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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룻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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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 (룻 1:6~14)

룻기 전반부에 보면 네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엘리멜렉, 나오미, 룻, 오르바 이들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흉년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선택하는 방법과 길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묘한 대조를 이루며 각각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중요한 두 지명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베들레헴이요, 또 하나는 모압입니다. 서로 대조적인 땅입니다. 베들레헴은 이름 그대로 떡집입니다. 하나님의 집, 말씀의 집, 신앙의 고향, 하나님을 경외하는 장소, 가나안, 메시야가 탄생하신 축복의 땅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모압은 이방세계, 우상숭배, 음란과 부도덕, 불신앙, 신앙에서 멀어지는 그 어떤 곳을 상징합니다. 이 베들레헴과 모압 사이에 좁다란 길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한 가족이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주를 합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엔 똑같은 그 길을 따라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그 가족이 이동합니다. 그들이 이동경로를 통해 남긴 발자취들을 살펴보면서 지금 나는 내 인생길에 어떤 발자취를 남기며 걸어가고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엘리멜렉을 보십시오. 그는 흉년이 나자 베들레헴을 출발하여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죽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의 발자취를 남기고 인생의 종지부를 모압에서 찍습니다. 즉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의 직진입니다.

둘째, 오르바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모압을 출발하여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했다가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다시 돌아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오르바는 모압에서 출발하여 베들레헴으로 떠나기는 했지만 가다가 다시 모압으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즉 모압에서 다시 모압으로의 유턴입니다. 셋째, 나오미는 처음에 남편을 따라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방향을 돌려 그곳에 이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모압에서 다시 베들레헴으로 유턴입니다.

그러면 룻이 남긴 발자취는 어떠한가요? 룻은 이방 땅 모압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자신의 본토,친척, 아비집인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한 후 그녀는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직진을 합니다. 마치 법궤를 싣고 벧세메스로 향하던 암소처럼(삼상6:12), 푯대를 향하여 믿음의 경주를 다 했던 바울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의 길에서 엘리멜렉과 룻, 그리고 오르바와 나오미가 남긴 발자취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멜렉(베들레헴→모압), 오르바(모압⊃베들레헴), 나오미(모압⊂베들레헴), 룻(모압→베들레헴),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오늘날 누구를 상징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자요, 구원받은 자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오르바와 룻은 이방사람들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보면, 전에는 이방인이었을지라도 할례를 받거나, 일단 결혼을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됩니다. 그러므로 오르바와 룻은 처음에는 모압인이었지만 결혼한 이후이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모두는 택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한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각각 서로 다른 발자취를 남겼을까요? 베들레헴과 모압 사이를 잇는 길에는 '슈브'(돌아간다)라는 동사로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사는 모압과 관련하여 6번, 유다와 관련하여 6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모압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이 6번, '유다로 돌아가라'는 말이 6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섯번씩 대등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판단하기가 결코 쉽지 않고 또한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라는 것인지, 아니면 모압으로 돌아가라는 것인지, 좀처럼 분간하기 어려운 말들이 마치 스테레오처럼 귓전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돌아가라'는 음성앞에서 각자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각각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혼돈스럽게 만드는 것은 두 자부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나오미조차도 오르바와 룻을 향해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를 진실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충고, 말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판단도 잘못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베들레헴과 모압, 모압과 베들레헴 사이에 펼쳐진 길을 걸어가는 노중에 있습니다. 그 노중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돌아가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음성이 누구의 음성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잘 들어야 합니다. 누가 하는 말인지, 어디로 돌아가라는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 사건을 앞에 놓고 재판장인 빌라도가 결정을 내리려 할 때 그의 아내가 사람을 급히 보내어 충고를 했지만(마 27:19), 그는 다수의 소리를 (눅23:23) 들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사형언도를 내리는 빌라도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18:37) 후회 없는 발자취를 남기기 위한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길 자체이신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길과 말씀 자체이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따르느니라'(요1:14) 따라서 길이요, 말씀 자체이신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주님을 따라 갈 때에 결코 후회함 없는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를 출발하여, 어디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엘리멜렉과 같이 모압으로 직진하고 있나요? 아니면 오르바와 같이 어느정도 가다가 다시 모압으로 유턴하고 있나요? 되돌리십시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오미처럼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발자취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니 룻과 같이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직진하는 발자취를 남기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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