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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자랑하라 (고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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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자랑하라(고전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봄비가 내렸습니다. 온 대지가 촉촉하게 젖는데 우리 교육관에 있는 나무들을 보니까 그렇게 좋아하더라구요. 오늘도 성령의 단비가 메마른 우리의 심령속에 충만히 내려서 참된 기쁨과 감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인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입니까? 어려서 우리 모두가 가난하게 살 때 미국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초컬릿을 먹는 것이 부러웠고, 자동차 타고 다니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국사람이 아니라 미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초컬릿이나 자동차나 좋은 집에 사는 것도 부러웠지만 그보다 미국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은 미국사람이 되면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초컬릿, 자동차를 부러워하지 않았고 미국사람이 되는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어린 제 마음에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지혜입니다. 저는 지금 한국사람인 것에 감사합니다. 다른 나라를 다녀보면 우리나라, 너무 잘 삽니다. 자원이 있는 나라들은 잘산다고 하더라도. 우리같이 자원이 없는 나라가 이만큼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주신 은사, 그것이 병고치는 은사든, 돈이라는 은사든, 권력이라는 은사든, 교회직분이라는 은사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만 붙잡으면 다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보다 초컬릿과 같은 은사를 더 중요시 여겼습니다. 아니 그런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은사를 갖은 사람은 자기 자랑에 바빴습니다. 자기를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선택인지 모릅니다. 그런 고린도 교회는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아볼로파, 바울파, 제바(베드로)파 그리스도파등 4개의 파로 나위어서 자신들의 지혜와 힘을 자랑했습니다.(고전1:31)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니까 교회생활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시간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사람을, 자기가 받은 은사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본문 앞에 있는 1장의 내용입니다. 전부 그런 내용인데 그 중에 대표적인 몇 구절을 보시겠습니다.

1절, 25절을 같이 봅시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사람이 아무리 많은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경험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사람이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더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을 자랑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29-31절을 같이 봅시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는 이유를 오늘 본문이 2가지로 말하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때문이고 둘째는 성령의 능력은혜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자랑하는 이유는 첫째 예수 십자가의 사랑 때문입니다.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아멘

하나님의 증거는 내가 가진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고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그것만이 하나님의 증거로써 효력도 있고 가치도 있고 그래야만 된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으로 구원받아 영원의 세계를 사는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인이 아닌 의인,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처음과 같이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믿어야 되는지 의심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만둬야 하나, 아니 교회를 바꿔봐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지난주간에 신문에서 한 중년 여인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한 중년 여인이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고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여인이 이혼결심의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벌써 10년이 넘게 서로 애정이 없어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행복은 저 멀리 간 느낌이에요. 이런 결혼 생활 유지해야 할 의미도 없고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에요. 그래서 이혼해야겠습니다.”
1시간 넘게 남편을 원망하는데 남편에 대한 좋은 말은 전혀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여인에게
“좋습니다. 그 정도면 이혼해야겠어요. 그런데 그 전에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저녁 남편과 같이 식사를 하시고 차 한잔 마실 때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까 긍정적으로 남편을 인정하는 말을 해 보세요.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 상담합시다.”

이 여인은 마지못해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녁식사 후,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남편을 인정해 줄만한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신문을 보고 읽고 있는 남편에게 얼떨결에 말하기를
“여보! 나는 당신이 IMF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것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워요.”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더니 전기에 감전이 된 사람처럼 잠시동안 멍하니 그 여인을 쳐다보았습니다. 여인은 불안했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잠시 후 남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고맙소, 정말 고맙소. 당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소”
남편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남편이 이렇게 행복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10년 동안 이런 고마움의 표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고마운건 당연하고 힘든 얘기만 서로 주고받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요. IMF 그 어려울 때, 남편의 수고에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하고 난 이후 남편이 고맙다!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도 행복해졌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나는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존재였구나’를 기억하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보면서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그러고, 하나님 앞에 나온다고 그러고,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지 살았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다른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바로 내 교회, 내 모습이 아닌가를 생각하면서 정말 이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듣고 싶어하시는 얘기가 무엇일까. 내가 정말 하나님의 눈에 눈물을 하게 할 정도로 그렇게 할 수는 없는가.
계시록 2장에 보면 아시아 일곱 교회가 나오는데 그 첫 번째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주님이 칭찬을 하십니다. “네 수고와 네 행위를 아노니”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큰 수고와 행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마지막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챙망할 것이 있는데 너희는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 내가 예수를 처음 믿을 때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았던 것을 너는 잊어버리면서 네 수고와 행위만을 자랑하고 있다“ 주님은 그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촛대를 네게서 옮기리라”

우리가 많은 일을 합니다. 많은 수고를 합니다. 많은 행위를 합니다. 많은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 다 있어도 단 한가지 처음 사랑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다 잃어도 처음 사랑만 있으면 우리는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주님 앞에 힘든 얘기를 합니까? 주님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이 뭐가 있냐고 우리가 얼마나 불평을 합니까? 그래서 내 신앙의 갈등이 오고 교회생활이 어렵고 그러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을 다 없더라도 우리 주님 앞에, 예수그리스도가 그의 십자가만 알기를 작정한 것처럼 주님앞에 겸손하고 주님 나를 위해 오셨고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의 감사를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눈물을 흘리시고 기쁘게 여기시고 은혜주실 줄로 믿습니다.

가끔 tv를 보게 되면 헤어졌던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참 감동적일 때가 있습니다. 외국에 입양갔던 자식이 부모를 찾으러 와서 만난다든지, 또 무슨 이유에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데 감동적인 것은 이 잃어버려서 힘들고 어렵게 자란 자녀들이 이 부모를 만나면 부모들은 하나같이 다 “미안하다. 난 네게 해 준 것이 없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 자녀가 하는 말이 “어머니,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가 이 세상에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사회자건, 주인공들이 울음바다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고 내 자신이 은혜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모든 것이 다 없어도 주님만이 나를 오늘 있게 하시고 살게 하셔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사랑앞에 감사하면서 우리는 그것으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일본 유학생으로 지하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죽은 이수현군의 추모예식에서 “감사하다! 숭고하다!” 그것이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 믿고 더 힘듭니다. 정말 어렵고 고통속에서 살았지만 그때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고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만 사랑한 그 감격이 사도바울을 살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중물을 아십니까? 사랑은 마중물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서 이 시골에 가면 우물물이 있는데 두레박으로 길게 되면 이것보다 더 발전이 되면 펌프가 있습니다. 펌프는 펌프질을 해서 물을 기릅니다. 하지만 펌프질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물을 한 바가지 넣어야 됩니다. 이때 넣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하는데 마중물을 넣으면 펌프질이 잘 돼서 많은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그 사랑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 생각할 때 사랑의 감동은 없습니다. 내가 사랑을 해야만 그 사랑이 내 사랑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앞에 감동을 하고 주님의 사랑앞에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행복이 내게 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내가 주기 전에는 사랑이 될 수가 없고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 사랑을 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받은 않은 사랑을 어떻게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사순절에 은혜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로 고백하시고 감사로 증거하시고 그때 우리에게는 참된 기쁨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자랑해야 되는 이유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때문입니다.

3절에서 5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발소 아저씨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코피가 나는데 멈추지를 않더랍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뇌출혈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았는데 이 병원에서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더랍니다. 일주일 동안 코피를 흘렸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까 계속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화가 나서 이 대학병원보다 더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갔더니 그 병원에서 딱 보더니 하는 말이 이마에 있는 뇌에서 나오는 것니까 수술을 하면 된다고 해서 저녁에 입원을 했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수술을 하고 몇 일 입원했다가 퇴원을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병이 나면 큰 병원으로 가면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병이나면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네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아저씨가 대답도 안하고 하는 말이 “그런데 목사님, 태권도 도장 관장이 젊은 사람인데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강남에서 제일 큰 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자고 하는데 수술방이 없어서 자기네 협력병원인 작은 병원에 보냈는데 그 병원에 갔더니 수술은 무슨 수술이냐 약물치료면 되는데.. 라고 하더니 약물치료로 3일만에 퇴원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당황을 했습니다. 이발소 아저씨 왈 “목사님! 큰 병원도 아니고 작은 병원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내가 너희 가운데에 있을 때, 고린도 교회 교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어느 교회보다도 자기를 내세울 만한 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인들과 신앙생활을 하면서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떠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하시는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합니까? 너희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는 성도의 신앙인의 태도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떠는 것은 아닐까.
사도바울은 성령의 인도와 능력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사도가 되었고 성령의 인도함 따라서 복음을 증거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성령이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예루살렘의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했지만 예루살렘을 향해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나타나서 그로 하여금 죽을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서 “바울아 두려워말라. 내가 가이샤 왕 앞에 서야 되겠고 내가 함께 하는 자가 살 것이라” 고 파산하는 배위에서, 풍랑이 부는 배위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한순간도 그는 자기의 능력이나 자기의 힘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성도의 진리로 인도하시고 자기의 일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앞에 약하고 두려워 심히 떠는 모습으로 교회생활을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원충현 대령은 5.16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장군의 비서실장이었습니다.
혁명이 성공을 하고 나서 비서실장이었던 원대령이 대통령에게 ‘정치는 민간인에게 맡기고 군인은 군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가 반혁명운동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선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기징역으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원대령이 수감되있던 당시 안양교도소에는 4300명의 수감자들의 있었는데 그 수감자들이 제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 원대령이었다고 합니다. 교도소 소장 말은 듣지 않아도 원대령 말은 들을 정도라고 하니 그의 역량력이 얼마나 컸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에 원대령은 “내 인격이 휼륭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 때문이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원대령에게는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고 ‘하나님의 손길’만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손길이 4300명의 죄수로 하여금 역량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보안사에서 반혁명주동자라고 고문을 받는데 온 몸이 망가지고 손가락, 발가락 움직이지 못할 정도여서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몸이 싸늘하게 식어 가는데 그때 자신도 모르게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하나님! 제가 죽네요.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죄인으로써 나라를 위해 거사를 준비할 때 죽음은 이미 각오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제가 하늘의 일은 하지 못하고 땅의 일만 하다가 죽게 된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고문실의 낮은 천정으로부터 밧줄 한 가닥이 내려오더랍니다. ‘웬 밧줄이지?’ 생각하며 쳐다보고 있는데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리기를 “이 줄을 잡으라! 이 줄을 잡으라!” 자기도 모르게 꼼짝 못하던 몸을 일으켜 밧줄을 잡았더니 두 번째 음성이 들이기를 “다시는 이 줄을 놓지 말아라” 하더랍니다. 그 순간 그 죽어가던 몸에 힘이 생기고 전기가 지나는 뜨거운 느낌이 오더니 그렇게 망가졌던 몸이 회복이 되어 가더랍니다.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것으로 그는 감옥생활을 성공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요, 성령이라고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인의 고백속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내게 있어서 살아갈 수 있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이 충만 할 줄로 믿습니다.

윤장호 병장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분명 우리가 보기에는 불행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하나님이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갈 터인데 그때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를 상상해 보세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원합니다. 오늘 31절 기념주일인데 신문에 삼일절과 관련된 기사가 많이 실리는데 그중 하나가 1919년 31운동 당시에 한국의 점령군 사령관으로 왔던 사람의 일기가 발견이 됐습니다. 그 일기를 보니까 제암리 교회에 교인들을 모아놓고 그 막아서 불을 질렀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또 한가지는 이 31운동할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했던 한 사람이 이제 앞으로 거사가 있을테니 준비를 하라고 와서 31운동의 비밀을 알려준 종교지도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 그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젠가는 우리가 한 일들이 낫낫이 들어나게 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31운동이 귀한 것은 31운동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살아 생전에 우리가 보고 싶은 것 다 못보고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고 평가를 받을 때 “네가 나를 정말 사랑했구나. 네가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살았구나. 네가 예수 사랑가지고 살았구나.” 하나님을 자랑하며 살았구나.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도 애굽의 고난속에서 살 때에 하나님의 손길로 승리합니다. 다니엘도 바벨론의 고난속에서도 술을 먹지않고 야채만 먹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승리한 사람입니다. 다윗도 사울의 원수가 돼서 그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 하나님만이 나를 살리시는 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해서 하나님으로 승리하게 됨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이 한 n주간 사순절을 지내면서 31절 기념주일을 지내면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설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동안 주님의 예수 십자가의 사랑에 감사하시고 주님의 성령의 능력앞에서 약하고 두렵고 떨리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함께 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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