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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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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런 다음 그냥 본래 하던 어부 일로 돌아갑니다. 어느 날 밤새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하지요. 멀리 한 사람이 서서 지정하는 곳에 그물을 던지라 합니다. 그랬더니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알아보고 물에 뛰어내립니다. 그렇게 예수를 또 만납니다.

예수께서 조반 후에 묻습니다. 자신이 베드로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그려보세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사랑합니다.” 그러자 명령하십니다. “내 양을 돌보아라.” 그리고 다시 같은 내용을 묻습니다. 대답도 같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돌보아라.” 이렇게 세 번이 반복됩니다. 여기 신자의 성공적인 삶을 위한 내용이 다 들었습니다.

왜 주를 사랑해야 하나요?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도 그러시나요? 아니요, 나를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무언가 사랑해야 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온갖 것을 다 사랑합니다. 정신없이 삶을 낭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랍니다. 그래야 삶이 질서를 잡습니다. 제대로 살 힘도 받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엄청난 사역을 향해 나가는 베드로에게 주는 계속해서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도 이 질문이 항상 마음에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힘으로 되어야지 우리 힘으로 진행된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질문이 더 주어져야 합니다. 그 순서대로 해야 삶은 질서와 힘을 얻습니다.

1. 주를 사랑하는가?

이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명령하신 대로 자신에게 적용해 보세요. 베드로처럼 위대한 삶이 열립니다. 첫째 “내가 주를 사랑 하는가” 확인하세요. 대부분의 경우 예수 사랑은 의무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쉐마 교육을 받아요.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삶이 질서를 바로 잡는다는 것입니다.

계명은 분명히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반면에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무시하고 그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는 반드시 죄를 갚는다 하십니다. 누가 하나님을 미워하고 무시합니까? 세상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이지요. 하나님 미워하는 일을 하는 게 하나님 미워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질서를 잡습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바울을 보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전도하고요 전도하다가 모욕을 당하고 잡혀 매를 맞아도 오히려 너무 감사합니다. 그 사랑이 수치도 고통도 다 극복합니다. 감옥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찬송합니다. 모인 곳이 진동하고 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간수가 달려와 회개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삶들은 하나님 사랑이란 오직 한 가지 원리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위해 삽니다. 요셉은 노예일 때 자유 얻고 출세할 기회를 얻습니다. 아름답고 돈과 권력 많은 여인이 유혹합니다. 주인의 아내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거절하고 감옥으로 갑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뿐 아닙니다.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용서하고 끝까지 돌봅니다. 그리고 당시 최강대국 애굽을 잘 다스려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원합니다. 아니, 주위 나라도 다 구합니다. 요셉이 위대한 사랑의 사람으로 불린 것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사랑의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더 큰 성공은 없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역경을 참을 수 있습니다. 교회 나오다보면 기분 나쁜 일을 당합니다.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무관심합니다. 주차관리 하는 이에게 불쾌한 소리를 듣습니다. 돈 문제에 말려들기도 합니다. 사업상 서로 감정이 나빠집니다. 그러나 주를 사랑한다면 참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속을 뒤집어도 주를 보면 참습니다.

그러기에 주는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삶이 괴로울 때마다 물어보세요. 내가 주를 사랑하는가? 주를 사랑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힘도 없어요.

2. 주를 의지하는가?

근본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는 선물을 사랑합니다. 자녀 사랑하고요. 애인 사랑합니다. 돈도 사랑하고요. 명예나 대접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로만 사랑합니다. 간단한 증거로 자녀나 배우자보다 훨씬 돈이나 시간을 안 씁니다. 하나님의 일은 뒷전입니다. “손에 잡은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하나님 사랑한다고 예배에 나오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선물을 많이 받기 위함입니다. 가족과 자신의 일이 잘 되기 위해서입니다. 자녀 위해 기도했는데 자녀가 잘 안 된다고 안 나옵니다. 기도해도 장사가 잘 안 된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시는데 소홀히 합니다. 몸이 안 좋았다. 손님이 왔다. 늦잠 잤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시는지요?

제가 중생하는 데 도움을 주신 은사 목사님께서 40일 금식을 했습니다. 시작하는 날 질문이 떠오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 사랑한다고 목사가 되었는데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더랍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40일 금식기도도 자기 잘 되려고 능력 받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질문과 싸우느라 여러 날을 보냅니다.

결국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우리가 무슨 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까? 어린애가 부모를 무슨 힘으로 사랑하겠습니까? 그냥 매달릴 뿐이지요. 우리는 어린애들만큼도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부모처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시고 고통을 당하고 목숨을 버렸습니다. 영혼이 지옥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힘이 없어요. 애인을 향해서도 너무 얄팍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짐이라.”(롬5:5) 우리에게 주신 것을 깨달은 뒤에야 사랑의 힘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하나님을 알고 의지할수록 사랑도 그렇게 많아집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께서 이끌어주어야만 주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금식하던 목사님께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여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그 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금식도 잘 마치고 목회도 성공합니다. 우리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의 도움으로만 됩니다.

주를 사랑해야 삶이 제대로 질서를 잡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등 대통령은 링컨입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건 묻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가?” 다윗처럼 외치세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3. 주의 양을 돌보는가?

주를 사랑한다면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의 양을 돌보라.” 주의 양 속에는 신자 모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신자도 있고 장래의 신자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나도 있고 내 가족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는 자신을 돌보고 주위의 모든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을 돌보고 구원하는 삶을 삽니다. 그것이 최상이요 최고요 영원한 열매입니다.

프랜시스가 수도원을 만들자 여러 사람들이 따라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초창기는 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하지만 재미도 없고 공동체도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모일 때마다 무엇이 잘못인지 토론합니다. 예배가 약하다. 서로 돕지 않는다. 책임감이 없다. 프랜시스는 말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서 능력을 받겠습니다.”

말이 한 마리 생겼습니다. 프랜시스가 수도원장인데다 아파서 말을 타고 다른 사람들은 걸었습니다. 성령이 깨닫게 합니다. “레오날도가 속상해 한다. 자기가 귀족인데 걷는다고.” 프랜시스는 말에서 내려 그의 앞에 무릎 꿇습니다. “용서하시고 타십시오.” 레오날드도 무릎을 꿇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미워했습니다.” 그때부터 공동체는 일어났답니다.

하나님 사랑하면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자신부터 시작하세요. 원하는 대로 삶이 펼쳐지지 않나요? 힘드나요? 괴롭히는 사람 있나요? 삶이 십자가인가요? 무엇이건 해당되는 게 있지요? 자신부터 격려하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신다.(고전8:3) 힘내라. 예수 사랑해서 하는 일은 다 가치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성공한다. 힘주신다.”

우리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모든 일을 일 그 자체로 그치면 안 됩니다. 좋은 작품을 만든다. 물건을 많이 판다. 교사노릇을 잘한다. 집안을 깨끗이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 어떤 일을 하든가 동기는 주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요, 힘은 주로부터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열매는 주의 양을 돌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최고 복 받는 삶입니다.

또한 교회에 왔다면 주의 사랑으로 서로 돌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대접 받으려하면 안 됩니다. 대접하려고 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장소나 식당이나 주일학교나 주차하기 위해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합니다. 서로들 푸대접 받는다고 화를 낸다면 어찌 주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세요.

북 카페에서 일하는 분들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주를 사랑한다면 연락도 없이 안 온다든지 함부로 말한다든지 안 하지요. 북 카페를 비롯한 모든 장소는 기존교우들에게도 필요하지만 더욱 불신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분들은 누구건 대접 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서로 양보하고 한 테이블이라도 남겨두고 로비에서 이야기 하세요.

모두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주의 양, 특별히 새로 온 어린양들을 돌봐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날 양들을 위해 기도하며 도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상이 큽니다. 삶 전체가 큰 힘을 얻어 형통할 것입니다. 세 가지질문 늘 확인하세요. “내가 주를 사랑해서 이 일을 하는가?” “주를 의지하고 하는가?” “주의 양을 돌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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