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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에 강한 성도 (히 1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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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강한 성도(히브리서 11:32-38 ) 

  어느날 사자 새끼가 엄마 사자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우리는 왜 이렇게 목털이 무섭게 생겼어요?" 그러자 엄마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우리는 밀림을 정복하는 밀림의 왕자거든." 그러자 신이난 새끼 사자가 "엄마, 엄마. 우리의 발과 발톱은 왜 이렇게 사납게 생겼어요?" "응, 먹이감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달려가 낚아 채야 하니까." "엄마, 엄마. 우리의 이빨은 왜 이렇게 날카롭게 생겼어요?" "한번 낚아챈 먹이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지." "그런데 엄마 왜 우리는 동물원에서 놀고만 있어요? 그리고 어째서 아무도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엄마 사자는 할말을 잊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정복해야 할 교회가 동물원에서 갇혀서 놀고 있는 사자와 같지는 않습니까? 야성을 가지고 밀림을 휘젓고 다녀야 할 사자가 우리에 갇혀서 조롱거리, 구경거리가 된 것은 어째서 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적으로 천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주님이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성도들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편으로는 세상에 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통하여 온전하지는 않지만 천국을 맞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세상이 감당치 못한 놀라운 믿음의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정복함으로써 세상이 감당치 못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참아냄으로써 세상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믿음을 가졌습니까?
과연 우리가 가진 믿음은 성경적인 믿음입니까?
성경적인 믿음은 난관을 돌파하고 승리를 보장해 줍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그런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영적갱신운동'을 주도한,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Juan Carlos Ortiz) 목사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은 화려한 여객선을 타고 휴가를 즐기는 생활이 아니라 전투함을 탄 해군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적으로 중대한 일을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화려한 여객선의 승객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전투함에 무장된 군사를 승선시키는 일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정말 교회에서는 조용하지만 세상에서는 시끌벅적하게 강한 성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인들은 참으로 능력있는 교인들입니다. 언젠가 모 자동차 회사에서 한 차종을 선보이며 TV광고에서 내건 카피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소리 없이 강하다, ooo"였습니다.  물론 그 광고가 노린 것은 엔진의 소리는 작으면서 파워는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소리 없이 강한 성도",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묵묵히 기도 가운데 그 책임을 다하는 성도"가 우리 교회 안에 하나, 둘씩 늘어간다면 마지막 시대에 마주막 주자로서 구원의 방주 역할을 감당하는 힘있고 바른 교회로서 든든하고 아름답게 세워져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참으로 조용했지만 세상에서 믿음을 지킬려고 시끌벅적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다 말하는 것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얼마나 세상이 시끌벅적했겠습니까? 그러나 진실로 이러한 성도들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며 주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지켜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많기를 소원합니다. 금번에 임직되는 모든 성도들은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할 수 있는 세상에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상에 강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시고 인정하셨다는 내적 증거를 하나님으로 부터 받아 가지고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적 증거는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내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다는 것을 앎으로써 우리는 사람들에게 받는 온갖 악한 일들을 감당할 힘을 얻습니다. 이러한 내적 증거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인내할 수 있도록 합니다. 내적 증거로 인하여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고 부끄럽지만 세상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기도 펴지 못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그런 삶을 살고, 세상에 대해서는 항상 지면서 교회 안에 들어오면 시끌벅적 요란을 피우고 지지 안으려는 그런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세상에 대하여 약한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압도당해버린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약하고 세상에 압도당해버린 성도들은 항상 세상에 집니다. 세상과 타협합니다. 세상 유혹에 그냥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가 세상에 강한 성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성도들은 모두 세상을 만만하게 보지는 않았으나 결코 두려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두렵게 하려고 엄청난 핍박을 가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온 몸이 기름에 적시워져서 황제의 축제에 인간 횃불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갈비뼈가 갈고리에 꿰어져 산채로 길거리에 걸려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성도는 열린 곳을 다 꿰메버리는 형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성도는 박을 켜듯이 톱으로 그 몸과 지체가 켜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성도는 화형, 태형, 십가형 ...... 이런 참혹한 상황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차라리 세상의 부정응자로 살지언정 어떤 경우라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소리없이 적응하며 사는 것보다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시끌벅적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는 세상에 강한 성도입니다. 세상에 강한 성도들은 세상을 맛있게 만들어갑니다. 성도들이 숨을 쉬고 사는 동안은 세상을 떠나서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야할 삶의 터전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 삶의 터전을 시끌벅적하게 살맛이 나도록 만들어가는 것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 한광교회 성도들은 세상에 강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에서는 쥐나 고양이처럼 작아지고 세상에서는 사자나 호랑이 처럼 커지는 세상에 강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짜 능력있는 교인이며 좋은 교인인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이런 교인들과 함께 주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런 교인들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광교회 속한 모든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 뻥뻥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허풍쟁이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김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심으로 세상에 강한 성도들이 되어서 감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성도들로 우리 교회가 차고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세상에 강한 성도들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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