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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행복한 가정을 바라는 당신에게 (벧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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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바라는 당신에게 (벧전 3:1-7)

늘 똑똑하게 굴어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아이가 너무 기특해서 물었습니다.
"우리 아들 커서 뭐가 될까?"
"대통령"
신이 난 엄마가 또 묻습니다.
"우리 아들 대통령 되면 엄마 뭐 시켜줄래?"
꼬마 아들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자장면"
엄마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장면 너나 먹어!"

작은 것에 행복하기도 하고 작은 것에 불행해지기도 하는 곳이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은 건강해야 합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합니다.  가정이 든든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속한 가정의 구성원에게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온 나라를 건강하게 하고 든든하게 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가정에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를 하려고 할지라도 가정이 무너진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가정이 건강하면 사회도 건강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회사를 설립하신 적이 없습니다.  학교를 세운 적도 없습니다.  국가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공동체는 교회와 가정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가정이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경험하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이 가정 안에서 평화와 안식과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경험함으로써 행복을 맛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당한 후 무려 이천년 동안이나 전세계에 흩어져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신앙과 문화와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수 민족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박해를 받으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위에 가정을 세워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에 기록된 쉐마를 부지런히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각 가정마다 아버지가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암송하게 했습니다.  가정을 믿음 위에 든든히 세워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대인의 신앙과 문화와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강대한 로마제국은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를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기본은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붕괴"  그 당시 로마에는 로마시민의 5배나 되는 엄청난 수의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예들이라고 해서 다 무식한 것이 아니라 학식이 많은 사람들도 있었고, 최고의 요리사와 건축가 등등 각 분야에서 특출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넘쳐나는 노예들로 인해 남자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편안히 먹고 살수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한가로이 목욕을 즐기며 외모를 치장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부부가 방탕한 생활에 빠지다 보니 그 결과 가정이 붕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로마제국은 무너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고로 가정이 든든해야 합니다.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가정이 제 기능을 다해야 합니다.  가정에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행복을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단란주점에서 단란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단란함을 찾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우리는 회복시켜야 합니다.  가정이 건강하고 든든할 때 이 사회와 민족은 모든 분야가 힘있고 건강하게 제 기능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더구나 사탄의 공격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 세상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후회도 많고 아쉬움도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속았다고 생각되는 때도 많이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인생 속에 크고 작은 많은 위기가 있습니다.  사업의 위기, 건강의 위기, 인간 관계의 위기.......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위기 가운데 아주 심각한 위기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부생활의 위기입니다.  가정의 위기입니다.  지금 이 땅에는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집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집니다.  가정은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단위입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성장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부부에 대해서 이런 말까지 있지 않습니까?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산다.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고 산다.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산다.
그리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깨어지고 무너지기를 원하는 것은 사단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행복한 가정은 서로의 노력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 결혼을 합니까?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서로 절망하고 낙심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며 상대방이 변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이 나를 먼저 사랑해 주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원도 가꾸지 않으면 결코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도 3개월만 가꾸지 않아 보십시오.  거기에는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갖다버린 쓰레기들로 더럽혀지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가정도 가꾸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 내가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저와 여러분에게 힘쓰고 지켜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내 되신 분들은 들으십시오.

아내 되신 분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십시오.

본문 1절을 아내 되신 분들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여기에서 순복은 아첨이나 부득이함이나 외식으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순종을 말합니다.  사랑하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왜 아내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오늘 이 시대에 이 말씀이 합당하기나 한가?  그래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남녀의 평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발바닥을 취하여 하와를 만드시지 않고 갈비뼈를 취하여 만드셨다는 것은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가정의 질서 때문입니다.  가정의 질서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땅에 가정이 왜 무너집니까?  남편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가정의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행복한 가정을 바란다면 가정의 질서를 허물지 마십시오.

탈무드를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네가 계집종처럼 처신한다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룰 것이고,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한다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에는 목욕도 하게 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며, 남편의 친구가 놀러왔을 때에는 극진히 대접할 것이다.  그리하면 남편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될 것이다.  딸아,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기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에 관을 씌워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좋은 부부관계를 이루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아내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 말씀대로 대접받는 남편이 되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아내로부터 신뢰받는 남편이 되어야 하고, 존경받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를 못한 남편들이 문제입니다.  아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무리 남편을 잘 섬기려고 해도, 그 남편을 도무지 믿고 신뢰할 수 없고, 존경할 것이 없는 남편이라면 그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특별히 가정에서 남편이 가장 참기 힘들어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할 때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아내는 남편을 업신여기게 되기 쉽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보면 남편의 자존심이 몹시 상하게 됩니다.  이때 남자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참지 못하여 분이 나면 주먹이 올라가기도 하고 물건을 부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언제나 남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지혜로운 여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십니까?  여자는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남자는 자존심을 세움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주위에는 사고로 다쳐 평생 누워지내는 불구자를 남편으로 두었으면서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런 아내, 이런 어머니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본문 1절에서 베드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불신자의 남편일지라도 그 아내의 행위로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믿음의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변화된 아름다운 행위로 남편을 구원하십시오.  그것은 바로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순종해야 합니까?
본문 5절을 다같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여기에서 말하는 거룩한 부녀들은 사라나 한나와 같은 여인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거룩한 부녀들은 소망을 자식이나 남편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우리가 왜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할까요?  그래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고 기대를 걸면 반드시 실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6절에서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사라가 처음부터 그렇게 순종하는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 역시 성깔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 그 종 하갈과 동침하게 했습니다.  하갈이 잉태를 하자 자식을 못 낳는 사라를 멸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라가 열 받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6장 5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바가지를 긁습니다.  "내가 받는 욕을 당신이 받아라."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자식을 낳을 것에 대한 말씀을 들었을 때에 아브라함을 나의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아야 남편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받으십시오.  하나님께 은혜 받은 결과는 남편을 주인처럼 섬기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남편을 주인처럼 섬기지 않는 은혜는 거짓된 은혜입니다.

무엇보다도 은혜 받은 여인은 겉 사람보다 속 사람을 단장합니다.  본문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옛날 고대의 남자들은 주로 밖에서 활동하고 여자들은 집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집안에서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얼굴과 몸을 화장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외모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체의 외모도 단장해야합니다.  머리는 빗지 않아서 까치집이나 지어 다니고, 얼굴도 창백하게 하고 다니고, 옷도 지저분하게 입고 다니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전도도 그런 사람이 하면 되지 않습니다.  적당하게 화장을 하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머리도 단장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너무 떡칠을 하면 곤란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여인들의 화장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10대가 화장을 하면 화장이지만 20대가 화장을 하면 치장이다.  30대가 화장을 하면 분장이고 40대가 화장을 하면 가장이다.  50대가 화장을 하면 포장이다.'
이 말을 했더니 식사 중에 나이 많이 드신 한 여성도님이 그러면 60대는 뭐라고 부르느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했더니 이분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환장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외모의 단장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단장입니다.  결혼해서 살다보면 육체의 아름다움보다는 마음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것임을 실감합니다.  모름지기 마음이 아름다워야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마음을 단장해야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의 아름다움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장해야 합니까?
속 사람을 어떻게 단장하라고 말합니까?

첫째는, 온유와 안정한 심령으로 단장하십시오.

사실 우리의 속 사람은 온유하고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난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육의 지배를 받으며 살기 때문에 쉽게 분노하고 평정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우리는 온유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내는 무엇으로 단장을 해야 합니까?
온유함입니다.  아내에게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매력이 흘러 나와야합니다.  아내는 무엇으로 단장을 해야할까요?  안정된 심령입니다.  안정한 심령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는 평온한 마음, 정숙한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이것을 요구합니다.  사람이 중년기가 되면 남자가 여성화되고 여자가 남성화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집 안에만 있고 싶어하고 여자는 나가고 싶어합니다.  남자는 하루 종일 세상에서 할 말을 다 하고 들어와서는 말하기 싫어서 침묵합니다.

반면에 여자는 하루 종일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살림만 하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되면 바가지를 긁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아내는 가정을 안정되게 해야 합니다.  평온하게 해야합니다.

아내는 돕는 배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늘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남편의 부족한 점을 격려해 주어야합니다.  그래서 피곤에 지친 남편이 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순복함으로 단장하십시오.

여성의 매력이요 아름다움은 온유함입니다.  안정된 심령입니다.  다음에는 순종입니다.  우리가 왜 순종해야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창조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복음이 증거되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자신을 단장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인 남편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오던 아내가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어렵게 남편이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런 남편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모처럼 남편과 둘이서 동해안 여행을 떠나 경포대관광호텔에 들렀습니다.  저녁이 되어 보름달이 뜨자 아내는 잠시 산책을 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샤워하는 동안 산책을 하다가 문득 이런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남편의 신앙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나무 아래에 앉아 남편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쯤 기도했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철야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가 얼마나 좋은 현모양처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기도로 내조하는 아내가 있기에 남편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남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혼자 차를 몰고 집으로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내 되신 사랑하는 여러분,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을 소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자기 기분에 살지 말고 피곤에 지친 남편의 기분을 올려주십시오.

이제는, 행복한 가정을 바라는 남편 되신 분들에게 말합니다.

남편 되신 분들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오늘 본문 7절을 남편 분들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녀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려면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고생이 많습니다.  특별히 여자들은 아이를 임신하여 열 달 동안 몸에 품고 다니는 수고와 엄청난 해산의 고통, 그리고 아이의 양육은 물론 가사노동까지 그야말로 고생이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여자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저는 제 아내의 수고를 보며 여자가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시집을 가는 것은 오직 하나 남편의 사랑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은 가장이기 때문에 가정의 모든 문제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아내가 잘못하여 문제가 생겼든지, 자식이 잘못하여 문제가 생겼든지 남편은 일차적인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먼저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십시오.
본문에서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라는 말에서 지식은 경험적으로 인격적으로 얻은 지식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내를 바로 알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경험을 통해서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성품과 감정의 미묘함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해한 아내가 아니라 아내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기십시오.
귀히 여기라는 말은 사랑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내를 왜 귀히 여겨야 합니까?  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약합니다.  신체적으로 유혹에도 약합니다.  그러므로 힘든 일은 남자가 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머리에 짐을 이고 아이를 등에 업고 양손에 물건을 들고 걷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도포자락을 흩날리며 점잖게 걷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연약한 그릇이기에 특별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얻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은혜란 영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천국을 같이 누릴 존재라는 말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기도가 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기도가 막힙니다.  남편에게 불순종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남편도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기도가 막힌다는 말은 은혜의 통로가 막힌다는 말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막힌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사랑이지만, 인간의 사랑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받은 만큼 주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많이 받을수록 사랑을 배우게 되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은 여인들을 살펴보면, 대개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거나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여인들은 사랑할 줄을 모릅니다.  아내를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들은 대개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당연히 심은 것이 없으니 거둘 것도 없는 것입니다.  늙어서 뒷방신세나 지는 처량한 노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젊어서부터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사랑을 받은 아내가 사랑에 감격하고 사랑을 배워서 늙어서도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가정(假定)하여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남편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내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또 다른 가정법(假定法)인데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로 인하여 부부관계가 단절되거나 헤어짐의 아픔을 겪는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현기증 날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오늘 내 곁의 남편과 아내, 가족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행복은 뜨겁게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사랑은 실패가 없습니다.  사랑은 손해가 없습니다.  사랑은 오직 성공이요 기쁨이요 승리요 행복에 이르는 비결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가정은 행복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베푼 만큼 돌아옵니다.  여러분이 하루를 살면서 사랑 받은 일이 없다면 여러분이 사랑에 인색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내가 베푸는 만큼 돌아옵니다.  사랑은 정확하고 실패가 없습니다.  사랑은 관계입니다.  어떤 조건이 아닙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 왔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집 센 남편' '콧대 센 아내'를 길들여서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손해보는 일이 없고 실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먼저 사랑을 베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곳에 천국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의 행복은 서로 힘을 합쳐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칭찬하고 귀히 여기고 존경해보십시오.  서로 존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서로 허물을 덮어주고 용납해보십시오.  서로 고마움을 알고 감사해보십시오.  행복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 필경 자녀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할거야.....
나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여자를 만나 결혼할거야....'

사랑하는 여러분, 내 자녀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어린 내 자녀들이 '엄마, 아빠.  천국은 어떤 곳이야?' 라고 물어 왔을 때. "얘야, 천국은 말이야 바로 우리 가정과 같은 곳이란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가정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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