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 생명 (롬 6:4)

  • 잡초 잡초
  • 636
  • 0

첨부 1


새 생명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life. 헬라어-조에 히브리어-하이)은  살아있는 것으로 질병, 죽음과 구별되는 생명력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생명을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에 의해 사람에게 부여된 살아있는 날들로 생각하였습니다.

(신 32: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생명에 대한 성경 견해는 순종하는 자들은 축복과 번영과 생명을 약속 받는 반면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저주와 재난과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합니다.

(신 30: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신 30: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생명은 자연적 죽음과 구별되는 자연적 생명입니다.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나아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초자연적 생명에 대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이 생명은 신자들이 미래에 받을 것이지만, 이 땅에서 지금 향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얻는 신자들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생명은 구원과 영광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딤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그래서 사도들은 복음의 전도로, 사람들을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생명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재산으로 간주됩니다.
(막 8: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현재의 생명 너머에 장차의 생명이 위치합니다.

(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이러한 가운데 새 생명은 역사적인 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원수인 사망이 정복되는 때의 영생을 바라봅니다.

(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오늘 새 생명 대축제를 하며 새 생명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본 문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옛 사람이 주의 죽으심과 합하여 함께 장사된 자리에서 주어졌습니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장사된다'(쉬네타페멘)함은 자연적인 출생으로 맺어지는 아담과의 관계에 의해 지배되던 옛 사람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골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탕자인생의 비유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째 아들이 자기 아비에게 자신의 분깃을 달라는 이야기로 비유를 시작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부자 아버지 슬하에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세계를 동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돌아오게 될 분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들의 고집을 안 아버지는 그에게 돌아갈 재산을 주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자기 재산을 받은 둘째 아들은 곧 먼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돼지를 치는 종의 자리에까지 전락하였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이 없어 심한 굶주림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배고픔으로 인해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 집의 풍족함을 회상하게 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바로 일어나서 아버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목격하고 아직도 상거가 먼데도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은 아버지의 기뻐함과 아들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주었습니다. 또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이웃 사람들과 함께 돌아온 아들로 인해 기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죄인의 회개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을 하기 이전의 거듭나지 못한 본성과 행동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우리 역시 죄에 대하여 죽고 장사되었습니다.

(롬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우리 멋대로 행동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던 삶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섰다는 것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감입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며 육과 마음의 바라는 대로 살아가던 것을 완전히 청산하는 것입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을 하기 이전의 거듭나지 못한 본성과 행동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새 생명은 '새로운 피조물'과 같은 의미로 다시 죽지 않는 생명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셨습니다.

(롬 6:4)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아버지의 영광'이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에서와 같이 죽은 자를 살리신 '능력'이자 피조물을 완성시키는 '하나님의 전능과 온전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요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리고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하여 살립니다. 하나님 영광 받으시려 나사로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심은 우리도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거룩하여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새 생명'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독특한 삶을 의미하며 이 삶을 유지해 주는 삶의 원동력은 '그리스도'입니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단지 미래적 사건만이 아니고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부활로 '영'이 살아나므로 그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 즉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날마다 살 수 있는 현재적 삶입니다.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그러한 삶은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지 않고 자기중심주의로 살아서 파괴되었던 것의 회복으로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아가는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입니다.

중앙 아시아 델리마쿠스라는 나이든 수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몇 개월을 걸려 로마로 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웅장한 제우스 신전에서의 개선식을 보았습니다. 검투사 시합을 보려고 콜로세움으로 몰려가는 군중들은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날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는 무리에 휩쓸려 떠밀려 자기도 모르게 입추의 여지가 없는 원형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검투사들의 싸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두 명의 검투사가 한 사람이 죽기까지 싸우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두 사람이 더 나왔습니다. 텔레마쿠스의 영혼은 혐오감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서 경기자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멈추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은 미친 사람 하나 나타났다고 와하고 웃었습니다. 서로를 죽이려는 검투가 계속 끝나지 않자 이 델리마쿠스는 계단을 통해서 밑으로 뛰어내려가 칼을 서로 휘두르는 곳에 자기 몸을 맡기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한 검투사가 델리마쿠스의 심장을 칼로 찔렀습니다. 칼에 찔린 그는 온 힘을 다해 큰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인무도한 경기를 끝낼지어다”라고 외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가 죽자 떠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검투사들은 칼을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빠져나갔습니다. 그날의 검투에서는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이 델리마쿠스 수도사의 시체만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이 수도사는 바보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날로부터 로마의 검투 경기가 끝났습니다. 텔마쿠스가 죽었던 자리에는 이런 말이 쓰여진 십자가가 하나 서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영혼속에 온 세상의 소망이 놓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확신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나타납니다.

  변화의 삶을 살도록 주셨습니다.

(롬 6:4)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형제 간의 사랑은 참 생명의 척도라 합니다.

(요일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에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이러한 삶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골 3:12-17)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티코미로프는 소년 시절에 부모와 함께 농업하기에 좀더 유망한 곳을 찾기 위해 유럽에서 시베리아로 이주해왔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그의 부모는 콜레라로 죽었고 그 소년도 쓰라린 고생 끝에 도적 떼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8년 간 그들은 농사짓는 이웃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일당은 두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모든 소유를 가져가버렸는데 그 중엔 두 책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신약성경이었습니다. 그날 밤 숙소에 누워 로마서 3:15-18을 들쳐 읽게 되었습니다.

(롬 3:15-18)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또한 그는 신약성경의 앞면에 씌여진 글을 주시했습니다. “1898년 5월 15일 주님께 회개함으로 중생을 체험하다. 그날 주님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거룩한 보혈로 나를 씻어주셨다.”그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누가복음의 십자가의 두 강도의 이야기는 그를 강하게 사로잡았고 그는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른 일곱 명도 그와 함께 자수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 후 이 도적들은 10년의 중노동형을 받았고 그는 시베리아에 있는 백칼 해 건너편으로 보내졌다. 몇 년이 지나 국가의 경축일에 그는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는 걸어서 소련에 돌아갔습니다. 오는 도중에 그는 많은 신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간증한 장소에서는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소스노우카에 돌아와서도 계속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련 성직자들의 반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는 다시 구속되었고 1년간 감옥에서 감옥으로 전전했습니다. 그 후 다시 그는 이단을 믿는다는 이유로 2년간 시베리아로 귀양 보내졌습니다. 여기에서도 다시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였던 사람으로부터 얻은 신약성서의 첫 페이지에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용서해주시오. 내가 죄 속에 빠져 있었을 때 당신을 죽게 했소. 주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시고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소. 그의 죽으심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영생으로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오. 이 성경은 나의 굳어진 마음을 생수같이 부드럽게 해주었소. 그것은 내 목마름을 달래고 계속하여 흐르면서 다른 영혼에게 생명을 주며 활기를 띠게 하고 있소. 이로 나는 그대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오. 아멘.”(21세기 예화-러시아의 한 깡패의 회심)
우리도 그리스도의 빛으로 소금으로 향기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됨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시어 변화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이 은혜를 확신하며 더욱 새 생명을 역사에 동참 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