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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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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모여드는 절기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명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신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기 위하여 성밖으로 나갔다.

(요 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그런데 그 무리들 중에 헬라에서 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먼저 빌립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빌립은 뜻밖의 일이라 이 일을 안드레에게 의논했다.

(요 12: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동문서답과 같았다.
(요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22절과 23절 사이에 무엇인가 빠진듯한 느낌이 든다. 예수님께서는 찾아온 헬라인들을 만나시겠다 안만나시겠다에 대하여 언급이 전혀 없이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셨다.

소망교회 원로목사인 곽선희목사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인용해서 그 공백을 메꾸었다.
예수님에게 면담 신청을 한 헬라인들은 헬라의 소도시국가인 에뎃사왕국의 사신들로서 왕의 아들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왔다는 것이다.
첫 번째 목적은 왕의 아들을 고쳐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해치려는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나라로 피신해서 왕의 고문으로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라는 것이었다. 만약 이 사신들의 교섭이 사실이었다고 가정했을 때 동문서답같은 예수님의 답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제안은 세상 영광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확실한 신변보장과 왕의 고문으로서의 지위는 누구나가 소망하는 영광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라보신 영광은 그것이 아니었다. 요한복음 12장 23절로 26절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자.

(요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받으실 영광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가르치고 계신다. 그것은 세상적인 영광이 아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받으실 영광을 역설적으로 설명하셨다.

1)죽음으로 받을 영광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경제논리를 신앙에까지 적용시키려고 한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남기는 것은 경제의 기본 원리이다. 그러나 신앙에서는 그런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도 없는 것이다.

다미앙이라는 불란서의 사제 출신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하와이 몰로카이 섬의 한 나환자 촌에 선교를 위해 도착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선교의 열매가 하나도 맺히지 않았다. 그는 그 나환자 촌에서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중에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 하나님 내게 문둥병을 주옵소서.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 그가 나환자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묘비 - 요12:24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한 알의 밀알 그대로 있기를 원치 않았다. 썩어지길 원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죽으므로 그곳에 많은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이다.

마16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여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천국의 열쇠를 약속받은 베드로는 기분이 상당히 고조되어 있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이렇게 간청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때 예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십자가 없이 자신의 영광만 생각할 때 제자들도 사단의 노리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활의 영광 이전에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2)자기 생명을 미워함으로 받을 영광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여러분들이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고 하자. 사진을 받았을 때 누구를 먼저 보는가?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도 자기 얼굴을 먼저 찾는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면 공통적으로 갖는 마음이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것이다.

눅 12장에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 나온다. 그는 풍년으로 인해 갑자기 재물이 많아졌다. 그리고 자만해졌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이제 실컷 인생을 즐기자!” 창고를 짓고 재물을 쌓아두었다. 날마다 해피했다. 그런데 어느날 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눅 12:20)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자신이 힘써서 지킨다고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주님의 말씀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챨스 스터드라는 사람이 있었다. 19세기말 영국인인데, 갑부의 아들이요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의 수재였다. 뿐만아니라 그는 당시 인기 있는 스포츠 크리켓의 스타였다. 가는데 마다 인기가 충천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무디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았다. 그도 역시 은혜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복음을 깨닫고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중국 선교사로 헌신했다. 중국에서 18년, 인도에서 6년. 그 동안에 두 부부가 모두 건강이 쇠약해져서 귀국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집회에 참석했을 때 포스터를 보았다. “식인종이 선교사를 기다립니다.” 그는 고국에서 편안한 생활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미 50을 넘기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말렸고 그의 아내도 말렸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 수단을 향하여 떠났다. 떠날 때 요8:35의 말씀을 붙잡았다고 한다.
(막 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그는 아프리카에서 영국에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당신에게 건강을 줄 수 없는 의사를 멀리하고 예수님께 상의해 보는게 어떻겠소? 사랑하는이여, 예수님께 가서 그분께 당신을 드리시오. 그러면 나와 함께 세계를 돌며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오. 반드시 그러리라 나는 믿소. 에수님을 믿는 믿음외에 나와 당신이 살아야 할 다른 길은 없다오.”

그는 질병과 맹수의 위험 속에서 70세까지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감당하였다고 한다. 그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WEC 선교부를 창설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품에 안겼지만 지금도 전세계 2000여명의 WEC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현재적 자기 사랑에 빠지면 미래적 생명을 잃는 것이다.

3)주님을 섬김으로 받을 영광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 나온 여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갈릴리 시골 아낙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고난당하신 그 현장에 그들이 가까이 갈 수 있는데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무덤에 찾아 나왔다. 그들의 섬김이 변함없이 충성스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제자들은 정작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잠잤고, 도망쳤고, 들어가 꼭꼭 숨었다
유월절 식사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호언장담했었다.
(막 14:29)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막 14: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그러나 그는 다음날 새벽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주님을 3번 부인했다. 그리고 십자가의 현장에 제자들은 없었다. 베드로는 평생 주님을 버리고 떠난 일을 부끄러워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말로는 따라갈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섬김이 아니다. 주님이 계신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자기가 살아 있는 한 진정한 섬김은 없다. 말로만 사랑한다하며, 섬긴다하며, 도리어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다른 지체들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주님을 만나려면 제일 낮은 곳으로 가라”고 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교만을 버리고, 자기 자랑을 버릴 때 진정한 섬김이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없이 부활은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이 있게 된 것이다. 고난 없는 영광은 거짓이며 헛된 것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다.
1)죽으라는 것이다. 죽는 것은 바로 나의 몫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많은 열매가 맺히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2)미워하라는 것이다. 곧 자신을 덜 사랑하는 뜻이다. 그러면 영원히 보존하게 될 것이다.
3)섬기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같이, 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그리하면 주께서 저를 귀히 여기실 것이다.

16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로 받기를 원한다.
1)죽어지는 교회, 그러면 우리 교회를 통해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이다.
2)사랑하는 교회, 나보다는 남을 더 사랑하는 교회. 이기적인 교회가 아닌 이타적인교회 그러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보존될 것이다.
3)섬기는 교회, 주님의 마음을 품고... 그러면 주님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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