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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보라, 네 어머니라 (요 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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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록이 점점 깊어가는 5월, 생명력이 충만한 5월은 예부터 계절의 여왕이라 불렀습니다. 무엇보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을 뿐 아니라, 5월17일은 성년의 날, 5월21일은 부부의 날이기도 합니다. 5월에만 아니라, 일년 내내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정 사역을 하시는 분들이 여러 날을 정했습니다. 2월28일은 ‘고부의 날’ 입니다. 2%의 부족한 사랑을 채워 사랑을 완성시킨다는 의미입니다. 3월 3일은 ‘아내의 날’ 입니다. 아내에게 삼삼한 사랑을 전하자는 의미입니다. 6월30일은 ‘장모의 날’ 입니다. 일년의 절반이 되는 날을 기해 인생의 절반을 가져다준 장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송길원, 인생주기에 따른 가정 목회의 목회전략, 목회와 신학, 2007년 5월호, 67)

2.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지킵니다. 5월8일 하루만 아니라, 일년 내내 어버이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계시는 동안 평생 부모님을 존경하고 섬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버이주일에 저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죄인된 심정입니다. 한평생 8남매를 낳고, 키우시고, 막내까지 결혼시키다보니 80세가 넘으셨습니다. 이제 90세가 넘으신 아버지, 어린아이처럼 마냥 웃기만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천진난만하기까지 합니다. 87세가 되신 어머니는 아직도 가만히 계시지 않고 이것 저것 부지런히 일하십니다. 기억력은 점점 사라져가시고 자녀들 이름만 간신히 알 정도로 되신 아버지, 다리에 힘이 없어서 지팡이를 짚으시고 간신히 집 앞 교회에 다니실 정도이신 아버지,

늘 무릎이 아프시고 허리가 안 좋으시고, 몸이 아프셔도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 그러면서도 자식들 찾아가면 그렇게 기뻐하시며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어 먹이시느라 분주하신 어머니.
자식을 낳아 길러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는데,
자식을 둘이나 키우고 있는 저는 아직도 부모님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왜 아직도 당신께서 잡수시지 않고 자녀들에게 주시는지, 자녀들은 부모님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돈을 많이 벌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자식들에게 그만 신경쓰시고 당신 몸에 더 신경쓰시기를 바라는데도 부모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자나 깨나 자식 걱정입니다. 이런 저의 부모님의 모습은 여러분의 부모님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작자 미상의 <아버지의 조건> 이란 제목의 시를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산처럼 힘세고 / 나무처럼 멋있고 / 여름 햇살처럼 따뜻하고 /
고요한 바다처럼 침착하고 / 자연처럼 관대한 영혼을 지니고 / 밤처럼 다독일 줄 알고 /
역사의 지혜 깨닫고 /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강하고 / 봄날 아침처럼 기쁘고 /
영원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
하나님은 이 모든 걸 주시고 / 더 이상 추가할 게 없을 때 /
당신의 걸작품이 완성되었다는 걸 아셨다.
그래서 / 하나님은 그를 '아버지‘ 라 불렀다.

힘세고, 멋있고, 따뜻하고, 침착하고, 관대하고, 지혜롭고, 강하고, 인내심 있는 사람,
바로 아버지 입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
내가 넘어지면 언제든지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당당한 아버지, 유능한 남편,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몸이 망가지는지도 모르고 일하고,
정글의 투사처럼 열심히 살아가시는 아버지,
그러나, 한편 안 보이는 데서는 세상이 겁이 나고, 어디엔가 기대고 싶어하고, 남 몰래 소리내어 울 곳을 찾는 슬픈 사람, 바로 아버지입니다. (장영희, 축복, 도서출판 비채, 127-128)

1950년 12월 크리스마스 날, 세상은 눈이 내려 온통 하얗습니다. 이 땅은 전쟁 중이라 포탄 소리가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옵니다. 칼바람은 쌩쌩 소리를 내면서 거침없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뼈 속까지 시리게 합니다. 그렇게 무지하게 추운 밤, 한 여인이 만삭이 되어 더 이상 피난을 가지 못하고, 다리 밑에 웅크리고 앉아 산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드디어 “응아, 응아”, 그 추운 날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겉옷을 벗어서 아기에게 덮어줍니다. 아기의 체온이 낮아질 때마다 여인은 자기의 속옷을 하나씩 벗어 아기에게 덮어줍니다. 칼바람은 점점 더 사나워지고... 마침내 여인의 치마와 저고리마저 아기에게 덮었습니다. 여인은 점점 식어가는 자기의 온 몸으로 아기를 감싸 안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리 위를 지나가던 선교사 부부의 귀에 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따라 다리 밑에 내려간 선교사 부부의 눈 앞에는 참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거의 벌거벗다시피 속옷 하나만 입은 여인이 갓난 아기를 안은 채 돌처럼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어머니’ 였습니다.
그 후, 15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날, 자기의 출생에 대해서 선교사 부부로부터 전해들은 열다섯 살 난 소년은 자기를 살리기 위해 죽은 어머니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기도를 하는데 어깨가 들썩거립니다. 기도를 마친 후, 자기의 옷을 하나씩 벗어 어머니의 무덤을 덮었습니다. 맨몸이 된 소년은 무덤을 감싸 안고 통곡을 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그 때 어머니는 지금 나보다 훨씬 더 추우셨지요?”
소년은 어머니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소년은 어머니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정판식, 예수 사역의 클라이막스, 2007 예배와 강단, 45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는 바로 ‘사랑’ 의 다른 이름입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는 산같이 높은 분, 하나님 같은 분이십니다.

3. 어버이 주일 설교를 위해 부모공경에 대한 책을 구하러 기독교 서점에 갔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책은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부부, 결혼, 사랑에 대한 책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책 중에서 부모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한 책을 한 권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실망했습니다. 발길을 옮겨 영풍문고에 갔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독교 서점만 아니라, 일반 대형서점에도 부모공경, 효(孝)에 대한 책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모습입니다. 경로사상이나, 효, 부모공경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빈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양육에 대한 책이 넘쳐나는 것은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얼마나 헌신적인지 보여줍니다. 아이러니입니다. 내 자녀에 대해서는 그렇게 헌신적이면서도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핵가족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 한 둘로 구성된 핵가족, 여기에는 연로하신 부모의 자기가 없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십계명을 보십시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십계명 중에서 축복이 약속된 계명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계명입니다. 왜 십계명에 자녀를 잘 양육하라는 없고 부모공경에 대한 것이 있을까요? 자녀양육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아니 심지어 짐승도 자기 새끼는 잘 양육합니다. 말 안 해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존경하며 섬기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불편해하고 귀찮아합니다. 그래서, 명령하셨습니다. 힘들 때도 있기 때문에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율법 곳곳에 부모공경에 대한 법이 있습니다.

신명기 21장을 보면, 자식이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면 부모가 그를 재판정에 데려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재판정에 모인 사람들은 말 안 듣는 무례한 자식을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처럼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을 엄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는 지혜서인 잠언서를 봅시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23:22)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10:1)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을 존경하며 섬김으로 축복받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며 죽어 가시면서도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자식의 고통을 보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보시고는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당시의 “여자여”란 호칭은 존경을 표하는 호칭입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존경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이 여기 있습니다” 란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 옆에 함께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그 때부터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교회에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서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에베소 유적지에 가면, 성모 마리아가 요한과 함께 살았던 것을 기념하여 <성모 마리아의 집>과 <성모 마리아 교회>가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0세 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까지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때, 어떻게 부모님을 모셨는지 상세한 기록이 성경에는 없지만, 누가복음 2:51에 한 줄로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예수님은 30세까지 고향에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받드셨습니다. 효도하셨습니다. 30세부터 33세까지 3년간 부모를 떠나 복음전하며 사셨지만, 이제 마지막 십자가 죽음 직전에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가슴치며 통곡하는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기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뒤의 28절을 보십시오.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기신 후, 이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살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으로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에게 맡기심으로 이제 세상에서의 그의 할 일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어머니께 효도하신 예수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을 끝까지 모시는 것은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연세가 많이 드시면 기억력이 떨어지므로 대화가 되지 않으니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평생 효도하십시오. 노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돈, 화폐, 수표, 머니(money)” 입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 정도로 노인들에게는 돈이 필요합니다. 어르신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물질로도 잘 봉양하시기를 바랍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끝까지 모셨습니다.
이미 부모님을 천국에 보내드린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연세드신 어르신들을 부모님처럼 섬깁시다. 우리 동네의 연세드신 어르신들을 나의 부모님으로 생각하고 돌봐드립시다.

5. 부모님을 통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오늘의 나의 모습은 부모님의 양육의 결과입니다. 부모님께 대한 이미지가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부모님은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부모님이 떠나시고 나면 마음의 고향을 잃은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계실 때 마음껏 존경하며 섬기십시오. 

이런 그림동화가 있습니다. 연세 많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여 식사 때 국이나 음식을 흘리곤 하셨습니다. 이것을 불편해한 부부는 아버지께 잔소리를 했지만, 아버지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아버지를 방 한 구석에 앉히고 수저를 아예 주지 않고, 아버지의 음식을 여물통에 주었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잡수시던지, 입을 직접 대고 잡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 집의 아이가 헛간에서 나무, 톱, 망치, 못으로 무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뭘 만들고 있니?”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늙으면 쓸 여물통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스튜어트 브리스코, 가정, 그 성경적 이해, 목회와 신학, 2005. 5월호, 50-51)

지금 연세드신 부모님의 모습은 앞으로 30-40년 후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부모님을 정성을 다해 공경하시는 성도 여러분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며,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공경받으며 사실 것입니다. 나아가, 천국에서도 영원히 축복 누리며 사실 것입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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