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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바락의 믿음 (삿 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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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삿4:4-16
제목 : 바락의 믿음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부활을 믿지 못하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몇 가지의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엇보다도 바로 나 자신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부활을 믿지 않아도 내가 믿고 확신하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믿어도 내가 믿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성령은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합니다. 부활의 신앙, 부활의 믿음을 확신하며 흔들림이 없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부활의 증거는 목격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본 사람이 있습니다. 한 두 사람이면 마치 꾸며낸 것처럼 의심을 하겠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주님의 부활이 사실인 이유는 목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본 사람이 있다는데 왜 의심합니까?

  마지막 부활의 증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모두가 인정한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입니다. 바로 그 성경이 부활을 말합니다. 주님의 탄생, 죽음과 함께 부활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믿는다면 부활도 믿어야 합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절대적인 진리로 굳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건과 문장과 심지어는 단어 하나, 이름 하나도 의미 없이, 생각 없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믿음의 사람 ‘바락’을 보아야 합니다. 사실 바락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그가 살던 시대에도 주인공이 아니라 늘 조연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동시대에 살던 사람 중에는 그보다 더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성경은 바락을 기드온, 삼손, 입다와 함께 그의 이름을 믿음의 반열에 소개합니다. 이것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바락을 귀하게 보아야 하고, 그의 믿음을 찾아야 하며, 그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락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본문을 통해 2가지를 발견합니다.

  첫째, 승리하는 믿음입니다. 바락의 이야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한마디로 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락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바락은 사사시대 가운데 여자 사사 드보라와 함께 한 사람으로서 당시 가나안 왕이었던 야빈과 싸우던 장군입니다. 야빈은 20년 가까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며 압제하던 사람입니다. 야빈 왕이 이렇게 강한 이유는 그에게는 ‘시스라’라는 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900대의 철병거를 지휘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하면 전차부대 지휘관입니다. 철병거는 당시 신무기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무적함대였습니다. 게다가 시스라는 전술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방의 허점을 파악하고 전차로 밀고 들어가 순식간에 전쟁을 끝내버리는 전략에 탁월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서는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20년이 흘러가면서 이스라엘은 기가 죽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에 바락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시스라의 철병거를 부수고, 가나안 왕을 격파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다 줍니다. 이런 내용이 본문을 중심으로 4장 끝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바로 승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전쟁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바락을 통해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 승리의 중심에 바락이 있었습니다. 바락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싸워 승리한 것입니다.

  바락의 이런 승리는 주님의 승리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곧 승리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주님의 부활은 곧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곧 주님과 더불어 모든 삶에서 승리하며 사는 것을 의미하고, 바로 그것을 확신하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는 영적 전투의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원하든 원치 않든 전쟁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싸웠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싸워야 할 싸움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싸우고, 사탄과 싸우고, 죄와 싸우고 나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과 함께 우리가 또 싸워야 할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두려움입니다. 특히 죽음의 공포입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당시 믿음 생활하던 성도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곧 순교로 연결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매일 함께 예배드리던 성도들이 한사람씩 죽어갈 때, 그들은 언제 자기에게도 그런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론 두려움으로, 공포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때 성경이 기록되면서 당시 성도들에게 주님의 부활은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 곧 나의 부활이 그들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이들의 방패요 두려움을 이긴 용기가 된 것입니다.

  ‘토니 에반스’ 라는 사람이 지은 책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에 보면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한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동물원에 갔습니다. 사자 굴을 지나갈 때, 포효를 지르며 어슬렁거리는 사자에 놀라서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얘야 무슨 일이 있니? 라고 묻자 새파랗게 질린 아이가 ’아빠, 저 사자가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음, 물론 보이지, 하지만 아빠는 철장도 함께 보고 있단다...‘

  여러분, 우리가 사자를 보고 무서워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철장을 보고서 편안히 살아야 하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우리 삶에 철장과 방패가 되십니다. 주님은 두려움을 막아주시고, 방패가 되심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공포로 몰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이제 소리치시고, 담대하게 선포하십시오. ‘내 인생의 모든 두려운 것들이여 물러갈 지어다’

  또 싸워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걱정과 염려와 한숨과 눈물입니다. 우리 삶에 한 순간도 이런 것이 떠나지 않습니다. 지난 한 주간도 얼마나 걱정과 염려로 마음졸이며 살았습니까?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하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염려가 아니라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승리하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믿음입니다. 모든 걱정과 염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주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인생의 모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며 사는 것이 귀한 믿음입니다. 자신과 세상과 죄와 사탄과 싸우고,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승리하는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충성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사 드보라는 그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어느 날 바락을 일꾼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명령합니다.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드보라는 그의 사역을 혼자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신실한 일꾼 바락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싸울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이런 명령에 바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바락의 이런 반응과 고백에 대하여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해석이 다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락의 이 말은 그의 나약함과 불신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락의 이 말은 겸손한 태도요, 믿음의 고백이요, 선지자를 존중하고 충성을 다하려는 행동입니다. 바락의 이런 마음을 알았던 드보라는 함께 가기를 약속했고, 결국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가나안왕 야빈에게 시스라라는 장군이 있었다면, 드보라에게는 바락이 있었습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바로 이런 관계로 굳게 맺어져 ‘충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바락의 드보라를 향한 충성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충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락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가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일꾼으로서 충성하기를 다짐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평생 살았기에 때가 되어 드보라의 부름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락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이요, 사람에게 충성한 인물입니다. 바락의 이런 충성스런 모습으로 윗사람을 존중하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런 바락의 귀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한결같고, 변질되지 않고, 한 주인만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락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 오직 한 사람 드보라를 위해 힘을 다했던 것입니다.

  진돗개가 그런 동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진돗개는 한번 섬긴 주인에 대한 절대 변치 않은 충성심 때문에 주인이 자주 바뀌는 군견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번에 부흥회 오신 강사 목사님도 자기가 기르는 진돗개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 개는 몇 년 전 텔레비전에도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그 개는 오직 자기 말만 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 동안 집을 비우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그 개를 통해 신앙의 귀한 진리를 많이 배운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으며, 두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이런 충성하는 일꾼들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곧 내가 맡은 모든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로, 부모와 자녀로 충성하는 자들이고, 사회에서도 성전과 종으로서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교회의 아주 작은 일에도 충성하고,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충성하고, 한결같이 신실하게 충성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곧 충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충성하지 않으면 아직까지 먼 것입니다. 자기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의 신분과 위치를 떠나고, 권리만 주장하고 나에게 주어진 의무는 감당하지 않는 것, 이 모두는 결코 충성하는 믿음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고,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신실한 사람, 충성하는 사람이 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꾸 자기 자리를 이탈하여 혼란한 이 시대는 바로 이런 사람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위해, 그 주님이 세우는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충성과 함께 승리하는 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승리와 충성의 길을 향해 힘있게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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