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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단 5: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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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소년 시절에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유대 나라에서 바벨로니아까지 포로로 잡혀갔지만 바벨론의 모든 학문을 배워 자기 민족에게 전하는 특별히 부름 받은 사람으로 궁중에서 살았습니다. 바벨로니아에서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쓰신 확실한 이유가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바벨로니아에 이루어지도록 느브갓네살왕과 벨사살왕, 이 두 부자를 변화시키는 사역을 다니엘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느브갓네살왕, 벨사살왕 모두 정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정반대의 길을 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다니엘서라고 하는 성경이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이 역사에 나타난 왕들의 특징을 보면 왕들은 다 악하게 살았습니다. “왕은 곧 악이다.”할 만큼 악인이 많았지 선한 왕이 거의 없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나 되는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이 왕이 되면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우선 이스라엘 나라만 생각해 봐도 남북으로 갈라져서 양쪽에 왕이 42명이 있었습니다.

열왕기 역사를 보면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 문화를 십계명으로 만들어간 42명의 왕 중에서 하나님 보시기에나 국민 평가에 훌륭했다고 평가 받은 왕은 고작 6명입니다. 나머지 왕들에 대해 성경에 뭐라고 나타났느냐 하면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왕은 곧 악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이 선택한 초대 왕입니다. 어느 날 자기 맘에 안 든다고 제사장 85명을 끌어다가 단칼에 목을 쳐서 죽여 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또 어떻습니까? 고려 때부터만 따져도 63명의 왕이 나타나는데 그만한 왕들 중에서 존경받는 왕은 세종대왕이나 존경을 받지 존경받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짐은 곧 나라다.” 이 말이 곧 악입니다. “왕이 곧 악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로니아의 느브갓네살왕이나 벨사살왕 시대에 다니엘을 사역자로 삼으셔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 구원의 빛을 가지고 바벨로니아라고 하는 큰 나라를 통해 비추게 하시려는 영적 능력을 다니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궁중을 변화시키려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초능력의 신비 사건 앞에서 느브갓네살도 벨사살도 정 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를 확실히 밝히려고 다니엘 성경이 이렇게 기록된 것입니다. 느브갓네살이 영적인 사건을 만나 ‘아! 이건 하나님의 뜻이구나!’ 이것보다 더 큰 영적 사건이 없을 만큼의 신비한 사건을 주셨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라는 금신상 숭배를 강요합니다. 그렇게 큰 영적 은사를 지닌 다니엘을 불태워 죽이려고 풀무불에 집어넣고 정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다니엘이 느브갓네살왕의 마지막 형편을 그 아들인 벨사살왕에게 일깨워 줌으로서 왕궁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소년 시절에 바벨로니아로 잡혀 와서 이제는 80세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설교는 이렇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이 당신의 부친 느브갓네살에게 큰 권세와 영광, 위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데 사용하지 아니하고 마음이 교만해지고 강퍅하여져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만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 부친의 왕위를 폐하여 버렸으며 그는 인생 중에서 쫓겨난 들나귀와 같이 소처럼 풀을 뜯어먹고 몸이 하늘 이슬에 젖는 비참한 미친 영감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궁중에서 그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사람이 왜 아버지보다도 더 악한 길을 가고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우리들이 알 수 없는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 글은 벨사살왕이 궁중에서 천명의 귀빈을 초대해서 즐겁게 술잔치하는 자리에 난 데 없이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벽에 번개같이 대자보를 쓰고 지나갔습니다. 이 신비스럽고도 믿기 어려운, 그러나 현실로 나타나는 일 때문에 궁중 잔치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때의 벨사살왕의 모습을 5장 6절에 기록했는데 “넓적다리가 녹는 듯 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와들와들 떨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넓적다리가 녹는 듯 한 그런 위급한 상황을 만나보신 적 있습니까? 급도의 겁에 질리면 정말 넓적다리가 녹는 듯합니다. 저는 한번 있습니다. 제가 인도양의 니아스 섬이라고 하는 곳에 선교하러 갈 때 비행기가 얼마나 낡았는지 갈려면 가고 말라면 말라 이겁니다. 비행기가 떨어졌어도 국가에서 조사도 안합니다. 죽은걸 조사해봐야 뭐하냐 이겁니다. 우리 한국 선교사가 바로 그곳에 가서 선교를 해서 비행기를 탔는데 무슨 비행기가 공중에서 문짝이 떨어져나갑니까? 그래서 빙글빙글 비행기가 도는데 공포증 때문에 선교를 못하고 돌아온 선교사가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저도 그런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앞에 저울을 하나 갖다놓고 타는 사람의 근 수를 달아서 합산해서 태웁니다. 그 수가 넘치면 한 사람을 빼고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하나뿐인 비행기의 프로펠러 엔진이 공중에서 꺼지는 겁니다. 그때 저는 넓적다리가 녹는 듯 했습니다. “아니,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거기서 안내했던 선교사가 “그렇다고 제가 말했잖아요? 기도 많이 하시라고 했잖아요? 이게 원래 그래요. 그런데 이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네요.” 조금 가다가 또 “에엥!”하고 올라갑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가는데 정말 혼났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선교지에 도착해서 비행장에 내리려고 하는데 무슨 비행장이 언덕 너머에 있는지 올라갔다가 중간쯤 내려오는데 비행기가 선겁니다. 선교하러 다니다가 죽을 뻔 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몸뚱이가 녹아내리는 듯합니다.

벨사살왕이 지금 그렇게 된 겁니다. 갑자기 벌어진 이 사건은 한 나라의 운명을 어지럽게 할 만큼 소란해졌습니다. 왕이 “이게 도대체 뭐야?” 그래서 술사와 술객, 점쟁이, 박사를 불러 벽에 쓰인 글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설명하기 전에 이 글의 뜻을 모르는 것과 같이 아무도 몰랐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래서 왕이 명령합니다. “누구든지 이 뜻을 알아맞히는 사람은 이 나라의 세 번째 자리를 주겠다.” 그래도 모르는 걸 어떡합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일이 이쯤 되었을 때 왕을 모시는 태후가 나와서 말합니다. “당신의 아버지 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유대 나라 다니엘 밖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래서 다니엘을 불러온 겁니다. 80세의 노인이 된 다니엘이 바벨로니아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습니다. 벨사살왕에게 이런 일이 왜 있으며 이 뜻이 무엇인가 해석하는 말씀이 오늘 말씀의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이 단어의 해설이 오늘 말씀에 나오고 있습니다. 히브리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역사에서 몇 가지 언어를 공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람어, 히브리어, 헬라어를 웬만한 사람이면 불편 없이 사용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람어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예수님도 한번 아람어를 쓰셨는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것도 아람어입니다. 아람어의 “메네”는 “계산하다, 셈을 하다” 그런 뜻입니다. “메네”가 두 번 나왔으니까 “계산하고 또 계산해보니” 그런 뜻입니다. “데겔”이라고 하는 말은 “무게를 달다. 저울질 했다.” 그런데 그 무게가 너무나 가벼웠던 것을 의미합니다. “모자라는 무게” 이 말이 히브리어로 변형이 될 때는 “샤칼” 이것이 발전해서 “세켈” 여러분이 예루살렘 뒷골목 가시면 거지 아이들이 손바닥을 내밀면서 “세켈”이라고 합니다. 동전 하나를 달라는 말입니다. “계산해보니까 동전 하나의 무게와 같이 가벼워서 모자라는 무게가 되었다.” 그 다음에 “우바르신”은 사실 “우파르씬”이라고 발음해야 더 정확한 발음입니다. 이 말은 “쪼개져서 치워버리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을 종합하면 “계산해보고 계산해보니 무게가 모자라서 쪼개어 치워버리겠다.” 이 말이 됩니다. “벨사살왕의 행적을 계산해보니까 아무리 세어 봐도 모자란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심판해 버리겠다.” 이로서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멸망을 선언하는 대자보가 나붙은 것입니다.

그러면 벨사살왕의 죄는 무엇인가? 세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당신이 보아온대로, 영적 지도자 다니엘의 말대로 가장 신비한 영적 사건을 체험했으면서도 당신의 아버지가 그 길을 따르지 아니하고 정반대의 길을 갔기 때문에 당신의 아버지에게 주어진 게 뭡니까? 인생 중에서 쫓겨나고 영광은 폐한바 되었으며 마음이 들짐승과 같이 되었고 들나귀와 함께 하며 소처럼 풀을 뜯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왕이 미친 영감같이 되어 들판을 해마다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역사를 다 본 사람이 어찌하여 또 이렇게 하고 계시나이까? 당신도 아버지같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있습니다. 건강이라든가 지혜라든가, 때로는 권력, 어떤 때는 기술이라든가 물질, 나라, 역사, 시간 등 이게 모두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 쓰여야 할 조건들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영적, 신비적 지혜를 주셔서 느브갓네살왕과 벨사살왕을 궁중에서 회개시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바벨로니아의 권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이 나라에 전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은사를 다니엘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겁니다. “당신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다 보고 자란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하고 계시나이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뜻은 과거 역사의 잘못과 과거 역사의 잘된 것을 가릴 때 지금 갈 길이 정해진다는 생각에 역사를 공부하는 것 아닙니까? “고려 36대 공양왕 475년 고려 역사가 지나가고 조선 27대 순종 519년 만에 끝났다. 뭐가 잘되고 뭐가 잘못 되었느냐?” 역사 공부하느라고 우리가 얼마나 외웠습니까? “태정태세문단세….” 그런데 “아버지가 하는 것을 다 본 사람이 얼마나 시간이 갔다고 똑같이 하시나이까?”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거룩한 것에 대한 구별을 하지 않은 죄가 벨사살왕에게 있다는 겁니다. 오늘 내용을 보면 나라에서 제일 귀빈 대우를 받는 1천명의 사람들이 궁중에 와서 술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왕이 이렇게 술 마시는 것을 책망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해도 괜찮습니다. 또, 궁중 술잔치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문제는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라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술을 마신 것이 문제가 돼서 큰 죄란 말입니다. 그럼, 그것이 무엇인가? 여기 전 기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릇을 말합니다. 대개 금을 입혀서 만든 그릇들입니다. 뭐하는 것이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사용하던 그릇들입니다. 바벨로니아가 침공을 했을 때 “이 나라에서 제일 보물이 뭐냐?” “성전기구들입니다.” “다 가져가자.” 그래서 성전 그릇들, 보물들을 다 뺏어갔습니다. 그 거룩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히브리민족을 무시하는 태도로 “그 성전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와라.” 일부러 그런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온통 술 파티를 난장판을 벌렸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신 것을 거룩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책을 성경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책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장소를 성전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장소란 말입니다. 오늘과 같이 예배드리는 날을 성일, 거룩한 날이라고 합니다. 사도적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성직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구별하신 것을 거룩하게 취급하지 아니할 때 죄가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뺏어온 보물들 가져와! 금으로 되어 있잖아? 이거 술 먹는데 사용하자.” 그래서 난장판을 벌리는 도구로 전 기명을 모두 사용하고 하나님을 조롱하듯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참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대자보가 지금 벽에 나붙은 겁니다. 그 다음에 우상 숭배!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과 은, 동, 철, 목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렇게 세 가지 죄가 있어서 바벨로니아 역사는 이제 끝이 납니다.” 이렇게 설교한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메데의 군사가 들이닥쳐서 메데 나라의 다리오 왕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벨사살왕은 현장 살해당합니다. 그렇게 강대함을 자랑하던 바벨로니아 역사는 그로서 역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역사를 보시면 찬란했던 문명이나 강성했던 나라들이 망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다 망했습니다. 바벨로니아가 망할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망했습니다. 페르시아가 망하는 것을 누가 예언했습니까? 성경에 밖에 예언한 적이 없습니다. 누가 로마를 가리켜 망한다고 했겠습니까? 로마는 영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 망했습니다. 칭기즈칸이 세계 44국을 점령했는데 칭기즈칸이 망하리라고 누가 생각했습니까? 다 망했습니다. 망하지 아니한 강대국의 역사는 없습니다. 제가 소리도 없이 사라진 잉카 문명 현장을 다녀왔을 때 그 기초를 살펴보니까 바알신의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미래학자 허만 칸에게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연구를 하시고 갈 길을 예언해 주십시오.” 허만 칸은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청교도 신앙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면 미국의 문명도 삽시간에 쓰레기통 됩니다. 두고 보십시오. 온 세계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정신문화가 따르지 아니하는 세상의 문명은 쓰레기장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 건설 초기에 있었던 청교도 신앙으로 돌아가야 이 나라가 영원합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 대자보는 지금 어느 나라에 누구에게 붙을지 모릅니다. 가장 훌륭했던 신앙의 역사를 말했던 사람들의 정신문화 속으로 다시 돌아가지 아니하면 세상은 쓰레기장이 됩니다. 우리가 사순절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직은 우리가 훌륭하게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한국 교인들의 신앙 문화를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아름다운 신앙 유산이 계속될 수 있을까? 다니엘을 시켜서 그런 신비한 능력을 주심으로 느브갓네살왕도 벨사살왕도 회개시키려 했지만 정 반대의 역사를 갔기 때문에 바벨로니아의 종말이 어떻게 끝났다고 하는 것을 오늘 저희들이 봤습니다. 저희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신앙이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잘 유산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그렇게 될 때 필요한 삶을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신앙을 성령님께서 지도하셔서 사순절 기간에 더 아름다운 신앙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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