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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줄로 재어주신 구역 (시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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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로 재어주신 구역 (시 16:6-9)

이 시간에 “줄로 재어주신 구역”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다른 것이 많지만 한 가지 예를 들면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구역 안에서만 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구역을 지키지 않고 벗어나서 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좋을까요? 이 질문은 마치 천국이 더 행복하냐? 지옥이 더 행복하냐 묻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구역을 벗어나서 사는 것이 행복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역 밖은 복이 없고 죄악의 장소이며 오직 구역 안에만이 영원하고 아름다운 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6절에 나오는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반드시 이 구역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1. 그럼,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예수 안에 성령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규제라고 합니다. 율법이라고 합니다. 답답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믿은 사람들을 향해서 말하기를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답답하게 비쳐질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답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 안에서 생명과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성도는 예수 안에서 참된 생명과 행복을 누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 담배가 아니면 인생의 재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 안에서 세상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즐거움이 무한하게 많습니다. 여러분 천국생활을 원하십니까? 이 주님이 정해 주신 구역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정해 주신 이 구역을 벗어나는 법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의 소년시절, 그가 불레셋의 거장 골리앗을 죽인 이후 온 국민의 추앙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사울의 시기를 받아 쫒기는 신세가 됩니다. 잘못한 일없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포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비록 자기 원수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 구역을 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준 구역이 있습니다. 성도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 할 말과 하지 못할 말, 구역을 정해주셨습니다. 성도는 이 구역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 구역을 벗어나게 되면 그때부터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죄가 들어옵니다.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로운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자연의 질서도 하나님께서 구역을 정해주신대로여야지 그 구역을 넘어서게 되면 천재지변으로 큰 불행이 다가옵니다. 바닷물도 정해진 그 구역을 넘어서면 해일이 되고 쓰나미가 됩니다. 나라의 국경선도 넘지 않아야지 넘어가게 되면 큰 분쟁이 생겨납니다.

구역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라의 법이 없으면 좋을 것 같지만 없다면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줄로 그어준 구역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구속이 아니라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 안에서 성령 안에서 사랑 안에서 겸손 안에서 거룩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구역 안에 살게 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실까요?

7절에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해 주신 구역 안에 살도록 늘 훈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마다 우리를 훈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매가 있습니다. 요즘 동물을 키울 때 전기 울타리를 해놓은 것처럼 구역을 벗어나면 하나님께서 채찍하십니다. 그 때 그 때마다 채찍하실 수도 있고 아예 찌르는 가시를 달아 바르게 살도록 만드시기도 하십니다.

호세아가 고멜이 탈선하지 않도록 가시덤불도 해놓고 담도 쌓아놓고 혹은 줄로 자기와 매달아 놓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면 가시덤불 같이 찌르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고 또 우리의 앞길에 담처럼 막히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사랑의 줄로 우리를 매달아 주님을 떠나가지 않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귀한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축복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한다 했듯이 우리 양심이 우리가 구역을 탈선하지 않도록 늘 교훈합니다. 그것은 죄야. 그것은 잘못이야. 이러면 안 되지, 예수 믿는 내가 용서해야지, 내가 참아야지,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어. 하면서 양심이 나를 교훈합니다. 이것이 우리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다윗도 하나님 앞에 범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 다윗의 부하들이 아람과 전쟁하고 있을 때에 다윗은 한가로이 궁에서 거닐다 충신 우리아의 부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의 부인을 범하고 맙니다. 후에 그가 임신 사실을 은폐하려고 전쟁터에 나가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쟁터에 내몰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을 빼앗아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나중에 나단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지만 그 일로 얼마나 많은 피 흘림과 재앙이 다윗의 집에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정해 주신 구역을 떠나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거하라는 곳을 떠나지 않고 거한 결과 농사하여 100배나 얻었고 소와 양이 떼를 이루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안에 거하는 복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119:71-72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그 구역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것입니다. 탈선은 바로 불행의 시작입니다.

3. 구역 안에서 사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9절에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줄로 재어 주신 구역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가장 행복하고 기쁘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떠나 살면 자유로울 것 같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떠나 살려다가 얼마나 혼났습니까? 거지가 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 건진 것만도 다행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그 구역 안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8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했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천국 생활하려면 천국에서 하는 일을 여기서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면 천국이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삶에 이루어집니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천국에는 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은 마음에 어둠이 없이 항상 밝게 살아갑니다. 천국은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질고나 마음의 상처가 없어요. 천국은 죽음과 슬픔이 없습니다. 항상 기쁨이 넘칩니다. 천국은 염려와 근심이 없습니다. 만사를 주님이 책임지시니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천국은 유혹과 죄가 없습니다. 죄를 질래야 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바다가 없습니다. 환난이 없다는 말입니다. 천국은 변함이 없습니다. 영원히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천국은 아름다운 성도 있고 우리가 거할 아름다운 집도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면 이 땅에서 그 은혜를 경험하며 삽니다.

우리가 분명히 정리해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소유와 행복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이 가진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가하면 소유와 인격도 별개입니다. 가질수록 덕망보다는 거만해지기 쉽습니다. 더 재밌는 것은 소유와 건강도 별개라는 사실입니다. 병원의 혜택을 보는 면에서는 낫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못 살아도 자연 속에서 무병장수하는 것을 봅니다. 또 소유와 생명도 무관합니다. 부자라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생각은 가진 만큼 행복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행복은 이런 것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안에서 얻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통계여론 조사법의 창시자인 [조지 갤럽]이“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라는 여론조사를 했을 때 놀랍게도 “생생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경험한 자가 가장 행복하다.”라는 답변이 1위였고, 반면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밤낮 술집에서 보내는 사람”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이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의 행복이라는 것은 체험한 자가 아니고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행복하긴 하지만 정말 폭포수 같은 행복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신앙의 발전을 위해서 그 목표로 하늘의 지고한 은혜를 잠시 맛보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의 그 축복을 늘 그리워하면서 그 축복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늘 노력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줄로 재어준 그 구역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구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안에 성령 안에 말씀 안에서 열심히 살아서 다윗이 경험한 기쁨과 영광과 즐거움과 육체의 안전까지도 영원히 누리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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