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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디모데 (행 1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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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만남의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누구를 만나느냐고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물론 그 만남 중 제일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되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과 만난다고 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결국은 영원한 멸망으로서의 지옥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부모를 둔 사람은 그만큼 복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다 믿지 않는다고 해도 어머니가 믿음 안에 있다면 그 자녀는 복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의 믿음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통해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 모두가 다 믿음 안에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아버지만 믿는 경우보다는 어머니가 믿는 경우가 자녀들에게 끼치는 믿음의 영향력은 더 크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왕들을 소개할 때 그 모친이 어디 출신 누구인가를 꼭 밝히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머니가 믿음 안에서 자란 사람일 경우 그 자녀가 하나님 앞에 선한 왕으로 살아가지만 어머니가 믿음의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아닐 경우 대부분의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어머니가 자녀의 믿음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디모데가 바로 그런 경우 중 하나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디모데의 믿음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전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1장 5절에서 바울은 “나는 그대의 진실한 믿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었던 것인데, 이제 그대가 그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은 어머니를 통해서 물려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그리스인이었지만 어머니가 유대인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서는 최소한 외할머니 역시 유대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외할아버지도 유대인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외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개가 없으니 외할아버지가 유대인이었는지 아니면 아버지처럼 이방인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외할머니 로이스의 믿음이 어머니 유니게에게로 전해졌고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이 다시금 디모데에게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분명 아버지는 그리스인이라고 했으니 아버지의 믿음을 따라 우상 숭배의 길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디모데는 어머니의 믿음을 물려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의 믿음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들의 영향력이 그렇다고 해서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자녀들의 믿음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디모데라는 젊은 제자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으나, 아버지는 그리스인이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디모데를 젊은 제자라고 소개하면서 그곳의 신자들에게 평판이 좋았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디모데는 좋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자녀는 자라면서 어머니를 통해서는 믿음을 배우고 아버지를 통해서는 그 삶을 배운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들로서는 자녀들에게 좋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머니로서는 항상 긍정적인 믿음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도록 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생각이 부정적이면 자녀들도 그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어머니의 말이 항상 긍정적이면 자녀들도 항상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로서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항상 희망을 안겨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도록 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자녀들의 기를 살려주도록 하되 그 모든 것의 뿌리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말씀을 거울삼아 자녀를 가르치고 말씀으로 훈육하며 양육하게 되면 자녀들이 좋은 믿음의 사람, 긍정적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아버지로서는 그러한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먼저 자녀들을 위해서 날마다 축복하며 기도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말로가 아닌 행동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이 책과 가까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자녀들 앞에서 항상 책을 가까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자녀들이 부지런한 자녀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부지런한 모습을 자녀들이 항상 지켜보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어려운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준다면 자녀들 역시 언제든지 꿋꿋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항상 자녀들 보기에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을 하며 아내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들 보고 자라는 자녀는 어머니를 존중하게 될 뿐 아니라 역시 자라서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진정 자녀가 자라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이 먼저 그렇게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항상 보여주도록 하십시오. 혹 싸울 일이 있거든 자녀들을 피해서 싸우시고 자녀들 앞에서는 항상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는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 중보 기도자로서의 모습을 항상 자녀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난 날 어땠든지 간에 지금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알려주며 그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긍정적인 믿음을 통해서 전해주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익힐 뿐 아니라 그 말씀대로 생각하고 순종하고 말하며 살아가게 될 때 자녀들이 좋은 하나님의 사림이 되고 모든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얻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정말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좋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녀들에게 저주가 아닌 복을 물려줄 수 있는 부모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디모데는 복음을 전하는데 좋은 협력자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좋은 믿음의 사람이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신자들에게도 평판이 좋은 제자라는 사실을 안 바울은 디모데를 전도여행에 데리고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 지방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풉니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디모데가 바울의 권고를 받아들여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디모데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단지 우상에 바친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고 음란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도록 하는 이런 일만 지키면 잘 될 것입니다.”라고 하는 결정을 내린 것을 전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기꺼이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앞에서 인도하는 바울의 권고를 귀담아 듣고 실천할 줄 알았던 순종의 사람이요 기꺼이 바울을 따르며 바울과 함께 복음 전도 사역에 힘쓴 협력자였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고기조차도 먹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팔리는 고기는 대부분이 우상의 제단 앞에 바쳐지고 난 다음 시장에 팔리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고기가 우상 앞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고 해도 고기를 먹는 것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이 우상 앞에 드려진 고기로 오해할 수도 있기에 그렇다면 나는 고지조차도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디모데를 가리켜 할례도 받지 않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와서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드느냐고 시비를 걸 수도 있기에 아주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미리 디모데에게 할레를 받도록 권고하였고 디모데 역시 복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례를 받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얼마나 힘을 얻었겠는지 우리는 능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뒤 바울과 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지키게 했고 그리하여 교회들은 믿음이 더 든든해지고 날마다 그 수가 불어났습니다. 당연히 바울은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기 있는 디모데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할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로 족합니다. 단지 우상에 바친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고 음란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도록 하는 이런 일만 지키면 잘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말을 듣고 믿음 안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니 교회들이 믿음이 더 든든해지고 날마다 그 수가 불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협력자라고 하는 것은 이렇듯 앞에서 이끄는 지도자의 인도를 따라서 비록 내 믿음으로서는 그게 아니다 싶을 때조차도 순종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아니 복음을 위해서라면 철저히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참된 복음 전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파하는 사람을 보며 함께 아파해 줄 줄 아는 사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요 힘들고 지쳐 있는 사람을 보며 손 한 번 꼭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이야 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좋을 때 함께 하는 사람보다도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있어 준 사람이 더 고마운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을 향해서 우리가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정말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사람, 충고하려고 하기보다는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도 벗어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도 함께 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그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마음이 열리게 되고 그 열려진 마음에 복음이 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야 말로 바로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기에 천성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순종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순종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지켜봤던 디모데입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가 아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을 알았습니다. 거기다가 이제는 참된 구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신자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런 그가 바울을 따라 할례까지 받아가면서 복음 전도의 협력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울이 숨지는 순간까지도 항상 바울의 뜻을 따라 때로는 함께 가며 때로는 바울이 다른 선교지로 떠나고 난 다음 그 자리를 바울 대신 지키며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던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겠으며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했겠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있겠지만 그 성도들 중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 디모데가 너무도 고마워서 빌립보서를 쓰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를 믿는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과 지도자들과 집사들에게 편지를 씁니다.”라고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마게도냐 지방으로 가서 첫 번째 전도를 했던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과 지도자들과 집사들 역시 디모데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만큼 디모데는 아름다운 성품의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디모데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좋은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에서 또한 구역에서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일을 한다고 해서만 평판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저 사람이 정말로 나를 위해주고 아껴주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도록 무엇 하나를 해도 마음을 다하여 하고 그것도 사랑을 가득 담아 하게 될 때 굳었던 마음도 녹게 되고 어둡기만 했던 세상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야 정말 좋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도록 그렇게 모든 것을 함께 하게 될 때 그 열려진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마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복음 전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가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로 꼭 필요한 사람이요 때로는 어려울 때 더 찾고 싶고 기대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섬기며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끔찍한 일이 많은 세상이라고 해도 우리는 결코 다 포기해 버리고 모른 체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그래서 그들이 마음이 열려지기까지 우리의 사랑의 베풂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사랑의 실천자가 되되 먼저 우리가 믿음 안에서 든든히 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가르치고 양육해서 이런 사랑의 실천자가 되도록 만들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아니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믿음의 사람이요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우리 모두가 먼저 본이 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바로 믿음인 것이요 믿음 안의 사랑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자녀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전해줌으로 인해 지금까지 내려오던 모든 저주의 굴레를 끊고 복을 물려 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협력하며 순종하고 섬기는 좋은 성도요 복음 전도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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