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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십자가에 못박힌 몸 (마 27: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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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힌 몸(마태복음 27:27~54절)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 패를 붙였더라.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셔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가정을 주셨고, 모든 축복과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으나 사탄의 미혹에 빠져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멸망과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끄러워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의 죽여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혀 가리어 주셨고, 끝까지 사랑하시에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죄의 피가 흐르지 않는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어 인류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마침내 메시야인 예수그리스도를??보내어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구약에는 속죄 제사를 통해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없는 순전한 짐승이 피를 흘리며 대신 죽어야 하는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죄의 용서를 위해서는 대신 죄 값을 치르는 희생을 통해 전적인 대속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얻게 됨을 보여 주셨고, 완전한 죄 사함의 제사를 위해서는 죄가 없으신 의인이 필요하지만 ''이 땅에 의인은 없나나 한 사람도 없기에'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셔야 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죄에서 심판에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자기 외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세상을 사랑하사 이 땅에 보내시고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대신 죽게 하는 희생의 제물로 삼기위해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하신 극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요. 동시에 죄에 대한 심판은 준엄하여 자신의 공의를 위해서는 그 외아들이라도 십자가에 죽이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오늘 우리는 그 극진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땅히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살을 찢어 주시고, 피를 흘려주셨으며, 십자가의 극악한 모든 고통을 받으시면서 우리의 죄를 없이 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도 지셨기에 구원을 위해 베풀어 주신 그 고귀한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서 고난주간 십자가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첫 사랑, 첫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교단 적으로 이 고난주간을 총력 전도주일로 지키고 있는데 전도에 동참하여 영혼을 구원하며, 십자가를 지는데 앞장서서 자원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적극적인 헌신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는데 과연 예수님의 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의 몸은 철저히 부수어지고 깨어졌습니다.

본문 38절에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상체는 시편 129편 3절에 예언된 말씀 "밭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하신 말씀처럼 채찍으로 마치 밭고랑 논고랑을 만들 때 땅을 갈아엎어야 하듯이 부서지고 깨어진 채 우리 모든 아픔을 몸에 짊어지셔야 했습니다.

700년 전에 이사야는 이사야 53:3절에 예언하기를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였는데 주님의 얼굴은 가시 면류관에 찢기고 수염은 뽑히고 주먹질 당했으며, 모욕적인 언사와 침 뱉음과 갖가지 고문으로 처참하게 상함을 당했습니다.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시기 전부터 '가야바 법정'에서 시작되어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을 받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모든 과정에서 예수님의 성체는 긍휼을 얻지 못하고 철저하게 깨어지고 부서졌습니다.

가혹한 채찍질과 각종 형벌로 온 몸의 신경조직을 통해 느끼게 하는 쓰라린 상처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십자가에 처형당하실 때 양손과 양발에 대 못을 박았기에 그 처참한 극심한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없었으니 상한 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십자가 위의 다섯 군데의 육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배신과 환호하며, 영접하며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들이 '십자가에 처형하라.' 외쳐대고, 거짓된 증언과 모욕적인 언사와 매도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과 매어 달리신 후에도 계속하여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었습니다.

십자가의 짐이 제 아무리 어려워도 예수님께서 직접 당하신 십자의 형벌만큼이나 고통스럽고, 힘들겠습니까? 망치소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녹 쓴 세 개의 못으로 몸에 박는 과정과 십자가에 매어달린 형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35절 말씀을 읽어보면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걸치셨던 옷은 다 벗기어졌고, 우리와 성정이 같은 몸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피 범벅이 된 그 육체에서 쏟아지는 신음소리.. 너무나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에 아무도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사야가 사 52:14절에 예언하신 말씀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하신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몸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고,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으셨지만 강도들보다 그 몸은 더욱 찢기어 졌고, 피 흘리신 모습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며, 험악한 사형과정에 인간으로 할 수 없는 흉악한 모습에 모두 두려워했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십자가 위의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 엄청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통 때문에 처절하게 절규하는 신음소리를 내셨는데 시편 기자가 22:1,6절에 예언한 내용을 그대로 이루셨으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 하시나이까?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고 하신 예언된 말씀을 ㅁ모이 깨어지면서 느껴야만 하셨습니다.

누가 이렇게 주님의 몸을 십자가와 채찍과 주먹으로 부셔 놓았습니까? 'k.레이시'라는 분이 표현한 것처럼 인간의 죄가 염산이 되어 주님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반드시 심판하시는 준엄한 심판의 결과를 예수님께서 너무나 잘 아시고, 옥의 형벌이 너무나 가혹함을 아시기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없이해 주시려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과 형벌과 아픔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깨트리어 몸으로 지은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해 주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여~

예수님의 몸이 상함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는 치유의 은총을 받고, 신유의 복을 누리며, 몸으로 지은 모든 죄의 용서함과 썩지 아니하는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며, 변화되어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몸이 깨트려지고 부서지는 고통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은 죄의 값으로 '불타는 불 못 속에 들어가는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함으로 우리가 당하고 받아야 할 고통을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를 통해 지불해 주신 것을 분명히 믿으시면 크게 '아~멘'하시고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 "늘 울어도 그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 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의 찬송가 가사처럼 구원받은 성도인 우리는 일평생 몸을 바쳐 충성하기로 작정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아멘>

십자가에 못 박힌 몸은?


2. '피 흘리는 '몸이 되었습니다.

피와 죄 사함의 관계는 구약의 속죄 제사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3:2절에 명령하시기를 속죄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동물에 대하여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성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레위기 17:11절에 "생명은 피에 있느니라."고 분명히 선언하며, 죄 없는 짐승이 희생한 피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그래서 죄 사함을 받고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여 히브리서 9:7절에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구약시대는 짐승의 피를 통해 속죄 제물로 부족하여 1년에 한 차례씩 대속일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4절에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고 <구약의 속죄 제사를 통해서는 완전한 죄 사함이 이루어지지 아니함을 밝히고 있으며, 그래서 완전한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 온 천하보다 귀한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는 죄 없는 인간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 제사가 필요하기에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아니면 인간이 지은 죄와 원죄와 유전 죄를 모두 완전히 없이 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부득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야만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은 깨트려지고, 각종 형벌로 찢기신 몸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흘리는 고통의 과정을 감수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 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영원히 없이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이 귀한 사실을 믿으시면 '아~멘'으로 시인하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호머'의 <일리아드 고대 시> 속에 용의 ‘피에 목욕한 용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화살도, 어떤 검도, 어떤 창도 그 용사를 상해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화에 불과하지만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과 효력은 너무나 엄청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피 흘려주신 십자가의 보혈로 목욕해서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28절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이유를 분명히 알고 보혈의 샘에 믿음을 통해 뛰어들어 목욕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19절에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버리면 영적으로 전신이 목욕하게 되는 것이요. 죄 함을 얻고,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과 천국을 그 피의 공로로 얻게 됩니다.

찬송가 ♬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 이 귀한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적게는 찬송 부를 때, 기도할 때, 말씀 속에 젖을 때, 예배드릴 때, 성찬식에서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목욕하는 것에 해당됩니다. 할렐루야!

엡 2:13절에 선언하기를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피를 흘리셔서 육체의 찢어지신 희생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은총을 얻게 되었으니 날마다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고, 그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십자가에 고통당하신 예수님은


3. '말씀하시는 몸'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일곱 마디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깊이 새겨 실천해야 할 말씀들입니다. 일복마디의 말씀을 한문으로 요약하여 '가상칠언'이라고 하는데

제 1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제 2언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제 3언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제 4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제 5언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제 6언 : 다 이루었다 (요19:30)
제 7언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고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1) 제 1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먼저 십자가상에서 제일 첫 번째 하신 말씀은 눅 23:34절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중보기도 해 주셨습니다. 사실 알고지은 죄도 많지만 모르고 지은 죄는 더욱 많습니다. 사람은 무지하고 극악하여 죄 인지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은 모르고 한 죄까지 용서를 해 주니다. 나의 모든 죄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 죄도 용서해 주시고 내가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죄까지도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제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① 눅 7:36-50절을 읽어보면 죄 많은 여인의 죄를 속죄하여 주실 때 그는 구원을 받고 평안히 돌아갔습니다. "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부을 때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하시더니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했습니다.

② 마 9:1-8절을 읽어보면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의 죄를 사죄하여 주셨습니다. 마9:2절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해 주셨고 죄 사함을 받은 그는 병까지 고침을 받았습니다.

③ 요 5:14절에는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았는데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권고 했습니다.

④ 마 26:28절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의 죄까지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절에는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하셨는데 이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사주에 의해서 빌라도가 불의한 재판을 하게 되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잡아다가 때리고 욕을 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까지 그들이 저지른 만행과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또한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한 배신자들의 모든 죄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배신자였습니다. 괘씸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3:4-6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 예언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힌 몸으로 원수의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① 골 3:13-14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② 마 6:12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주기도문에서 용서를 명령 하셨습니다.

③ 마 18:21-22절에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용서했습니다. 돌로 치는 원수들을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은사를 체험하였던 성도들이 많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서로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고소하면서 교회를 소란케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이런 행위를 불의하다고 규정했습니다.

고전 6:6-9절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 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질타했습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고난 주간을 통해 십자가를 기억하여 피차 용서합시다. 절대로 용서가 안 되는 사람, 괘씸한 사람을 그려봅시다. 그리고 "이것까지 참으라.",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십자가의 정신으로 용납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성도가 되시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올바른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 제 2언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골고다 언덕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좌편과 우편에는 두 사람의 행악 자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들은 큰 죄를 범하여 당시에 최고형인 십자가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신 데도 불구하고 단지 나의 죄와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 두 강도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희롱하는 무리들과 함께 예수를 비방하고 욕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말하기를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당신이 정말 구원자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강도는 “그 사람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당연한 값을 당하는 것이지만 이 분이 행하시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면서 다시 예수님께 간구하기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청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십자가상의 두 번째 말씀입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 에 있으리라."는 말씀은 죄인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낙원의 주인이심을 의미합니다.

① 요 14:2-3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낙원을 예비하러 가신다."고 했습니다.

② 계 2:3-4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하셨으니 주님은 영원한 천국의 주인이 되십니다.

③ 고후 5:1-2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라고 하셨으니 낙원에 있는 하나님이 지으신 집은 세상의 집과는 다른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 제일 먼저 가장 먼저 주님의 은총으로 낙원에 제일 먼저 간 사람은 강도였습니다. 그는

① 회개와 기도함으로 낙원에 갔습니다. 두 행악자 중 오른편 강도는 고백하기를 눅 23:42에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눅 23:39-43절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②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회개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눅 23:40절에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으신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함으로 오른 편의 강도는 낙원에 갔습니다.

이 구원받은 강도는 예수를 믿는 성도의 대표자 입니다. <이 구원받은 사람이 들어갈 장소는 주님이 가시고 우리가 갈 낙원인 줄 믿습니다.>

① 계 22:5절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거기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합니다.

②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요 14: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죄인에게 은혜 없으면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천국 본향은 회개와 믿음으로 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할렐루야!


3) 제 3언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고 하신 말씀을 상고해 봅시다.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써서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써서 붙였고,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십자가를 친히 지시고 해골이라는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 마침내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그런데 바로 그 밑에서는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벗기고 그 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 서로 다투며, 네 깃을 잡고 하나씩 나눠 가지며 속옷도 나누려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한 군병이 말하기를 속옷은 통으로 된 것이니 나누지 말고 제비를 뽑아 가지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제비를 뽑아 속옷을 취하였습니다.

이는 시22:18절의 말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맞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 밑에서는 벗긴 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에 혈안이 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이 잔악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끝까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십자가의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그 모친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그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니"라고 하시므로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의 값을 대신 갚기 위해서 오신 주님이시지만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똑같은 성정을 갖으신 분이라 얼마나 고통이 크셨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손과 양발에 큰 못을 박히시고. 죽어 가시는 그 고통 중에서 주님은 십자가상에서의 세 번째의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효도의 계명'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순종하며 받들었습니다. 눅 2:5절1에는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12세 때는 부모와 함께 성전에 예배하러 갔을 때 눅 2:41-42절에 기록하기를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라고 예수님의 순종의 모습을 기록하였습니다.

십자가상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셨습니다. 요19:26-27절에도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도인 바울은 효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엡 6: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중에 인간에게 주신 첫 계명이 효도입니다.

① 출 20: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② 잠 23:22절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③ 잠 23:25절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④ 막 7:11-13절에 당시 종교계의 그릇된 가르침인 '고르반의 진리'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드릴 것을 드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 가르쳤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서 부모님을 잘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핑계를 대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 일이나 신앙을 핑계하면서 불효해서는 안 됩니다. 효도하는 자에게 장수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⑤ 신5:16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기에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는 말씀을 되 새겨야 효도와 순종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순종을 해야 합니다. 웃어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 21장에 보면 <어느 포도원 주인이 멀리 여행을 가기 위해 두 아들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일을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안 했고, 작은 아들은 '안 하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잘못을 뉘우치고 포도원에서 일을 했는데,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말들은 사람이냐?>고 하시면서 아버지의 말씀, 즉 부모님에게 순종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모는 타락과 실패의 자식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눅 15:11-24의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부모의 품에 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요한에게 예수님의 어머니는 너의 어머니라 하셨는데 성도는 주안에서 한 형제요,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이미 막 3:31절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는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더니 막3:35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했습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이 있습니다. 낳은 부모, 기른 부모, 학교의 스승, 교회의 목사님 등 웃어른들을 잘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는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충성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웃어른들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 교회에 충성 할 수 없습니다. '충신은 효자 가문에서 난다.'고 하는 말이 옳습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불효한 죄를 회개합시다. 찾아가서 회개합시다. 세상을 떠나셨다면 하나님께 불효를 회개합시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하면서 효성을 다했습니다.

"요한아! 네 어머니다." 하신 말씀은 효에 대한 가르치심이기도 하지만 "누구든지 하늘 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12:50)."고 한 말씀을 친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서로 지체와 형제 자매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4) 제 4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6)"

예수님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 라 쓴 죄 패가 붙어 있고,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는 강도 두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면서 온갖 저주스런 말로 예수를 모욕하였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그와 같이 희롱하였습니다. 갑자기 제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9시까지 계속하였는데, 제9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를 지르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는데 그 듯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절규였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영혼이 떠나가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씀하신 이 순간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라도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를 집행하셔야 하시기에 독생자 외아들이라도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죄인의 자격이기에 버려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흑암의 권세가 잠깐 이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신 아들에게 얼굴을 돌이키신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순간은 한편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담을 허시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는 순간 마 27:51절 말씀에 보면,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소의 휘장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휘장'을 말합니다.

성소 안의 지성소는 일 년에 단 한차례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대제사장 외에 누구든지 이 지성소에 들어가면 죽음을 면할 수 없고 설령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의식을 행하거나 부정하면 죽음을 당하였던 곳입니다. 이 휘장은 매우 튼튼합니다. 잘 찢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어 숨을 거두는 순간, 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쫙 찢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찢어질 수 없는 일로서, 이는 곧 막혔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완전히 허물어 버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신 것입니다. '휘장 가운데로 새롭고 살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면 이제는 누구든지 지성소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아무도 죄 때문에 심판 죽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려진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을 통해서만 속죄하던 구약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엡 2:14-16절 말씀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언합니다.

"엘리 엘리 라나 사박다니."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란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한 것>입니다.

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삼상 2:6절에 보면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② 또한 이 말씀은 전폭을 하나님께 맡기시는 고백입니다.

대하 20:20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신뢰와 신앙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③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 끝까지 충성과 순종하셨습니다.

우리 인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지신 예수님, 아픔을 알고 고통을 알고, 저주와 모욕을 아시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마치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잠잠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 53: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지신 예수님… 그러기에 옷을 다 벗기고 채찍으로 때리고 못으로 손과 발을 박으면… 아픔을 알고 고통을 알고, 저주와 모욕을 아시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순종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희망과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5) 십자가 위의 제 5언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우리는 조금만 땀을 흘려도 곧 갈증을 느껴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경우를 상상해 볼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데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눅 22:4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 역사상에 예수님처럼 간절히 기도를 해 본 사람이 있겠습니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아무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시 22:14절에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고,

시 69:21절에 “저희가 쓸개로 나의 식물을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라고 예수님의 갈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의 갈증은 이미 잡히시기 전부터 목이 마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목이 마르셨습니다.

동시에 수님은 영혼까지도 목이 마르셨습니다. 죄라는 것은 육신의 죄만 아니라, 영혼으로 범하는 죄까지 포함됩니다. 죄는 영혼과 육으로 짓는 것이지 부분적으로 육으로만 짓거나 영혼만으로 짓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죄가 있고 영혼의 죄가 있습니다. 인간들이 육으로 지은 죄로 인한 예수님의 목마름, 또한 인간들의 영혼의 죄로 인한 예수님의 목마름, 두 가지를 다 생각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육신의 갈증은 생리적인 갈증이요, 예수님이 느끼시는 영혼의 갈증은 여러분들의 사랑의 생수를 요구하시는 갈증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영혼을 시지시기 바랍시다.

"내가 목마르다."는 성경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두 마리의 속죄 염소 중 한 마리는 하나님 위한 양으로 불살라 피 흘려 죽고, 아사셀위한 양은 광야에서 유리하다 목말라 죽게 했습니다.>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주님의 목마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마 5:6절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고 싶어 목이 마르고, 생명을 구원하고 싶어 목마른 안타까움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의를 행하고 싶고, 기도하고 싶고, 성경을 읽고 싶고, 십일조 헌금 성실하게 드리고 싶고, 주일 성수하고 싶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싶고, 그래도 아멘 없기에 계속합니다. 전도하고 싶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일에 목마른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목마름으로 사모하고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해도, 가난해도 만족하고 삽시다. 할렐루야!


6) 십자가위 제 6언 : "다 이루었다(요19:30)."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속죄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아니고는 “속죄를 위한 값”(贖錢)을 대신 갚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시면서 죄를 용서하시는 속죄사역을 이루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 용서의 은총이 우리들의 마음에 역사되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인간들의 죄는 하나님만이 없앨 수 있습니다.

사 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속죄사역의 성취(완성)인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 언약의 완성이요. 율법을 다 성취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신 분이십니다.

① 순종을 완성하셨습니다.

빌 2:6-8절 말씀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②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요일 4:10-11절 말씀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했습니다.

③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요 19: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다 이루고 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계획을 다 이루고 가는 이가 없습니다. 꿈을 다 이루고 가는 이가 없습니다.

계획하고 목표하는 것을 못다 이루는 우리 인생은 '다 이루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 16:33절에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이삭의 가슴에 칼을 꽂아야 하 는 가장 절박한 상황이 생겨도 낙심하지 마시고 순종하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하심으로 합력하여 선한 뜻을 이루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해 놓고 우리의 믿음을 보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13년의 긴 세월의 고난이 있었고, 형제들의 베신, 보디발장군 아내의 모함,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약속 불이행 속에서도 결국 바로 왕에게 역사하시어 꿈 해몽의 필요를 통해서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선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7) 제 7언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육으로 지어진 몸은 육적인 필요를 충족해 주는 물질과 교제하고 세상의 썩어지는 것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갈 5: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롬 8:5-8절에도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흙속에 생령을 불어넣어 주습니다. 지. 정. 의. 의 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본질적으로 따져보면 육체도 귀하지만 영혼은 더욱 귀한 존재입니다. 육체는 반드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며, 시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건강하면 7~80이라고 했습니다. 때가 되면 가야합니다.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불멸입니다. 육체는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마 10: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먼저 건강하여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도 잘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궁극적으로 내 아버지께로 가야하는데 죄 사함을 받은 거룩한 영혼만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은 생명인데 곧 구원받은 영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 16:26절 말씀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께 인도하시기 위해 '보혜사로 오신 분'이십니다.

요 14:6절 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행 7:59절에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구원받은 스데반 집사는 천국에서 자신을 영접하는 주님을 보고 돌에 맞아 죽인을 당하는 순교의 현장에서 천사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성도의 영혼은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영혼의 구원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면서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신앙을 가지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비굴하게 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각종 좋은 것으로 그 영혼은 주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셔서 각양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내 영혼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도록 십자가에서 몸을 찢어주신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기억하여 육체의 소욕을 깨트리어 거룩하게 살고, 충성하며 삽시다.

바울이 갈 6:14절에 고백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 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의 신앙을 본 받아 삽시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깨어지고 피를 흘려주시며,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고통과 멸시와 아픔과 죽음을 감수 하면서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도 주님께 드려지는 떡이 됩시다. '성막론'에서 배운 것처럼 떡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기억하여 헌신과 충성, 봉헌생활을 잘 합시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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