아 아멘으로 화답하고(6절) 구체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말씀 중심의 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국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서한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대통령이나 지도자의 말과 정책으로도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운동하고 그 말씀의 능력이 더럽혀진 우리 영혼과 생각과 육신을 찔러 쪼개야 변화가 가능해집니다(히 4:12).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 이 사회의 썩어버린 구석구석(장관이나 소위 '윗대가리'가 바뀐다고 해서 정말 구석구석 썩어버린 저 밑에까지 바뀌지 않는 것처럼)까지 흘러들어가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야 변화가 가능해 집니다.

둘째,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9절, "백성이 다 우는지라."). 지난주 설교에서 "그 죽일 놈이 바로 나"라는 고백이 있어야 참된 회개가 가능한 것처럼 오늘날 말씀에서 시작된 회개운동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 이 사회의 위기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허물과 죄 때문임을 고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대통령을 원망하고 정치인과 지도자를 탓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쉽게 웃으면서 비꼬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너(대통령 등) 회개해!"가 아니라 "내가 회개합니다."가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오늘 나라와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이 내 탓이라고, 나의 무지함과 게으름과 무관심 때문이며 내가 기도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회개해야 나라와 민족이 새로워집니다. 요즈음 사학법 때문에 온 교회가 머리를 깎고 재개정을 촉구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걱정도 있습니다. 혹시 이 문제가 네가 잘못 했으니 네가 회개하라는 운동으로 번질까 두렵습니다. 물론 정치인의 태도도 문제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학이 부패해서 이 지경이 되도록 한국교회는 무엇을 했나 반성하고, 머리가 아닌 뼈를 깎고 마음을 깎는 회개가 있어야만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셋째, 오늘 수문 앞 광장에는 몇몇 지도층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다 함께 모였습니다. 오늘 1~12절의 짧은 본문에만도 '모든'(백성)이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강조됩니다. 왜일까요? 또 4절을 보면 말씀을 낭독하는 나무 강단 위에 학사 에스라만 선 것이 아니라 그 좌우편에 함께 선 13명의 평신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7절에 보면 레위 사람들도 에스라와 함께 백성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합니다. 9절에 보면 총독인 느헤미야도 함께 있었습니다. 학사 에스라와 레위인들은 오늘날로 치면 성직자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총독 느헤미야는 정치 지도자입니다. 즉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 평신도와 모든 백성이 함께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회개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라를 바꾸는 일은 지도자 몇 명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온 백성, 국민 전체가 해야 하는 일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또한 한두 명의 자세가 바뀐다고 나라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바뀌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나 지도자 몇 사람 바뀐다고 나라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가 이 민족이 정말 바뀌기 원한다면 진정한 말씀운동과 회개운동을 통해 전 국민의 심령이 새로워지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넷째, 참된 회복과 나눔과 교제가 일어납니다. 12절에 보면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밝히 깨닫고 그 말씀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니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를 지배하던 모든 불신과 반목이 사라지고 모든 백성이 함께 먹고 마십니다. 각자 먹고 마신 것이 아니라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크게 즐거워합니다. 오늘 이 사회에 엄청난 불신과 반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사상적 대립뿐 아니라 넓지도 않은 땅덩어리에 살면서 동서가 나뉘어 서로 반목하는 지역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야가 바람직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반대하고 싸우는 이전투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빈부차이는 극심하고 노사 간의 갈등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나라와 민족을 병들게 하는 모든 불신과 반목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말씀으로 새롭게 되는 것뿐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섯째, 삶의 구체적인 영역이 새로워집니다. 안식일과과 초막절 같은 거룩한 절기가 회복되고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미 이방인과 혼인한 제사장 가문의 자손을 쫓아냅니다. 또 성전의 큰 방을 차지하고 있던 이방인 도비야의 세간을 다 내어 던지고(단호한 단절과 제거를 뜻합니다.) 그 방을 정결케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진정한 회개에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회개하기 전에 누리던 모든 악한 생활과 습관을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말씀 앞에 깨닫고 회개한 후 내 개인의 삶과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더러운 것과 부패한 것을 몰아내고 집어던질 때 세상은 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의 비난과 조롱을 일체 중단합시다. 그리고 엎드립시다. 나부터 회개하고, 한국교회로부터 진정한 회개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총체적 위기를 맞은 조국 대한민국과 이 사회를 위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기도합시다.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정말 새롭게 만듭시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뿐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고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회개한 우리뿐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운동을 일으키고 내 심령이 새롭게 되고 교회가 새롭게 되는 갱신과 혁신의 역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바꾸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 조국 대한민국과 이 민족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일찍이 이 땅에 복음을 허락하시고 100년 조금 넘는 짧은 기간에 이 땅에 수많은 교회와 성도를 주시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축복된 나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유대인을 선택해서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던 하나님이 이제는 우리 한민족을 들어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사용하고자 하시는데 우리의 부족함과 죄악으로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축복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갱신하여 하나님이 이 민족을 들어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사용하시도록 내어 드립시다. 바로 참 회개의 능력을 체험한 우리 성도들이 이 일을 해야 합니다.(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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