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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을 발하라 (사 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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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첫 주일 말씀 제목이 무엇인지 기억나십니까? “소원의 시작”입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늘 마음에 가지고 다니는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가요? 사업 일어나고 장사 잘되는 건가요? 아이가 대학 들어가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것이 최우선의 기도제목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좋을지 나쁠지 알 수가 없어요.

소원의 시작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나를 통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의로운 뜻은 나를 통해 세상에 펼쳐진다니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나의 자잘한 소원들은 거기에 준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업도 하고 아이도 기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고로 나의 소원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어요. 티끌에 지나지 않는 나, 세상 사람들과 진노 속에 망해갈 내가 영광 속에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 수준으로 올려집니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일어나든지 그 반대로 그냥 진흙에 묻혀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 말씀이 들려진 시기는 이스라엘이 망할 즈음입니다. 이제라도 일어나 빛을 발하면 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못하여 망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기를 바라면서 그리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빛 아래로 나오리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빛을 발하나요?

1. 신자는 빛이다

주위에서 빛이 되라는 말을 듣습니다. 빛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도 듣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빛이 되려고 노력했던가요? 그러나 빛은 되는 것이 아니고 되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빛이 아닙니다. 어두움입니다. 사람은 본래 어두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늘 우울하고 불안하고 걱정합니다. 어둠이 스스로 빛이 되려하면 헛수고일 뿐입니다.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마음에는 아무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우주공간과 같아요. 그냥 두면 너무 허전해요. 그래서 무엇으론가 채우려고 합니다. 사랑으로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왕의 힘으로도 채울 수 없어요. 그 공간은 오직 빛으로만 채울 수 있어요. 태양이 빛날 때 모든 것은 생명을 얻어요.

예수가 바로 그 빛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에서 온 영원한 생명이신 빛을 소유하게 됩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요!

그러기에 예수는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빛이 되라”가 아닙니다. “앞으로 빛이 된다”도 아닙니다. 현재 빛이라는 말입니다. 너무 엄청나서 공감이 안 올 수 있습니다. 거지처럼 살던 유리가 주몽을 만납니다. 그때 듣는 말과 같아요. “너는 내 아들이다.” 이 말과 함께 즉시 새로운 신분이 됩니다. 놀라운 권세가 주어집니다.

유리는 왕궁과 경호원이 부담스럽습니다. 화려한 의복과 대우가 어색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왕자요 고귀한 신분입니다. 거기 걸 맞는 옷을 입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왕자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사도세자는 그래서 왕이 되지 못하고 뒤주에서 죽었습니다. 왕이 되든가 죽든가, 권력싸움 속에 들어간 유리의 운명입니다.

비슷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펼쳐집니다. 세상을 지배하든지 아니면 눌리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오래된 병자가 일어나라는 말을 듣습니다. 일어나면 삽니다. 하지만 그 말대로 하지 않으면 계속 병자로 남습니다. 아니 전보다 더 비참해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그런 병자가 교회 안에 많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이것이 우리 신분입니다. 전에는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어두움입니다. 거기 생명이 들어가야 빛이 됩니다. 그러나 신자는 빛입니다. 빛이신 성령이 들어와 계십니다. 놀라운 존재입니다. 지금 문제가 있나요? 돈이 없나요? 빛을 비추세요. 밝아집니다.

2. 비쳐야 산다

어두움의 운명은 썩고 망해가는 것입니다. 전에 어느 카바레주인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신자가 카바레를 하면 되겠어요? 인수하고 나니 너무 힘들고 복잡합니다. 거기에 갔습니다. 낮에 갔더니 너무도 밤의 화려함과는 다릅니다. 빌딩 꼭대기 층인데요. 지저분합니다. 바퀴벌레들이 득시글거립니다. 거기 술 마시고 춤춥니다. 가정도 개인도 망합니다.

빛의 운명은 비치는 것입니다. 태양의 운명은 그저 비치는 것입니다. 태양은 우울하지 못합니다. 억울할 수 없어요. 피곤하지도 않아요. 생명으로 넘칩니다. 비치면서 밝힙니다. 깨끗하게 합니다. 비치면서 살립니다. 일으킵니다. 열매 맺게 합니다. 태양이 지나가는 곳은 건강이 있고 밝음이 있습니다. 신자는 태양과 같아요. 안 비추면 죽습니다.

문화교회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대기업의 부장으로 근무하는 김집사가 있습니다. 회사에 가면 전혀 신자 모습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여러 해를 믿었지만 삶의 변화가 없어요. 가정도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주일날만 나올 뿐, 십일조도 교회생활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도 세상을 비칠 수 있을까요?

어느날 목사님이 전화합니다. “김집사님, 저하고 점심 한 번 합시다.” 놀라서 대답합니다. “아니, 목사님 웬일이십니까? 예, 제가 좋은 데로 모시겠습니다.” “아닙니다. 거기 구내식당에서 합시다.” 하도 강력하게 말하니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구내식당에 내려가서 마주 앉았습니다. 음식이 나오니까 목사님이 말합니다. “식사 기도합시다.”

김집사는 걱정이 됩니다. 간단하게 조용히 하셨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어림도 없지요. 목사님이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김집사님을 축복해주셔서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소서. 일 잘하고 사랑과 존경을 받고 높이 되어서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 되게 하소서. 음식에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주소서.” 모두가 쳐다보고 있습니다.

김집사는 정신이 없어서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회사 사람들이 다 알아버렸겠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때 그 말씀이 마음을 울립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게 하소서.” 어떻게 할까요? 마침 과장이 결재 받으러왔어요. “이 과장, 거기 좀 앉으시오. 혹시 우리교회 허목사님 아시오?” 알 리가 없지요. “모르는데요.”

“아니, 그렇게 훌륭하신 분을 모른단 말인가? 와서 설교 들어봐요. 세상이 달라진다고. 다음 주일 한 번 와 보시오. 내가 점심 대접할게.” 이상합니다. 어디서 그렇게 말이 술술 나오는지요. 그리고 마치 누가 위에서 조정하는 것처럼 과장도 감전이 됩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부터 전도를 시작해서 김집사가 그해 전도왕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신자는 둘 중에 하나밖에 없어요. 신자로 빛을 발하든지, 그냥 어두움에 남아있던지. 그 김집사는 그 후에 잘 되어 임원으로 승진하고요, 교회에서도 장로가 되었답니다. 일단 일어나니까 빛이 막 발해지는 겁니다. 일단 일어나면 그렇게 됩니다. 성령이 할 말도 다 주시고요, 사람도 달라지게 합니다. 삶도 더불어 열려요. 전체가 영의 활동입니다.

3. 비칠수록 밝아진다

병자를 만나면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상 들고 가라.” 오늘도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향해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왜 일어나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 전에는 일어날 수 없었어요. 이제는 다릅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태양이 축복받는 길은 떠올라야합니다. 안 그러면 추위와 암흑뿐입니다.

시내산에 올랐을 때 추운데 모두가 기다렸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면서 온 세상은 빛납니다. 따듯해지고 모든 게 아름다워집니다. 한 사람이 떠오르면 그 집안이 밝아집니다. 생기가 퍼집니다. 안 되는 집은 아무도 비추지 않습니다. 비난만 합니다. “내가 잘하려고 마음먹어도 네가 그러니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태양이 그런가요? 무조건 떠올라 비춥니다.

태양이 남에게 알아달라고 하나요? 태양은 우울하지 않아요. 가난하지도 않아요. 태양은 아무 것도 거칠 게 없어요. 그냥 당당하게 비춥니다. 그래서 모두의 사랑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으로 섬깁니다. 우리가 그래요. 하나님이 우리를 빛으로 만드셨습니다. 태양이신 예수께서 들어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일어나야 합니다. 비쳐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축복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축복인 것은 몰라요. 우리가 축복 그 자체입니다. 태양이 빛 자체인 것과 같아요. 비추면 됩니다. 우리교회는 세 가지 비추는 방향을 정했어요. 전도와 예배와 봉사입니다. 그렇게 비추면 태양으로 축복을 누립니다. 예배가 뭘 비추느냐고요? 예배에 나오면 빛납니다. 비추기 위해 예배마다 와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1997년 87세의 나이로 돌아간 이듬해,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에 ‘테레사 효과’란 용어가 등장합니다. 자신이 직접 봉사를 하는 경우 뿐 아니라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들이 행하는 선한 일을 생각하거나 보기만 해도 신체 내에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물질 IGA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빛도 전염됩니다.

일어나 비추는 사람이 주는 영적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주위의 마음도 영도 밝아집니다. 세상이 달라져요. 자신부터 밝아지고요 주위 사람도 본받습니다. 서로 그러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예배는 성령의 열과 빛으로 넘치는 모임입니다. 동창회나 가족모임은 저리가라입니다. 무조건 오세요. 예배마다 오는 분들은 문제가 없고요 해결도 빨라요.

오 해피데이 행사가 두 달 남았습니다.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전도할 대상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세요. 그리고 자신이 빛인 것을 확인하고 일어나 빛을 발하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을 의지하고 하세요.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은 용기와 능력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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