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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받는 복 (수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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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신자들에게 신앙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것만큼 복을 받는다고 봅니다. 열심히 잘 하면 그 개인이 복을 받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예배를 나가도 봉사를 해도 새벽기도하고 금식기도해도 개인이 복을 받고 그것으로 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쳤다가는 더 크고 풍성한 복에서 제외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주려는 것은 더 큰 차원의 복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가지들은 포도나무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전체가 잘 되어야 가지도 잘 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개인보다 오히려 전체에 있습니다. 전체 가운데 있는 개인은 전체를 통해서만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엄청나게 받습니다. 그러나 후손인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위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을 낳지 않으면 그의 복은 의미가 없는 개인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개인이 아니라 민족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은 그리스도인으로 신자는 택함을 받아서 그리스도인으로 복을 받습니다.

목숨 걸고 여리고 공격하는 이스라엘이 신자입니다. 개인은 여리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여리고로 시작해서 가나안 전체를 정복하면서 위대한 나라로 일어납니다. 개인도 그 안에서 그렇습니다. 수천 년간 나라 없이 떠돌았던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세요. 신자의 나라는 교회요 교회가 잘 되어야 자신도 잘 됩니다. 교회와 신자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1. 주의 몸으로 존재한다

요셉은 총리가 되어 민족을 구원합니다. 야곱이 죽은 후에 형들이 나와 엎드립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요셉을 죽이려다 노예로 팔았던 형들입니다. 요셉은 울며 대답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을 잘 되게 한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서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에게 복을 주시되 그리스도의 몸일 경우에 그렇게 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에 보이는 예수의 몸입니다. 교회는 신자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자는 예수 몸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모든 권세와 복을 주십니다. 그 유익은 교회와 한 몸 된 신자가 누립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아무 복도 없어요.

많은 신자들이 예배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일에 관심이 없어요. 주일 낮 예배만 참석하고는 곧장 세상으로 나가 열심히 일합니다. 개인적으로 잘 되려고 합니다. 다른 신자들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개인적인 경건은 개인적인 수준의 복을 받을 뿐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함께 가나안을 정복해 거룩한 백성이 되지는 못해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다윗의 고백입니다. 왕이고 강하고 탁월한 자입니다. 돈 많고 권력 많습니다.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무엇을 얻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잘 되는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서요, 이스라엘 속에 있음으로 그가 잘 되고 이스라엘을 떠나서는 일개 필부에 그친다는 사실입니다.

한남대 이사장은 김용균 장로입니다. 삼대가 한 병원, 한 교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산부인과병원인데 아버지도 자신도 아들도 이어갑니다. 천안에 그 분 아버지가 내려가실 때 의사가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양쪽 다 병원으로 돈을 벌었답니다. 어디 투자하느냐, 달랐어요. 한 분은 교육계에 투자했어요. 천안 중고등학교를 세웠어요. 국회위원도 됩니다.

다른 분은 천안중앙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를 건축하고 섬기며 거기 뿌리를 두고 치우치지 않고 왔어요. 교육계에 투자한 분은 간 곳이 없고 패가망신해 다 없어졌어요. 하지만 교회를 꿈으로 삼고 봉사한 분은 큰 복 받아 명문 가정이 됩니다. 6남매 중 아들 전부가 장로입니다. 맏아들은 고대 학장과 교수협의회 회장하고 제일 존경받는 교수입니다.

둘째가 이사장인 김용균 장로, 다음은 이비인후과로 유명한 의사 다음은 이대교수로 교육부 장관 한 김숙희 교수, 다음은 온 가족이 기도하는 김용옥 교수입니다. 이분은 75세인데 50세 정도로 보입니다. 교회 일이라면 모두 맡아서 합니다. 아이들을 서울에다 20년 공부시켰는데 한 번도 자고 온 적이 없어요. 본 교회 가서 새벽기도 하려는 겁니다.

왜 교회 나와도 안 풀려요? 이들처럼 하세요. 다윗처럼 하세요.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의 몸 교회를 사랑하세요. 교회와 어울리고 섬기고 봉사하세요. 가정과 직장에서도 하나님 위해 일하세요. 신기하게 열립니다. 록펠러는 누구보다 바쁜 사업가였지만 항상 교회 일이 우선이었어요. 예배를 목숨처럼 여겼어요. 교회를 통해 복을 받았습니다.

2. 주의 몸으로 싸우라

어떻게 주의 몸을 유익하게 할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의 몸에 부으시는 감당 못할 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그 방법이 나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부가 넘쳤습니다. 그러나 성곽은 9미터로 대단히 높았고 이중벽으로 난공불락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지되면 가나안 정복은 끝납니다.

군사들이 공격하는 방법은 전혀 군사적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 갑니다. 군사들은 그 뒤를 따라서 성을 한 바퀴 돕니다. 그렇게 하다가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돕니다.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불 때 모든 백성이 함께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그 엄청난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여리고 사람들은 힘을 잃습니다.

누가 들어도 이건 전쟁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은 눈에 보이는 부분과 안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육적 세상과 영적 세상입니다. 육의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있어도 영의 세상에서 있을 게 없으면 전쟁은 집니다. 반대로 영의 세상에서 완벽한 도움을 받으면 보이는 세상은 그냥 무너집니다. 역사가 얼마든지 증명합니다.

성경에도 이런 방법은 여러 군데서 나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있다든가, 아람과의 전쟁에서 여호사밧이 군대대신 성가대를 조직해서 나갔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전쟁 방법입니다. 왜 우리가 예배를 중하게 여기고 왜 기도회를 하는지 여기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여리고를 공격하기 위해 온 백성이 다 나섰습니다. 나이 많거나 어리거나 여자라고 빠지지 않습니다. 군사들은 성 주위를 돌았습니다. 나머지들은 기도합니다. 마지막 날은 나팔 소리를 따라 온 백성이 소리쳤습니다. 난공불락의 이중 성벽이 다 무너집니다. 사람 많고 소리가 크다고 성이 무너지나요?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함께 외쳤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빠지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난 전쟁에 흥미 없어요.” “나는 시끄럽고 복잡한 것 싫어요.” 이래서 빠질 수 있나요? 그러다간 이스라엘 진 가운데 있다 해도 결국은 이스라엘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오늘 교회도 그렇습니다. 함께 한 목표를 가지고 전투합니다.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하자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도 지금 영혼들을 공격하러 나섰습니다. 이름을 적어내고 하루 세 번 이상 기도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여리고를 한 바퀴씩 도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기도하면서 만나보세요. 초청하기 전 주간에는 반드시 선물을 주세요. 자신이 교회의 일원이라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래서 그 복을 누리려면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합니다.

3. 주의 몸으로 형통을 믿으라

하나님 몸인 교회에 속했나요? 예배하고 일어났나요? 또한 주의 몸 교회가 인도하는 대로 따르고 있나요? 모든 능력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예수에게 주어진 하늘과 땅의 권세가 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여리고는 도처에 있습니다. 나를 괴롭힙니다. 내가 극복하고 성취할 목표입니다. 외치세요. “나는 교회이다. 교회에 내리는 복이 모두 내 것이다.”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시20:2) 하나님은 교회에서부터 우리에게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형통함을 이루어주십니다. 신비합니다. 현대에도 여리고 싸움은 반복되었습니다. 여기서도 같은 방법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랍과 전쟁에서 매번 승리했습니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요단강 서안, 골란고원을 빼앗았습니다. 당시 국방장관 모세 다얀은 자신이 수집한 모든 정보와 과학적인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했습니다. 3백만으로 아랍 연합 3억을 이길 수 있는가? 컴퓨터의 대답입니다. “불가능.” 모세 다얀 장군은 컴퓨터를 밀어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으로 싸운다.”

전 세계에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도하며 함께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유학생들은 모두 휴학원서를 내고 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니다. 이스라엘의 힘은 하나님 믿는 백성의 단합입니다. 안식일 다음날 새벽에 시작해서 싸움을 마치고 다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6일 전쟁이 되었습니다. 싸울수록 아랍은 약해져서 전쟁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어디서나 큰 힘을 발합니다. 본국이 강하니까 유대인들은 자신이 유대인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개개인은 이스라엘의 힘으로 더욱 강합니다. 재력도 학력도 예능도 더욱 힘을 얻어 어디서나 강력한 민족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 지구상에서 누가 유대인들을 감당하나요? 아무도 할 수 없어요. 개개인은 전체의 힘으로 삽니다.

우리 신자들은 유대인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우리는 그들 위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세상 나라 백성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 백성이요 예수의 몸인 교회의 각 부분입니다. 교회는 영원히 지배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일원인 우리의 힘은 유대인 정도가 아닙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함께 있다.” 두 사람이면 두 배가 아니라 제곱입니다. 열이면 열 배가 아니라 열 제곱입니다. 교회 일원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싸우세요. 서로 힘이 보태집니다. 꾸준히 하세요. 개인의 특권은 그림자 수준입니다. 예배마다 참석하고 교회와 함께 움직이세요. 이상하게 힘을 얻습니다. 전도해도 사업해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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