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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괴로운 자의 기도 (삼상 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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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괴로운 자의 기도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I. 본문 배경

인생을 살면서 극한 시련의 마지막 골짜기에서 고난을 받고 아파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고통 받는 인간의 마지막 절규와 같은 그 비참함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통은 언제나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인생을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평범한 고통의 문제에 직면하였던 한 사람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바로 한나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비교적 인품도 좋고 신앙심도 좋았을 것이라 여겨지는 엘레나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에게 한 가지 근심이 생겨났으니,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그 가정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브닌나라는 첩이 들어온 것과 그녀에게는 아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브닌나는 아이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한나의 마음을 심히 격동케 하였으며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6절-7절). 구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처음 얻은 아내가 가지고 있는 첩에 대한 권한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브닌나는 자신이 아들을 낳았다고 하는 이유로 이 모든 질서들이 무시하고 한나를 괴롭히고 욕보였던 것입니다.

자식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첩에게서도 심한 모욕을 받았으니 한나의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남편 엘가나가 위로했지만, 엘가나 역시 자식을 낳은 브닌나를 업신여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한나의 문제는 깊어져서 저들의 영혼의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단순한 인격적인 상처가 아니라 심령의 깊은 상처가 되어 마치 창질이 나서 육신이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비참하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고통은 이처럼 우리의 영혼을 상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II. 하나님이 막으실 때에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6절). 하나님이 한나로 하여금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그 태를 막아두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셨으나 나의 노력과 능력이 모자라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더 발휘하여 애쓰게 되면 확실하게 그 길이 열립니다. 주님이 허락해 주셨는데도 내가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못해서 이루지 못한 것은 나의 삶의 태도만 고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몸부림치면 칠수록 우리의 진액은 다하게 될 것이며, 신앙에 대한 회의만 깊어질 것입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즉시 판단하십시오. ‘이것이 내 능력의 부족으로 막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막으셨다고 판단될 때에는 주위 사람과 의논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과 상의할 이유도 없습니다. 즉시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 이것이 주님이 막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뜻을 가지고 계십니까?’ 야고보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인간의 얄팍한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른 곳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한나의 성태치 못함은 어떤 생물학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입니다. 한나로 하여금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겠다는 그녀의 인생을 향한 그분의 적극적인 개입인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이 문제를 열어 형통케 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III. 하나님께로만 나아가라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나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묘사된 한나에 대해 우리가 갖게 되는 인상은 어떻습니까? 아주 어리석고 미련한 여인이라는 인상보다는, 슬프고 가련하면서도 사랑이 가는 여인임을 엿보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께 그러한 괴로움을 당하면 안 되는 여인인 것 같은데 이 같은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녀의 태를 여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나를 향한 징계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1.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우리의 인생의 길이 문제에 부딪히고 막막한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기 발로 잘못 걸어 들어 온 때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 아래서 볼 때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혜 아래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경우에서 이를 살펴볼 때에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만날 때,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왔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자신의 허물이 발견될 때에는 즉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걸어 왔는데도 이러한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순풍에 돛단 것처럼 잘 나갈 때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커다란 장벽에 부딪혀 허덕일 때에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점을 하나님 앞에 맞추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평생 고달픈 것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찬송 한 번 드리지 못하고 이런 저런 환경 속에서 떠밀리며 살다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한나를 보십시오. 성경은 그녀가 신앙적인 여인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고통당할 때마다 변함없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던 남편 엘가나의 사랑도 이제 그녀에게 더 이상의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8절). 그렇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녀는 어느 누구도 아닌 하나님 앞에 호소하게 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10절).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를 막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만 치유 받고 여호와 앞에서만 깨끗함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 모든 영혼의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하나님만이 나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며, 내 인생의 모든 고통의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일편단심의 믿음이 바로 한나의 인격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나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주의 성소로 올라가리라’는 결단을 하고 나니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예전에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문제가 자신의 눈앞에서 산처럼 버티고 있었는데, 오직 주께로만 나아가게 되니 이제는 그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이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에는 언제나 그 옆에 해답이 같이 있습니다. 이 해답은 문제만을 직시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으나, 문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는 자에게는 환하게 열려 있습니다.

2. 문제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사실, 인생의 여러 문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입니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그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반추(反芻)해 보십시오. 자신의 인생이 축복된 길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결정적인 때마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영혼의 깊은 진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있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보이셨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계획을 펼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들판을 보여주실 때에 그러한 영혼의 진통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해법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더 큰 섭리를 보게 되지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태도가 아닐 경우에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막으시지 않고 다른 여인들에게 하신 것처럼 그렇게 자녀들을 주셨다면, 그 아이는 아마도 지극히 평범하게 살다가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나 앞에 펼쳐 놓으신 문제에 대해 그녀가 믿음으로 반응을 하였더니, 하나님은 구약의 위대한 사사 사무엘을 그녀에게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누구입니까? 사사시대까지 흐르고 있던 그 혼란스러운 이스라엘의 모든 부패상들을 정리하고 신정시대에서 왕정으로 이어지는 그 사이에 다리를 놓은 선지자들의 대부가 아닙니까? 사무엘은 큰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뛰어난 영적인 성품을 가지고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영적인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서 나라를 위기와 시련 가운데서 건지고, 결국은 역사 속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까지 소개하고 간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움직이게 한 이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문제를 주셨기 때문이며, 그녀는 이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며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드리기 전에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십시오.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올바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 문제를 접근하면서 기도할 때에 비로소 기도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생의 여러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허탄한 것으로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께 곧장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는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시면 풀어줄 이가 없습니다. 주님께 직접 가십시오. 주님이 당사자입니다.

IV. 하나님에게만 쏟아놓으라

한나가 그렇게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을 때에 그녀의 마음은 어떠하였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 그랬습니다. 한나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다복해 보이는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서 그러한 고통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인생에 있어서의 괴로움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괴롭고도 괴로운 그 한을 속으로만 삭힌 것이 아니라 모두 토해 놓았습니다.

1. 하나님만이 가장 잘 아십니다

문제를 당할 때에 인간은 두 가지 모습으로 그 고통을 드러냅니다. 하나는 속으로만 삭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밖으로 모두 표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화를 밖으로만 표출하는 것도, 안으로만 삭히는 것도 모두 다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속으로만 삭힌다면 사람들은 칭찬할지 모르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한 증오심만이 쌓여갈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야기하면서 겉으로만 표출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 앞에 모두 쏟아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깊은 기도 속에서 자신의 심령을 많이 토로하는 사람은 인간의 위로나 인간의 이해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주님 내 마음 아시지요?’ 이 한 마디의 기도가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십니다. 괴로운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토하십시오.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며 자신의 어려움을 토해 놓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하나님께 쏟아 놓는 기도만큼 온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분께 토해 놓는 기도는 부작용이 없습니다.

한나를 보십시오. 문제가 있을 때 다른 곳에 들리지 아니하고, 시위를 떠난 활이 과녁을 향하여 곧장 날아가는 것같이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화살이 과녁에 꽂히는 것같이 한나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심령이 괴로울 때 주님이 여러분들을 부르시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도하라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주님은 기도 가운데에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또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우리 마음이 변화됩니다. 잘못되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있을 때 깨닫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문제밖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를 통하여 문제의 근원이시고 문제 해결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주목하게 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영향을 받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까? 비천한 인생이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게 될 때, 그분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을 때,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기도의 최고의 단계는 언어를 잃어버리는 기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비추시는 은혜 앞에 고요히 우리의 영혼을 노출시키고 거기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들은 역사를 움직이고 교회를 움직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기도는 천사의 사발에 담겨져서 그리스도 예수께로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고 짧은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드리지 못하는 기도이기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려 지기 전에 흩어져 버리는 힘없는 기도입니다.

한나는 여호와의 놀라운 임재 안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12절). 한나는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임재 안에서 한나의 기도를 듣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실 때에 한나는 그 괴로운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치유되고 위로 받는 은혜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괴로운 일이 많아도 괴로움보다 기쁨이 더 많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줍니다. 고통스러운 수많은 기도제목이 있지만, 여호와의 임재를 느끼며 기도하기만 하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도 문제를 능가하는 위로와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게 밀려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넘치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기도할 때가 바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구가했던 때였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을 느꼈을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인간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 자신의 불결과 부족함이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를 가로막고 주의 영광을 훼방한다는 느낌 때문에 고통을 느끼며 통곡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게 하십니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데, 그러한 기도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있을 때에 우리는 가장 행복했었습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사실입니까? 이것은 신앙의 세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비입니다. 그런 기쁨이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까? 무엇이 쉽게 바뀔 수 없는 우리들을 변화시킵니까?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간절한 기도 속에서 그러한 역사는 일어납니다. 시간도 초월하고 공간도 초월한 깊이 있는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위대한 역사는 일어나게 됩니다.

3. 영혼의 통곡, 간절한 기도

한나는 또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11절). 심령이 얼마나 괴로우면 통곡하며 울었겠습니까? 엘리 제사장이 그녀가 술 취했다고 여길 정도로 심하게 통곡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그녀의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드려지는 기도였고 동시에 통곡과 함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위대한 기도의 힘은 간절한 데서 나옵니다. 끈질긴 기도도 간절한 데서 나옵니다.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고야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신을 위하여 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쓸데없는 인간의 생각과 잘못된 인간의 계획을 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한마디의 기도는 뜻도 없이 반복하는 1년의 기도보다 더욱 위대한 능력과 힘을 발휘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영성을 고양하고, 우리 속에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토양 위에서 꽃피우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기도가 깊어지기 전에 먼저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간절한 기도가 먼저 있어야 비로소 기도는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희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헌신을 동반하고 기도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안일한 것들을 포기하도록 요구합니다.
한나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는 깊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기까지, 제사장도 남편도 뒤로 한 채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세상에서 겪었던 그 많은 고통과 아픔들을 하나님 한분 앞에 쏟아놓으며 통곡하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습니다.

V. 기도의 결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도의 깊은 영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깨닫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여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시고 한없이 크신 분이시며,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신 특권조차도 한없는 감사 제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달으면서 하나님 앞에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바로 기도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11절). 아들을 주시면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나실인’, 곧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서원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한나가 왜 그렇게 아들을 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고통으로부터 출발되었지만 한나가 진정 원하는 바는 그 기도의 결과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하는 기도를 응답해주시지만, 믿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받는 설움과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서 하나님 앞에 아들을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기도를 통해 그녀는 주실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기도에 있어서 사심이 없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 영광의 열매를 거두시기를 간절히 바랬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나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이 아이를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그 때 한나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아이가 젖을 먹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엄마를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기 시작할 그 때에 그 아이를 하나님 앞에 바치고 집으로 내려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의 제목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역사 하셨습니다.

VI. 맺는 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삶은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신에게 중언부언하며 구하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주시면 아버지께 바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확하게 그 서원을 이행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한나로 하여금 아들을 바치고 난 후의 더 큰 고독과 상실감 속에서 살도록 만드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삼상 2:21).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세상에 속한 기도 제목이 아니라 신령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 그 기도의 제목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열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 간절함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자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재해 주시는 인생을 살아가며 기도 속에서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승리와 위대한 역사를 쟁취하는 자는 자신의 기도를 통해 세상을 바꾸시고 사람들을 움직이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며 어두운 세상을 굳건하게 지나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기도의 영과 기도의 능력이 함께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빛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를 보면서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손길을 보게 됩니다. 그의 인생을 보면서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사람이 얼마나 역동적인 힘과 능력으로 세상을 헤치며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는가를 보게 됩니다.

환경과 여건의 노예가 되어서 억눌려 살아온 세월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수많은 근심과 염려와 고통밖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문제는 많았지만 그 모든 문제 위에 계시는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당신께 모든 것을 토해 놓으며, 주님의 임재 가운데 끈질기게 매달렸던, 그리고 결국에는 응답을 받고야 말았던 한나와 같이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이렇게 지배하며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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