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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뿌린 자에게 꽃은 피어난다! (갈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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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자에게 꽃은 피어난다!
갈라디아서 6:6-10

지난 주간에 중간고사를 치루었습니다.  이번에 시험을 치루면서 요즘 아이들이 상식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의 두 문제를 내었습니다.
먼저는 '찐 달걀을 먹을 때는 (      )을 치며 먹어야 한다.'
이것의 정답은 '찐 달걀을 먹을 때는 소금을 치며 먹어야 한다' 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엉뚱한 학생이 이렇게 정답을 적어 냈습니다.
'찐 달걀을 먹을 때는 가슴을 치며 먹어야 한다.'

다음의 문제는 '불행한 일이 거듭 겹침이라는 뜻의 사자성어는 무엇인가요?' 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워할 것 같아서 힌트를 주었습니다.
'설 (  ) 가 (  )'
정답은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이런 정답을 적어냈습니다.
'설(사)가(또)'

지난 1월에 셀리그먼이라는 심리학자가 잠시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연구해 보니까 긍정적인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수명이 길고, 더 건강하며, 더 행복을 느끼며, 더 많은 성취를 이루면서 살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인은 세계 178개국 중에서 행복지수가 102위에 불과할 만큼 행복하지 않더라.  한국만큼 식민지에서 벗어나, 그리고 전쟁을 치루고서도 이만큼 짧은 시간 내에 세계 10위권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민주화까지 이루어낸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그 성취를 의미 있는 곳에 쓸 줄을 모르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모르더라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한국 사회에 불안, 우울, 스트레스, 자살이 만연되고 있는 이유라고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 보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응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응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반응합니다.  사람과 환경에 대해서 언제나 부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나는 할 수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방식을 고집합니다.  때문에 환경 앞에서 쉽게 넘어집니다.

그러나 주도적인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방법들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헤쳐나갑니다.  사람과 환경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만들어갑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자신의 생각과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방법들을 수용합니다.  주도적인 사람은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힘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주도적인 사람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연코 요셉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주도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여러 번 극도로 불행하고 절망적인 환경에 처해졌습니다.

보십시오.  어느 날 그는 형님들의 미움으로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야만 했습니다.  보디발이라는 장군의 집에서 노예로 일하다가 인정을 받아 그 집안의 살림을 맡아서 관리하는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장군의 요염한 부인으로부터 유혹을 받았습니다.  이 때 요셉은 노예로서 주인마님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핑계로 그녀의 유혹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 거절의 대가로 그는 13년간에나 지하감옥에서 비참하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기구한 인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불행한 환경에 대하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결코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주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결국 그는 신앙과 역경 가운데서 얻은 지혜를 통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만세에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주도적인 사람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주도적인 사람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주도적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주도적인 사람을 통하여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주도적인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의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행복을 빼앗기지 않기로 결심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반응적인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반응적인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에서 열정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차지할 자격이 없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에도 수천대의 독일군 비행기들이 날아와서 시가지를 폭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 런던 시내에는 이상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영국 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꽃들이 피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세히 연구한 결과 그 꽃들은 뉴질랜드 해안가에서 많이 자라나는 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해안 지방에서 핀 꽃씨들이 바닷물에 흘러 런던까지 밀려와 땅 속 깊이 파묻혀 있다가 폭격을 당할 때에 땅이 뒤집혔기 때문에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십, 수백년 동안 땅 속에 파묻혀 있던 씨앗들이 다시 피어난 것입니다.  심겨준 씨앗은 언젠가 반드시 싹이 뜨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7절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주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여기에서 '업신여김'이라는 단어를 집약하면 '콧방귀를 낀다'는 말입니다.  콧방귀를 뀌며 비웃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심지 않고 거두려드는 것을 보고는 비웃으신다는 말입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속아서 비웃음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심었으면 반드시 추수를 합니다.  파종한대로 추수합니다.  그런 점에서 추수는 심판입니다.  아름다운 씨를 뿌린 자에게는 반드시 아름다운 꽃이 피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악을 심은 자는 악을 거두게 됩니다.
욥기 4장 8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호세아 8장 7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작당을 해서 다른 사람을 모함합니다.  그 사람이 피를 흘립니다.  얼마 후에 그들도 역시 모함을 받아서 자기의 피를 흘리고 넘어집니다.  결국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게 되더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추수는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는 것은 내 자유입니다.  내 마음대로 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두는 것은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내 마음대로 뿌린 씨앗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콩을 심었는데 가을에 가서 보니 팥이 비쌉니다.  그렇다고 해서 팥을 거두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두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는 것은 내가 해야 하지만, 그러나 거두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기독교는 심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심는 것을 가르쳐 주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스스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떨어져 죽음으로, 심음으로 많은 생명이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이 땅에 의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복음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라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심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어떤 씨를 심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양을 심고 있는가?  내 자신을 스스로 살펴야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둔다는 자연법칙을 보고, 영적인 법칙에도 동의하면서 거기에 나를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악한 일을 해도 결국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스스로 속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 자신에게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의 전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날 썬다싱은 히말라야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눈보라가 치고 날은 심히 추운데 눈길을 얼마 걸어가다가 보니 한 사람이 길 가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손도 발도 다 얼었는데 가슴을 짚어보니 아직 온기가 있고 숨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 때 승려 한 사람이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썬다싱은 그 승려를 붙들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아주 얼어죽게 생겼으니 우리가 이 사람을 함께 업고 가십시다"
그러나 승려는 가는 발길을 재촉하며, "나도 죽게 생겼는데 언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새가 있습니까?"하면서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썬다싱은 차마 그 사람을 그냥 놔둘 수가 없어서 약한 몸이지만 얼어 죽어 가는 사람을 등에 업고 눈보라가 치는 히말라야 산길을 걸어서 고개를 넘어갑니다.  가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악전고투하면서 험난한 히말라야의 고개를 넘어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피차에 온기가 나서 두 사람이 겨우 생명을 보존해서 산을 거의 다 넘어갔습니다.

막 고갯마루를 넘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또 하나 길 가에 넘어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손도 얼고, 발도 얼고, 다 얼어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복을 입은 것을 보니까 얼마 전에 혼자 살겠다고 먼저 지나가 버렸던 바로 그 승려였습니다.

남이야 죽거나 말거나 자기 혼자 살겠다면서 지나갔던 이 승려는 자기 생명도 구원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힘쓰고 몸부림쳤던 썬다싱은 죽어 가는 사람을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의 생명도 살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이와 똑 같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가는 하늘 길가에는 죽어서 넘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구원해서 같이 하늘 길을 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그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야 죽든지 말든지 나 혼자만 믿고 지나가려다가 얼마 가지 못해서 세상의 무서운 유혹의 바람과 여러 가지 시험에 얼어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고 몸부림치면 자연히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 생명의 씨를 심은 썬다싱은 자기 생명의 구원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9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데는 시간과 환경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피곤에 지치지 말고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하면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피곤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열매는 고사하고, 싹이라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으로 힘들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피곤해도, 힘들어도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고 지쳐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싹은 자라게 될 것입니다.  꽃은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이 엄연한 진리를 외면하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하나님을 업신여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단은 우리들에게 이 진리를 왜곡시키면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리에로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붙잡고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문제는 산 밑에서 심고 산 위에서 거두는 썬다싱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뿌린 후 십년, 이십년 혹은 아예 기억조차 사라진 후에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에서 심고 서에서 거둘 수도 있고, 이 세대에서 심고 다음 세대에서 거둘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거둘 때가 있음을 믿고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남아 여러 나라 가운데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부를 누리는 나라가 말레이시아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오래 전 그들의 조상들이 말레이시아 전 지역에 고무나무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남북을 끝없이 달려도 고무나무라고 합니다.  고무가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내립니다.  앞의 세대가 심고 다른 세대가 거둡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정하신 추수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느 때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거둘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진리는 뿌린 자에게 반드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참아 기다리며 부지런히 선과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신뢰를 포기하지 아니하면 거두리라"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뿌리는 자에게 축복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다가 보면 때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쉬어가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넘어져서 고통 속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음을 믿고 낙망하지 마십시다.  쉽게 낙심하거나 절망에 빠지지도 마십시다.  오히려 고난 중에서 더 끈질기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그분만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일시적으로 실패한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 안에 있으면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라고 하는 것은 꿈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꿈을 다른 방법으로 실현하라는 뜻입니다.  실패라는 것은 우리들이 나약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경시켜서 다시 한번 도전하라는 뜻입니다.  실패라는 것은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시간을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실패라는 것은 이제 포기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더 끈기 있게 매달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실패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실패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며 부정적인 현실을 이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들의 생활 태도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축복의 열매를 거두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오늘 땅 속에서 썩어지는 한 알의 씨앗으로부터 만개된 꽃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보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듣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우리 속에 도무지 안될 것 같고 쓸모 없는 것 같은 그것을 붙잡으셔서 역사하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신뢰합니다.  그 분이 말씀하십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결국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이 말씀은 긍정적인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나 불평을 할 수도 있고, 감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할 수도 있고 긍정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구렁으로 빠질 수도 있고, 최선의 삶, 최고의 행복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그 결정은 바로 여러분이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요즘 일본사회에 유행하는 말 중에 '히키코모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 집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일본 젊은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미우라 아쓰시의 [하류사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 하류사회에 부족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의욕, 다시 말해서 열정의 부족이더라는 것입니다.  소득의 격차가 아니라 열정의 격차, 의식의 격차가 사회계층을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미우라 아쓰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날 그날 편히 살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가?
단정치 못하고 모든 일이 귀찮으며 외출하기조차 싫은가?
사람들과 좋은 관계에서 살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것이 좋은가?
옷 입는 패션이 내 방식대로이고 남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먹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
과자나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는가?
온종일 집에서 비디오게임이나 인터넷을 하곤 하는가?
그것이 열정 없는 하류 사회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상류 내지 영적 일류는 내가 큰 교회에 다닌다는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 상류는 내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다는 그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 상류가 되기 위해서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열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성장에도 지름길이 있습니다.  그 지름길로 달려가기 위해서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복음의 열정을 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영적 생활에서 열정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영적 하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하류, 영적 따라지가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영적 일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뿌리면 어느 때엔가 꽃은 피어날 것입니다.  열매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마음으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금년 2007년도 4월을 넘기고 있습니다.  이 한해를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오는 시간들을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내가 심었던 것의 결과로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심었든 부정적으로 심었든, 적극적으로 심었든 소극적으로 심었든, 그 심었던 결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변경이 안됩니다.

그러나 지금 변경시킬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5년 후에 우리 주님께서 추수하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10년 후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이제 오는 7월 1일, 일곱 번 만나 한 영혼을 세우는 영혼추수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이 날을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열심히 희생과 헌신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복음을 전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들이 우리의 삶 속에 풍성히 열매맺는 값진 생애로 주님 앞에 아름답게 심기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월 1일, 일곱 번 만나 한 영혼을 세우는 영혼추수주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남은 생애를 하루가 남아도, 그래서 하루를 살아도 씨뿌리고 살다가 천국 가서 열매를 거두는 믿음의 사명자가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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