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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눅 2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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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려신학교 신학원 2학년 설교학 시간 때의 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학원 3학년들은 지난 시간에 교수로부터 주어진 본문에 의해 7분 설교를 작성합니다. 자기 순서가 오면 준비된 원고를 담당 교수에게 한 부를 제출하고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를 합니다.

한편 2학년들은 설교학 시간에 3학년에 비해 부담이 적습니다. 왜냐하면 2학년들은 설교를 하지 않고 자신이 작성한 원고만 제출하기 때문입니다.
때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부활주일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최아무개 전도사의 순서였습니다. 그의 설교제목은 『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가? 』라는 제하로 7분 설교를 마쳤습니다. 설교가 끝나면 긴장과 초조함으로 교실 안은 박제가 된 듯 합니다. 왜냐하면 설교학 교수는 어김없이 설교에 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교자의 용모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평이 가해지기 때문입니다.
설교학 교수는 평소와는 달리 최아무개 전도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호통을 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하다라고 해도 사탄이 아니다라고 할 것인데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가? 라고 하면 사탄이 일하기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 당장에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로 고치세요! 라고 한 말이 어제 일처럼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확실한 사실에 대해서는 서투른 문학적 기교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철학적인 사유로 자신의 인기와 영합하여 표현에 욕심을 내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을 가지고 말장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확실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한편 구석에서 된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의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세상 역사 가운데 우뚝 서서 모든 거짓을 비웃으며 진리를 왜곡하는 궤변들을 호령하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하는 자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13; 살전 4: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였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믿음도 헛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14, 15).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다시 사신 것이 없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17).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 했습니다.

본문은 사복음서에 동일하게 기록된 사건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해서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큰 돌로 인봉한 예수님의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여자들이 근심하고 있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자신들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여자들은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습니다. 이 때 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Ⅰ.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1) 구약성경의 예언입니다.
창세기 22장 5절에 『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2장은 메시야장이라고 합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우리라는 복수 1인칭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이 죽은 자와 방불한 몸에서 독자 이삭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이삭이 죽임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에 『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시편 16편 10절에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이 구절을 사도행전에서 확증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4-31절의 말씀이 바로 그것이며 사도행전 13장 34-35절에도 같은 내용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게 하실 것은 부활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 자신의 예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1절에도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7절에도 『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B.C 586년에 함락)과 스룹바벨 성전(B.C 521-516년에 완공)에 이어 건축한 헤롯 성전(B.C 27-19년에 완공)을 말합니다. 이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일으킨다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3일만의 그의 부활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29-30절에 『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고 했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만에 살아났습니다(욘 1:17-2:10).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사실을 이미 공포하셨고 그러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제자들 앞에서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Ⅱ. 그리스도의 부활은 공개적이었습 니다.

1) 사도들의 증언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승천하기 전에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2) 바울의 증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3)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9절에 『 예수께서 저회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5-17절에 『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되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1-32절에 『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보여 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된 일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어떤 궤변도 부활의 공개적인 역사성 앞에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4) 안식일이 변경된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 이날 곧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이 일주일간의 7일에서 제 1일로 변경된 것은 부활을 믿는 초대 교회와 사도들의 자연스러운 일치입니다. 오순절 일백이십 명은 안식일 이튿날 곧 주간의 첫날에 다같이 한곳에 모였습니다(행 2:1).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드로아의 교회는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고 모였습니다(행 20:7).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의 지시에 따라 매 주일 첫날에 성도들을 위하여 연보를 드렸습니다(고전 16:1, 2).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습니다(계 1:10).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 주일이 된 것입니다.

안식일이 변경된 것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은혜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안식일이 시간적 구속력을 강요하는 율법적인 족쇄가 될 수 없다는 사상이 노골화된 결과라고 보아야 합니다(골 2:16).
안식일이 주의 날(주일 Lord's day)이 되었다고 해서 안식일의 정신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보다는 부활의 의미를 가진 안식 후 첫날을 더 뜻 깊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로마인들이 태양의 날(sun day)로 인정하던 일주일간의 첫날에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274-337)의 밀란 칙령이 있었습니다.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주후 321년에 공휴일로 정식 제정되면서 이 날이 '의로운 태양'(말 4:2)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의미가 한층 더 고조되는 가운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조인 소요리문답(59)은 기록하기를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이 칠일 중에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명하였고 그 후로부터 세상 끝 날에 이르기까지는 칠일 중에 첫날로 명하셨으니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감안할 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 날이 바로 주일이 됨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Ⅲ.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른 삶의 확증 입니다.

1) 부활은 분명한 신체적 변화입니다.
(1) 썩지 아니할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에 『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라고 했습니다.
(2)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3절에 『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라고 했습니다.
(3) 강한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3절에 『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라고 했습니다.
(4) 신령한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5) 하늘에 속한 자의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49절에 『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 했습니다.
변화산에서 변형되시고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것이나(마 17:2)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 나타나서 예수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모습(마 17 :3)은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하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2) 부활은 새 생명의 표징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의 표상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4절에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에 『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택한 백성들의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롬 5:9).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벧전 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 죽은 자가 살아난 기적의 사건은 부활체가 아닙니다. 그들은 결국 죽었습니다. 부활체는 살았다가 죽는 몸이 아닙니다. 부활체는 신비한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처음이요 마지막을 장식할 핵심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후로부터 참 제자의 걸음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이실 때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요 20:20).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그 손의 못 자국을 보고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요 20:25).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서 『 내 손을 보고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고 하셨습니다(요 20:27). 도마는 그 자리에서 『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라고 하셨습니다(요 20:29).

지금도 이스라엘 성지에는 로마 가톨릭이나 그리스정교나 모슬림의 손으로부터 때 묻지 아니한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1882년 영국 개신교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가든툼(Garden Tomb)입니다. 바로 그 위가 골고다 언덕인데 1587년 영국 고든(Godon)장군이 발견했다고 해서 일명 고든 갈보리(Godon Calvary)라고도 합니다.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하는 곳입니다. 이곳이 바로 신교에서 주장하는 유일한 골고다요 예수님의 무덤이 있고 부활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요 19:41-42).

예수님이 안 계시는 이스라엘이며, 성지며, 빈 무덤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저는 성지 순례를 하는 중에 그 곳의 바위를 손으로 만지며 부스러기 흙을 발로 밟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와 주님만이 아는 나의 비밀의 창고에 열쇠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보잘것없는 나를 제자삼아 당신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이 땅에 모든 수사를 모아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팔레스틴 지역에 한정되어 있지만 예수님과 관계된 중요지역들은 터키를 비롯한 인접국가에 널려 있어서 저의 짧은 일정과 한정된 경비가 저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예수 부활은 확실하고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교회 역사의 신기원이 되었습니다. 예수 부활소망이 교회운동의 활력이 되었습니다. 예수 부활이 저와 여러분의 영과 육의 힘의 공급원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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