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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욥바의 다비다 (행 9: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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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밝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들은 그들 때문에 길을 찾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전히 그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도 한번쯤 세상을 그렇게 밝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직 땅만 파는 두더지처럼 그렇게 자기만을 위한 삶으로 달려 가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전기산업이 발달이 되어서 빛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삽니다. 저 어려서는 교회에 호야 불을 켰습니다. 석유를 한통 받아다 놓고 그것을 정말 아끼고 아끼면서 교회에 불을 켰습니다. 청년들이 오래 있으려면 다 쫓았어요. 그리고 낮에 와서 놀아라. 하셨지요. 그만큼 교회들이 어렵고 힘들었어요. 어느 때는 교회가 석유를 살돈이 없어서 성도들이 교회 올 때 석유를 한 병씩 가지고 와서 호야에 기름을 넣어 불을 켰지요.

목사님이 저녁예배시간에 광고를 합니다. 오늘은 아무개 집사님이 기름을 가져오셔서 불을 켜고 예배를 드린다고요. 석유기름을 가지고온 아무개 집사는 그날 밤 모두에게 빛이 된 것입니다. 그분의 빛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찬송을 부르면서 예배를 드린 것이지요.

그런데 온성도가 돌아가면서 한 번씩 빛이 되어주는데도 그런 봉사를 한 번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돈이 없어서 그러면 몰라요. 혼자 큰 소리는 다치고 다니고 뻥뻥대기는 혼자 다하면서 그런 봉사를 못하는 거예요. 그는 어둠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지난 주일 밤에 서울 충신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교회가 군목들을 초청해서 얼마나 정성으로 대접을 하는지 식사만 대접하는 것이 아니구요. 봉투를 하나씩 다 돌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식당에서 봉사하는 여 전도 회원들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목사님이 칭찬하는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거예요. 여 전도회가 돌아가면서 매주일 봉사를 하는데 그렇게 잘한다는 거예요. 이들은 치유하는 소금들입니다. 그 식당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니 치유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또 하나 감격한 것은 매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500여명이 식사를 하고 가는데 우리는 1000원씩 받는다 했더니 그 교회는 그냥 제공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교회에서 제공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결혼기념일, 생일 기념으로 하루씩 다 맡아서 일년 계획이 다 되었다는 거예요. 아주 년초에 기쁨으로 몇 월 며칠은 자기가 하겠다 하고 자원해서 늦게 신청하는 사람은 차례가 안돌아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기도 3천명 모이는 운동을 하신데요. 교회의 빛이요 소금되는 분들이 가득 한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크다고 맨날 떠들면서 어디 좀 나와서 봉사하시오. 하면 꾸덜, 꾸덜 대고 마지못해 나와 봉사 하는 척 하는 인간들하고는 근본으로 다르지요. 하나님이 이 땅에 살날들을 얼마나 더 주실런지 아무도 모르는데 주신 물질 가지고 선하게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주신 몸뚱이 가지고 아름다운 봉사 한번 하지 못하고 살다가가는 인생은 하나님 앞에 가서 뭐하라 할까?

소금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되어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아끼면 얼마나 더 아끼겠다고 인생을 그처럼 마르게 살아 갑니까?

저는 교회의 행사나 손님이 올 때 주방에서 봉사하는 분들을 더러 들여다봅니다. 더러더러 새 얼굴도 보이지만 항상 보이는 얼굴들이 있어요. 멀리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 하고 기쁨으로 봉사합니다. 언제나 봉사하는 자리에서 보이는 얼굴, 봉사하는 자리에는 틀림없이 보이는 얼굴 그 얼굴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빛입니다. 치유해주는 소금입니다. 그 얼굴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래서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에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었습니다. 여기 제자라고 하는 것을 보니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을 소개 하면서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했습니다. 이 여인은 부자였습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여인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습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여인은 똑똑한 여인이었습니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평범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는 나눌 줄 알고 봉사 할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이 알고 사람들이 알고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욥바의 다비다는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빛입니다. 약하고 병든 사람들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치유하는 소금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다비다는 가진 것이 없지만 세상을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다비다는 배운 것은 없지만 모든 약한 자들의 지도자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다비다는 자기를 자랑한 적이 없지만 모든 사람이 그를 존경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부럽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다비다가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슬픔이었습니다. 특별히 당시에 가장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던 모든 과부에게 더욱 큰 슬픔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인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지식도 더 가졌고 물질도 더 가졌고 힘도 능력도 더 가졌으면서도 비난만 받으며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어느 날 갑자기 나이가 많이 들었다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그런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나 죽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욕을 하지는 말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젊다고 생각하는 여러분 세월이 급하게 돌아가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멀은게 아닙니다. 지금 30살입니까? 10년만 지나면 40입니다.

40이면 중년입니다. 거기서 10년만 지나면 50입니다. 노년초기입니다. 요즈음은 50이면 노년이 아닌 줄 알아요. 사회에 나가서 취직자리를 찾아보세요. 뭐라고 하나. 50이면 노년에 들어가는 거예요. 뭔가 새롭게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안 됩니까? 잘살아야 합니다. 귀하게, 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빛이 되어 소금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을 보냅니다. 다비다의 죽음을 듣고 베드로가 급히 옵니다. 사람들이 베드로 앞에서 다비다 가 한 일들을 보여 주면서 증거 합니다. 선한일은 증거가 있습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흔적이 남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사람에게도 증거가 나타나고 하나님 앞에서도 증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칭찬이 있고 하나님으로 부터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1900년대 초기에 상동교회를 담임했었던 전덕기(全悳基)라는 목사님이 계셨었습니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목사님이었습니다.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 선생의 신앙을 지도했고 김구 선생의 동지였던 분인데 이 분은 남대문 일대의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습니다.

특별히 장례 지내 줄 사람이 없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가운데에서도 악성 전염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의 장례는 전덕기 목사님이 도맡았습니다. 이 전덕기 목사님이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고양에 무덤을 마련했는데 남대문 일대의 거지, 기생, 지게꾼, 인력거꾼, 이런 사람들이 뒤따르는데 그 행렬이 십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욥바에 도착한 베드로가 다비다가 누워 있는 다락방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다 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죽은자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선하게 살았더니 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주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따라 실천 하는 모든 자들이 주님께서 그 이름을 부를 때 모두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다비다를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가 살아 난 것을 보였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입니까? 막 끌어안고 감격에 젖어 울었을 것입니다. 다시 살아 난 것이 모두에게 기쁨이 된 사람, 다비다라는 여인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살아날까봐 걱정스러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비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로 인하여 주를 믿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마무리지면서 그런 생각을 가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살아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죽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나 하는 것입니다. 욥바의 다비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욥바의 다비다 처럼 쓰임받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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