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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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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네 형제를 가슴에 품고 그를 살려내라’는 것으로 그 형제가 주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복음 안에서 oneness가 되어질 때 가능합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복음체질이 되어 서로를 살리며 복음으로 oneness를 이룬 복음공동체의 축복을 누리는 가운데 현장정복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영적 큰 자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눅 22:2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면서 제자 중에 자신을 팔 자가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각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큰 자이냐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사람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향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눅 22:25~26)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큰 자는 대접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라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다스리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한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돌봐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즉 영적으로 큰 자는 바로 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 22:27),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예수님께서는 자신도 이 땅에 군림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창세기 3장 문제 속에 빠져 고생하는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대속물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섬김입니다. 인생 중대 문제 세 가지인 하나님 떠난 문제, 죄 문제, 사단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시기 위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보혈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섬김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 대속물이 되심으로 가장 큰 섬김을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 만나는 길을 전하하는 선지자의 역할, 죄 문제를 완벽히 해결받는 길을 제시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역할, 흑암 문화와 흑암 세력의 공격을 물리치고 영적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왕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가슴을 가지고 현장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성경적 섬김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신 가장 큰 섬김-대속은 대신 죽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죽어 다른 이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놓치고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문제와 불평이 생기게 됩니다. 내가 나를 높이려고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면 언젠가는 실망으로 끝이 납니다. 여러분은 받으려고 하지 말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자가 행복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섬기는 것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을 가지고 성경적 섬김의 삶을 살 때 그것이 풍성한 영혼 구원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교회 직분이 바로 섬김의 축복을 받는 자리입니다. 먼저 섬기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영적인 큰 자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적 동기 부여자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눅 22:28~30) 예수님께서 서로 다투던 제자들을 향해 더 이상 세상적인 가치관 속에 살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맞는 삶을 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놀라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긴다’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는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또 이와 함께 ‘현장에서 영적 싸움을 하며 복음을 확산시킨 자들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을 드린 자들에게 가장 큰 영광을 부여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닥칠 시험과 회복의 진정한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참 제자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예고를 하신 것입니다.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다’는 말은 사단이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을 실족케 하기 위해 강하게 역사할 것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배신행위로 믿음과 구원을 잃게 하려 한다는 것을 이미 아시고 실수를 다시 돌이켜 그것을 교훈 삼아 형제들에게 믿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것이 참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실수가 평생의 교훈이 되어 다른 이의 실수를 이해하며 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었습니다.

항공모함의 활주로는 일반 공항의 활주로보다 길이가 훨씬 짧은데도 전투기의 이륙이 가능합니다. 이에는 수증기의 힘을 이용하여 전투기 출력을 최대화시키는 캐터펄트 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에 더해 항공모함이 전투기가 이륙하는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해하기 때문에 짧은 길이의 활주로에서도 전투기가 이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영적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캐터펄트와 항공모함 같은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이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분이 영적인 동기 부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항공모함이 전투기가 이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듯이 연약한 믿음을 가진 여러분 주위의 사람이 힘차게 비상할 수 있도록 영적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을 율법의 눈으로 바라보면 서로를 죽이는 꼴이 될 뿐입니다. 서로를 살리는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완전 복음 체질이 될 때 성령께서 지혜를 주셔서 연약한 자, 실족한 자를 살리는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세상의 흑암 문화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도록 서로를 굳게 하며 항상 복음의 oneness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1995년 10월에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한 주부가 1kg이 채 되지 않는 미숙아 쌍둥이 자매를 출산했습니다. 그래서 자매가 각각의 인큐베이터에 넣어졌는데 언니는 건강을 회복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갖은 조치를 취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간호사가 예전에 읽었던 책의 치료사례가 떠올라 건강을 회복한 언니를 동생의 인큐베이터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언니가 동생의 어깨에 작은 손을 얹었는데 몇 분 뒤 기적이 일어나는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언니의 손길이 닿고 얼마 뒤 동생의 맥박이 고르게 되고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등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동생은 기적처럼 살아나 건강하게 퇴원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연약한 자를 예수 그리스도 사랑으로 품는다면 여러분의 수준과 형편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은 성령의 역사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이 현장은 우리로 하여금 oneness가 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복음공동체인 교회는 어떻게 해서든 oneness가 되어 서로를 복음의 눈으로 이해하며 힘을 주어 함께 세워나가야 합니다. 주 안에서 하나 된 지체의식을 가지고 주변의 성도들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서로를 통해 더욱 든든히 세워지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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