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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이 열려 있는 집 (단 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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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은 BC 605년에 바벨론 포로로 붙들려 간 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막대기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고 성전은 불타며 모든 백성들은 죽고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서 붙들려 가는 이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부모 형제 다 잃고 나라가 망하며 국가의 위기가 오는 이런 절망 가운데서도 그는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여 바벨론 나라의 총리가 됩니다. 그의 지혜는 어떤 바벨론 사람들의 지혜로도 따를 수 없었고 그는 그 이후로도 바벨론 나라만 아닌 메대, 바사에서도 계속하여 총리가 되고 온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의 특징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항상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이 없이 기도했습니다. 어려울 때도, 좋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포로로 붙들려 온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고 총리가 되어서 온갖 부귀 영광을 누리면서도 항상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이 계신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셨던 지난날의 그 아름다운 시절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지금도 나의 길을 인도하시리라는 큰 믿음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매일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 성도들도 다니엘과 같이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어떤 창문입니까? 기도의 창문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의 창문을 열지 않으며,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닫아놓고 예루살렘을 향한 문을 닫아놓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며,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새벽기도는 창문을 여는 시간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여는 시간입니다. 오늘 세상의 창문이 너무 많이 열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창문 속에서 행복을 얻으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열린 문으로는 온갖 죄악이 들어오고 유혹이 들어오며, 시험이 들어오고 범죄가 들어옵니다. 현대인들의 탈선과 방황과 좌절은 세상의 문을 너무 열기 때문입니다. 위의 문을 여는 사람, 예루살렘의 문을 여는 사람, 기도의 창문을 여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교회도 너무 세상 문을 많이 열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이런 수단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위해서 교회에 나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위의 창문을 여는 사람은 세상의 창문도 열려집니다. 위의 창문이 열린 사람은 세상을 통하여서도 불행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의 문을 닫고 세상 문만 열 때 우리는 그 문에서 온갖 상처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위의 창문을 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말씀을 잘 전하는 것 같아도 아무 열매가 없습니다. 주의 종들이 너무 세상의 창문을 열어 놓고 사람을 만나며, 세상의 평안과 영광을 누리고 세상적인 기쁨을 얻으려 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모든 성도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오직 위의 창문을 열 때만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랫문을 닫아야 합니다.

  오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죄악의 창문, 유혹의 창문을 열어 놓습니다. 향락과 술 취함과 음란과 방탕의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바다가 좋다고 해서 바다를 향하여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얼마나 바다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산을 향하여 산으로 인해 내게 무슨 문이 열려서,산이 행복을 주고 건강을 주는 줄 알고 산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골프장이 우리에게 무슨 대단한 축복이 되는 줄 알고 문을 열어 놓습니다. 이 세상에서 문을 많이 열면 열수록 우리는 바쁘고 피곤합니다. 다니엘도 출세했으니까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찾아오는 사람이 습니다. 부귀 영광 향락 기쁨의 창문이 많이 열려 있지만 그런 문을 닫고, 그는 기도의 문을, 우리 하나님께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럴 때 승리했습니다. 그의 축복은 이어져갔습니다. 그를 향하여 어마어마한 증오의 세력들이 지금 꿈을 꾸고 있고 다니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사자 굴에 넣기 위해서 별의별 음모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성공하면 적이 없는 줄 압니다. 많은 사람은 출세하고 나면 이제는 안심이다라고 생각하고 세상의 창문을 다 열어 놓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공하고 출세하고 높은 지위와 권력을 얻으면 우리 성도들도 모든 일에 ‘야, 누가 나를 해치겠냐?’하는데 그러나 여러분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 교인들이 신문에 크게 난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말을 안했습니다만 모두 굉장한 분들이었습니다. 너무너무 출세하고 성공하니까 기도의 문을 닫고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닫아 놓으며, 세상 문을 열고 높은 사람 사귀니 천하에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큰 시험을 당합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는 걸 알아야 됩니다. ‘잘 믿고 축복을 받으면 이제는 아무 염려 없다?’ 아닙니다. 복 받을수록 창문을 열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되며, 은혜 받을수록 창문을 열어서 주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교회에 농구하는 삼성의 안준호 집사님이 그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농구도 챔피언을 하면 열 개 팀이 어떻게 하면 내년에 이 삼성을 넘어뜨리느냐? 다른 데에 타켓을 안 둡니다. 삼성 하나 넘어뜨리기 위해서 삼성 선수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하계 훈련도 삼성을 넘어뜨리자 여기에 목표를 둡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으면 여러분이 타켓이 되는 걸 알아야 되는데도 많은 사람은 창문을 열어 놓고 많은 사람 찾아오니 세상에 내가 복 받은 줄 알고 성공한 줄 알고 그럽니다. 그러나 오고 가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삼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너무 그런 걸 반가워하면 안 됩니다. 누가 만나자 할 때 그거 대단한 줄 알고 자꾸 만나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기도하는 한 시간이 어떤 것보다 귀한 것입니다.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네♬ (찬송가 482장)

  오늘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의 문을 엽니다. 윈도우를 엽니다. 컴퓨터에 들어가면 평균이 하루에 세 시간씩 거기 들어간답니다. 시간을 거기 다 보냅니다. 나오려고 하면 또 유혹을 받아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또 가고 계속 창문을 엽니다. 그러나 기도의 창문을 그 십분의 일만 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루 세 시간 컴퓨터에 앉아 있으며 나중에는 4시간, 5시간, 7시간, 10시간씩 앉아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피곤해서 그 다음 또 엉뚱한 곳으로 찜질방, 안마방으로 갔다가 시험 듭니다. 기도의 문을 십분만 열어 보십시오. 새 힘이 주어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할렐루야! 세상 문 별것 아닙니다. 우리나라 방송채널이 17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많습니다. 저도 어떤 때에 틀어보면 너무 많습니다. 선전도 얼마나 많은지 또 별것 아닙니다. 운동기구 드르르 흔드는 것 집에서 흔들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 것 갖다가 흔드는지 그게 뭐 대단하다고, 무슨 약 선전하고 세상에 별의별 선전을 합니다. 어느 집은 가난한 집인데도 쌓을 곳이 없습니다. 그런 걸 다 갖다 놓아서 꽉 찬 것입니다. 그 가난한 집에도 선전 한 것마다 다 갖다 놓으니까 가득차서 집안에 사람이 들어가 잘 데가 없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할렐루야! 여성 속옷도 보면 ‘이건 두 번 미싱했습니다. 겹질했습니다.’ 하는데 미싱 두 번 돌리나 한번 돌리나 그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보면 똑같을 것 같은데, 또 모두 갖다가 놓고 그러지 마십시오. 하루 종일 틀어 봐도 별게 없습니다. 기도해 보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의 창문을 열기를 바랍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세상의 문을 열다가 모두 좌절하고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저께 조선일보에 나왔지 않습니까? 170만 명이 정신병 환자입니다. 이 정신병이 어디서 오냐하면 백퍼센트 우울증에서 온다고 합니다. 우울증은 바로 정신병으로 넘어간답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으로 병원에 가자고 하면 죽어도 안 간답니다. ‘내가 미쳤단 말이냐’ 하고 안 가려고 한답니다. 다른 병은 다 가도 정신병은 안 가기 때문에 그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우울증이 많습니다. 답답합니다. 어디 있어도 답답합니다. 출세하나 성공하나 실패하나 농촌이나 도시나 다 답답해합니다. 애들도 어른도 모두 답답해합니다. 어떤 분이 아기를 낳고 저에게 그럽니다. ‘목사님! 너무너무 제가 답답합니다.’ 왜 그러냐 하니까 ‘제가 결국 이렇게 살려고 여기 왔는지, 공부하고 그래도 저는 대단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 종착역이 여긴지, 하루에 하는 일이 아기 기저귀 계속 갈아주고 젖병 물려주고 끓이고 제가 이런 걸 하니 제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라며 아기 낳아놓고는 그만 답답해합니다. 여러분!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이고 보람되며 귀한 일인데도 위의 창문을 열지 않으면 허무해합니다. 그럼 다른데 가면 보람있느냐, 뭘 하면 보람이 있겠습니까? 일을 하면 일 하는데서, 밖에 가면 밖에서 들에 가면 들에서 다 허무합니다. 이 세상에 허무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다 허무한 일인데... 어머니들이 제일 지금 허무해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나면 허무해 동창들끼리 모여 한잔 하자 하고 어디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그러고 그러면서 탈선하고 넘어집니다. 가정이 있는 것이 답답한 것입니까? 애 낳아서 기르는 게 하찮은 것입니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까?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냐, 정말 그런 것입니까?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당연하고 인간의 최대의 가장 귀한 일인데 거기서 허무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남편 반찬도 준비 안 합니다. 내가 이런 것 하려고 사느냐 합니다.  반찬가게에 가면 오이소박이도 있고 없는 것이 없습니다. 게장도 있고 그래서 그것 갖다 놓고...

여러분! 반찬은 반찬 하나하나에 내가 가족을 위해서 한다는 기쁨이 없으면 허무합니다. 다 마찬가지인데 모든 것이 다 일인데 국민을 위하는 것도 허무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 만든다, 손으로, 음식은 손에서 나옵니다. 손맛입니다. 맛을 봐 가면서 얼마나 맛있습니까? 위에 창문을 열지 않으니까 허무함이 오고 좌절이 오며 낙심이 옵니다. 강남에서 지금 어느 사람이 5층짜리를 세를 내서 여기서 사우나도 하고 안마도 하면서 이름을 붙여 놓고 퇴폐행위를 했는데 28개월 동안에 이곳에서 4백억을 벌었습니다. 여기에 20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20만 명이 다 거기 와서 몇 십 만원씩 내면서 온갖 탈선하고 죄를 짓고 돌아간 것입니다. 잡혔는데 높고 낮은 사람들이 이 명단에 다 들어가 있었습니다. 위에 창문을 닫다 놓으니까 ‘세상에 뭐 없냐?’ 이렇게 해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다 이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다니엘을 향하여 이 어마어마한 음모 속에서 다니엘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사자 굴에서 지켜주십니다. 사자 굴에 들어갔는데 사자가 해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나의 하나님은 사자 굴에서 호랑이굴에서 곰에게서 나를 지켜주시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건져주신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낸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창문을 연 사람은 이 세상이 허망하고 헛된 것을 경험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경험합니다. 백 개의 채널의 창문이 열려도 수 천 개의 윈도우가 열려있어도 세상의 열린 문으로는 인생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인간은 망가집니다. 가정이, 인격이 무너집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모든 자살과 낭패는 세상의 윈도우를 열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늘의 윈도우를 열어보십시오. 예루살렘을 향하여 문을 열어보십시오. 기도의 창문을 열어보십시오. 새벽기도 왜 나옵니까? 창문 열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문을 열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편 6편 9절에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6장 21절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31편 2절에도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니” 베드로전서 3장 12절에도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도우십니다. 예수 믿으면, 기도하면, 창문 열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합니다.

  누가 말하기를 세상은 일방통행이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기도는 양방통행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세상은 자기 혼자 힘쓰는데 오는 것이 없습니다. 일방통행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언제나 기도한 것만큼 은혜를 주십니다. 지켜주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도의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저도 죽을 데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수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기도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도해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시기 때문에 기도하면 부요함을 경험하고,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에 기도하면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기도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은 늘 용서하시기 때문에 기도하면 용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도 1부 예배를 다녀가면서 어떤 아가씨가 이번에 KBS아나운서로 들어갔는데 결선에 온 사람이 3 백 명, 수천 명을 뚫고 마지막에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그 밑에다가 나는 어떻게 해서 됐냐? ‘기도해서 되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경쟁을 뚫습니다. 이겨냅니다. 승리합니다. 사고 지켜주십니다. 재난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이 있을 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부모님을 가까이하고 대화하려고 하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기뻐합니다. 일본에 제일 효자 집을 방문했는데 세상에 이런 효자가 어디 있나 한 번 우리도 효도해야 되겠다해서 전 일본에서 효자 상을 받은 분을 방문했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사업을 하다가 들어왔는데 어머니가 발을 씻겨주는 것입니다. 방에 들어가니까 어머니가 먹을 것을 갖다 줍니다. ‘얘야 먹어라.’하고 어머니 방에 가서 어머니하고 이렇게 지냅니다. 대화하고 그래서 저는 ‘아~ 세상에 이렇게 불효막측한 사람이 무슨 효자냐?’ 싶었습니다.

여러분! 어머니의 기쁨이 어디 있습니까? 성공하고 사업 회장되면 어머니의 접근을 막습니다. ‘어머니! 이런 것 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방 안에 계세요, 어머니 참견하지 마세요, 말씀하지 마세요, 안에 들어가시라니까요.’ 어머니를 방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이게 불효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어떻게 할까요? 물 좀 주세요, 도와주세요.’ 이게 효도입니다. 회사에 갔다 오면 ‘갔다 왔다.’하고 ‘어머니 저 왔어요, 어머니 괜찮으세요?’ 손도 만져보고 이래야 그게 효자입니다. ‘어머니 주무세요.’하고 마누라 방에 가서 불을 일찍 끄면 그게 아주 불효한 놈입니다. 어머니를 방안으로 몰아넣고 저희끼리만 빨리 들어가는 것 이게 나쁩니다. 어머니하고 불 켜놓고 이야기하고 아버지하고 불 켜놓고 이야기하고 저는 사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지만 제가 보통 열두시 가까이 돼야 집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주무시면 깨웁니다. ‘아버지! 한 수 합시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그게 좋은 것입니다. ‘아유~ 피곤하다. 아유~ 잘란다.’ 그러면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그래서 일어나보면 아버지는 좋아하십니다. 그게 좋은 것입니다. 아무 대화도 안하고 방에다 넣어 놓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부모도 자녀를 도와주는 게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만나고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좋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을 부처처럼 생각해놓고 방 안에 넣어 놓을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기도 속에서 늘 만나야 됩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면 열리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부요하신 하나님이 늘 우리에게 문을 열어 놓고 계십니다. 늘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늘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문을 열어야 됩니다. 창문을 여는 자는 다 다니엘같이 사자굴 속에서 삽니다. 이 세상 재난 속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새벽기도 나와서 첫 시간 기도하면 우선 남자가 가지고 있는 남성적인 면이 살아납니다. 남자의 가장 중요한 것이 결단력, 용기 이 두 가지인데 살아납니다. 하나님 앞에 창문을 여니깐... 오늘 많은 남자들이 용기가 없습니다. 건강하고 공부를 많이 해도 용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결혼할 때 다섯 살, 열 살 많은 연상의 여인 만나서 ‘누나, 누나’ 그럽니다. 어디다 대고 누나라는 것입니까? 남자다워야 될 것 아닙니까? 기도해 보십시오. 담대함이 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창문을 열어 놓으니까 두려움이 없습니다. 낙심이 안 옵니다. 그리고 비전이 생깁니다. 남자가 꿈이 있어야지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비전과 용기가 생깁니다. ‘나는 큰 일 할 수 있다.’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범죄의 문이 닫힙니다. 남자들은 자꾸 좌절하고 이러면 술도 가까이하고 싶고 또 여자도 가까이하고 싶고 한데 피곤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고 나면 그런 유혹의 문이 닫힙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마귀가 물러갑니다. 길이 열립니다. 잘 됩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면 좋은 일이 이어져 나갑니다. 기도가 얼마나 좋다라는 걸 말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새벽에 창문을 여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세 번을 못 열지라도 아침에 한 번이라도 열면 주의 빛이 위로부터 비춰질 것 아닙니까? 어머니도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잘 지킵니다. 자녀를 사랑합니다. 남편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기도로 밀어줍니다. 저도 이번 새벽집회를 하면서 저희 집사람이 한 주일 금식하였습니다. 도와줍니다. ‘내가 참 장가 잘 갔다.’ 할렐루야! 기도로 밀어줍니다. 그러니까 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성령이 함께하지 아니하면 가능한 일입니까? 피곤한데도 또 주님이 도와주시니까 집사람이 그럽니다. ‘나는 한 끼만 안 먹어도 너무 피곤해가지고 일도 못했는데 한 주일 내내 금식을 해도 1부 예배 드리고는 가서 밥을 해도 피곤이 없어요, 도무지 피곤하지 않아요, 부산까지 장례식 다녀오고 문상 갔다 오고 다 해도 피곤하지 않아요.’ 왜 그렇습니까? 성령이 새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새 시대, 새 영, 새 사람이 됩니다. 내 속 사람은 살아납니다. 내가 밥 안 먹으면 곧 죽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해 보십시오. 창문을 열어보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이 주어지고 힘이 주어지고 어머니로서의, 아내로서의 마음이 주어집니다. 어머니는 품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런 좋은 마음들은 기도를 통해서 막 살아나고 주어집니다. 그래서 기도한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가 영적인 문제 아닙니까? 가정의 문제도 영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의 직장, 이 나라의 문제도 다 영적인 문제인데 이 모든 문제에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할렐루야!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발전적입니다. 앞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래서 좋은 것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한 시대에 성공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또 남의 나라 총리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온 세계가 다 손바닥 같으니까 어디서나 기도해도 하나님은 들으시고 어디에서 기도해도 쓰임 받고 어느 나라, 문화가, 언어가, 다른 나라, 환경이 다른 곳에 살지라도 기도하면 다 잘 됩니다.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미국에 가서도 기도하는 분들은 다 잘 살지 않습니까? 성공하지 않습니까? 지난주에 오셨던 이희돈 박사님 간증을 들으셨습니까?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한다고 합니다. 저도 놀랬습니다. 그렇게 바쁜데... 15분마다 세계의 지도자를 만난다고 합니다. 각나라 국가원수들 외교관 세계적인 기업가들을 만납니다. 그래도 기도의 시간은 안 뺀다는 것입니다. 총재가 있어도 기도하는 시간 갖고 난 뒤 인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기도시간은 반드시 챙긴다는 것입니다. 사람 많이 만나봐야 피곤합니다. 내 길이 열립니까? 만난다고 내가 달라집니까?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아무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바쁘지 않아도 찾아올 줄로 믿습니다. 어디를 돌아다니십니까?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고 중요하십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이 축복만 해 주십니까?

이희돈 박사님의 이야기를 그날 들으셨지 않습니까?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출퇴근을 하는데 그 날은 뉴욕에 와서 설사가 나가지고 공항에서 내려서 바로 가야 되는데, 설사를 저는 15분 한 줄 알았더니 30분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통이 오고 일어날 수가 없이 못 견디게 아파서 30분 설사를 했습니다. 자기가 지금 수석 부총재인데 전 세계의 금융계 지도자들이 뉴욕 110층 쌍둥이 무역센터에 다 와 있는데 자기가 못가고 30분을 늦으니까 회의가 취소되었습니다. 이 분이 못가니까. 그래서 자기 보좌관 세 명이 있는데 그 세 명을 너무 늦으니까 너는 다른 곳으로 가라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고 또 한 사람 비서는 밑에 와서 기다리게 했는데 세 사람이 다 살았다고 합니다. 자기만 사는 것이 아니라 30분 늦으므로 이 사람들을 다른 곳에 보내 그 무역센터가 넘어질 때 세 사람만 빠져나와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도 살린다 하지 않습니까? 자기 가족들도 지키고 주변도 살립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자기만 안 되냐? 주변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 안 됩니다. 그 간증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간증을 다 들으시기 바랍니다. 한 가정도 빠짐없이, 특별히 학생들한테 이것 좀 다 보여주십시오.

‘너의 장래를 인도하실 너의 하나님께 너도 이렇게 기도해라.’ 할렐루야! 그래서 30분 앞에 두고 늦어 그냥 차를 타고 맨하탄 지하를 통해서 주 욱 올라가는데 웬걸 비행기 소리가 확 들리는데 자기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더랍니다. 눈 위로 자동차 위에서 바로 위에 비행기가 지나가는데 얼마나 글자가 선명하게 다 보이고 밑에 있는 글자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창문에 EXIT, 작은 글자도 다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 큰 비행기가 자기가 근무하는 이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들이받고, 받은 자리가 자기가 근무하는 자리로 그 자리를 차고 나가더랍니다. 그 자리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보고 거기서 돌아가면서 모두한테 ‘비행기가 폭격했습니다.’ 해도 하나도 안 믿더랍니다. ‘빨리 갑시다.’ 그래도 아무도 말을 안 듣더랍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빠져나와서 살았다고 합니다. 기도하면 살려주십니다. 기도하면 오늘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좋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벨사살 시대 때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시대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시대에서 끝납니다. 잠깐 우리의 축복이 끝납니다. 요사이는 그런 말은 안 씁니다. 우리 어렸을 때 제일 많이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과거에 한 가닥 안 해본 사람 어디 있냐?’ 늘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한 가닥 안 해본 놈 어디있냐?’ 다 그런 말 했습니다. 여러분! 그게 다 과거입니다. 기도 안하면 한 가닥 안하고 끝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과거만 한 가닥 하는 게 아니라 오늘도 한 가닥 하고 영원히 한 가닥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항상 한 가닥 하는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주십니다. 계속하여 잘되게 하십니다.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국가도 앞으로 가야 됩니다. 우리 경제도 앞으로 가야 됩니다. 가다가 머무는 나라가 얼마나 많습니까? 필리핀이 잘 나가다가 거꾸러져 버렸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세계 10대 강국으로 들어가다가 거꾸러져 버렸습니다. 브라질도 잘 나가다가 거꾸러져 버렸습니다. 폴란드도 잘 나가다가 거꾸러졌습니다. 나가다가 비참한 자리로 거지로 거꾸러집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아니하면, 과거에 매이면 모두 거꾸러집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날을 뒤돌아 볼 필요 없습니다. 과거는 모두 다 주님에게 맡깁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지난날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성도들은 앞으로 나갑니다. 저 높은 곳 천국까지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면, 창문을 열면, 교회에 나오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사도행전과 같이 늘 앞으로 나갑니다. 가정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부간에도 지난날을 계속 들추어내는 분이 있습니다. 지난날은 말 하면 안 됩니다. 무엇 때문에 지난날을 말합니까? 쓰레기통에 있는 것을 뭐 때문에 꺼냅니까? 개인에게도, 가정도 과거가 있고 지난날은 좋고 좋지 않은 것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을 거울삼아 더 좋은 삶, 더 좋은 나라, 더 좋은 교회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웁니다.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등소평 딸이 말하기를 ‘과거에 엄청난 고통, 문화혁명 때문에 중국이 30년 뒤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교훈으로 삼아 3백년 앞으로 발전하는 기회로 만든다.’ 그랬습니다. 이 얼마나 유명한 말입니까? 과거의 아픈 흔적이 누구에게나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우리가 봉사하고 있는 나라 세 나라 가운데 캄보디아라는 나라는 1975년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라고 하는 군대로 혁명을 해서 다 쳐부수고 모든 일에 증오심과 강퍅한 마음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사람을 학살하는데 그 나라 인구가 1천만 밖에 안 되는데 3백만을 학살했습니다. 1975년부터입니다. 우리가 캄보디아에 대학을 세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캄보디아가 비극의 땅이었습니다. 옛날 이야기가 아니잖습니까?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의사가 800명인데 760명을 죽였습니다. 판사가 545명인데 541명을 죽였습니다. 공부한 사람은 백퍼센트 죽였습니다. 공무원도 백퍼센트 죽였습니다. 군인, 외국어 구사하는 사람은 백퍼센트 죽였습니다. 안경 낀 사람도 다 죽였습니다. 구두 신고 가는 사람도 다 죽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나서 ‘우리를 가난하게 한 사람들은 저 놈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증오심을 일으켜가지고 다 죽였습니다. 거기에 가면 그 자료가 그대로 다 있습니다. 땅에 파묻은 곳 다 있습니다. 사람을 죽일 때 총으로 쏴 죽이는 것보다 총알이 없고 가난하니까 다 곡괭이, 도끼 가지고 원시적으로 죽였습니다.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죽였습니까? 그냥 다리를 잡고 나무에다가 달아 머리를 때려서 죽였습니다. 이게 캄보디아입니다.

증오심, 여러분! ‘잘 사는 놈들 때문이다.’라고 낮은 사람, 가난한 사람, 젊은이들 충동시켜 보십시오. 그래서 공산주의가 무섭습니다. 우리나라도 공산주의가 내려오면 서울 사람은 하나도 못사는 걸 알아야 합니다. 들어가기까지가 문제지 들어간 다음에는 차례로 다 정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물이 들어간 사람은 백퍼센트 책임을 전가합니다. ‘다 너 때문이야.’ 여기만 그렇습니까?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문화혁명을 통해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의 청소년들, 열여섯 살 이런 애들을 홍위병으로 일으켜 그 때 죽인 사람이 4천만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또 병원 세워서 봉사하는 에티오피아는 어떤 나라입니까? 1973년부터 공산혁명이 일어나서 게릴라들이 일어나 그 때 셀라세 황제가 서울을 다녀갔습니다. 영락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40대, 50대만 되어도 그걸 압니다. 저도 다 그 때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혁명을 일으키면서 180만 명을 죽였습니다. 에티오피아가 비극에 빠졌습니다. 우리 마음에 증오심이 있습니다. 누구나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그런 마음 있습니다. 저도 남 잘되는 것 싫습니다. 저도 좋은 차 타고 다니는 사람 싫습니다. 저도 시골에 있을 때 우리교회 전도사님들 모이면, 교역자들 모이면 서울의 몇 교회 그 대표적인 교회들 늘 우리가 비판했습니다. 서울 와서 신학교에 다니고 전도사 때도 강남의 몇 교회 늘 우리가 입으로 말했습니다. 서울 어느 교회들, 큰 교회들을 다 말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우리가 극복할 수 있습니까? 목사 마음이라고 변하는 줄 아십니까? 새 시대, 새 영, 성령이 하늘의 창문을 열지 않으면 다 증오심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것을 다 들추어 내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면 이 나라는 여기서 끝장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가 다시 증오를 가지고 또 죽여 보십시오. 3백만이 또 죽을 테니까 이걸 묻어둡니다. 다 묻고 이 캄보디아의 지금 수상이 앞을 향하여 나갑니다. 그래서 캄보디아는 완전히 살아납니다. 누구든지 앞으로 나가면 살고 승리합니다. 무엇이든지 학문이든 기업이든 정치든 가정이든 사랑이든 앞으로 가면 승리합니다. 사랑도 뒤의 것을 따지면 안 됩니다. 이미 뒤에 말, 옛날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랑은 병들었습니다. 가정 병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앞으로 가면 삽니다. 그러나 앞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우리의 영이 치료받고 성령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우리 자신을 이기고 우리의 온갖 불의와 교만과 악한 마음을 이기고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독수리 같은 새 힘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나가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하십시오. ‘앞으로 나아가리라.’, ‘나는 앞으로 나아가리라.’, ‘우리 가정은 앞으로 나아가리라.’

할렐루야! 우리나라는 앞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이 나라의 장래가 자꾸 과거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지도자를 뽑을 때 어떤 지도자를 뽑느냐? 하나가 기준입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민족을 앞으로 이끌고 갈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저는 과거 들추어봐야 저는 잘 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런 것 겁나지 않습니다. 저는 유신정권도 철저하게 반대했고 그런 일에 확실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잘했든 못했든 과거는 지나가고 앞으로 더 좋은 나라, 더 좋은 교회 만들고, 더 좋은 사람 되고, 더 좋은 믿음을 가지면서 여러분 축복받기를 바랍니다. 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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