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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의 과정과 성화된 이후의 축복 (행 2: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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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사도행전 2:37-39)

첫째는 그들이 비탄의 감정으로 마음이 찔렸다는 것이요
둘째는 그들이 베드로의 권고에 순종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회개의 시작이다. 우리의 죄과에 대하여 슬픔을 느끼고 또 우리의 나쁜 짓의 자각으로써 마음이 상하게 되는 일은 신앙심에 들어가는 입문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아무 생각이 없는 동안에는 참된 가르침에 참으로 뉘우치면서 돌아서야 할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은 검에 비교되어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마음이 찔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서 우리의 육체를 괴롭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찔림의 마음이란 이미 우리가 하나님께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이제 복종하겠다는 자발적인 의지가 바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의 죄를 지은 가인과 주님을 배신한 가롯 유다는 마음에 찔림을 받기는 했으나 그들은 절망으로 인하여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극한적인 두려움으로 인하여 앞 뒤 생각 없이 무조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 생각했었다.

마음에 찔리는 심정은 의지의 자유가 스스로 통회하는 마음과 비참에 처한 심정이 이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희생이라고 자각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나의 영혼이 날 선 성령의 검으로 찔림 받는 상황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날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찔림을 받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초조해 하고 또는 불평을 터뜨리며 혹은 맹렬하게 반항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광포한 마음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포악으로 달려가게 되는 그 진정한 이유란 바로 자기들의 의사를 거슬러서 그들이 그러한 찔림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으로 괴로움을 맛보려고 하는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고침을 받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가진 사람들만이 이러한 성령의 예리한 검으로의 찔림에서 이익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몇 마디의 말씀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첫째, 인간이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포기하면서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맡기는 일,
둘째, 값없이 주시는 죄의 용서로 인하여 죄책감과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또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받아들여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없이는 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주의 이름이 신앙과 회개의 유일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시발점이 되고 있는 그 회개는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서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우리는 회개와 함께 어우러지는 참 신앙의 길을 걷는 성결 된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5)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가운데 나를 버리고 끝까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회개는 천국의 유업을 받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여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의 대다수의 믿음의 정도는 허망한 상태에 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도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는 하면서도 전혀 회개를 시작하지도 않은 사람이 수두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세상에 대해서 또는 육체에 대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 즉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바, 요한 1서 2:15절 말씀에서 세상적인 쾌락을 탐하고자 하는 육신의 정욕, 눈으로 보고 마음에 죄 짖는 안목의 정욕, 그리고 지금 그리고 지나간 날에 대한 현실세계에서의 온갖 허망한 자랑거리를 일삼는 이생의 자랑을 분토 처럼 여길 수 있고, 실제 그렇게 행하지 아니하고서는 우리는 결코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줄 압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기 위하여 허망한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이미 회개의 과정과 아울러 이제 성결되고 성화된 삶에 들어가 있는 우리 소망의 가족들은 푯대를 향하여 소원의 항구에 도달해야 한다는 오늘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우리가 굳게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심정 안의 내면적인 회심은 생활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결된 행위가 요청되지 않고는 회개가 옳게 진행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성결된 행위, 즉 성화란 결백함과 거룩함에 대한 건실한 증거가 되는 그런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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