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빌립으로 본 복음 전도 (행 8:26-40)

  • 잡초 잡초
  • 419
  • 0

첨부 1


빌립으로 본 복음 전도 (행 8:26-40)

이 시간에 “빌립으로 본 복음 전도”이라는 제목입니다. 남전도회가 할 일이 무엇일까요?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상을 주십니다. 이 상은 하늘의 상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도 큰 상으로 갚아주십니다. 막10:30을 보면 내세에서 복 주시는 것은 물론이요, 금세에 있어서도 100배나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도 많이 한 분들을 보면 모두 전도하다가 육신의 복도 크게 받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강건함과 형통함이 없다면 전도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럼 전도를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본문은 빌립 집사가 전도한 이야기인데 여기서 우리는 성공적인 전도법을 봅니다.

1. 빌립 전도법은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의 빌립도 한 영혼을 귀히 여김을 알 수 있습니다. 27절에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나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재무장관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할 때 귀신이 나가고 병이 고쳐지고 병든 자가 낫고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충만할 만큼 하나님의 역사가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빌립에게 거기서 떠나 이 한 사람에게 다가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거기서 할 일이 아직도 많은데 성령께서는 작은 일에 빌립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한 영혼을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 영혼 같지만 이 내시의 전도는 에디오피아의 복음화가 달린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전도에 성공하려면 한 영혼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8:36-37)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것은 꼭 한 영혼만 전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지금 지옥으로 달려가는 불신의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영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없이는 어떤 전도법도 이론에 불과하고 맙니다. 주님은 죽어가는 생명들에 대한 우리의 눈물과 기도를 보시고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동족을 위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2. 빌립 전도법은 하나님이 주신 도구 가지고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빌립은 전도할 때 그냥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주신 능력과 은사로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적극적으로 은사 개발이 필요합니다. 은사가 충만하면 하나님의 일하기가 무척 쉬워집니다. 성령의 은사와 아울러 일반적인 기술이나 재능도 귀한 전도의 도구가 됩니다. 기술자가 되려면 연장이 좋아야 합니다.

혹시 이런 재능 저런 능력 없다고 실망하는 분 안 계십니까? 기도하면 주십니다. 그러나 저는 최고의 연장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능력과 재능이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다 해도 사랑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도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도구를 장만하시되 사랑의 마음 한 가지라도 꼭 장만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전도하실 때 구름떼와 같이 사람들이 몰려든 것도 이 두 방향의 도구를 함께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3. 빌립의 전도법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은 성령의 지시 따라 일했습니다. 26절에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하셨고, 29절에도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내시가 마침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뜻을 알지 못해 매우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절호의 기회입니까?

전도를 어떻게 할까? 하려고 하면 사실 막막합니다. 누구에게 전도해야 할지부터 막막합니다. 그러나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쓰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의 일에 쓰임 받을 준비와 자세를 갖고 이렇게 기도하세요. “저는 주님의 도구로 여기 있습니다. 주께서 오늘 저의 삶 속에서 만날 자를 만나게 하시고 제가 해야 할 것을 하게 하시되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이런 자세를 갖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만날 자를 만나게 하시고 할 일을 하게 하셔서 결실을 맺게 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나서면 될 일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중국이나 특히 북한과 같은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도 다 이 방법입니다. 내가 나서지 않고 하나님께서 환경을 열어주심과 만나게 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도하며 우리는 쓰임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꼭 전도해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혹은 양편 모두 성령의 지시를 받아 만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빌립의 전도법은 성령의 법입니다.

4. 빌립 전도법은 다양한 전도법입니다.

빌립의 사역은 대단히 다양한 사역이었습니다. 빌립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로서 예루살렘에서는 재정을 맡았습니다. 즉 구제사역을 하며 전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마리아에서는 병 고침 귀신추방 등 신유의 사역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행21장에 나오듯 가이사랴에 머물며 예언하는 딸 넷과 함께 예언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할 때는 성경을 풀이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닫는 것은 전도의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꼭 이렇게 전도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환경에 따라 대상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취하면 됩니다. 성경이 필요할 때는 성경으로, 양식이 필요할 때는 양식으로, 격려가 필요할 때는 격려로, 기도가 필요할 때는 기도로, 의술이 필요할 때는 의술로, 교육이 필요할 때는 교육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시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빌립처럼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 구주 되심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무엇을 해도 예수님을 전하지 못한다면 거기에는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

4. 빌립 전도법은 질서 가운데 하는 전도였습니다.

행8:14-15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빌립의 겸손과 질서를 봅니다. 그는 사도들의 일을 빼앗지 않고 사도들의 손이 미치지 못한 곳에 가서 전도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교회는 목회자에게 맡기고 세상에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능력 있다고 너도나도 강단으로 몰려오면 그 무질서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빌립은 예수 앞에 돌아온 초신자들을 사도들에게 인계했습니다. 자신의 할 일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서 그 엄청난 성령의 역사와 증가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모두가 질서 속에서 모든 일을 감당함을 보았습니다. 빌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전도했으니 내 교인이 아니라 주님의 양이니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한 후 새로운 잃은 양을 찾으러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일은 교회의 법도와 질서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죽어도 법이어야 한다는 율법주의자가 되라는 뜻은 아니지만 지켜나가는 것이 은혜로움이 될 것입니다. 혹시 남의 권위 아래 있다면 내 시간이 오도록 그 아래서 순종하며 복종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평신도 단체들의 힘이 강해지다 보니까 이상한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교단에서는 교인들이 목사만 강단권 축도권이 있느냐? 우리에게도 있다고 주장하며 우리도 하겠다는 운동이 다 벌어지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단의 강단 침투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유명한 목사라도 초청 받지 않고 남의 강단에 함부로 설 수 없듯이 교회에는 법도가 있는 것입니다. 즉 노회에서 인정하고 교회 공동의회에서 가결해서 되는 것이지 교인들이 우리도 강단권이 있고 축도권이 있다 하고 대든다면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절차가 없다면 한국교회에 다가올 혼란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성도의 사역은 질서 가운데 교회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빌립을 통해서 보여주는 전도사역의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전도자의 참 모델이십니다. 우리 주님에게서 배우십시다. 그리고 빌립 집사에게서 배우십시다. 우리 모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통하며 성령의 도구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질서와 겸손 속에서 맡기신 사명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충성 되게 잘 감당하시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과 남전도회 회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