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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부장 고넬료 (행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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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는 두 개의 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성의 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비의 선입니다. 이 말은 기독교는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으로서는 도무지 이를 수 없는 신비가 함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기독교는 한 손에는 성경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잡는다고 말합니다. 성경만 잡는다고 올바른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신문을 쥘 때에 바른 기독교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성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또 기독교는 신비적이어야 합니다. 이 신비가 없으면 기독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비에 치우쳐서도 안 됩니다. 무게 중심이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서는 안 되고 균형을 잘 잡아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이성에 치우치게 되면 신앙이 없는 합리론자가 되고 맙니다. 신앙인이 아닌 것입니다. 또 신비에 치우치면 겉으로는 대단한 신앙인 같지만 이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신비주의자일 뿐입니다. 바른 기독교는 신비를 놓쳐서도 안 되고 이성을 놓쳐서도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기독교의 신비를 아주 잘 보여주는 한편의 드 라마 같은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로마 군대 조직을 보면 우리나라 군대 조직과 유사합니다. 제일 큰 조직은 우리나라의 사단규모와 비슷하며 약 육천 명 정도의 규모이고 한 군단은 열 개의 대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대대는 약 육백 명으로 구성됩니다. 이 대대를 오늘 성경본문 1절에서는 부대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달리야 부대라고 말하는 것은 대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약 육백 명으로 되어 있는 대대는 백 명 단위로 쪼개집니다. 백 명씩 쪼개지는 한 그룹을 백 명 부대 혹은 백명대라고 합니다.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센츄리안’이라는 영화가 이 백명대의 지휘관 이야기였습니다. 이 백명대의 지휘관을 성경은 백부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백부장은 로마 최고의 자랑이었습니다. 로마 시민들도 군대의 백부장이라면 끔벅 죽는 정도였고, 딸을 백부장에게 시집보냈다고 하면 대단히 출세한 집안으로 여겼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핵심 멤버였으며 최고의 베테랑들만 모인 것이 바로 로마 백부장들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계급은 대위나 중위 정도가 되고 경륜으로는 상사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오랜 군대 경력과 전투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용기가 대단하고 로마에 대한 충성도가 대단한 사람이 백부장입니다.

그 백부장 중에 고넬료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이야기를 오늘 사도행전 10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고넬료라는 백부장은 유대교인은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인이 되려면 할례를 받고 유대교리를 따라야 되는데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당한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 사람을 구제를 많이 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론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항상 기도하는 신앙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기도를 하던 중 환상 중에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너의 기도와 구제를 하나님께서 보셨고 기억하셨다고 말하면서 이제 사람을 욥바라 하는 곳으로 보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잠시 전에 칭찬을 했으므로 욥바로 보내는 것은 뭔가 상을 주려고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욥바 바닷가에 있는 어떤 집에 가면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을 터인데 그 분을 초청해서 말씀을 들으라는 내용이었는데 고넬료는 꿈인 환상 중에 본 지시 그대로 순종하여 자기 하인 두 사람과 부하 중 한 사람을 멀리 욥바로 보내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베드로를 모시고 오려고 욥바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베드로에게도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내셨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큰 그릇이 내려오는데 보자기 같이 양 쪽 귀가 들려 있어 가운데에 물건이 들어갈 수 있는 그릇이었습니다. 그 안에 여러 동물들이 있었는데 네 발 달린 짐승도 있었고 기는 벌레, 하늘 나는 새도 있었습니다. 잡아서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 베드로가 그 그릇 안에 있는 동물들을 보니 자기가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법으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14장에는 낙타 고기와 토끼탕은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돼지 삽겹살 같은 것도 못 먹게 되어있고 물고기 중에 지느러미나 비늘이 없는 것은 못 먹게 되어 있습니다. 장어 역시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옛날 법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런 것들이 보자기 안에 들어 있나 보았는데 그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에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먹지 못한다고 사양했는데 그럼에도 똑 같은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지독합니까? 베드로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그릇은 하늘 위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에서 깼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꿈에서 깬 것입니다. 꿈에서 깨고 난 뒤 베드로는 과연 그것이 무슨 뜻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개꿈이라는 것도 있지만 아주 의미가 있는 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많은 사람에게서 꿈 이야기를 듣고, 꿈 해석을 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데 얼마 전에 자기가 꾼 꿈의 의미를 물은 편지를 받았는데 아직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데 아주 계시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상당히 계시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이를 이해할 만한 객관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겠지만 유대인인 베드로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기는 먹지 못하는데 하늘에서 하나님은 먹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그 때 그 고넬료가 보낸 사람 셋이 도착해서 베드로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꿈이 그 사람들과 연관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보니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제 하나의 문제가 봉착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접촉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해외에 갔다 오면 공항에 내리자 말자 발을 탁탁 텁니다. 이방에 갔다가 부정 탄 것이 묻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민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저 사람들을 보냈으니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저 사람들을 따라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사람을 접촉할 리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백부장 고넬료가 선생님을 초청했다고 하는 말에 이들을 따라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방인 집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도 못할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환상도 보았고 하늘에서 소리도 들었으므로 베드로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

고넬료 집에 도착했더니 고넬료가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예수를 이야기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라하니 갔고 이방인의 집이라도 들어가라 하시니 들어갔으며 들어가서 사람들을 보니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말씀을 전하는 중에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와서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뭔가 크게 깨닫게 됩니다. 그 즉시 도무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간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사도행전 10장에 드라마같이 쓰여 있습니다.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또다시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하나님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예수님 뒤를 따르노라 하면서 사실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뒤를 따라간다 하면서 실은 세상을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그렇습니다. 그저 모여서 찬송하고 말씀 본다고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엉뜽한 걸 믿으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엉뚱한 데로 빠져가지 않습니까? 서울 시내 교회들 가운데서 어떤 교회들이 가장 부흥하는지 아십니까? 정통 교회 한 두 군데를 빼놓고는 이단교회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입니다. 점점 더 그렇게 될 겁니다. 그리고 미국같은 사회도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이단들이 얼마나 번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고 예수는 어떤 분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보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나라도 안 보시는 것이 없고 못 보시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을 보고 계시고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가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밖에 나가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우리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 하나님은 일일이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최후의 심판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심판주인 예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들을 분류하는데 어떤 사람은 왼쪽으로 분류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분류합니다. 오른쪽 사람들은 좋은 곳으로 가게 되는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심판주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아라고 칭찬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좋은 쪽에 이름을 붙여주는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아닙니다, 잘못 보셨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 때 심판주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무엇을 했는지 잊어버린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힘없는 사람들은 조금 도와주었지만 심판주이신 예수는 이것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다 잊어버리고 있는데 심판주는 다 보시고 기억하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로마군인 백부장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다 보고 계셨습니다. 백부장이라는 좋은 자리를 가지고 혼자만 누리고 혼자만 즐기고 먹고 마시는지 아니면 좀 떼어서 불쌍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지 다 보고 계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그 백부장이 정말로 믿는지 안 믿는지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다 보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기도하는지 다 보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구제를 하는데 많이 했다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도도 생각날 때 잠깐 잠깐 한 것이 아니라 항상 기도했다고 합니다.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베드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다 보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지 욥바에 있는지 갈릴리에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불꽃같은 눈으로 쳐다보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다 잊어버려도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일일이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밥 한 그릇 준 것, 물 한 모금 준 것, 치료 한번 해 준 것 모두 다 기억하십니다.

이번에 에디오피아에 가는 것도 그럴 것입니다. 오백 명, 칠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진료해야 되는 어려움도 있고 또 약품이 통관이 잘 되지 않아 제약회사에서 직접 보내는 것도 생각중인데 그것도 통관이 쉽지 않아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약을 보내려고 애쓰는 일, 치료해주기 위해 애를 쓰는 것, 어린애들에게 무엇을 먹이려고 애쓰는 것, 우리는 몇 년 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서 하는 여러분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이 얼마나 잘 기억하시는지 모릅니다. 좋아서 감사해서 하나님께 찬송 드린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서 빚질 한 번 한 것, 못질 한 번 한 것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잘 기억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귀한 일을 했을 때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것으로 보응을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습니다.

또 우리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실 때에 얼마나 절묘하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오늘 고넬료를 보면 참 대단합니다. 환상이 줄줄이 나오지 않습니까? 천사를 보내어 욥바로 보내셨는데 아마 가는 사람들도 걱정이 많았을 것입니다. 저 유대인들이 우리 이방인을 만나줄까? 저가 우리 주인어른의 초청을 받아줄까? 이런 저런 걱정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 아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도착할 때 쯤 되어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쭉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베드로가 환상과 연관지어 긴가 민가 생각 중일 때 하나님께서 내가 보냈으니 걱정하지 말고 저 사람들을 따라가고 이방인이니 뭐니 하지 말고 이방인을 만나고 그 집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다 챙겨주십니다. 베드로가 틀림없이 망설일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리미리 다 아십니다. 전부 다 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다급한지, 무엇이 안타까워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잘 아십니다. 우리가 심지어 알지 못하는 것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야곱이 야반도주하듯이 외삼촌집을 도망 나왔을 때 외삼촌이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왔습니다. 내일이면 야곱이 붙들립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가 내일 붙들릴지 어떨지 알지를 못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 전날 밤에 외삼촌 라반에게 선악간에 야곱에게 아무 소리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야곱에게 내가 너 하나님만 아니었으면 단단히 손을 볼 텐데 너의 하나님 때문에 내가 참고 간다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우리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시구나를 새로 알게 됩니다. 자기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습니까? 그동안 한 번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던 야곱인데 그럼에도 그가 알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미리 당신이 다 아시고 챙겨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절묘하십니다.

차를 운전하고 있는 중에도 우리가 운전을 잘하고 있는 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다 챙겨주시는 것입니다. 큰 병이 나서 병원에 실려 가지 않은 것도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운동하고 밥 잘 먹고 다 우리가 잘해서 그런 줄 알지만 어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일이 다 챙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 챙겨주십니다. 베드로가 망설이고 있을 때 내가 보냈으니 가라고 말씀해 주셨고 고넬료의 집에 왔을 때에도 하나님이 보냈으니 요나처럼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겨났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려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일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가라고 해서 순종만 해서 갔는데 설마 이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 줄을, 성령을 받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겠습니까? 그래서 그 유명한 사도행전 15장의 역사가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구원 받는데는 전부 유대교로 들어와야 된다고 하는 것을 베드로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 15장에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릴 것을 알고 미리 베드로를 보내서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께서 절묘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챙겨주십니다. 이것 저것 필요한 것도 다 챙겨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사도행전 10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고넬료를 사랑하셨습니다. 고넬료 자신은 스스로 구원받았다는 확신하고 있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성령을 보내주고 여러 가지 증거를 보여주어 정말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케 하고, 고넬료를 통하여 그 가족들을 다 구원받게 하고 여러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고넬료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으로 실존의 문제를 봐야 됩니다. 어떻게 고넬료는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고넬료는 구제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을 많이 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좋아 하십니다. 22절에 보면 베드로를 찾아갔던 사람들이 자기 주인 고넬료를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라고 말하면서 유대 사람은 로마 사람을 원수로 아는데 그런 로마 사람 가운데 고넬료는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힘써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불쌍하고 힘든 사람을 도와준 것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됩니다. 사람에게서 자기 자식이 잘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기도하는 사람을 특별히 좋아 하십니다. 기도할 때는 중언부언하기도 하고 졸기도 하지만 우선은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모습만이라도 좋아하십니다. 그 중에서도 중보기도 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힘든 사람을 위해서 대신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기도를 얼마나 좋아하시는 지 우리는 히스기야의 예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 하자마자 곧바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귀히 여기신다는 말씀인데 이것보다 더한 이야기는 다니엘의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이 조국의 참담한 상황을 생각하고 하나님에게 간절하게 기도할 때에 천사가 다니엘에게 나타나서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려서 이제 네게 알리려 왔다고 말합니다.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기도 시작하자마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기도를 중하게 여기십니까? 고넬료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백부장같이 바쁜 사람인데 항상 기도했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세 번째로 고넬료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는 가족 중에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 때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사람 고넬료가 자기 혼자 하나님을 믿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자기 부하까지 하나님을 믿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참 귀한 일입니다. 자기 곁에 있는 사람에게 누구든지 어떻게 하든지 전도하려고 애쓰고 힘썼든 것,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간에 전도에 힘을 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하나 더는 이 고넬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유심히 보면 고넬료는 상당히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고넬료는 환상이라고 하지만 꿈을 꿈 것입니다. 꿈에 천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는 믿기가 참 어려운데 믿었으며 더구나 베드로가 올 때에 자기 일가친척 친구들이 다 모이게 했습니다. 사람을 보낼 때 베드로가 응답을 할지 안할지 또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올지 않을지 전부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믿었던 것입니다. 너무 똑똑하게 믿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은 우직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객관성이 떨어지는 일도 믿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틀림없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와 같은 사람을 지금도 좋아하십니다. 구제에 힘쓰는 사람,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 가깝고 먼 데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식할 정도로 우직하게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주었던 은혜를 지금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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