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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 (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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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자기를 찾는 이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에녹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일생동안 동행하다가 살아서 승천한 인물입니다. 에녹에 대해서 소개하는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바로 에녹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를 바라볼 때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얼마나 잘났느냐?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느냐? 학벌이 좋으냐? 그런 곳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관심은 너에게 믿음이 있느냐? 입니다. 네가 정말 믿음의 사람이냐? 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대상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한 이방인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죽게 되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참 기특합니다. 예수님이 기분 좋게 “내가 너희 집에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백부장이 “아니 저희 집에 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말씀만 하시면 하인의 병이 낫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이 얼마나 기쁜지 “이스라엘 사람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즉시로 그 하인의 병이 나았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또 마태복음에 보면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자기 딸이 아주 흉악한 기신이 들려서 너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와서 고쳐주기를 바랬더니 예수님이 “나는 유대인을 위해서 왔지 이방인들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내 자녀에게 줄 떡을 어떻게 이방인인 개에게 줄 수 있느냐?” 라고 했습니다. 모욕적으로 들리는 오해가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불쾌해서라도 물러섰을 건만 이 여인은 끈질기게 “주여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지 않습니까?”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내게 달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 여인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인아 내 믿음이 크도다.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즉시로 여인을 딸이 치료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믿음 좋은 사람들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종종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해서 예수님께 책망 받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해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마침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어부로 잔뼈가 굵어진 사람들이라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을 깨우고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살려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바다를 향해서, 바람을 향해서 “풍랑아 잔잔해져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풍랑이 잔잔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무서워하느냐!”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믿음이 적은 것을 예수님이 책망하십니다.

마태복음 14장에도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다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예수님이 풍랑 치는 바다 위를 걸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니 제자들이 얼마나 좋은지 베드로가 “주여 저도 좀 걸어 갈수 있도록 명령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야! 걸어오너라.”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물위를 훌륭하게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니까 베드로가 놀라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심하는 순간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손을 잡아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 의심하는 자들은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 가셨을 때 제자들이 어떤 간질병 들린 아이를 치료하려고 했는데 치료하지를 못했습니다. 부모가 와서 예수님께 하소연을 하니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패역이란 말은 악한 세대를 말합니다. 오늘 제자들을 향하여, 이 불신의 세상을 향하여 꾸짖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마가복음 2장의 말씀도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명의 믿음이 좋은 친구들을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 동리에 중풍병자가 있었는데 그는 꼼짝 달싹 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마침 그 가버나움 동리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 친구들이 예수님께 친구 중풍병자를 데리고 가면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네 명이 들것에 들고 20리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집에 모여 있어서 헤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혜를 내게 되고, 지붕을 뚫고, 들것을 내려서 중풍병자 친구가 예수님의 치료함을 입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지붕이 뚫어지고 사람이 내려오니 예수님이 놀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빙그레 웃으셨을 것 같습니다. 너무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마가복음 2장 5절을 보면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래하게 지붕을 뚫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호통을 치시기 보다는 저희들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저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먼저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소자야 네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위에 있던 서기관들이 “죄를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는데 네가 어찌 하나님 같은 권세를 가지고 죄를 용서하게 하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의치 않습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죄를 용서하는 것과 들것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과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이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구약에서는 많은 병들이 죄로부터 시작됐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앉은뱅이를 치료하신 후에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실 때 그는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일어나서 내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했을 때 이 앉은뱅이가 자기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놀라운 기적이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기대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어렵고 힘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불가능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담대하게 도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무한한 믿음의 보화의 창고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보화의 창고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능력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보화를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보화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와서 그 믿음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승리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네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은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자원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질문을 하나하겠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더 많을까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을까요?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햇빛도 보고 불빛도 보지만 우리가 보는 빛은 모든 빛의 5%로 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95%의 빛은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증거를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적외선이라는 빛이 있습니다. 이 적외선은 눈으로 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존재합니다. 적외선 투시경을 쓰고 보면 밤에도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다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바닷가에 가면 자외선이 뜨거워서 선크림을 바릅니다. 자외선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존재합니다. 그래서 바닷가에 가면 얼굴이 검게 변하고 기미가 생긴다고 썬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는 것입니다. 볼 수 없지만 존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주 제한되어 있습니다. 많은 방송이 있지만 주파수를 맞추어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 작은 소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500m 앞에서 누가 걸어오면 우리는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개는 듣습니다. 우리는 듣지 못하지만 소리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고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무엇을 배웠다고 해도 하나님의 지식에 비하면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무엇을 안다고 하는 자체가 사실 부끄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 안에 천국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내가 보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무한한 세계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믿음의 능력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능력을 발견하고 개발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너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고 믿으면 우리에게 그대로 될 것입니다. 제한이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요한복음 19장 12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믿으면 나의 하는 일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일도 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설마 주님이 농담을 하시겠습니까? 요한복음5장 4절에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믿음으로 정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패배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정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능력을 발견하는 사람, 믿음의 보화를 채굴하는 사람은 훌륭한 삶을 살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부유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원리를 모르고 믿음의 자원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팔자가 거세게 삽니다. 팔자가 거세고 운명이 좋지 않아서, 조상의 묘자리를 잘 못써서 이렇게 산다고 한탄하며 탄식하며 삽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을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라고 했습니다. 믿음에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더더욱 믿음은 지금우리가 꿈꾸는 것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보지 못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꿈을 꿀 때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자원이라 하면 눈으로 볼 수 있는 돈, 화패, 주식증서, 건물, 자동차 이런 것만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자원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믿음은 어마 어마한 자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하는데 잘 아는 분이 와서 두 개의 통장을 내밀었습니다. “여보게 혹시 여행 중에 돈이 필요하면 이 통장에서 찾아 쓰게 여기 한 통장에는 백 만원이 입금되어 있네. 그러나 이 백 만원은 쓰고 나면 아무것도 없어. 그러나 이 통장에는 지금 일원이 입금되어 있네. 그러나 자네가 필요할 때면 돈이 입금될 것이네. 자! 어떤 통장을 가져가겠나?” 백 만원은 당장은 크게 보이지만 곧 소멸될 것이고, 일원이 입금되어 있는 이 통장은 필요할 때 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믿음의 통장입니다. 여러분! 오늘 믿음의 통장을 다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통장에 일원밖에 없지만 믿음의 무한한 공급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그런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빌립보서 4장 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불가능이란 없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다만 불가능하다는 인간의 생각이 있을 뿐이다.” 여러분 가능성의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인생에 문제 앞에 도전하시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첫째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의심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안해합니다. 염려와 근심의 나날을 보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직장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가 이 두려움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전쟁에서 싸우다가 총에 맡아 죽은 사람보다 자식들을 전쟁에 보내놓고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중국계 의사인 황 여우평 박사라고 있습니다. 이분이 쓴 내용이 신문에 기재되었습니다. 이분이 30년 동안 의사로 있으면서 200구가 넘는 죽은 시신을 해부했다고 합니다. 시신을 해부하면 이 사람이 죽은 원인이 나오고 왜 죽었는지 이유가 다 나온다고 합니다. 그가 주로 해부한 사람은 75세 이상 되는 노인들의 시신 200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시신들이 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죽은 사인은 암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뇨병이나 심장병이나 암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암을 가지고도 그들은 장수했다고 합니다. 요즘 병으로 죽는 25%가 암으로 죽는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암으로 죽는지 연구를 해봤더니 원인은 암에 걸렸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는 순간부터 암에 대한 공포, 두려움에 대한 불안이 정신적인 공항상태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분노하게 되고, 면역체계에 이상을 가져오고 결국은 암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암에 대한 공포 때문에 죽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굳게 붙들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의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은 장애물을 뛰어넘는 믿음입니다.

오늘 성경 3절, 4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쌔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이들의 믿음이 참 적극적입니다. 네 명이 친구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와 봤더니 예수님이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도저히 들어 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면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이 중풍병자 환자를 들것에 실고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망할 수 있지만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걸림돌을 극복하게 됩니다. 유대의 집들은 보통 지붕이 평평합니다. 그리고 지붕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것이 특색입니다. 그들은 계단을 타서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을 뜯었습니다. 성경에도 지붕을 뜯고 그리로 중풍병자를 내렸다고 합니다. 유대의 지붕은 우리나라의 흙벽과 비슷합니다. 솔잎과 풀뿌리 진흙을 이겨서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한 칸만 잘 뜯어내면 수리하기도 쉽고 그 공간으로 들것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들은 장애물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어려운 문제 앞에 있습니까?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속에 있습니까? 여러분 장애물을 뛰어 넘는 믿음을 가지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애물을 뛰어넘는 것이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장애물 앞에서 절대 그리스도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우리 교역자들 회의 끝나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총각 이야기를 우리 부목사님 한분이 해서 제가 재미있게 들어서 제가 소개하고 싶습니다. 자기 시골에 39세의 노총각이 한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농촌 총각이 결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트남이나 어디 가서 사올 재주도 없고 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총각이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골목입구에다가 현수막을 크게 하나 붙였습니다. “시골총각 장가 좀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자기 전화번호를 하나 딱 써놓았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저렇게 붙였다가 한 사람도 오지 않으면 창피해서 어떻게 하나?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생각하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놀랍게도 여름에 서울에서 대학생들이 농활을 왔다가 합니다. 그 중에 한 여대생이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 저런 오빠가 있다니!” 그래서 전화를 하고 교제를 하다가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장애물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곳에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교회에 출석하는 신앙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장애물을 뛰어넘는 믿음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부목사일 때 한 구역에 대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구역장이 너무나 믿음이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목사님! 우리구역에 남편들이 다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구역 목표는 우리 불신 남편 전도하는 것이 우리구역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올해 100% 다 전도할 것입니다. 목사님도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도 기도해 주고 오면서 “세상에 어떻게 다 100%가 나올까? 50%만 나오면 잘 나오겠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연말에 그 구역을 심방했더니 100%다 교회에 나와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목표를 세우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남편 교회 나오고 구원받게 해 주십시오.” 그때 구역의 남편들이 다 교회 나와서 등록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의 영적 세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고 나갈 때 하나님은 모든 필요한 자원과 물질과 환경과 사람을 보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물질이 따라오고,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환경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1m 철학에 대해서 말씀 드린 것이 기억이 납니다. 한 사람이 광산을 채굴하고 싶어서 좋은 산을 사서 광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금을 채굴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괜찮게 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쯤 파들어 갔더니 금맥이 끊기고 더 이상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너무 실망했습니다. 화도 나고 그래서 그냥 쓸모없는 광산을 팔기로 생각했습니다. 그 동네 고물상이 그것을 알고 그 광산을 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물상이 광산을 샀습니다. 왜냐하면 채굴하는 기구와 철들이 많기 때문에 돈이 제법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고물상이 좀 엉뚱한 사람입니다. 채굴기도 있고 그냥 버리기는 아깝고 그래서 채굴기사를 한명 사서 채굴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m 를 팠는데 금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광산을 소유했던 광산 소유주는 얼마나 가슴이 쓰렸을까요? 1m 만 더 팠으면 이 금이 다 내 것이 되는데 남에게 광산을 팔아서 얼마나 속이 쓰린지 그때부터 그분이 가진 철학이 1m 철학입니다. 1m만 더 나가자. 1m 만 더 참자. 1m 만 더 전진하자. 그래서 그 정신을 가지고 보험업을 했는데 보험이 너무 잘되어서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더라도 장애물 앞에 주저앉지 않기를 바랍니다.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장애물을 뛰어 넘으십시오. 그것이 바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세 번째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은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오늘 네 사람의 중풍병자의 친구가 이 어려운 장애물을 뚫고 예수님 앞에 친구를 데려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 가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주님은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에 이 중풍병 걸린 친구를 치료할 수 있을 거야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갈 때 두 소경이 예수님의 행렬 앞에 서서 소리를 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내가 능히 이일을 할 줄로 믿느냐?” “주여 그러하옵니다. 주님은 능히 내 눈을 뜨게 하실 줄로 내가 믿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너의 믿음 되로 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즉시 두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로 믿느냐?” 여러분이 어떤 문제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능히 이일을 할 줄로 믿느냐?” “주님! 그러합니다. 주님은 능히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하나님 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없는 곳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그분은 믿음의 주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 보면 “믿음에 주여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믿음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고 주님이 공급하시는 그 믿음으로 무장하시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장애물을 뚫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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