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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히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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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에녹은 신비로운 신앙인입니다. 에녹에 대하여 하나님은 누구못지 않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에녹에 대한 생애의 기록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에녹에 관한 기록은 창세기 5장과 유다서를 비롯한 일부에 지나지 않은 기록 외에는 에녹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었다고 우리 앞에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막연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쉽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한 끼 대접을 해 드려도 아주 기뻐합니다. 또 선물을 하나 사드려도 기뻐합니다. 또 좋은 공연티켓을 드려도 기뻐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이 표현은 우리에게 대단히 어렵게 다가옵니다. 한 번 물어봅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것을 우리가 증거를 해야 되는데 예를 들면 우리가 찬양을 할 때 맨 끝에 마치고 나서 우리처럼 '아멘'으로 화답을 해 주시던지,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나면 하나님이 응답을 해 주시던지 해야 되는데 전혀 하나님과 거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은 선물로도 통하지 않고 맛난 식사로도 통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보다 막연한 것은 없습니다.

  에녹의 신비로운 삶

  성경은 에녹에 대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 실체가 무엇일까? 이것을 한 번 규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에녹에 대해 알려면 창세기 5장으로 가야 됩니다. 신약에 소개된 에녹은 구약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에녹을 보면 가장 신비로운 사람이고 가장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도 하나님이 감추어 놓았습니다. 이 사람을 다윗처럼, 모세처럼, 아브라함처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장에서 에녹에 대해 증언하는 말씀 중에 핵심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에녹은 구약에 가면 "하나님과 삼백년을 동행한 사람이다"라고 소개하고 신약으로 오면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었다" 이렇게만 소개를 합니다. 그러니까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말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에녹을 소개할 때 성경이 그렇게 추상적인 말씀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씀도 아주 막연합니다. 어떻게 동행했다는 사례나 설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사례나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에녹은 하나님과 삼백년을 동행했다는 것을 아주 의미 깊게 말씀을 하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라는 것도 에녹을 평가하는데 높은 의미로 우리 앞에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움을 받는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한 인간이라기 보다는 그는 하나님 앞에 특별히 선택된 사람입니다. 그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데는 여호와 하나님 편의 섭리가 있겠지만 이것은 보통사람이 경험하지 않는 영적 세계를 산 사람이고 그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에녹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를 에녹에게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캐내어 보고 그것을 통한 교훈을 또 풀이하면서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계시적 인물

  에녹은 그 인물이 계시적인 인물입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이 땅위에 보낼 때부터 그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에녹의 삶과 죽음과 에녹 이후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과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아홍수 사건은 에녹과 연관시켜서 보지 않으면 그 사건은 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노아로부터 노아홍수를 이야기하면 노아 이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에녹을 연구하면 노아홍수 이전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에녹은 "노아홍수를 위해서 이 땅에 보냄받은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홍수 심판에 대하여 실제로 예언한 사람이 에녹입니다. 노아는 배를 만들고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서 노아홍수를 극복한 사람이지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했던 사람이 에녹입니다. 그리고 에녹의 전 생애가 그 예언을 실증하는 것으로 성경에 암시가 되어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 기록된 사람 중에 제일 오래산 사람입니다. 구백육십구세를 산 사람인데 이 므두셀라가 삼백육십구세 때 손자 노아를 낳았습니다. 므두셀라가 삼백육십구세 때 아들 라멕으로부터 손자 노아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므두셀라가 손자 노아를 보고 육백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나서 육백세 되던 그 해에 홍수가 났습니다. 이것은 므두셀라가 죽던 그해에 홍수가 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므두셀라라는 이 인물은 그냥 '이 땅에서 오래 산 사람이다'가 아니고 노아홍수 심판에 시그날적인 인물입니다.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는 홍수가 난다'는 하나님의 신호가 주어져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므두셀라가 에녹의 아들로서 에녹이 육십오세 때 므두셀라를 얻고 므두셀라를 얻은 그 때부터 삼백년을 동행한 것입니다.

  이 문맥을 잘 보면 노아는 므두셀라를 얻기 전에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므두셀라를 주면서 하나님은 에녹에게 상당한 의미의 영적인 계시를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므두셀라를 주면서 에녹을 보고 제가 추정하기로는 이렇다고 봅니다. "에녹아 네 아들 내가 특별한 목적을 두고 준 아들인데 이 아들이 죽는 해에 이 땅에 홍수심판이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부터 목숨을 다하는 그날까지 홍수심판을 예언하라"고 하는 예언의 사명이 에녹에게 주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에녹은 심판을 예언했다고 유다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녹의 직분은 선지자요 예언자입니다. 노아홍수를 삼백년 동안 예언한 사람입니다.

  보너스 은혜

  그는 삼백육십오세에, 비교적 그 당시로서는 일찍이 하나님 앞으로 갔는데 보너스로 하나님은 죽지 않고 불러가신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평균수명은 구백세입니다. 노아도 아이를 오백세 때 낳았습니다. 에녹이 삼백육십오세에 천국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인간적으로 보면 아주 억울한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서 천국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오늘 가기는 싫습니다. 구백세를 살던 그 시대에 살아서 데리고 가더라도 삼백육십오세에 천국가기는 아까운 나이입니다. 하나님이 일찍 불러가는 대신에 '너는 바로 오너라' 하나님이 그렇게 보너스를 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아라는 인물은 그 당시 상황으로 볼 때는 하나님이 특별한 계시적인 인물로 땅위에 보냈다가 므두셀라를 낳게 하고 홍수예언을 하다가 그 시대의 사람들과 비교가 안되는 젊은 시절에 하나님이 그저 불러가 버렸습니다. 에녹은 예언만 남겨놓고 그 인물은 빨리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은 에녹이 남겼던 그 예언을 들으면서 홍수심판을 준비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고, 에녹의 홍수심판을 경멸하고 산 사람들은 전부 홍수심판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에녹은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와 밀접한 관계를 두고 이 땅에 나셨다가 사라진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때 그 분이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의도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통하여 받으시고자 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가 이루어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기뻐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에녹은 증거를 남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녹을 볼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이 말을 강조하는 앞의 말이 에녹을 연구하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옮기우기 전에

  5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옮기우기 전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기회는 우리가 하늘나라 가기 전에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지상생활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천국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 가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쓰여지고 희생하고 그 분을 위해서 무언가를 바쳐드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요즘 피터 드러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방송에도 더러 나옵니다. 아마 21세기에 들어서서 이 사람이 준 영향은 누구 못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인으로 법학박사입니다. 이 분이 기업경영에도 통달한 사람으로 세계최대의 회사라고 하는 GM, GE, 이 그룹의 전문컨설턴트입니다. 또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자문역도 맡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말을 한 마디 하면 세계 기업인들이 다 귀를 기울이고, 무언가 앞서가는 지도자들은 이 사람의 말을 참고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연구를 해서 내놓은 글은 굉장한 권위가 있습니다. '피터 트루커 경영연구소'라는 데서 공부하고 오면 상당한 경력이 된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세계경영에 관한 책을 많이 냈는데 근간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에 보면 이런 것을 우리 앞에 제안을 합니다.

  지구촌의 변화를 보면서 독일과 일본을 예로 들었습니다. 독일이 지금 이 상태로 가면 2030년이 오면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인구의 50%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향후 2030년을 기점으로 해서 선진국의 인구가 노인이 50%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선진국도 이와 같은 추세에 들어가고 중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35세미만의 인구감소율이 노인증가율보다 배로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동력이 저하된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노동인구가 현재 사천만이라고 하는데 4분의 1일이 감소하여 삼천만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인구가 2005년도에 일억이천오백만으로 최고정점에 이르는데 2030년에는 일본인구가 구천오백으로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이 감소가 노동력 감소, 즉 젊은 인구의 감소라는 것입니다. 한 여성의 출산비율이 1.3명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2030년이라는 미래를 두고 보면 일본인구가 일억이천에서 구천대로 떨어지는 이것은 일본열도 전체에 지진이 난 것보다도 더 큰 변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030년에는 노인을 돌봐줄 인력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외국인 근로자들을 좇아버리고 나면 스톱될 공장이 한 두 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전부 일할 수 있는 노동자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보배덩어리입니다. 지금 해석을 달리 해야 됩니다. 2030년도에 가면 중대한 분기점이 온다는 피터 드러커의 예언입니다. 

  이 사람은 기업의 수많은 위기를 진단하면서 그 위기극복의 제안을 내고 그 제안을 좇아서 기업이 일어나고 했던 영향력을 주고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우리 앞에 주는 메시지는 이런 것에 대한 지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이해를 하고 대비해 갈 때 길이 있지 여기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가 말한 이런 세계의 변화 앞에서 우리가 땅위에 사는 시간을 한번 계산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오늘 성경에 하늘나라 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에녹의 이야기는 우리 개인에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그 후보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늘나라에 옮겨갈 후보자들입니다. 우리가 옮기우기 전에 반드시 이루고 가야될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가야 되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에녹이란 인물을 통하여 노아홍수 심판과 연관해서, 에녹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쓰임받고 간 것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나와 동행을 했다' '나를 기쁘게 했다'라는 평가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땅 위에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크게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그 일을 이루어 드리는 일인데 이것을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는 원칙은 "믿음으로"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는데 하나님이 저를 데려가시므로 보이지 아니했다,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라고 하면서 이 말을 되받아 나오는 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라고 하는 에녹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은 원칙이고 방법이고 결론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원리가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방법이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결과가 무엇이냐?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은 동기도 믿음으로 과정도 믿음으로 방법도 믿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자꾸 실패를 하는가? 시작은 믿음으로 하는데 방법을 내 방법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방법까지도 믿음으로 해야 결론이 믿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내 방법을, 내 생각을, 내 주관을, 내 불신을 섞어서 하나님의 방법을 거부하는 거기에서 믿음의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기쁘시게

  여러분, 이런 풍자가 있습니다. '진리가 밥 먹여 주냐?' 예수 믿는 우리보고 하는 풍자입니다. "당신, 날마다 진리 진리 하는데 진리가 밥 먹여 주냐?"고 합니다. 여러분, 누가 그러거든 "밥만 먹고 사나?" 그렇게 말하십시오. 그런데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 밥도 진리가 먹여 주는 것입니다. 그 일에 아멘을 해야 신앙인입니다. "진리가 밥 먹여 주냐?"는 물음에 "밥만 먹고 사나?" 이 정도로 되받지 말고 "그래, 진리가 밥 먹여 준다. 왜?" 하고 당당하게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밥이 있고 미끼가 있습니다. 미끼와 하나님의 축복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사탄이 주는 미끼는 다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사탄이 주는 것도 복 같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도 복 같은데 물고 보면 하나는 미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미끼를 좇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면 힘이 듭니다. 그런데 힘들어도 안 죽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잘 아십니다. 죽을 정도로 '날 기쁘게 하라' 하나님이 그렇게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다가 죽을 만 하면 하나님이 그때는 손봐주십니다. 에녹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너무 힘드니까 산채로 데려가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오늘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된다는 이 말씀에 방법도 없고 길도 없는 설명 같지만 믿음이 출발이고 방법이고 결론입니다. 세상이 좋아져도 세상 좋아진다고 방심하면 안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나 혼자 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세상 속에서 손 털고 나오십시오. 믿음으로 가십시오. 하늘나라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가야 합니다. 그 증거가 있도록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와 벌'이라고 하는 도스도예프스키의 소설은 우리 역사 속에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던져 준 작품입니다. 라스코르니코프라는 남자 주인공이 문학도이면서 나폴레옹 숭배자입니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연예인에 미쳐 있는가 하면 휴대폰에 미쳐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라스코르니코프가 그 시대의 이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나폴레옹을 숭배하면서 '나폴레옹은 선택된 강자이다. 이런 선택된 강자는 법을 디디고 일어서도 이것은 합리화가 된다'라고 하는 철학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깍쟁이 노릇을 하고 있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저 돈을 가지고 선한 목적에 써도 되지 않느냐'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래서 그 노파를 무참히 죽이고 그 돈을 강탈하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라스코르니코프가 우리 앞에 보여주는 인간형은 지금 그대로 있습니다. 경비업체 직원이 강도짓을 했다고 하는 것은 라스코르니코프 사상의 한 대목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맺는 말

  에녹이라는 인물과 라스코르니코프 라는 인물을 대조해 보면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에녹의 위대성은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리 철저해도 넘치질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무리 미쳐도 탈선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미치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잠을 못 이뤄도 절대로 미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아무리 가까이 가도 우리가 잘못되지 않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삼백년 동안 동행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삼백년 동안 동행하며 살았던 에녹은 하나도 탈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답은 살아 계신 여호와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과 삼백년을 동행해도 뒤탈이 없다는 것을 에녹이 우리 앞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시대의 작은 에녹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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