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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병고침과 죄 사하심 (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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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고 주님이 물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어느 것이란 말은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씀과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 가운데 어떤 것이 쉽겠느냐 고 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상황을 전제하고 질문을 받으면 매우 당황할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만약 저에게 이것을 물으신다면 주님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 다 불가능합니다 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실 중풍병자가 낫는 일과 사람의 죄를 사하는 일은 다 쉽지 않는 일입니다. 인간에게서 가장 어려운 일은 질병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방송을 통해서 질병에 대한 정보를 듣고 봅니다 우리가 질병에 붙잡힌 사람들을 보면 그에게 질병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지배했던 제왕도 질병 앞에는 무릎을 꿇게 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가진 사람도 질병 앞에는 가장 무능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권세를 가진 것이 바로 질병입니다. 우리가 다 남을 도울 수 있지만 질병에 붙잡힌 사람은 누구도 도울 수 없습니다. 부모도 부부도 도울 수 없습니다. 질병은 인생이 가진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리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서기관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죄를 사한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죄를 사한다는 말은 신성 모독이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말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탄을 받아야 할 말이었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은 그 자체가 금기의 영역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금기의 영역은 사람이 넘어서서는 안 되는 영역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남의 죄를 사할 권세가 없습니다.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제물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어떤 제사도 사람에게 드리는 제사는 없습니다. 죄를 속하는 제물은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자신의 죄를 용서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신할 수 있으나 죄는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의 죄로 자식을 죽이지 말라고 했고 또 예레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는 사무엘이 살아온다고 해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죄의 문제는 하나님과 사람의 문제이지 사람과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말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입니다. 정말 주님에게는 어려운 일의 성격은 무엇이냐 라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에게 질병은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38년 된 병자도 문제가 아니었고 나면서부터 소경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또 혈우병도 문제가 아니었고 중풍병자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이 병을 고치신 장면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까지도 살렸습니다. 이러한 병 고침을 통해서 주님 앞에서는 병을 고치는 것이 쉬운 일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이면 구름떼처럼 몰렸습니다. 오늘 배경이 되는 가버나움에도 주님을 만나고저 하는 사람들이 태산처럼 몰려 왔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셨다는 말은 사실일까 아니면 자기들끼리 짜고 속이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가운데 중요한 주제는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병 고치는 것을 보고서 그곳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날도 중풍병자가 낫는 것을 보고서 사람들은 과연 소문이 거짓이 아니구나 하고 감탄을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감탄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흥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주님에 대한 이들의 관심을 바로 세우실 필요를 느끼신 것입니다.

병 고침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려주어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들이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다른 것에 관심이 쏠려지는 것을 바로 세우셔야 할 기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참 사랑은 병 고침에 있음이 아니요 죄 사하심에 있음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병 고침을 위해서는 말씀으로만 고치셨지만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어했던 일이 죄를 사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어떤 말씀을 주실 때에는 언제나 주님이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 보다 다른 것을 보고 있을 때 주님은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가진 관심에 대해서 오히려 무심하시는 모습을 보이실 때가 있습니다. 즉 영적인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육신적인 것에 관심을 가질 때에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수가성 여인과 대화를 하는 중에 제자들이 음식을 가지고 왔을 때 내가 먹을 양식은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누가 주님께 먹을 것을 가져다 드렸는가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영적 양식의 성격을 말씀하신 것인데 제자들은 육체적 양식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때가 있습니다. 비본질의 문제가 갑자기 커져 버리면 그것으로 인해서 본질의 문제가 사라지고 비본질의 문제가 본질의 문제를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본질을 모르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인간적 생각으로는 얻을 수 없는 아들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육신적인 생각으로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체의 법칙을 따라 얻은 아들입니다. 때문에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기는 하지마는 아브라함의 기업을 얻을 수 있는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무리 앞서 태어나고 형이라고 할지라도 이삭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무엇이 더 쉽겠느냐고 물으신 후에 사람들의 관심을 영적인데 돌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어려운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주님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통해서 정말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를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주님은 죄 사함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자신을 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에게 있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물론 여기에서 죄 사하는 권세가 주님께 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바로 하나님 되심을 선언하는 중요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을 통해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우리에게 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생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없지만 주님을 통해서 죄는 우리에게서 그 권리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의 권능에서 자유함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자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 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바로 사람에게 대한 가장 큰 사랑은 남을 용서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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