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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으로 기도의 영을 회복하라 (느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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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기도의 영을 회복하라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느 9:3)

우리가 기도하여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쉬지 말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에 주님의 이 명백한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기도 생활이 견고한 사람들은 그러한 기도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 하며, 기도를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에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도가 잘 되어도 기도해야 하고, 잘 되지 않더라도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도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될 때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영이 이처럼 무디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힘겹기만 한 우리의 기도의 세계를 무엇으로 다시금 깊어지게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해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I. 기도의 고통

기도에 있어서의 고통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가 잘될 때에 느끼는 고통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도가 잘 안될 때 경험하는 고통입니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 느끼는 고통이고, 후자는 기도의 문이 닫혔을 때 느끼는 고통입니다.

첫째로, 깊은 기도는 고통을 동반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시는 때에는 당신의 마음을 기도하는 우리에게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깊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때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고자 하는 문제나 사람들을 향한 그분의 탄식과 아픔을 함께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깊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멸망을 앞둔 유다 왕국의 부패상을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온 마음으로 고통하고 있었던 예레미아 선지자의 고백은 이를 증거 합니다.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중심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인함이라”(렘 23:9).

둘째로, 기도에 있어서 우리가 경험하는 또 다른 고통은 기도를 하고자 하는데도 기도가 잘 안 되는 데서 경험하는 고통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어서 기도하지만 막상 기도를 시작하면 선명하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거절감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른 새벽, 교회로 달려가 여러 시간 엎드려 기도하지만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는 상태에서 견디다 못해 일어날 때에 그 마음의 비참함은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 가운데 있어 사하심을 받지 못하여 곤고한 심령으로 기도의 씨름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는커녕 양심의 송사로 만신창이가 되어서 무릎을 펼 때의 그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이처럼 쓰디 쓴 고통을 동반할 정도로 기도가 되지 않는 이유를 개별적이며 다양한 원인들 안에서 찾을 수 있겠으나, 넓게 살펴보았을 때에 기도가 안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다음의 두 가지로 축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마음이 기도를 향해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이며, 둘째는 깨달음이 없을 때입니다. 에스라의 부흥회를 통해 이 문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II. 에스라의 부흥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에스라의 부흥회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감격적인 포로귀환 이후 그들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을 인하여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이방사람들과 결혼을 하고 율법을 어겼습니다(스 9-10장). 이 사실을 알게 된 학사 에스라는 크게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지도자 에스라의 가슴을 찢는 기도는 죄로 인하여 마음이 굳어져 있었던 백성들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자복하며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굳은 마음을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죄를 자복하며 용서를 구한 것이 언제였는지를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느 9:3-4). 하루 중 낮 시간의 사분의 일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해 줄 때에 사람들은 율법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고, 그 마음에 깨달음이 생기자 기도가 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차가운 종교의식과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어서 조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였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거의 끊어진 가운데 살아왔음에 틀림없습니다. 에스라는 이러한 그들의 영적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스 9:1-2).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같은 상황은 회개하는 기도와 삶의 개혁을 통하여 타개되었지만,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써 기경(起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율법을 통하여 깨닫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씀의 깨달음과 회개는 닫혀있었던 기도의 문을 여는 힘이 되었고 무디어진 기도의 영을 회복시키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III. 신앙의 두 수레바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이처럼 기도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기도생활이 메말라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씀에 의해 은혜를 받는 세계도 메말라 있는 사람입니다. 충만한 기도의 은혜 속에서 사는 것과 말씀을 통한 충만한 감화 속에서 사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의 세계입니다. 개인적으로 늘 성경을 읽으면서 순간 순간 어떻게 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감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예배 중에 쏟아지는 설교를 통해 자신의 영혼 깊은 곳을 만져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살아 있는 사람들은 기도의 샘이 마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바람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은혜로부터 멀어져 있는데 그 밑바닥에서 어떻게 거룩한 기도가 솟아오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건조한 기도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의무감에서 드리는 형식적인 기도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기도의 불이 붙여지고, 기도의 불이 붙여지면 말씀의 은혜가 가속화 됩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커다란 은혜를 받으면서도 기도는 거의 하지 않는 것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려는 것은 마치 씨앗을 심고 물을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의 영과 기도의 영은 함께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분도 성령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 앞에 간절히 간구하게 만드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그 때문에 성경을 기록한 저자이신 성령께서 신자들의 마음에 오셔서 말씀으로 인해 기도할 수 있도록 감화시키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에 기도의 향로에는 불이 당겨지고 그 향연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깨닫는 마음이 없는 기도생활은 단지 술 취한 자의 중얼거림과 같아서 우리의 마음에도 열매 맺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수취인이 없는 우편물과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깨달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자는 말씀대로 살기를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말씀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기도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움직이는 두 엔진과 같습니다. 누구도 이 은혜의 방편으로부터 받는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영적인 사람인지는 그가 정말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인가라는 것과 그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비결이 이 두 가지 방편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에 의하여 판단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신앙에 있어서 영적인 특성이 무시되는 때에는 더욱더 이 두 가지는 강조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증진을 위하여 애쓰는 수많은 노력들이 이렇다 할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의 신앙의 유기체적인 성격을 너무나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열렬한 찬양을 통해서, 혹은 전도를 통해서, 혹은 기도운동을 통해서 어떤 신앙적인 문제를 타개해보려고 하지만 이 모든 시도들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은 종합적이고 유기적이며 인격적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말씀의 세계와 기도의 세계라는 두 수레바퀴에 의해 힘 있게 굴러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IV. 말씀의 감화는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부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실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깨닫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감화(感化)’가 있습니다. ‘감화’라고 하는 것은 성경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과 의지를 깨닫고 그 거울로 우리 자신의 삶을 살핌으로써 일어납니다. 즉 성경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생각과 사랑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그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마음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느 8:8-9).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에스라와 그와 함께한 지도자들이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하고 해석을 통하여 그들을 깨닫게 하였더니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사랑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율법에 능한 학사였습니다. 그는 율법에 능할 뿐만 아니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의 사람임은 이미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올라오던 때에 드러났습니다.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 8:21-23). 한 사람이 얼마나 깊은 기도의 세계를 가진 사람인지는 기도가 필요할 때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데 그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의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사실을 알고 성전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장면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깊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순결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영적인 위기를 헤쳐 갈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스 10:1-4).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기도의 사람이 위기 속에서 행한 첫 조치가 바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여 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해 줄 때에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부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부패한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와 자신들의 살아가고 있는 삶의 차이를 보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가 감화를 받았습니다. 마음에 신령한 감화가 일어나니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제목은 다른 것이 아닌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통회하고 자복하는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자신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자였음을 너무나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어 고국으로 돌아왔고 정치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주변 백성들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너진 성읍을 재건하고 성전을 다시 기공할 수 있는 축복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토로 돌아오던 때의 신령한 은혜와 기쁨, 신앙적 결심들을 유지하지 못하고 또 다시 우상을 섬기며 이방여인에게 장가들어 자식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신앙의 현주소를 알게 되자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 없이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말씀이 우리들 속에 제대로 심기고만 있다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기도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감동받았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입술로 고백하는 그 감화가 영혼 깊은 곳까지 뒤흔드는 말씀의 참된 감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감동시킨 사람들은 그 말씀을 좇아 살아가기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의 감화가 있는 그 곳에는 반드시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말씀의 감화가 기도의 열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이 신앙의 원리는 다니엘을 통해서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단 9:3-4). 늘 기도하는 다니엘이었지만 다시금 비장한 기도를 결단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신앙 경험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다니엘로 하여금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쓴 채로 기도하기를 결심하게 한 것은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經綸)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커다란 영적 각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애적인 기도의 결심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몇 년 앞으로 다가온 포로귀환을 앞두고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다시 한번 민족을 향한 불붙는 사랑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을 것입니다. 평소에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분을 향한 신뢰가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그가 전에도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하나님의 이 말씀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소망이 더욱 불 일듯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감화를 받는 신앙의 세계가 풍성하면 기도의 세계도 풍성해 집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뜨겁게 기도하고 싶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매달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감화 없이는 결코 열렬한 기도는 드려질 수 없습니다.

V. 말씀의 감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한다

말씀의 감화는 기도하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하게 합니다. 단숨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핵심적인 기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하여 주었을 때에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바로 그 시점에서 저들의 입술을 통해 듣고자 원하셨던 기도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는 기도모임도 알고 보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도회에 모여 각자의 기도제목들을 내어놓으나, 정작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핵심적인 기도로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 없이 기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비껴가는 헛된 열심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드리는 기도는 아무리 열정을 품고 간절히 기도한다 할지라도 그 기도를 후원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 기도가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기도라면 기도의 트랙에 선 우리들을 하나님은 힘차게 밀어주십니다. 그래서 폭포수와 같은 기도가 쏟아져 나오게도 하시며, 해산의 고통을 가지고 기도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듯이 모든 기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격적으로 감화를 받는 신앙생활이 멈춘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쓸데없는 편견이나 잘못된 생각들이 돌덩이처럼 굳어지고 쌓여갑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말씀의 깨달음과 감화도 없고, 혼란스러운 사고 속에서 잘못된 교리를 믿으며 살다 온 지체들에게 이렇게 당부하곤 합니다. “신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바르게 갖추기 전까지는 당분간 기도하지 마십시오. 말씀의 감화를 받으면서 그 속에서 합당한 기도의 제목을 찾을 때까지 그리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할수록 자신이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삶 모두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기도를 드린 적이 없는 사람이 기도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사람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말씀을 깨달으면 기도의 제목이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붙들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따라서 열렬히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급선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 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이때 비로소 기도할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것들을 기도하도록 만드십니까? 우리 교회를 위해 어떠한 기도제목들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곳에는 올바른 기도 제목을 찾는 일이 반드시 있게 됩니다.

말씀의 감화로 통해 기도 제목을 찾고 나면 기도할 수 없게 만드는 영적 게으름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됩니다. 또 예전에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었던 계명들에 대해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삶은 또다시 우리의 기도에 불을 붙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나면 말씀 앞에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면 기도제목이 자기 중심적이 되는 대신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게 되어 열렬한 기도가 가능해집니다. 또한 이러한 힘 있는 기도는 순종하는 삶을 낳고 순종하는 삶은 기도를 더욱 능력 있게 만듭니다. 이렇게 순환되는 영적 흐름은 우리의 평범한 신앙생활 속에서 너무나 쉽게 확인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감화, 기도의 능력의 회복, 순종하는 삶, 그리고 순종하는 삶에서 비롯되는 기도의 담대함, 이 네 가지는 언제나 함께 굴러갑니다.

VI. 맺는 말

말씀의 감화는 우리들에게 끊임없는 기도의 부흥을 가져다줍니다. 말씀의 감화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하게 합니다. 그러한 힘 있는 기도로 순종하는 삶이 창출되고, 순종하니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의 수레바퀴는 굴러갑니다. 전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걸려서 못 올라가던 수레가 말씀과 기도라는 튼튼한 모터를 달고 달리니 언덕도 넘어가고 산도 넘어가고 골짜기도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열렬한 기도의 영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대면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실 때에 즉각 순종할 것과 한 번 열어주신 기도의 문을 닫히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우리는 기도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어찌 하든지 우리의 기도의 세계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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