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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7계명 : 거룩한 성(性) (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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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계명 거룩한 성(性) (출 20:14)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이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불신자들과 분명하게 구별되기를 원하셨고, 이 목적 가운데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은 이러한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제7계명이 다루고 있는 성 문제에 관해서도 성도는 불신자들과 분명하게 구별된 거룩한 성이어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지니라”(14)는 계명 역시 다른 계명들처럼 최소한 넘어서지 말아야 할 한계선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충실히 생각하는 성도라면 육체적인 간음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간음하게 하는 원인들까지 돌아보며 자제하려 할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성(性)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맥락에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정죄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살전 4:3-4)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음란을 버리는 문제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시킵니다. 히브리서 기자역시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고 해서 음행과 간음의 문제를 혼인의 귀중함과 연결해서 교훈합니다. 따라서 7계명을 혼인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혼인은 하나님께서 창설하셨습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짝지어 주시면서(창 2:18),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미친 짓으로 여기는 것은 결혼을 창설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입니다. 독신 수도사의 삶을 결혼한 것보다 더 경건하게 여기는 것도 잘못입니다. ‘아내와 연합’은 동성(同性) 간의 결혼이 아니며, ‘둘이 한 몸’이 되므로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는 하나님의 뜻에 위배됨이 분명합니다. 주변의 불행한 결혼 모습 때문에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결혼 그 자체는 분명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성경은 부부간의 성관계도 밝고 건전하게 표현합니다.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되라고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단지 신앙과 마음의 연합뿐만 아니라 육체의 연합도 포함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부부간에 성관계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생육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로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지는 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복’이었습니다(창 1:28). 구약의 아가서는 남편과 아내의 애정표현을 전혀 남세스러운 일로 감추지 않고 성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직설적으로 묘사합니다. 또한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아 8:6-7)라고 예찬합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남편과 아내의 한 육체 되는 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표상하는 일이라 말합니다: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한편 결혼은 불타는 정욕을 억제하는 방편이 되기도 했는데(고전 7:9), 이 말은 부부간의 성관계가 단지 자녀 출산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아무튼 성은 여러모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된 선물이 분명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결혼한 부부 사이를 벗어나 왜곡된 성관계입니다. ‘간음’이란 이처럼 정당한 혼인관계 밖에서 이성(異性)을 육체적으로 취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레위기 18장과 20장을 보면 왜곡된 성관계의 목록이 토할 것 같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계모, 여형제, 손녀, 외손녀, 이복 여형제, 고모, 이모, 백숙모, 며느리, 형제의 아내, 아내의 여형제, 남의 아내, 장모 등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고 명령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미 가족관계나 친척관계에서부터 성적인 범죄들이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동성 간이나 짐승과도 교합하지 말라고 명령되었습니다. 고귀한 것일수록 타락하면 더욱 추악한 것이 됩니다. 천사장이 타락했을 때 사단이 되었습니다. ‘사랑과 성’도 고귀하고 복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왜곡될 때, 그 악취도 몹시 심해집니다.

왜곡된 성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준엄하여서 “반드시 죽일지니”라는 말씀이 두렵도록 반복됩니다. 유다가 다말이 간음한 것으로 여기고 불태워 죽이려고 했던 것을 보면(창 38:24), 모세의 계명이 주어지기 전에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간음죄의 처벌은 엄했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계명에는 간음죄를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되어 있습니다(신 22:24). 결혼한 여인에게서 처녀의 표징을 발견할 수 없을 때에도 돌로 쳐 죽여야 했습니다(신 22:20-21).

이점에서 왜곡된 성에 대한 성경의 입장과 현대인의 입장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풍조는 결혼할 사이라면 혼전 성관계를 허용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성도들까지도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이러한 시대 풍조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많은 나라들이 간통죄를 폐지하고 있으며 폐지하려 합니다. 둘 사람이 합의하에 즐겼기 때문에 죄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혼자 사이의 간음은 미혼자의 경우보다 한층 더 심각합니다. 가정을 파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미 한 몸 되게 하신 관계를 고의로 찢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대의 풍조는 동성 간의 성행위를 다른 간음보다 더 심각한 범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음행도 동성애와 똑같이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악 판단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죄라고 하면 죄로 여기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보기에 선하다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고 하면 악으로 여기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시대 풍조가 간음을 아무리 미화하고 심판의 잣대를 조절할지라도 성도는 그러한 시대 풍조를 따르기는커녕 분명하게 구별되게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고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고 모든 자의 행위가 속속들이 썩었을 때, 노아는 홀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살았습니다(창 6:1-12).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 역시 성적으로 문란하고 왜곡되어갈수록 혼인의 거룩함과 존귀함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성이 상품이 되어가면서 이혼 문제도 더욱 심각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 짝지어고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것이기 때문에, 이혼도 단지 당사자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예수께서 음행한 경우에는 이혼을 허용하셨으나, 이는 음행이 음행한 대상과 한 몸이 되면서 배우자와의 한 몸 관계를 이미 깨어버렸기 때문입니다(고전 6:16). 바울 사도 역시 성도의 배우자가 불신자이고 믿는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할 경우에 이혼을 허용했으나(고전 7:15), 이는 신앙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두 경우 모두 이혼 되어진 경우이지, 성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혼을 진행시키는 경우가 아닙니다.

여하튼 예수님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32)고 하셨습니다. 또한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9)고 하셨습니다. 이혼은 또 다른 간음을 초래하기 쉽습니다. 혼인이 거룩하고 존귀한 만큼 그것이 깨어졌을 때는 발생하는 거룩치 못함과 비참한 참상은 큽니다. 이혼한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자녀들에게까지 심각한 상처를 남깁니다. 상처 입은 아이는 더 많은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 다음 세대의 아이는 더욱 상처받는 환경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하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행한 아내 고멜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끝없는 배반과 불순종, 그리고 영적 간음과 같은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으셨던 하나님 사랑을 나타내 보이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를 체험한 성도는 배우자의 음행에 대해서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 태도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가능한 화평할 것을 권합니다. 성도의 삶은 이처럼 불행한 형편에 처할지라도 그 드러나는 모습이 시대 풍조와 구별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성경에서는 용어조차 찾을 수 없는 인공 수정이나 대리모 출산, 정자 은행, 난자 판매 등의 문제가 사회적인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성경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만, 혼인의 거룩성과 존귀함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가 분명해 지는 부분들도 많습니다. 자녀가 없어서 인공 수정에라도 매달려야 하는 딱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생명 존중의 관점에서 수정된 배아 이외에 잉여배아가 발생되어서 폐기처분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해야 합니다. 혼인의 거룩성 관점에서는 남편의 정자와 아내의 난자만을 사용함으로써 생리학적인 결과에서라도 간음한 것과 동일한 현상이 발생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혼인의 거룩성과 존귀함을 깨뜨릴 수 있다면 차라리 아품을 감내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태도입니다.

식욕이 죄가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인 것처럼 성욕 역시 그 자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식욕 없는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것처럼 성욕도 건강함의 표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폭식, 탐식, 과한 금식, 거식 등 잘 통제되지 못한 식욕이 죄가 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잘 통제되지 못한 성욕이나 성적 환상 역시 아름답지 못하게 되고 거룩하지 못하게 됩니다. 시편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고 했습니다. 말씀에 따라 삼가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답고 거룩한 성을 유지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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